in 아카이브 (2002-2013), 취어생 (2002-2008)

멘델은 도대체 뭘 한거야?

http://heterosis.egloos.com/773092 원문


2005년 10월 11일, 10월의 둘째주를 앞으로 멘델주간이라 부르도록 한다. 이 주간에 멘델을 둘러싼 100여년의 논쟁사로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관련 논의는 이곳을 참고

멘델은 도대체 뭘한거야? : 멘델이 실제로 생각했던 자신의 작업과 이에 대한 오해들

멘델의 작업이 받아들여진 과정, 즉 연구의 시작부터 최초의 발표, 재발견과 논쟁, 자연선택 가설과의 종합은 앞으로 자세히 설명되거나 많은 자료가 주어질 것이다. 여기서는 멘델의 작업 그 자체를 다룬다. 존 월러(John Waller)가 그의 책 ‘아인슈타인의 행운’에서 이야기했듯이 많은 이들이 멘델의 논문을 직접 읽지 않았다. 그의 작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채 마치 멘델이 유전자 쌍(gene pair) 개념을 가지고 연구했다는 식으로 기술하는 것은 무지한 짓이다. 만약 멘델에게 유전자 쌍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가 선언했던 두 법칙 ‘분리의 법칙(Law of Segregation)’과 ‘독립의 법칙(Law of Independent Assortment)’는 현대 멘델유전학적 개념과 양립할 수 없다. 유전자쌍 개념 없이 현대 멘델유전학과 양립할 수 있는 유일한 법칙은 우성과 열성에 관한 원리(우열의 법칙)뿐이다. 하지만 멘델 자신은 이를 법칙으로 말한 적이 없다. 우성 형질이 존재한다는 것은 멘델 이전의 잡종가(hybreeders)에 의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유전자 쌍이라는 현대유전학의 개념을 버리고 멘델 당대의 과거로 돌아가 그의 작업을 살펴보기로 하자. 멘델은 완성된 유전법칙을 발견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관심사는 유전법칙이 아닌 잡종이 새로운 안정된 종을 형성할 수 있는가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가장 유명한 그의 논문 ‘식물 잡종화에 관한 실험들 Experiments in Plant Hybridization”에서 그는 7개의 세트로 이루어진 그룹을 만드는데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키가 크거나 작은 것, 씨앗이 둥굴거나(S로 표기) 울룩불룩한 것(s로 표기)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형질들은 그가 취미로 오랜 시간동안 교배연구를 하면서 얻은 지속적이고 대비되는 형질들을 선별해 고른 것이다. 각각의 그룹으로부터 그는 250여개의 잡종개체들(F1)을 얻었다. 이렇게 얻어진 잡종개체들은 부모세대의 형질 중 하나를 닮게 되는데 (S와 s의 교배로 Ss가 나오면 S의 형질만이 발현된다) 이를 우성형질이라고 불렀다. 이후 그가 수행한 작업은 이들 F1들끼리 교배를 하는 것이었다(F2). 

사실 여기서 자세히 논할 필요는 없지만 그가 이런 실험을 수행한 이유는 확연히 대비되는 형질을 가진 부모로부터 생산된 잡종이 과연 안정적으로 새로운 종을 형성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함이다. 멘델은 그것이 가능하리라고 믿었고(이러한 믿음에는 린네로부터 기원된 잡종주의의 전통이 서려있다. 이에 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결국 실패한다. 사실 이러한 실패야말로 당대의 청중들(그 청중들속에는 많은 과학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이 멘델의 작업을 실패로 간주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이유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F2의 개체들은 부모의 형질 중 하나(S or s)를 닮는다. 그리고 그 형질의 비율은 우성:열성이 거의 정확하게 3:1로 나타났다. 그는 이러한 실험을 몇세대에 걸쳐 반복했고 현대유전학에서 ‘분리의 법칙’이라고 알려진 법칙을 선언한다. 분리의 법칙에 관한 멘델의 표현은 아래와 같다.

잡종개체들은 두가지 다른 형질을 가진 씨앗들을 형성하는데, 이 중 절반은 다시 잡종개체들을 만들고, 나머지 절반은 지속되는 형질을 지니며, 우성과 열성이 같은 비율로 나타난다. 
이후 멘델은 두가지(한 경우에만 세가지) 형질들을 교차교배함으로서 그의 두번째 법칙인 ‘독립의 법칙’을 선언하게 된다.

이러한 작업을 설명하고 난 후 멘델은 이러한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제시한다. 먼저 그는 잡종개체가 두종류의 생식세포(꽃가루와 난세포)를 만든다고 가정한다. 첫번째 종류의 생식세포는 부모세대 중 하나의 형질을 나타내는 요소를 가지고(예를 들어 S), 나머지 종류는 나머지 형질을 가지게 된다(s). 생식세포들의 결합으로 세가지 종류의 조합이 발생할 수 있다. 

1. 두가지 종류의 생식세포 모두가 우성형질을 가진 경우 (S-S): 이 경우 태어나는 자손은 모두 우성형질을 나타내며 이들간의 교배는 이러한 형질을 유지하게 된다.
2. 두가지 종류의 생식세포 모두가 열성형질을 가진 경우 (s-s): 1의 경우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3. 두가지 종류의 생식세포가 서로다른 형질을 가진 경우 (S-s): 이 경우 잡종이 형성된다. 이렇게 형성된 잡종은 분리의 법칙에서 기술된 잡종처럼 행동하게 될 것이다. 서로다른 형질을 가진 생식세포가 같은 비율로 형성되고, 이를 충분한 숫자를 가지고 통계적으로 관찰한다면 잘 알려진 비율을 관찰하게 될 것이다. 두번째 법칙은 이러한 형질을 결정하는 요소들이 ‘독립적’으로 분리된다는 가정만을 요구한다. 

이러한 멘델의 논증은 현대유전학의 유전자쌍 개념과 일치한다고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멘델은 유전자쌍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제 이에 관해 설명한다. 이 작업은 로버트 올비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고 이후 많은 과학사가들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이미 언급되었듯이 사실 멘델은 유전에 기제에 관해 어떤것도 말하지 않았다. 이는 그의 논문에 사용된 용어를 보면 분명해 진다.

A로 지속적인 두가지 형질(character) 중 하나를 나타내도록 한다. 예를 들어 우성은 A, 열성은 a, 잡종은 Aa로 표시한다. A+2Aa+a 로 이처럼 다른 두 형질의 교배로 형성된 자손들을 기술할 수 있다.
현재 우리는 A에 유전자라는 개념을 사용하지만 멘델은 형질(character)를 사용했다. 이 부분을 그냥 지나가서는 안된다. 물론 현대의 유전자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멘델은 원소(element)라는 용어를 가지고 있었다. 멘델에게 원소는 유전되는 물질의 입자를 의미했다. 1865년의 논문에서 그는 원소라는 용어는 10번, 형질은 182번 사용했다. 만약 멘델이 형질을 표현형의 의미로만 사용했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우성과 열성의 쌍인 잡종 Aa를 표현할 때 원소 대신 형질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멘델은 이러한 형질이 유전된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점은 멘델이 이처럼 물리적 형질의 수준에서만 논의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멘델의 용어에서 형질쌍(paired characters)는 유전자쌍(gpaired gene)과 같지 않다. 멘델이 실제 관찰한 것은 이와 같은 형질일 뿐 그는 생식세포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의심을 더욱 부추기는 것은 멘델이 순종을 기술하는 데 있어서는 형질쌍이라는 말조차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순종의 경우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형질들만을 가지는데, 따라서 쌍이라는 개념이 불필요했던 것이다. 사실 멘델은 잡종을 유전의 특별한 경우로 취급했다. 그렇다면 멘델이 -만약 가지고 있었다면- 가지고 있던 유전개념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같은 종류의 형질을 보이는 생식세포간의 결합은 정상적이다. 이 경우 그 어떤 불화도 발생하지 않는 완벽한 융합(union)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순종간의 교배는 순종만을 만들어내게 된다. 하지만 잡종의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서로다른 종류의 형질을 나타내는 생식세포가 결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상적인 경우가 아니다. 멘델은 이처럼 이질적인 두 종류의 생식세포 결합을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구성이 행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부의 힘(inner force)를 상정했고 이 힘은 이질적인 종류의 유전단위를 서로 밀쳐내는 종류의 힘이었다. 이 힘 덕분에 수정된 세포가 발생과정을 겪는 동안 스스로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순종의 형질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잡종간의 교배에서 절반이 다시 순종의 형질로 돌아가게 되는 현상이 설명될 수 있었다. 멘델의 유전에 관한 이론의 급소가 바로 여기에 있다. 멘델은 잡종은 순종과 다른 생리적 기제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유전의 단위를 언급했고 분리를 말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모든 것은 ‘잡종’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이제 한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멘델의 경우 1:2:1의 비율은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A + 2Aa + aa

현대 유전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AA + 2Aa + aa

이미 언급되었듯이 멘델에게는 유전자쌍 개념이 없었으므로 잡종을 나타내는 표현 Aa의 공통점이 많은 이들을 당황하게 할 것이다. 사실 멘델이 Aa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것이 가장 손쉬운 표현법이었기 때문이다. 멘델의 관찰결과는 잡종형이 우성과 열성의 형질 모두를 가진 상태임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이러한 잠재적인 상태의 기술로 Aa를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멘델의 Aa는 잡종형의 상태를 기술하기 위한 단순한 표현법일 뿐 유전자쌍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결국 우리는 멘델의 논문에서 나타나는 Aa라는 표현과 현대 유전학의 Aa라는 표현의 유사성으로 이 둘을 연결시킬 근거를 가지지 못하며 이를 현대적인 분리의 법칙과 연결시킬 근거또한 가지지 못한다.

사실 현대 유전학의 기본 개념인 유전자쌍 개념은 멘델 사후 많은 과학자들이 현미경을 이용해서 핵내의 염색체를 관찰한데서 비롯된다. 이러한 학문분과를 당대에는 Cytology(세포학)이라고 불렀다. 세포학자들은 현미경과 염색기법의 발달로 인해 세포의 분열을 직접 관찰할 수 있었고 감수분열현상도 밝혀내게 된다. 세포학과 더불어 골턴등의 생물계측학자들(biometricians)에 의해 당시 함께 발달한 생물계측학의 통계적 기법이 멘델의 법칙이 재발견되고 정당화 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준 것이다. 골턴이 생물학에 접근한 방식은 멘델과 두가지 점에서 유사한다. 둘 모두 개체간의 전체적인 차이가 아닌 특별한 특징(키, 몸무게)의 차이에 촛점을 맞추었고, 통계적인 기법을 사용해 데이터를 분석했다. 골턴의 제자들이 이후 다른 생물학자들보다 먼저 멘델의 업적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이를 응용했다는 것은 따라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후 토마스 모건의 초파리 돌연변이 연구에서 단일 돌연변이 유전자의 유전법칙이 멘델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 발견되면서 ‘멘델 유전학’이 현재의 모습으로 둔갑하게 된다.

형질과 입자라는 용어로 멘델을 이처럼 격하시키는 것이 불만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멘델을 격하시키는 것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멘델 당대의 과학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미 언급되었듯이 멘델이 수백~수천개의 입자들이 각각의 특정 형질을 구성한다고 가정했을지라도 이들의 융합에 있어서 ‘동질의 입자 AA, aa’들의 경우에는 분리가 필요 없었다. 오직 ‘이질적인 입자 Aa’의 융합에 있어서만 분리의 법칙이 요구된 것이다. 사실 이러한 유전입자에 관해 멘델은 별 생각조차 없었다. 그는 입자가 무엇을 하는지, 얼마나 많은 입자가 관여하는지에 관해 특별히 언급하지도 않는다. 이는 우리가 처음에 보았듯이, 멘델이 유전의 법칙을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잡종화에 의해 새로운 종을 만들려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분명해진다.

또한 그가 유전에 관해 언급하는 소수의 경우에도 그는 생식세포 전체에 관해 언급할 뿐 단일원소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든 배후에는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멘델 자신의 한계가 숨어 있다. 그가 관찰한 모든 것이 생식세포 내부의 것이 아닌 외부의, 그리고 표현형질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는 생식세포 내부에서 일어나는 실제 유전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사실 관심조차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한가지, ‘잡종’이라는 현상뿐이었다. 이 잡종이라는 개념사는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린네로부터 유럽제국주의의 팽창과 더불어 시작된 이 잡종주의가 멘델에까지 이어지며 이에 관해서는 월러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외에도 멘델은 다른 종의 식물을 가지고 실험을 수행했다. 몇몇 종의 경우 완두콩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지만 콩과 식물의 꽃색깔은 그의 다른 결과들과 일치하지 않았다. 잡종들의 꽃색깔은 넓은 범위에 걸쳐 나타났고 멘델은 이 경우를 설명하기 위해 콩과 식물의 꽃색깔의 경우 독립된 두가지 이상의 인자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가정했다. 이렇게 멘델은 후대에 “다요소 가설 multifactor hypothesis”이라 알려진 가설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올리는 논문은 멘델의 가장 유명한 논문 “Experiments in Plant Hybridization”, 올비의 논문 ‘Mendel, Mendelism and Genetics’, 오렐의 두 논문 “What did Gregor Mendel think he discovered?”, “Heredity before Mendel”과 월러의 책의 멘델 챕터부분 “The Priest Who Held the Key”이다. 더 많은 자료들을 원하는 분들은 아래 사이트를 참고하면 된다.

Mendel Web

Robert Olby

John Wal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