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아카이브 (2002-2013), 취어생 (2002-2008)

취어생 도올면식기 取於生 島兀面識記

http://heterosis.egloos.com/773163 원문


2004년 11월 3일, 도올을 만나고 나서 쓴 글. 도올대담을 참고할 것.

취어생 도올면식기 取於生 島兀面識記 (취어생은 김우재의 아호) 


이틀밤을 샌 후라 다음날 인터뷰가 있다는 희미한 생각뿐 흥분되는 마음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언제나처럼 모든 준비를 마친 나의 오래된 누런 때 뭍은 가방에 책과 인터뷰자료들을 주섬주섬 챙겨두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알람을 맞추어 놓았으나 피곤함에 종훈이 깨우러 올때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대충 씻고 기다리는 일행에게 갔다. 

시외버스 터미날에서 2만원짜리 표를 끊고 서울로 향한 시각이 7:00시. 김규영 교수님과 신문사 기자 2명, 그리고 강독회의 4명이 인원의 전부였다. 버스안에서 질문지와 “동경대전”을 읽다 잠이 들었다. 포항에서 서울은 버스로 5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단한번도 깨지 않고 5시간을 자는 기술은 포항생활 몇년만에 터득한 하나의 비술이다. 비술은 어김없이 발휘되었고 서울 톨게이트 근처에서 부시시 눈을 떴다. 

지하철로 혜화역까지 가서 고픈 배를 버섯찌개로 채웠다. 약속시간은 오후 2:00시. 시간이 조금 남아서 근처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방송통신대학교 뒷편의 도서출판 통나무 건물로 향했다. 통나무 출판사 앞에 있던 “웰빙교회”의 간판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통나무 출판사의 직원은 모두 5명이라고 했다. 그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앉지도 서지도 못한채 30여분을 기다렸다. 우리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계시다했다. 어떤 사람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한 칭찬인지 아닌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도올선생은 (아마도 향수를 뿌렸거나 뭔가를 바른 것이겠지만) 강한 매화향기와 함께 등장했다. 손에는 누런 한지에 그린 그림을 들고. 우리를 바라보면서 “포항공대 애들이 왔어? 흥!” 이라고 말하는 그의 첫 인상은 ‘무당’의 그것이었다. 점을 볼때의 무당들의 말투가 그에게서 그대로 느껴졌다. 우리가 온다고 해서 아침부터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오마이뉴스의 기사료가 2000만원을 넘었다는 말을 하면서 그때 탈고하고 그린 매화를 부득불 보여주시겠다기에 2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컴퓨터 화면에서나마 그 매화를 봤다. 자신이 이제 유일한 문인화가라는 말씀과 함께. 한지에 그려진 산수화는 김규영 교수님께 전달되고 드디어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인터뷰의 첫질문은 내가 했는데 최한기의 우주론과 현대 물리학의 우주론을 직접비교할 수 있느냐는 약간은 기분나뿔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도올선생은 “뭐 처음부터 그렇게 딱딱하게 해도 좋지만…”이라는 말과 함께 답변을 하기 시작하셨다. 우리의 질문지가 효과를 발휘한 것인지 아니면 도올선생이 원래 그런 사상을 가지고 계셨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건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선생은 최한기에 대한 질문의 말미에서 “과학자가 교회에 다닌다는, 즉 과학자가 기독교 신앙을 가진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 과학은 자연을 다루는 학문이고 최한기도 기라는 물질세계속에서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 이슬람과 기독교 모두를 배척한 것이다. 과학자는 플라스크가 신앙이 되어야지 초월적인 신앙세계와 과학을 조화시키려는 헛된 망상속에서 무슨 위대한 과학자가 나올 수 있겠는가” 라고 말씀하셨다. 이어지는 나의 질문은 일종의 ‘추임새’였다. “그렇다면 과학과 종교와의 조화라느니 화해라느니 하느 말은…” 도올선생 왈 “웃기는 얘기지!” 

이쯤되면 인터뷰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뻔한 이야기다. 인터뷰의 자세한 내용은 포항공대 신문에 자세하게 실릴 것이고 이곳에도 곧 올라오게 될 것이다. 이 글은 인터뷰 내용을 자세히 싣는 것이 아니고 어떤 만남이었는지에 대한 여러 많은 분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3시간 30분이 넘는 긴 인터뷰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같이하자는 제안에 흔쾌히 동의하셨고 어느 이탤리언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스파게티와 레조또등을 모두 시켜놓고 선생께서 맥주를 주문하셨다. 만남을 기념하시자면서. 얼린 컵이 들어오자마자 왜 맥주는 안가지고 오느냐며 잔이 뜨거워진다고 직원들에게 어리광을 피우시기도 했다. 맥주가 들어오자마자 원샷을 하고 사진을 찍고 잔은 계속 채워지고.. 기분 좋은 대화들이 오고 갔다. 이야기 도중 명계남씨에게 온 전화에 대고 “포항공대 학생들이 찾아왔어. 과학도들이. 얼마나 기특해!” 라며 우리를 자랑하시기도 하셨다. 김규영 교수님에게 “애들이 샤프하잖아” 라는 말도 하셨고 여하간 우리와의 만남이 기분 나브시지는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이성의 기능”과 “석도화론” “금강경강해” 등등의 책을 나열하시고 한권씩 집어들라고 하셨다. 나는 금강경강해”를 제일먼저 골랐고 책의 앞면에 붓으로 “김우재에게 과학立國 갑신년 10월 29일 도올” 이라는 글을 써주셨다. 

양주를 한잔 더 하고 싶어하시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김규영 교수님의 사정으로 만남은 거기서 끝났다. 떠나는 길에 돌아본 도올 선생의 모습에서 외로움이 흠뻑 배어나옴을 느낄 수 있었다. 선생은 우리와 헤어지는 것이 아쉽다는 듯 “그래 조심해서 어여 가”라는 말씀을 하셨다. 

아쉬워하는 그를 뒤로하고 우리는 포항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다시 펼친 5시간 잠자기 비술속에서 그는 검은 도포를 입고 나의 꿈에 나타나 종횡무진 춤을 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