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제 127조

“저는 서울시장 시절, 과학기술 연구에 예산 1000억원을 지원했습니다. 대신 전혀 간섭하지 않고 연구현장에 100% 자율권을 주었습니다.
저는 이런 식의 정책 지원과 분위기가 있어야
창의적인 연구가 이뤄진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한 말 일것 같은가. 이명박 대통령이 17대 대선에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를 찾았을 때 했던 기조발제문의 발췌다. 실상 17대 대선후보들의 과학기술공약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다. 어차피 이 땅의 과학기술자들은 힘을 가진 이익집단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주는 대로 받아 먹고 살아온 어찌보면 사농공상의 가장 밑바닥에 선 자들이다.


년전쯤에 100분 토론이 카이스트에서 열린 적이 있다. 2004년이었고 “이공계 위기와 한국의 미래는?”이라는 주제로 대전에서
진행됐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토론이었다. 왜냐하면 찬반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는 주제로 토론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찬반 없는 100분 토론 그 때 첨 봤고 지금까지도 본 적이 없다. 도대체 누가 이공계 위기에 대해 반대하겠는가 말이다. 도대체
전국민적으로 이렇게 똘똘 뭉쳐 모두가 찬성하는 주제가 얼마나 되겠는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과학기술자들에게는 힘이 없다. 프랑스의 과학기술자들처럼 파업은 못할지언정 제대로 된 단합된 목소리조차 내기 힘들다. 힘들게 뭔
일을 벌린다 해도 정부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의사와 약사들, 그리고 간호사들까지도 이익단체로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충실히 내는 판국에, 이 땅의 과학기술자들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항상 권력이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꼬두각시가 되었을까(아 이럴땐 차라리 대한민국 정치인들을 가지고 놀던 우리 황교주님이 그립다. 주의: 황빠들은 나를 찬양하지
말것. 당시 내가 써 댔던 글들을 보면 나를 욕하게 될테니까)






는 2002년 이회창 대선후보가 당선되었을 당시의 이상희 의원의 정말 쪽팔린 연설과 말들을 기억한다. 이공계생들의 희망이 되기
위해 대선후보로 나섰다는 말은 분명 정당하고 맞는 말이기는 하였으되 왠지 나의 뺨을 붉게 물들였다. 얼마나 과학기술자들의
정치참여가 어색한 일이었으면 약대 출신의 한 인물이 이공계기피현상이라는 화두를 이용해 대선에 도전하려는 걸까. 순간
이공계기피현상을 자신의 정치적 아젠다로 활용하려는 그의 의도가 눈에 확 들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상희라는 사람은 말도 잘
못해서 그의 말에서 진정성 따위를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어제 생명연에 다니는 선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나라가
광우병으로 뒤숭숭한데 나는 선배에게 안부를 묻기도 겁이 났다. 이명박이라면, 그런 불도저라면 이 틈을 타 강공을 펼쳐도 별
이슈가 되지 않을 과학기술계에 대해 밀어붙이기를 진행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선배는 불안해 하고 있었다. 생명연
소장도 사임했고 이제 카이스트와 생명연의 통폐합은 어떻게 진행될런지 미지수다. 소고기 정국처럼 수 십만이 거리로 나선 사안에
대해서도 여론의 눈치를 보아가며 강경진압을 일삼은 정부라면 겨우 수백명의 과학기술자들의 반대따위는 쳐다도 안 볼 심산임은 불
보듯 뻔하다.

실상 나는 KSTAR사업에 관해 무식하다. 오늘에야 부랴부랴 그 실체를 대충 알게 되었다. 중요한 사업이다. 비록 기초과학의 중요성에 관한 글을 싣고 싶은 나지만, 이런 사업이 제대로 추진될 수 없다면 기초과학의 발전도 무의미하다. 실제로 국민들에게 체감되는 사업은 기초과학이 아니라 기술과 공학의 발전이기 때문이다.

4명의 연구소장들이 자리를 떠나면 던진 사임사들에선 이들의 안타까움과 충정이 우러나온다. 그리고 억울함이 배어 있다. 그 중 한상섭 안전성평가연구소 전 소장의 말은 참으로 직설적이다.

“정부의 기치가 실용화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 연구소가 대표적인 실용화 연구소다. 그런 것을 잘 알아보고 나를 나가라고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전문성 이런 것을 따졌다면 나를 나가라고 했겠는가.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내가 할 말은 없는 듯 하다.”


국 이들은 정부가 나가라고 해서 나가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각자가 속한 연구소에서 터줏대감인 이들을 내쫓고 정부가
추진하려는 사업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터줏대감들을 모시고 사업을 진행하기엔 껄끄러운 것이 많음을 반증하는
인사임엔 분명하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과학기술자들도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다만 그 목소리가 널리 퍼지지
못했을 뿐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과학자들 중 가장 진보적일 것이라 여겨지는 이덕환 서강대 교수의 경우 지속적으로 이러한
문제에 관한 글을 써오고 있다. 이미 2007년엔
정치인도 과학을 알아야 한다는 도발적인 글로, 그리고 최근엔 사이언스타임즈를 떠나면서
(무언가 정치적인 냄새가 나는 장면이다) 억제된 분노를 표출했다. 실상 그의 말은 대부분 옳다. 다만 과학기술자들에겐 그의 말을
실천할 촛불이 없다. 조중동의 일부라는 동아일보는 과학동아를 통해 나름 이 땅의 과학대중화에 일조한 공로가 있다. 과학동아의
기자도
과학자의 정치세력화를 꿈꾼다 한다. 그리고 황우석을 겨냥하고 쓴 글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과학사회학자이기도 한) 김동광의 2005년의 글은 다분히 격앙된 논조로 과학은 정치의 장난감이 아니라 말한다.

과학기술자들도 나름의 단체들을 만들어 놓고는 있다. 보수적이며 정권에 빌붙어먹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혹은 과총)으로부터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혹은 과실연)이라는 다소 진보적인 단체와, 젊은 과학기술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한국과학기술인엽합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기도 하다. 문제는 정작 중요한 일들에 직면했을 때 이들끼리의 유기적인 협조관계가 부실하다는 데 있다.


한민국의 과학기술은 부국강병이라는 경제적 도구로 수입되었다. 따라서 라부아지에처럼 유명한 과학자들이 정치인이기도 했던 그 문화는
수입되지 않았다. 첫 단추가 잘못되었으니 그것을 바로 잡자고 내 골백번을 이야기했으나 나의 외침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과학기술이 부국강병의 지름길이라니 어쩔 수 없다. 나는 기초과학, 나아가 기초학문에 대한 투자를 말할 때에는 경제적 성과를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다. 이에 관해서는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리라 믿는다. 허나 KSTAR와 같은 기술력은 다른
문제다. 이건 정말 나라에 밥을 먹여주는 사업이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으면 과학기술이 대한민국 역사에 새긴 경제적
가치를 환산하여 이명박 정부와 무식한 관료들의 면전에 들이대서라도 과학기술인들도 정치세력화 할 수 있음을 보여야 할 것 같다.
기초과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과학이 경제적 도구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기 싫지만, 그래도 이따위 일이 벌어지는 건 차마 보지
못하겠다. 나의 이상과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절박함은 분리해서 바라봐야겠다.

대한민국 헌법 제 127조가 뭔 줄 아는가?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

이게 대한민국 헌법 제 127조다. 만약 정부가 제대로 된 과학기술정책을 펴지 못한다면 질 것이 뻔하더라도 한번 위헌소송을 제기해볼 일이다. 오늘 버날이 꿈꾸었던, 그리고 베이컨이 꿈꾸었던 이상사회를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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