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전쟁의 서막인가




부처와 공자와 예수가 나란히 공존하는 땅이라며 자랑스레 여기던 대한민국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땅은 항상 종교간의 갈등이 긴장관계에 놓여 있는 곳이다. 나는
국민의 대다수는 대단히 상식적인 무종교인임을 믿는다. 1990년 이후 보수적인 기독교계에 의해 벌어진 일련의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국민들은 차분하고도 단호하게 이를 저지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나섰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처음으로 도심에서  대규모 미사가 열렸다. 사제단은 무한단식을 선언했고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많은
시민들이 이에 동조하며 호응하고 있다. 곧 불교계도 시국법회를 열 예정이라 했다. 진보성향의 기독교단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도 ‘폭력정권 규탄 침묵 기도회’를 진행중이다.

한국기독교계를 대표하는 두 진영이
있다. 앞서 언급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KCC)가 그들이다. 그들 중 누구도 한국의 기독교계를
대변하지 못한다. 하지만 한기총은 63개의 교단을 거느린 거대단체이고, KNCC는 8개의 교단을 거느린 소수단체임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대다수의 일반인들에게 기독교계의 입장은 한기총의 입장으로 읽힌다. 기독교계의 보수성을 규탄하는 많은 시민들이
그렇게 읽고 있다는 것은 한기총이 실질적으로 대다수의 기독교 세력을 응집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특히 KNCC 산하에 속해 있는
루터교, 장로교(칼빈계통), 성공회 , 하나님의 성회 등은 한기총이 노골적으로 이단심판을 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들이 가진
개혁적 성격으로 불만을 사고 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엄밀히 말해 이번에 촛불시위를 지지하며 등장한 종교계는 반쪽이다. 나머지 반쪽이라 할 수 있는 보수기독교계는 고민 중이다. 한기총은 지난 6월 10일 시국선언
통해 “촛불시위가 장기화되고 폭력이 동반되어 국력이 낭비되는 것을 통탄한다”고 밝힌 것을 필두로 1200만의 기독교인들에게
조용히 기도하라고 호소했다. 지난 6월 25일엔 기독군인연합회 주체로 1만 3천명이 모여 ‘6·25상기구국성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석기현이라는 목사는 “맥아더 동상을 제거하려고 했던 자들이 지금은 ‘미국 쇠고기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고 데모를
조종하고 있다”라는 주장을 전개했다. 이러한 주장은 한 둘이 아니다. 게다가 불교계는 보수성향의 목사들의 발언에
매우 민감하고 강력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6월 30일 전 한기총 대표회장인 최성규 목사 및 전 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장 이광선 목사, 그리고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인 안병직 교수를 포함한 18인의 자칭 원로들이 “촛불시위가 국정운영을 마비하고 법치를 무력화하고 있다”며 ‘촛불시위 위기 관련 시국성명‘을 발표했다.


런 상황에서 정정길 신임 대통령 실장이 6월 23일 한기총을 방문했다. 한기총은 5월 18일 서울광장에서 촛불 맞불집회를 열었고
이 자리에서 조용기의 “광우병 공포는 마귀의 꼼수” “하나님을 믿으면 이명박 대통령도 믿어야 한다”는 등의 어휘들을 날려오던
터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아내가 교회 집사였다는 말을 날렸다. 게다가 이후의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정정길 실장이 KNCC측에는 방문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계의 양대산맥이라지만 정정길의 눈에 KNCC는 그닥 큰 위협으로도, 떡고물을 던질 상대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이후 25일 조계사를 방문해 협조를 구했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조계사측은 천주교와 뜻을 함께 할 태세다. 이들은 7월 4일 서울광장에서 시국법회를 주최할 것이라 밝혔고 이미 29일 ‘시국과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에 대한 긴급회의‘를 개최했다. 잘 보라. 종교편향에 대한 긴급회의다. 불교단체가 이번 시국법회에 나서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이미 불교계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한 상태다.
6월 25일 어청수 경찰청장의 사진이 기독교 관련 집회인 ‘전국경찰복음화 금식대성회’ 포스터에 실렸고, 6월 23일에는
국토해양부가 제공하는 지리정보 사이트 ‘알고가’에서 교회 위치는 들어가 있는 반면 조계사나 봉은사 등 널리 알려진 사찰은 죄다
빠지는 상황이 벌어졌으며, 공립학교인 경기여고가 교내 100주년 공원조성 사업을 하면서 석탑과 석등을 땅에 파묻은 사건가지
터졌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기실 아무리 종교적 성향이 무섭다고는 해도 그것이 종교전쟁의
모든 것을 대변하지는 못한다. 십자군 전쟁의 원인은 성지회복에 있지 않다. 도시 상인들의 시장 개척에 대한 요구를 비롯한
경제적인 측면과 성지회복이라는 종교적인 측면, 그리고 교황권의 확대라는 정치적인 측면을 비롯해 서유럽 각계각층의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서 십자군원정이 단행되었던 것이다. 이미 불교계는 정치적, 종교적으로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그들은
경제적으로 대운하를 반대하고 있다.

대운하가 지나갈 자리에는 상당히 많은 수의 사찰
존재하고 있다. 비록 불교계의 자연친화적 철학과 맞물려 있다고는 하나 자신들의 존립근거인 사찰의 파괴를 불교계가 마냥 보고
있을리는 없다. 게다가 사찰을 지도에서 삭제해 버리는 이러한 상황이 불교계에 어떻게 비춰질런지는 자명하다. 특히 국민들이
반대하면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에도 불구하고,
대운하와 관련된 주식이 26일 기점으로 상한가를 치고 있다. 분명 대운하 사업에 기대를 걸고 있는 투자자들이 상당수 존재하는 것이고, 이들은 어딘가로부터 정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운하를 적극적으로 홍보해 왔고, 게다가 목사 출신인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비서관은 대운하 추진을 적극 지지해온 보수단체에서 비공개 강의
하고 있다. 이 곳은 8월 중 대운하 추진 결의문을 채택하는 것과 동시에 대운하홍보단을 발족키로 한 단체다. 이미 지난달
서울대에서 열린 한반도 대운하 반대 토론회에서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대운하의 또다른 문제점으로 ‘종교적 충돌(Religious
Friction)’을 들었다. 홍성태 교수는 이 자리에서 대운하 재추진은 개신교와 불교계간의 종교 충돌을 유발할수 도 있으며
이를 ‘제 2 십자군 전쟁’이라고 불렀다.

결국 모든 열쇠는 정정길과 비공개 회담을 진행한 한기총이 쥐고 있다.
이들은 이미 공식적으로는 1200만 기독교인들에게 나라를 위해 조용히 기도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면서,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이명박을 하나님이 내려주신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다녔던 단체다. 게다가 그들이 신주단지 모시듯이 모시는 대통령은 이미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 상태다. 그리고 그 대통령이 현재 위기에 처했고, 그것이 한기총과 항상 적대관계에 놓여 있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불교계에 의해서 야기되고 있다.

이명박을 등에 업을 수만 있다면 한기총은 정치적 세력으로 급부상할 수도 있다. 한기총의 대표인 엄신형은 지난번 기독당과 연합을 꾀하다 반발을 느끼고 포기한 바 있는 인물이다. 게다가 촛불시위를 사탄의 세력으로 몰고 있는 조용기는 이미 기독당을 지지
바 있다. 당시 그들에게 주어진 명분은 통일교가 정치세력화를 꾀했던 평화통일가정당에 맞선다는 것이었다. 이미 이단으로 낙인 찍힌
통일교에 대항해 기독당을 만들 정도의 위헌을 저지르는 배짱 좋은 단체가 이 땅의 보수기독교 단체임은 이미 온천하가 알고 있다.
한기총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 정치에 깊이 관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단체인 것이다.

나는 이 땅의 무종교적인,
아니 어찌 보면 종교적이되 매우 혼재된 상태에 만족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러한 혼재 속에서 자연스레 민중들에게 정교분리 원칙이
살아 숨쉬고 있다고 믿는다. 내가 믿을 수 없는 것은 이 땅의 민중이 아니라 종교단체다. 정교분리의 원칙이 살아 숨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와 정치는 이미 손을 잡았다. 나는 강력한 정교의 분리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의 말처럼 “정치
체제와 통합되어 있는 종교나 그것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종교보다는 정치체제 혹은 국가와 창조적 긴장을 가지는 종교가 사회
발전에 더욱 기여한다”는 말에 나는 동의한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종교는 당연히 정치에 개입해야만 한다. 문제는 그
방향성에 있다.

그저 그런 종교적 감정싸움이었다면 이번 사태는 종교전쟁으로 번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운하를
둘러싼 기독교계와 불교계의 경제적 갈등이 이면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장로 대통령을 등에 업은 기독교계의 정치적 야심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오직 천주교만이 이들에게서 자유롭다. 만약 이 시점에서 우리가 종교계를 믿어야 한다면 오직 믿을 것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뿐이다. 허나 종교라는 이름으로 그들이 나선 이상 다시 종교라는 이름으로 등장할 한기총 앞에 우리는 어떤
정당성도 내세우기 힘들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전쟁은 시작되었다. 그것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는 미지수이지만, 나는 그저 이 땅에 소소히 흐르고 있는 상식의 힘을 믿고 싶다. 항상 거대 종교의 거대한 흐름에 휘둘려 왔던 땅이지만 말이다.

단재의 말로 마무리한다. <독사신론>에서 그가 외친 말이다.


선의 역사는 무정신의 역사이다. 우리나라에 부처가 들어오면 한국의 부처가 되지 못하고 부처의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공자가
들어오면 한국의 공자가 되지 못하고 공자의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예수가 아니고 예수를 위한
한국이 되니 이것이 어쩐 일이냐? 이것도 정신이라면 정신인데 이것은 노예정신이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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