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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사에 실렸다고 한국을 빛내는 것이 아닙니다

http://heterosis.egloos.com/773012 원글


2004년이 7월에 브릭의 한빛사라는 곳에 실리는 기준때문에 왈가왈부할 때 브릭 포럼에 올렸던 글입니다. 글이 올라오게 된 맥락은 여기서 보시면 됩니다.


한국을 빛내는 사람들이라는 엄청난 탐욕의 대상이 생긴 이상 그것을 탐내는 사람들의 욕심은 탓할 것이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한빛사를 폐지하자는 말도 어불성설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한빛사의 공신력이 정당한가의 여부일 뿐입니다. 한빛사가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폐지되어야 한다면 노벨상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폐지되어야 마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Impact Factor(IF)를 근거로 한국을 빛내었다 아니다를 평가하게 된다면, 결국 사기로 판명된 수십편의 논문을 쓴 어떤 한국의 과학자는 수십번도 넘게 한국을 빛냈을 겁니다. 남의 논문을 베껴서, 혹은 남의 아이디어를 훔쳐서 네이쳐에 논문을 낸 과학자의 이야기는 현재의 한빛사의 구조속에도 편입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학자가 정말 한국을 빛낸 사람입니까, 아니면 한국을 욕보인 사람입니까. 

한국을 빛내었다 함은 한편의 논문으로 결정될 사항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재형으로 결정될 문제가 아니며 역사가 결정해야 할 문제일 뿐입니다. 

경솔하게 한국을 빛내는 사람들이라는 타이틀을 걸었던 것이 첫번째 문제입니다. 논문 한편이 한국의 위상을 말해주는 보증서가 되지 않습니다. 평가는 다양해야 합니다. 평가의 다양성은 논문만이 아니라 한국과학계를 위한 공로를 다양한 루트로 평가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다음으로 평가의 시기문제가 있습니다. 평가는 과거를 현재라는 시점에서 평하는 행위입니다. 단지 그 달에 논문이 실렸다는 이유로 한국을 빛내느니 않으니 논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입니다. 논문의 중요도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IF지수로 한국을 빛냈다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개그입니다. 제 생각으로 최소한 “한국을 빛낸” 이라는 타이틀을 걸려면 일년이라는 단위속에서 평가되어야 합니다. 이로부터 세번째 문제가 도출됩니다. 

과학논문의 중요도는 IF보다 인용빈도로 평가되는 겁니다. 차라리 해당 논문이 일년동안 얼마나 인용되었는지를 근거로 한빛사의 목록을 작성하시는 것이 옳습니다. 노벨상이 누구에게 주어집니까. 노벨상은 논문을 누가 많이 냈느냐, 혹은 누가 IF 높은 저널에 논문을 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자가 발견한 혹은 개발한 사실과 기술이 인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노벨상이 과학자의 위상을 모두 설명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다윈Charles Darwin은 이세상에 다시 태어나도 노벨상을 받을 수 없었을 겁니다. 결국 평가기준의 문제는 미묘하고 복잡한 것이지만, 적어도 IF보다는 인용도가 합당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논문의 수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인식에 합의점이 존재한다면, 논문의 IF보다 인용도가 중요하다는 점에도 합의점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일단 논문의 양보다는 질에 중점을 주었다는 점에서 한빛사의 의도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위의 세가지 논의와는 별개로 제가 꿈꾸어 보는 한빛사는 한국과학계의 아카데미 시상식이나 대종상 시상식과 같은 모습입니다. 대학원생들이 일년을 마무리하는 축제의 장으로 한빛사가 자리할 수 있습니다. 일년을 주기로 한국과학계를 빛낸 대학원생 혹은 연구원들을 뽑아서 시상을 하는 겁니다. 누구나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자극을 받고, 또 그것이 수상자에게도 진정한 영광이 되는 그런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제 꿈이 허황되 보이겠지요. 그렇다면 한국과학계는 평생 외국에서 주는 “젊은 과학자상”이나 받아먹고 살 팔자인 겁니다. 실제로 외국의 젊은 과학자상은 일년을 단위로 적절하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한빛사는 그렇습니까. 

한빛사에 실렸다고 한국을 빛내는 것이 아닙니다. 한빛사에 실리지 않았다고 한국을 빛내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연구를 자극하자는 취지라면 정말 연구를 자극하는 프로그램이 되어야 할 것이고, 한국을 빛내는 사람들을 선발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정말 한국을 빛낼 사람들을 뽑지 않으면 안됩니다. 전자는 실용성의 문제고, 후자는 정당성의 문제입니다. 현재 한빛사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고 있습니다. 

한빛사의 의도 모두를 폄하하려는 의도로 쓰여진 글이 아님을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학원생과 연구원들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그래서 이공계 기피현상이 유발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고등학생들과 학부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는 이런 말도 안되는 코미디를 연출하는 나라에 태어나서, 그래도 “나는야 사이언스키즈”라고 한줄 자존심을 먹고사는 제 눈에 비친 한빛사의 모습은 진실함이었고, 희망찬 시도였기 때문입니다. 한빛사가 더 좋은 모습으로 태어나기를 바라지 않았다면 빡빡한 실험실 생활속에서 무려 한시간여를 투자해 이런 글을 쓸 바보는 없었을 겁니다. 

한빛사에 실렸다고 “한국을 빛내”는 것이 아닙니다. 한빛사에 실리는 것이 한국을 빛내는 일이 아닌 것은 진정으로 한국을, 한국의 과학을, 한국의 생물학을 빛내는 사람들은 이 시간에도 미친듯이 꽝나는 실험들 속에서도 의대편입이나 사법고시를 준비하지 않고 묵묵히 실험실에서 일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원생들과 연구원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들 가운데 진정으로 한국을 빛낸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면, 평가의 기준은 엄밀해야 하며 또 정당해야 합니다. 제 말 모두가 헛소리로 들릴지라도 이런 문제가 단순하게 IF가 몇점이 적당하냐의 문제로 환원되는 것이 안타까운 한 시민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포항 생공연에서 김우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