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아카이브 (2002-2013), 취어생 (2002-2008)

동과 서, 그리고 역사

http://heterosis.egloos.com/773154 원문


2004년 10월 7일, 이 경험을 계기로 깐수 정수일 교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관련 논의는 이곳을 참고

간만에 교수도 학회에 갔고 나름대로 나태한 기분에 기숙사 방에 누워 TV를 보는 것이 참으로 낙이었다. 몸에 베인 게으름이야 뉘에게 뒤질소랴만은 그래도 십여년을 꾸준히 해온 것 한가지, 책. 독서도 일종의 중독이다. 한가로이 누워 TV를 보는 것은 이틀 이상을 넘기지 못한다. 반드시 책 생각이 나게 마련이다.

학기가 끝날무렵 기숙사를 떠나는 이들 중에는 종종 책을 무더기로 버리고 가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결국은 펴보지도 않을 책들이지만, 눈에 띄는 대로 주워 오는 것이 버릇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몇년동안 모은 책만도 수십권이다. 한번은 수도 없이 많은 종교학 서적이 내 눈을 강타한 적이 있다. 아마도 독실한 기독교인이 기숙사를 떠난 모양이리라. 볼 것도 없이 다 주워모았다. <기독교 영성사>부터 <기독교 이단연구>까지. 꽤나 열심히 신학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던 것 같다. 책을 왜 버리고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 아마도 신앙에 대한 불만이 쌓였으리라. 기독교 신학을 역사적 관점으로 깊이 공부한 이들에게 진정한 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지 난 아직도 의문이다. 학부시절 교목이셨던 한인철 교수는 그런 이성적 종교인의 모습을 내게 보여주셨다 – 누가 방에 와서 보면 오해할 만큼 많은 양의 서적은 그 존재자체로 또한 뿌듯한 것이다.

그런 소소한 추억을 가진 책 한권이 오늘에야 손에 잡힌 것은 우연일까. 삼국사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문득 고대사에 관한 호기심이 타오르고 있었을 때 내 손에 <기독교 이단연구>라는 책의, 그것도 신라시대에 이미 이 땅에 건너왔던 경교 [Nestorianism, 景敎]에 관한 챕터가 펼쳐져 있었던 것이 우연일까? 그리고 급히 달려온 실험실에서 경교에 관한 검색도중 눈에 들어온 깐수 교수의 모습과 그의 책이 오늘 출간되어 알라딘의 초기화면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 우연일까?

<기독교 이단연구>를 짚어든 것은 지루한 TV탓이기도 했지만 화장실을 책없이 가지 못하는 성격과 수북히 쌓이 책 중 제목이 유달리 눈에 띄었다는 점에서 우연이다. 물론 네스토리우스교에 관한 부분을 읽다가 삼국사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된 것도 당연히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그러나 경교라는 단어가 나의 뇌리에 깊이 박히고 그 단어때문에 샤워를 하고 실험실에 나와 검색을 하게 된것, 몇시간의 웹서핑 도중 깐수 정수일 교수의 경교에 관한 언급과 그가 감옥에서 집필했다는 <고대문명교류사>를 보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끄 모노의 ‘날개 끝에 붙들린 우연’은 내가 <기독교 이단연구>를 짚어 든 바로 거기까지였을 뿐이다.

나는 아직 정수일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한다. 어린시절 깐수라는 이름의 간첩이 있었다는, 그리고 언론은 그를 간첩으로 대서특필했으며 이후 사람들의 뇌리에서 잠시 지워져 있었다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 내가 느끼는 정수일이라는 사람은 매우 특별하다. 고전강독회에서 ‘역사학’에 관한 저술을 탐독하기로 결정한지 얼마 안된 이 시점에서 또한 항상 ‘동양과 서양’이라는 주제 속에 살고 있는 학자의 입장에서 만난 그의 책은 정말 반가운 것이다.

내가 ‘경교’라는 종교에 호기심을 가진 것은 동양과 서양의 교류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는 점과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이 이러한 문명교류사적인 시각속에 희석될 수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동과 서의 이분법이라는 케케묵은 시각은 얼마나 재미없는가. 과학과 민주주의, 도덕형이상학과 왕정이라는 이분법은 또 얼마나 유치한가. 이런 편협한 시각속에 살고 있는 현대의 우리들을 실크로드속에서 광대한 삶을 살았던 고대인들은 얼마나 비웃고 있을 것인가.

우리가 역사책을 읽어야 한다면, 그리고 콜링우드나 툴민의 저작이 우리에게 던질 것이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해도 한번쯤 국내 소장학자의 생각을 읽어보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것같다.

오늘만은 신비주의자처럼 이야기하는 나자신을 조금 이해해주기 바란다. 가끔 철저한 과학자도 신비주의자가 되어 사고하기 마련이니까.

(경교와 정수일 교수의 책에 관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정수일 교수 책을 읽어보신 분이면 더더욱 좋겠습니다. 올리는 파일은 정수일 교수의 글 한편과 경교 연구에 관한 거의 유일한 전공자로 보이는 이경규 교수의 논문입니다. 이경규 교수의 <경교의 토착화에 관한 일고>는 다운 받을 수가 없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