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Woo Jae Kim (2014-)

조희연, 급진민주주의

나는 조희연의 이름을 성공회대의 급진민주주의 모임에서 처음 들었다. 한창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아닌 한국의 대안세력을 찾아다니던 때였다. 로이 바스카라는 과학철학자의 비판사회과학을 통해 급진민주주의 모임을 알았고, 그 곳의 리더가 조희연임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5년전의 일이다.

방법론을 고민하는 사회과학자들을 존중한다. 그렇다고 이념을 무시할 필요는 없다. 이념을 지키면서도 방법론을 치열하게 고민할 줄 알아야 사회를 변혁하는 먹물이 될 수 있다. 그게 나의 신념이다. 방법론은 귀찮다. 하지만 방법론에 대한 고민없는 이념적 배설물들로 한국의 지식인 사회는 약해지고 썩어가고 있다. 그래서 성공회대 조희연의 이 모임에 관심을 가졌었다. 로아 바스카라는 문제적 인물 (말년에 그는 미쳐버렸다고 전해진다)의 자연과학에 대한 분석에 동의하지 않지만, 사회과학의 엄밀성을 통해 급진민주주의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목표는 옳은 것이다.

그 인물이 세월호 참사 이후 치뤄지는 서울 교육감 선거에 등장했다. 평가는 유보한다. 단, 그의 말 한마디를 옮겨둔다. 스스로를 ‘2선 지식인(먹물)’이라 부르는, 한때는 박원순과 참여연대를 설계하고, 이재정을 도와 성공회대를 현재의 대안대학으로 만든 브레인, 그리고 곽노현과 김상곤의 배후에 존재했다는 참여형 지식인이다.

필자는 급진민주주의의 시각에서, 제도화된 의회정치만을 민주주의적 정치 의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모든 제도화된 의회정치는 정치의 출발로서 의 인민, 혹은 그들로 구성된 ‘사회’로부터 괴리되어 현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언제나 상대화해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투쟁은 다양한 계급적‧ 사회적 투쟁으로 구성되는데, 이것은 정치의 주체로서의 인민의 정치적 자기표 현이며 인민의 자기 정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때로는 대중들의 ‘직접행동’(카터, 2007)으로, 때로는 조직화된 사회운동이 매개하는 ‘운동정치’로 표현되며, 그 일부는 제도화된 정치를 통해서 ‘대의’된다. 기본적으로 의회민주 주의 내에서의 경쟁(제도정치)은 주어진 정치지형 내에서 더 많은 정치적 지지 를 획득하기 위한 경쟁이다. 이는 급진적 정당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다양한 대중운동은바로이러한지형자체를변화시키기위한실천이된다. 그런의미 에서 민주주의적 변혁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 고 그 내부에서 좌파정당의 의석을 늘리는 투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제도정치, 대중의 직접행동, 운동정치 등의 상호작용 속에서 민주주의를 포착해야 한다. 민주주의적 변혁주의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운동으로서의 민주 주의’로 파악한다. 조희연. 2010. “급진민주주의론의 정립을 위한 한 탐색.” 마르크스주의 연구 7(3): 273–307.

그는 나와 내 동료들이 언제나 고민하던 개혁적 싱크탱크의 문제에도 관심이 많고, 대안학술운동이라는 조류도 건설하고자 하는, 한국사회에서 그나마 찾기 힘든 그런 먹물이다. 대안학술운동에 관해서는 “장훈교, and 조희연. 2013. “제 4 세대 대항학술운동.” 역사비평: 145–73.”를 참고할 것. 아래 인용문은 먹물좌파들이 망쳐버린 한국의 무능한 좌파들에 대한 질타로도 읽힐 수 있을 듯 하다.

이는 진보적/좌파적 학술연구에서 순수학술연구 혹은 순수이론연구로 중심이 옮겨가고 정책적 지식생산이 부차화된 데서 한 원인을 찾을 수 있 다. 좌파적 이론영역이나 제도화된 학술영역은 진보적 지식생산의 기반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중요성을 갖고 있으나, 정책적 전선에서는 정책역량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충분히 경주되지 못했다. 진보적 학계의 경우, 진보적 학술연구역량의 제도권화는 달성했으나 국민적 정책역량의 확충에는 기여하지 못했다. 또 좌파적/진보적 학술진영은, 민영화라든가 노동문제의 구조적 문제에서는 현실개입력이 있었으나 국민적 정책투쟁 전선에서는 ‘원칙적 주장’이란 비판을 받으면서 ‘내부의 경쟁자’가 되지 못 해온 것도 사실이다. 조희연, and 홍일표. 2004. “개혁적 싱크탱크와 시민사회운동.” 창작과비평 32(1): 108–22.

성공회대를 필두로, 상지대와 한신대 정도가 한국의 진보적 학술대학이라고 불릴 수 있는 모양이다만…

진보적 학술연구자 들이 대거 제도권화하는 과정에서 진보적/민주적 대학의 성격을 갖는 한신대/성공회대/상지대가 자신들의 제도권적 기반을 활용해 설립한 ‘민주 사회정책연구원’ 같은 경우는 개혁적/진보적 정책역량의 강화라는 문제의 식에서 보면 시의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연합연구소로서의 취약성, 정책적 전문가 교수들의 부족, 내부의 보수세력의 반발, 대학 내부 의 복합적인 갈등구조, 진보적 대학권력의 불안정성으로 국가나 자본의 정책연구소와 경쟁할 수 있는 강력한 민간정책연구소로서의 성격은 갖추 지 못하고 있다. 조희연, and 홍일표. 2004. “개혁적 싱크탱크와 시민사회운동.” 창작과비평 32(1): 108–22.

내가 아는바, 이들이 추구하는 리버럴 아츠는 조선시대 성균관의 모습일 뿐이다. 그 곳에 과학은 없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 대답은 “‘텅 빈 지대: 한국사회 진보진영의 지형도와 버널 사분면(진보적 과학지식인 그룹)의 정립을 위한 소고’ 격월간 <말과 활> 3호, 기획특집 과학이 묻는다-좌파인문학에게 (2014. 02)”에 간략하게 실려 있다. 이 글은  한겨레에 소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