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아카이브 (2002-2013), 취어생 (2002-2008)

저그 최초 우승의 의미

http://heterosis.egloos.com/773116 원문


2004년 8월 6일, 박성준의 저그 최초 우승을 분석한 글. 

스타리그 사상 최초의 저그 우승자가 탄생했습니다. 이 저그라는 종족이 정말 웃깁니다. 스타크래프트가 최초로 이땅에 정착하기 시작했을때부터 온라인 유저들의 대부분이 저그유저였습니다. 저그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했던 종족이었고 그 어떤 맵에서도 장점과 단점이 모두 검증된 최강의 종족이었습니다. 임요환의 테란 우승이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밀어 넣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암울한 종족 테란을 가지고 임요환이 우승을 이루어냈기 때문입니다. 

아홉번의 스타리그, 겜비씨의 리그까지 합치자면 더 많겠지만 아홉번의 스타리그에서야 결국 저그가 우승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뭘까요. 또한 사용자수가 가장 적은 프로토스가 결승전에 올라가면 반드시 우승을 하고야 마는(이번 박정석이 지기전까지 무려 100%의 확률로 우승!) 이유는 또 뭘까요? 

많은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결승전이 5전 3선승제라는 것을 꼽습니다. 사용할 수 있는 유닛이나 빌드오더상의 제약이 심한 저그의 특성상 전략을 세우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죠. 결승전까지 몇주간의 시간이 주어지는데 이 시간동안 프로게이머와 감독은 엄청난 전략들을 세워오게 마련이고 결승전의 사용맵은 거의 모두 완벽하게 공략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럴 경우 상대적으로 전략의 가능성이 풍부한 테란이나 프로토스가 유리하게 된다는 것이죠. 테란이나 프로토스는 현재까지 보여준 전략 이외의 엽기전술등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전략의 가짓수가 적은 저그에 대해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것도 맞는 이야기 같습니다. 하지만 스타리그의 전문가들은 한가지를 놓치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역사적 상황적 맥락이죠. 

그런데 상황적, 맥락적 고려를 해보면 이야기는 조금 복잡해 집니다. 테란과 프로토스, 그리고 저그가 스타리그에서 우승하는 것을 보면 해당 종족이 강했을 때보다는 약했을 때일 경우가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임요환이 그렇고, 가림토 김동수가 그렇고, 완성형 저그 박성준이 그랬습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요? 

흔히 위대한 인물은 페리페리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 중 서울 출신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나 위인전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위인들이 시골 출신이라는 점등이 그걸 증명하죠. 아마도 그런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 하나의 압력으로 작용하는 거겠죠. 페리페리의 인물들은 이미 중심의 인물들보다 위대해질 상황적 특수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정말 그럴까요? 

스타리그 초기 저그대 저그전은 정말 흔했습니다. 최근에는 이걸 거의 보기 힘들고, 대신 테-테전이 엄청나게 많아졌죠. 그러면서 테란의 우승이 줄었습니다. 초기 저그유저들만큼 현재 테란 유저들이 많아졌고, 당시 임요환이 우승했듯이 이번에 박성준이 우승했습니다. 이건 양이 질을 낳는다는 것과는 상반되어 보입니다. 

즉, 저그 유저들이 많으면 물론 훌륭한 저그유저들도 많을 테지만, 리그를 거치면서 자기들끼리 자멸하는 경우가 속출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그유저가 많을 때 저그유저는 자연히 저그를 상대로 연습해야하는 압박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테란과 프로토스를 이기지 못하면 결승전엔 진출 못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대 테란전이나 프토전에 뛰어난 저그유저들은 대저그전에 강한 유저들에게 밀릴 수 밖에 없습니다. 결승전엔 대테란전이나 프토전에 강한 저그유저보다는 대저그전에 강한 유저가 올라갈 수 밖에 없고, 결승전 상대가 테란이나 프로토스일경우 이 유저는 다연히 대저그전에 대한 연습을 충실히 한 선수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승은 테란이나 프토유저가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번에도 같은 상황이 연출된거죠. 

이 이론에는 두가지 가정이 있습니다. 

첫째, 테란/저그/프로토스 모두에 절대적으로 강한 선수가 존재하기는 힘들다. 즉, 완벽한 신이 내린 선수는 아직까지 없으며 불가능하다. 

둘째, 맵 빌더의 의도가 배제되어야 한다. 만약 맵빌더가 당시의 상황을 고려, 맵을 전반적으로 저그나 테란에게 유리하게 만들 경우 이 분석은 의미가 사라진다. (물론 현재의 맵들은 발란스가 그럭저럭 괜찮으며 온게임넷은 발란스를 특히 중요시하고 있으므로 이 가정은 필요 없어 보인다) 

생각해 봅시다. 저그가 대세일 당시 대프토전의 명수 테란유저 한웅열이 아니라 대저그전에 강한 임요환이 우승했습니다. 현재 테란이 대세인 이 시점에 우승한 박성준도 대저그전이나 대 프토전보다는 대 테란전의 전문가입니다. 즉 대세인 종족에 대해 강한 타종족 유저가 우승할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왜냐면 대세인 종족 유저들은 자기들끼리 싸우다 보면 스스로 자멸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죠. 또한 운이 좋게 결승전에 진출한다고 해도 결국 타종족에 대해 강한 유저가 아니라 자신의 종족에 강한 유저가 올라갈 확률이 높아짐으로 인해 타종족 유저는 쉽게 우승을 가질 수 있다는 거죠. 예를 들어 저그가 강세이던 당시의 상황의 결승전은 <저그전에 강한 저그 유저>와 <저그전에 강한 테란/프로토스 유저>가 맞붙을 확률이 크고 결국 저그는 절대 우승 못한다는 겁니다. 임요환이 우승하고 테란유저가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임요환도 그 힘을 조금씩 잃었죠. 그건 물론 임요환이 분석당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저그의 수가 줄었기 때문이기도 한 겁니다. 임요환은 저그가 많아야 빛을 발하는 거죠. 

결국 이번 저그의 우승은 대 테란전을 저그가 어떻게 극복하느냐의 문제였고, 박성준은 그걸 해냈기 때문에 우승한겁니다. 어찌보면 테란이 득세했던 때부터 예상되었던 저그의 우승이었던 거죠. 테란과 저그가 이런 줄다리기를 하고 있을 때 프로토스가 그 틈을 뚫고 대부분의 우승을 가져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이러한 분석이 프로게이머들에게 주는 교훈은 명백합니다. 만약 저그가 대세라면 대저그전보다는 대테란전이나 대프토전을 열심히 연습하는 것이 우승에 근접하는 일이며, 테란이 대세일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스타리그가 이제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마당이므로 이러한 진동현상이 안정될 가능성도 있어 보이지만 현재까지의 스타리그 우승을 두고 보면 명백해 보인다는 겁니다. 즉, 저그가 이제서야 우승을 한 이유는 최초에 저그가 너무나 강세였기 때문이라는 아이러니인 거죠. 저그가 약세가 된 이후에야 우승자가 나오게 되는 겁니다. 

스타리그 우승이 보여주는 아이러니는 유행을 쫓아가다보면 망한다는 거죠. 저그가 대세일 때 자신의 종족으로 저그에 대항하는 법을 배워야지, 저그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테란이 대세인 지금, 저그유저들도 테란을 이기는 법을 확실히 파악해야지 저그를 버릴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스타크래프트가 우대한 게임인 이유는 그 세종족간의 밸런스가 절묘하다는 점에 있으며 암울한 종족이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한때 테란에 힘을 실어주는 편이었지만 이제는 저그 편입니다. 전세계 저그 유저들이여 단결하라!! 테란은 그 엄청난 유저의 양으로 인해 스스로 자멸하고 있으니. 쿠하하.. 

추신: 먼가 제대로 쓰면 이것도 글 하나 될 듯한데 귀찮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