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김우재 (2014-), 발췌록

루소와 화학: 계몽과 낭만의 조율자로서의 실험과학

대의제에 관한 루소의 견해를 공부하려다, <이충훈. 2013. “루소와 화학.” 프랑스사 연구 (28): 57–83>이라는 논문을 발견하고 탐독중이다. 모든 공부의 귀결이 기승전과학이니 이 또한 참 못된 버릇이다. 모호한 정치학 논문을 읽느니 이런 논문이나 재미로 읽어두는 것이 유익할 듯 싶다. 정확히 루소가 화학에 관심을 가진 그 이유를 따르는 것이니 별 문제될 것 없을 듯 싶다. 기계론에 대한 낭만주의자들의 반발, 그 낭만주의자들 중에 수 많은 실험과학자들 특히 화학자들과 생리학자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 연금술과의 혼돈 속에서 물리학과 같은 체계적 과학의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던 화학과 그런 처지의 화학보다도 더욱 처참한 지경이었던 생리학의 위치와 낭만주의자들이 처해 있던 상황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물론 반드시 그런 사회적 이유만으로 실험과학에 루소가 보인 흥미를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칸트 이래로 서양의 모든 철학자들은 과학을 염두에 두고 그들의 철학을 펼쳐왔다. 그 전통을 무시하고 반쪽짜리 철학을 흡수한 것이 한국의 철학이다. 이 논문은 바로 그런 가려진 역사를 일깨워준다. 아래 흥미로운 구절들을 인용해둔다.


“나는 때로 라이프니츠, 말브랑슈, 뉴턴과 함께
이성을 숭고한 어조로 높여 보고
물체와 사유의 법칙을 연구한다
로크와 관념들의 역사를 연구하고
케플러, 왈리스, 바로우, 레노, 파스칼과 함께 아르키메데스를 앞질러 로피탈이 되어본다 나는 때로 문제를 자연학에 적용하며
체계의 정신을 연습해본다
데카르트와 그의 미망을 더듬어본다.
숭고하기는 하지만 경박한 소설 같은 그의 미망을. 나는 곧 부정확한 가설을 버리고
플리니우스, 뉴벤티트의 도움을 받아
생각하고, 눈을 뜨고,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 […]

장 자크 루소, <바랑 부인의 목자> 중에서”

그렇다면 루소가 화학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고 이를 당대의 지식체계를 극 복하는데 사용하고자 했는지 질문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루소의 사상체계가 당대 화학이론을 토대로 삼고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 과학과 기술에 대한 루소의 비판에서 화학만이 예외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다만 본 연구의 목적은 화학에 대한 루소의 관심이 젊은 시절의 변덕이나 일시적인 호기심으로 그치지 않았으며, 그가 평생 추구하고자 했던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의 일부가 되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하는데 있다. 이충훈. 2013. “루소와 화학.” 프랑스사 연구 (28): 61쪽.

우리는 이 시기에 루소가 17세기의 자연법 사상의 난점을 극복하고자 하지만 개인과 사회의 성격과 관계를 적확하게 설 명할 수 있는 개념을 찾는데 어려움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18세기 형이상학 에 있어서도 상황은 동일하다. 기계론이 부딪힌 난점은 아직 새로운 인식론 적 틀로 극복되지 못했으며, 따라서 이 시기의 젊은 학자들은 당대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기반으로 이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자 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루소가 화학에서 빌려온 개념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정치학과 인류학 적 관점을 제시해보려고 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마 지막으로 우리는 사회계약론에서 루소가 제시한 ‘집합체(agrégation)’와 ‘연 합체(association)’의 구분은 이전 세기의 기계론의 틀을 넘어서서, 일정 정도 그가 화학에서 따온 문제의식을 경유하여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새롭게 이해 하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점을 밝혀보고자 한다. 이충훈. 2013. “루소와 화학.” 프랑스사 연구 (28): 62쪽.

“화학의 정신은 더욱 혼란스럽고 난해하다. 그 정신은 원소가 뒤죽박죽으로 섞 여 있는 혼합체를 닮았다. 그러나 물리학의 정신은 더욱 분명하고, 단순하고, 명 쾌하다. 마지막으로 물리학의 정신은 최초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화학의 정신은 그 끝까지 이르지 못한다.” Fontenelle, Histoire de l’Académie Royale des Sciences, depuis 1686 jusqu’à son Renouvellement en 1699, t. II(Paris, 1733), p. 81.

“나는 화학에 끌렸다. 루엘 씨 댁에서 프랑쾨유 씨와 같이 여러 차례 화학 강의 에 참석했다. 겨우 그 기본원리를 알게 되자 우리는 그럭저럭 이 과학에 대해 서 투른 글을 종이 위에 쓰기 시작했다. […] 나는 화학에 관한 공부[…]를 중단하지 않았다.” Les Confessions, OC I, p. 342. 

위의 인용문에서 루소는 ‘인간에 대한 지식’과 ‘지식의 유용성’을 강조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인간에 대한 지식’은 인간 개인의 내적 구성과 인간 상호 간의 사회적 구성을 외부의 존재와 동인(動因)을 가정하지 않고 연구하는 것 으로, ‘신에 대한 지식’과 대립한다. 신학적 세계관 및 17세기의 기계론적 세 계관은 인간의 기원과 다른 존재와의 차이를 절대자로서의 신 개념에 의존하 여 설명하고자 했다. 신의 피조물로서의 인간이 가진 본성과 속성은 인간 자 신이 아니라 그 밖에 존재하는 신으로부터 기원하며 오직 신을 통해서만 규 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세계관에서는 인간을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 재로 간주하여 연구할 수 없었다. 그러나 18세기 중반에 이 모델은 한계에 봉착했다. 동인이 외부에 있음을 가설로 삼아 세계 내 사물의 운동을 설명하 는 자연학(physique)은 끈기 있는 실험과 관찰을 통해 운동의 원리를 물체와 생명 내부에서 찾고자 했던 실험과학(physique expérimentale)으로 대체되 기 시작한다. 이충훈. 2013. “루소와 화학.” 프랑스사 연구 (28): 67쪽.

따라서 물질의 화학적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인공물로서의 혼합체 혹은 복 합체는 자연의 질서를 완전히 벗어난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자연에서 끊임 없이 이루어지는 무수하고 다양한 결합과정에 대한 장인(匠人)적인 모방과 반복이며, 이 경우에 한해서 인공물은 자연과 대립하는 대신 인간과 사회에 유용한 “기술”을 제공해준다. 이런 점에서 루소는 흔히 생각하듯 자연에 대 한 인간의 인위적 조작 자체를 완전히 부정한 적이 없다. 루소가 비판하는 인공물은 자연의 내적 결합 원리를 충실히 이해하지 못한 피상적인 가공물이 거나 과도하게 꾸며낸 인간의 허영의 산물을 말한다. 자연의 원리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닮은 인공물과 자연을 혼동 하지만 바로 이러한 피상적인 인공물이야 말로 자연을 타락하고 변질되게끔 한다. 이충훈. 2013. “루소와 화학.” 프랑스사 연구 (28): 71쪽.

한편 루소는 사회를 기계론적 시각으로 파악하는 모델을 거부한다. 사회는 개인들을 구성단위로 삼는 기계장치가 아니다.46)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사회 를 작동시키고 보존하는 힘은 언제나 개인들 내부가 아니라 그 외부에서 찾 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힘에 굴복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어서 하는 행동 이지 의지 때문이 아니”47)라고 썼다. 가장 강한 자의 힘이 법이 되고 약자가 지켜야 할 의무가 되는 사회는 표면적으로는 강력해보이지만 이 힘이 약화되 거나 더 큰 다른 힘으로 대체될 때 쉽게 와해되곤 한다. 이충훈. 2013. “루소와 화학.” 프랑스사 연구 (28): 75쪽.

루소는 그의 시대에 비약적 발전을 보인 화학에 관심을 가졌다. 이는 단지 그가 이 새로운 학문에 단순한 호기심과 흥미를 느꼈다는 점에 그치지 않는 다. 지난 세기에 세상의 질서를 발견하고 이를 종교적으로 해석하는데 기여 했던 기계론이 부딪힌 한계를 화학과 같은 실험과학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일 련의 학문적 노력이 루소뿐 아니라 동시대 여러 문인들을 자극하고 고무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시대에 인간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연구가 진행되면서 문인들과 과학자들은 이전 시대까지 인간을 설명하고 규정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용어들이 부정확하고 모순됨을 깨달았다. 이 새로운 연구 성과를 반영하기 위해 루소와 백과사전의 집필자들은 스콜라 철학과 데카르 트주의 기계론의 용어와 분명히 구분되며, 새로운 연구 방향까지 제시해 줄 수 있는 용어를 끊임없이 찾았다. 현대의 시각으로는 충분하다고 볼 수 없을 지 모르지만 이러한 암중모색이 계몽주의 문학과 철학이 후세로 물려준 성과 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루소가 비록 모호하게 해석될 여지가 많으나, 당시 화학에서 사용되던 ‘용해’ ‘집합체’ ‘연합체’ 등의 용어를 사용했 음에 주목해보면서 우리는 루소 사상의 풍요로움과 확장가능성을 다시금 확 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루소는 디드로 및 다른 백과사전 집필자들과 달리 화학을 유물론과 무신론으로 이끌어 나아가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그는 화학에 대한 성찰을 새로운 공동체를 그려보기 위해서 신중하고 암시적 으로만 응용해보는데 그쳤다. 그러나 1763년 이후 루소는 식물학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만년에 이르기 까지 식물채집에 몰두할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18세기에 “식물학, 화학, 해부학, 의학”은 전혀 별개의 독립학문이 아니었고 루소 역시 이들 학 문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았다. 18세기의 이들 실험과학 분야에 대한 그의 관 심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이해에 큰 영향을 미쳤고 화학도 그 중요한 한 부 분을 차지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충훈. 2013. “루소와 화학.” 프랑스사 연구 (28): 80-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