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생물학적 본성 이해의 기초로서 유전자 코드와 진화 법칙

http://heterosis.egloos.com/773112 원문


2005년 10월 20일, 기무라의 다음 논문을 완역한 것이다. 관련 논의는 이곳을 참고. 이 글을 널리 퍼뜨려 주시길

인간 생물학적 본성 이해의 기초로서의 유전자 코드와 진화 법칙

모투 기무라, 일본 미쉬마 국가 유전학 연구소 

번역: 김우재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데카르트가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자의식, 경험, 사고등 우리자신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고려해보았을 때, 개개인은 하나의 세계다. 그러나 유전학적으로 말해보자면 개개인이란, 인류를 하나의 종으로 구별시켜주는 거대한 유전자 풀로부터 추출된 무작위적 표본일 뿐이다. 이 유전자 풀에는 엄청난 다양성이 존재하며, 특히 핵산염기배열의 차원에서 이점은 더욱 명확하다. 그러므로 일란썽 쌍둥이를 제외하고는 인간이라는 종의 역사에서 유전적으로 동일한 두 개체가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현형적 통일성이 존재하며, 따라서 정상범위에서의 주목할 만한 변이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이웃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생물학전 본성을 고려해 보았을 때, 인간이 원시스푸의 스스로 자기복제하는 분자들로부터 기원하며 진화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 진화와 유전에 관한 지식은 필수적이다. 유기체로서의 인간은 그의 유전자들이 전제하는 범위를 초월할 수 없다.

물리학과 비교해 보았을 때, 생물학은 20세기 초엽 멘델 유전학이 재발견 되고 유전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기 전까기는 나이브한 경험적 영역에 안주하고 있었다. 그 후 지난 20년간 이러한 진보는 분자유전학에서의 엄청난 지식의 축적을 가능하게 했고 이와 더불어 생명의 물질적 기초에 대한 전례 없던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진보를 통해 우리는 유기체를 형성하는 지령이 문자처럼 사용되는 네가지 염기(ATCG)로 구성된 DNA 혹은 RNA안에 있다는 관점에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표현형질의 총합으로서의 인간 개개인은 수정란에 담긴 유전적 지령 (혹은 유전자 정보)의 번역판인 것이다.

비록 수정란이 하나의 성체가 되는 데 필요한 복잡한 화학 반응에 대한 자세한 지식이 아직 존재하지 않고, 고등 식물이나 동물의 염색체의 분자구조가 아직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물질의 가장 근본적인 면은 이미 해결되었다. 우선 분자차원에서의 유전자의 본성을 간략히 요약해 보자.

유전자, 더 정확히는 시스트론(cistron)은 A(알라닌), T(티민), G(구아닌), C(싸이토신)라는 네가지 핵산염기의 문자로 쓰여져 있는 선형적 메시지라고 간주할 수 있다. 유전자가 작동하면 이러한 DNA상의 정보는 RNA로 전사되며 RNA는 T(티민) 대신 U(우라실)을 가지고 있다는 점만이 DNA와 다르다. 전령RNA의 정보는 20여 종류의 아미노산이 연결되어 폴리펩타이드로 번역된다. 이렇게 형성된 폴리펩타이드는 접힘과정을 통해 기능을 가진 단백질이 된다.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효소, 호르몬, 구조물질(머리카락)등이 모두 단백질임을 기억해야 하며 단백질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 진다.

이제 세가지 염기로 이루어진 트리플렛(triplet)이 하나의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코돈(codon)을 구성한다. 네가지 염기의 트리플렛으로 가능한 조합의 수는 4^3=64 코돈이다. 이들 중, 61개는 20개의 서로다른 아미노산을 지정하고 나머지 3개는 번역과정을 정지하라는 명령의 역할을 수행한다. 64종류의 모든 코돈이 해독되었고, 이는 현대 생물학의 가장 뛰어난 업적이다.

유전자 돌연변이는 DNA 메시지 상에서의 변화이며, 두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1) 하나의 염기가 다른 염기로 교체되는 것 (2) 삭제나 첨가와 같이 구조적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유전자 돌연변이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유전자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너무 많은 오타가 있으면 문장 자체의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처럼, 비록 해로운 효과가 각 돌연변이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많은 양의 돌연변이는 개체의 생존과 생식(적합도를 말한다)에 안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만약 단백질의 중요한 부위에 변화를 주는 돌연변이가 일어난다면 그 영향은 매우 클 것이다. 반면에 DNA상의 변화가 둥글둥글한 단백질의 표면과 같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아미노산 부위에서 일어난다면 적합도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 특히, 돌연변이가 동의적(synonymous), 혹은 휴지된(silent) 것이이서 DNA상의 변화가 같은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것이라면 해로운 효과는 최소화되고 자연선택은 이러한 돌연변이 유전자와 정상 유전자를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러한 돌연변이는 선택적으로 중립적이다. 

돌연변이는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원인임과 동시에 정상범위에서의 변이가 나타나는 원인이기도 한다.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표현형상에서의 변이는 유전자와 환경의 공동합작물이며, 대부분의 경우 단 하나의 돌연변이가 집단에 미치는 영향을 구분짓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돌연변이가 해로우며 생물 조직의 질서를 향상시키기보다는 저하시킨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이러한 사실은 열역학의 제2법칙과 일치한다. 돌연변이가 인류 집단의 건강에 매우 해로운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유전학자 뮬러가 “돌연변이의 짐(load of mutation)”이라는 개념으로 이를 소개하기 전까지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돌연변이가 일어난 대립유전자가 한종에 속하는 개체의 생존과 생식에 유리할 확률은 상당히 낮고, 이마저도 양성선택(positive natural selection)의 도움이 없다면 한 종의 집단내에 고착화되기 힘들 것이다.

비록 그처럼 유리한 돌연변이의 발생이 드문일일지라도 생명이 기원한 이래로 엄청난 시간이 흘렀고, 셀수 없는 개체들이 탄생했을 것임으로 충분한 숫자의 이로운 돌연변이가 몇몇 계대에서 축적되었을 것이며, 우리와 같이 복잡한 종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생물학적 세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표현형들의 의미를 이와 같이 다윈의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이라는 이론을 기본적인 규칙으로 사용하여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비록 사실로서의 진화가 몇몇 종교적 신념에 의해 거부되고 있기는 하지만, 과학의 세계에서 진화라는 용어는 생물학 이외의 영역에서조차 역사적 발전을 의미하기 위해 널리 사용되고 있다. “별의 진화”라던가, “우주의 진화”라는 말은 널리 사용된다. 하지만 우리는 생물학적 진화를 다른 진화와 구별해서 바라보아야만 한다. 생물학적 진화는 일반적으로 환경에 대한 증가된 적응을 수반한다. 그러한 적응적 변화의 축적을 통해 지구상에 좀더 고등한 형태의 종이 등장할 수 있었다. 고등한 형태라는 말은 좀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좀 더 광범위한 환경을 이용한다는 것도 의미한다. 동시에 우리는 중립적 변화와 같은 퇴보 또한 진화의 역사에서 발생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결국 진화란 시행착오의 과정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천문학적인 숫자의 형태들이 시도되었고 대부분은 결국 실패했다. 단지 운좋은 소수만이 좋은 유전자의 조합을 부여받았고 동시에 유별나게 호의적인 환경이라는 기회를 통해 다른 종과의 경쟁에서 그들의 숫자를 불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살아남은 종들은 아종을 만들고 결국 이러한 아종들은 구별되는 다른 종으로, 과와 속으로 분화된다. 점진적으로, 성공적인 계대는 그렇지 못한 계대보다 확장되어 나갈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 육지를 지배하는 포유류의 조상이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2백만년전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한 종으로 소급될 수 있다는 점을 보면 확연해진다. 그러므로 인간이라는 종은 진화라는 게임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운이 좋았던 종이다. 우리는 게임에서 언제나 항상 이기고 있는 도박사와 같다.

분자진화의 기제를 연구하고 있는 집단유전학자로서 나는 이 강연의 나머지를 내가 가진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 관한 관점에 대한 설명으로 할애하고 싶다. 

개체로서 우리 각자가 가진 유일성은 대부분 인간 집단에 고유한 유전적 다양성으로부터 기원한다. 유전적 구성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불평등하게 태어난다. 최근 큰 집단에서 서로 연관되지 않은 두명의 인간이 서로 얼마나 다른가를 연구했다. 평균적으로 이 둘은 100만개의 염기만큼 다르다. 

내 의견으로는, 포유류 집단에서 발견될 수 있는 분자차원에서의 유전적 다양성의 대부분이 자연선택으로부터 중립적이거나 거의 중립적이다. 이러한 다양성은 ‘돌연변이 유입’과 ‘무작위적 멸종’ 사이의 균형으로 집단내에서 유지된다. 다른 말로 풀어보자면, 그들은 분자진화가 가진 성격이 매우 일시적인 상태라는 것을 나타내 준다. 또한 각각의 다형성이 겨우 몇 백 만년 정도만 유지됨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처럼 우리의 운명이 지구의 역사속에서 일시적이기 때문에, 그 변이들은 (비록 몇 백만년일지언정) 안정적이고 지속적이어야만 한다. 따라서 유전적 다양성은 정적일 수 없고, 결과적으로 보면 무작위적 유전자 표류에 의해 추진되는 엄청난 양의 변화가 존재하며, 유전자내의 염기서열을 광범위하게 변형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는 돌연변이의 무작위성 뿐만이 아니라, 선택적으로는 동등한, 즉 중립적인 돌연변이의 ‘무작위적인 고정’이 한 종의 진화사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내가 몇년전에 지적한 바 있듯이, 살아있는 화석으로서의 각각의 유전자는 염기의 교체라는 방법을 통해 좀더 나은 다른 유전자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겪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유전정보를 간직하고 있는 거대분자들에는 시간의 흔적이 남게 된다.

진화유전학에서 최근까지도 신다윈주의의 관점이 우세했다. 이들에 따르면 선택적으로 중립적인 유전자는 만일 존재했다 하더라도 매우 드물며, 진화의 역사에서 종내에 축적된 대부분의 돌연변이 유전자는 선택에서 유리한 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자 차원에서의 진화 연구는 그러한 관점이 분자 수준에서는 매우 의심스럽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선택적으로 중립적이거나 거의 중립적인 돌연변이의 무작위적인 고정이 진화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알려졌다. 또한, 돌연변이압(mutational pressure)이 진화적 변화의 중요한 원인임이 밝혀졌다. 즉, 하나의 특징(character)이 자연선택의 직접적인 영향력에서 감추어질때마다, 돌연변이는 무작위적 표류에 의해 집단내에 축적되기 시작하며, 대부분의 경우에 퇴화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이에 관한 매우 좋은 예가 바로 비타민C 유전자에서 발견되었다. 인간에게는 아스코빅산을 만드는 유전자가 없다. 킹과 쥬크는 이러한 비타민C 유전자의 소실이 중립 진화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는 가설을 제안했다. 그들에 따르면, 비타민C를 만드는 유전자는 육상 척추동물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하지만 인간을 포함해서 원숭이와, 기니아 피그, 과일 박쥐, 몇몇 연작류에서는 이러한 능력이 퇴화되어 있다. 이러한 종들은 비타민C가 풍부하게 함유된 음식을 섭취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따라서 비타민C를 만드는 유전자에 발생하는 돌연변이는 중립적이고 이러한 돌연변이는 무작위적 유전자 표류를 통해 종내에 고정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현재 인류에게도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현저하게 개선된 환경과 의학의 발전, 가족 계획등은 자연선택을 느슨하게 만들고 이러한 상화에서는 일반적으로 해가되었을 돌연변이들이 중립적으로 변하게 된다. 항생제의 개발로 인한 박테리아 감염에 대한 감수성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느슨해진 선택하에서 돌연변이압의 감소에 따른 생물학적 특징들의 퇴화는-정상적이라면 그렇지 않았겠지만- 문화적 진화에 기반한 진보를 거듭하고 있는 인류 문명에 치명타를 가할지도 모른다.

인간 염색체 반벌은 3.5X10^5 개 정도의 염기쌍을 가지고 있으며 전체인구를 40억 정도로 잡아본다면 한 종으로서 인류가 가진 염색체 한벌은 2.8X10^19 정도의 염기쌍이 된다. 이 숫자는 우리 눈에 보이는 별의 숫자보다 많고 현재까지 인류가 저술한 책의 숫자보다도 많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들이 바늘끝에 올라갈 정도의 공간에 압축되어 있으며, 뮬러가 말했듯이 핵산으로서만 염색체 반벌을 논한다면 겨우 4큐빅 마이크론의 공간을 차지할 뿐이다.

한 종으로서의 인류는 이제 겨우 백만년 정도 되었겠지만, 우리가 가진 대부분의 유전적 유산들은 포유류였던 시절(2백만년 전), 혹은 척추동물이었던 시절(5백만년 전)에서부터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진화적 시기에 유전자의 재조합을 가능하게 해준 양성생식이 서로 다른 개체에게 발생한 유리한 돌연변이를 교환할 수 있게 해줌으로서 진화에 가속도가 붙게 해주었을 것이다. 

원시적인 형태의 유전물질 교환은 지구상에 자기복제하는 생명이 탄생했을 때 이미 존재했을 테지만, 정교한 형태의 성적 재조합은 진핵생물 등장 이후의 일이다. 진핵생물이란 핵을 가진 유기체를 의미한다. 동물, 식물, 원생동물과 효모, 곰팡이들이 진핵생물에 속한다.

46억년전에 우주먼지들이 응집하면서 지구가 만들어졌고 이후 5억년 정도후에 대양과 대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린랜드에 존재하는 바위가 약 37억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 생명이 탄생하기 위한 조건은 약 40억년전에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무화과나무 규질암에서 발견된 에오박테리아의 화석이 정말로 32억년전의 것이라면, 생명은 약 35억년 전에 지구상에 뿌리를 내렸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생명의 기원에 관한 질문은 생물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만프레드 아이겐에 의해 제기된 하이퍼사이클 가설은 이 문제에 관한 가장 두드러진 해결책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사건들에 비해 진핵생물은 매우 뒤늦게 지구에 등장했다. 최근 나는 오하타 박사와 함께 진핵생물과 원핵생물의 5S 라이보좀 RNA 서열을 분석해서 이들의 분기시점을 알아내고자 했다. 남조류와 박테리아가 대상으로 선정되었고, 연구결과는 이들이 약 18억년 전에 갈라져 나왔다는 것이었다. 좀 더 광점위한 데이터를 사용한 히로시 호리의 최근 연구도 같은 결과를 나타냈다. 따라서 진핵생물은 약 20억년 전에 원행생물에서 가지쳐 나왔고, 좀더 고등한 생물들이 탄생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으며 결과적으로는 인간이 등장할 수 있었다.

한 종으로서 우리가 거둔 과거의 성공과 또한 지적 존재로서 우리가 거둘 미래의 가망은 우리의 두뇌에 달려 있다. 따라서 동물 두뇌의 진화에 관한 짧은 언급을 하고 싶다. 신체의 일부로서 두뇌는 수정란의 유전정보에 따라 구성된다. 두뇌의 기능을 유비하자면 동물의 신체에 인스톨된 컴퓨터라고 할 수 있다. 감각기관으로부터 데이터를 받아 효과적으로 신체를 조절하도록 하는 중앙정보처리기관으로서 두뇌는 척추동물의 생존과 생식에 매우 중요하다. 다른 조건이 동밀하다면, 다윈니안식의 사고에서 두뇌를 가진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유리하다. 하지만 좀 더 좋은 컴퓨터가 비싼 것처럼, 좀 더 발달된 두뇌의 사용은 생식율을 불가피하게 떨어뜨리게 된다. 어류에서 영장류까지의 비교해부학적 증거는 두뇌구조가 매우 진보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컴퓨터 용어를 빌려 설명하자면, 진화의 역사에서 하드웨어가 크게 진전된 것이다.

윤리적으로는 매우 불편한 감정이 들겠지만, 지능의 진보에 있어서 육식동물로서의 역사가 주요원인이었음은 분명하다. 포식자는 피식자를 잡아먹기 위해서, 피식자는 포식자로부터 안전하게 숨기 위해서 지속적인 두뇌기능의 향상은 양자 모두에게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문자 그대로 생존을 위해 두뇌의 진화과정이 일어난 것이다. 인류진화사의 지난 3백만년간 뇌용적이 두배로 늘어났다는 것은(진화적 변화에서 매우 빠른 변화) 두뇌 기능에도 큰 향상이 있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 개체의 생존과 생식을 도울 목적으로 진화한 신체기관인 두뇌는 우리의 일상경험을 넘어서는 어떤 것을 인지하는 데에 분명한 제한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매우 만족스러운 형이상학 체계를 만든 철학자라 할지라도 이러한 제한을 넘어설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외부세계를 “공간과 시간”이라는 한도에서 바라볼 때 생기는 우리의 지각능력은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데이터들을 생존에 유리하도록 조직화하는 최적의 수단으로서 진화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각 순간마다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고 생존과 생식에 최적의 전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모든 면에서 자신의 신체를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동물 두뇌의 진화사에서 자기감시라는 초과기능이 부과되었다. 우리의 자의식은 이러한 진화적 발생과정에서 생긴 산물인 것이다. 따라서 한 개인을 생각해 보았을 때, 생존은 존재와 동일하다.

하지만 문화적 진화가 인간이라는 종을 단순히 자의식을 가진 개체들의 집합 이상의 것이 되게 했다. 그의 선대나 동료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때문에 한 개인은 자신을 넘어설 수 있다. 특히, 많은 개인들 사이의 지적인 공동연구로 수행되는 과학은 개개인의 능력을 훨씬 넘어설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자신의 생애에 혁명적인 과업을 이룬 과학자라 할지라도 성공은 그 이전에 축적된 지식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과학적 진리”니 “자연의 법칙”이니 부르는 것들이 나에게는 우리의 두뇌내의 시뮬레이션 실험들의 목적 한도내에서만 잘 작동하는 “서브루틴 프로그램”과 같이 보인다. 만약 우리가 좀더 광범위한 상황을 다루게 되면 그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정교하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어떤 지식도 절대적이지 않다. 인간이 자신을 사고의 닫힌 체계속에 묶어 둘 때에만 그는 무엇인가를 절대적이라고 희망할 수 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 되면서, 특히 인류문명이 발생한 이후부터는 마치 좀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서 많은 컴퓨터를 연결하는 것처럼, 개인간의 정보교환이 점점 큰 규모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우리 시대에는 컴퓨터의 도움으로 그 규모가 가히 국제적이다. 이제 우리는 자기복제하는 분자로부터 나온 인간이 자신을 이루는 분자적 구성을 이해하고 자신이 속한 우주의 크기를 측정하려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모든 성과들은 대부분 우리의 마음 바깥에 있는 세계와 연관되어 있다. 미래에는 두뇌의 기능을 연구함으로서 우니의 마음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좀더 대단한 과학적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물론 두뇌 현상으로서의 마음이 자연선택이라는 진화에 의해 다듬어져왔고, 두뇌가 신체의 일부일 뿐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로부터 밝혀질 우리 내부의 세계는 우리를 둘러싼 외부세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하고 미묘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이용해서 우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는 매우 난처한 순환고리가 있다. 물론 우리는 과학적 탐구라는 것이 많은 마음들이 많은 시대에 걸쳐 공동연구한 노력임을 알아야만 한다. 게다가 좀더 정교해지는 컴퓨터가 우리를 도울 것이다. 그러한 과학적 연구의 잠재성은 단순하게 자기반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존재를 다루는 연구에서 발생하는 순환성을 완전히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게는 이러한 순환성이 인류에게 남겨진 궁극적인 신비로 보이며, 만약 유전학적으로 우리 자신을 슈퍼맨이 되도록 만들 수 없다면, 완전히 다른 수준에서 우리의 존재에 관한 더 깊은 이해를 얻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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