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수성(水星)과 수성(守城)

사용자 삽입 이미지미항공우주국(NASA)에서 2004년 발사한
메신저호는
수성탐사를 위해 특화된 탐사위성이다. 지난 1월 14일부터 메신저호가 보내온 사진들을 분석한 논문들이 이번주
사이언스지의 11개 Report 섹션을 독점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달착륙 쇼를 치루어 내고 냉전 종식 이후 그 설 자리가
위태로워진 나사
는 때로는 화성의 생명체쇼를 벌이며, 때로는 화성의 물쇼를 벌이며 질기게 생존하고 있다. 그래도 우주인쇼로 돈을
날린 이 땅의 과학정책보다는 낫다는 생각이다만.

메신저(MESSENGER)호는 ‘MErcury Surface, Space
ENvironment, GEochemistry and Ranging
‘의 약자라고 한다. 대충 풀어보자면 ‘수성의 표편, 우주
환경, 지질화학과 계측’정도가 될 것 같다. 무려 5개의 신문사에서 수성탐사를 다룬 사이언스지의 소식을 실었다. 자세한 사랑은
동아일보의 요약판을 보면 된다(그래도 동아일보의 과학섹션은 꽤 괜찮다. 아무리 조중동이라지만 과학자인 나에게 동아는 뭔가 욕하기
조금 껄끄러운 그런 존재다). 주로 수성의 화산활동과 철로 이루어진 핵, 그리고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수성의 크기가 이슈인 듯
하다.

수성의 이름은 영어로는 머큐리(Mercury), 상업을 관장하던 로마의 신
메르쿠리우스(Mercurius)로부터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한다. 본래 그리스에서는 ‘전령의 신’이었던 것이 로마로 건너가면서
‘상업의 신’이 되었다. 칼 세이건은 로마인들이 수성을 신들의 심부름꾼인 머큐리라고 부른 것은 태양에서 멀리 떨어지는 일이 없는
빠른 행성이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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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머큐리는 ‘수은’을 뜻하기도 한다.
수성과 수은이 동음이의어가 된 과정이 재미있다. 중세 유럽에서 금, 은, 수은,
구리, 철, 주석, 납의 7종을 태양계에 속하는 별인 태양,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에 대응시켰는데, 이 때
수은이 수성과 연관되면서 명명되었다고 한다. 동양은 일찌기 행성들의 이름에 음양오행의 상징성을 부여했는데 서양에선 행성들에
금속의 속성을 부여했던 것 같다. 뭐 이것도 동양학이나 천문학 하시는 분들이 파보면 재미있을 주제인 것 같다.

재미있는 건 ‘나비사슴‘님 이 행성과 세일러문에 등장하는 여전사들의 이름, 그리고
그들의 공격속성까지 파악해버리셨다는 거다. 음.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여전사가 머큐리 되시겠다. 그녀는 물의 속성으로 적을
공격한다. 근데 이름이 머큐리면 금속인데 물로 공격한다는 건 동양에서 부여한 수성(水星)의 메타포를 사용하는 건데 뭐 어쨌든
넘어가자. EBS를 보며 사물과 사건들간의 관계를 파고 들어간 나비사슴님의 분석은 여느 과학자와 논객들의 그것보다 훨씬 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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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은 1560~1570년경에는 ‘철학자의 돌’ Philosopher’s
Stone
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누가 해리포터를 영문본으로 보겠느냐만은(아. 우리 교수님 따님들이 그렇게 보더라. 강남아줌마들도
해리포터를 영문판으로 사준다던가) 해리포터 제 1권 ‘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마법사의 돌’은 ‘Philosopher’s
Stone’의 번역
이 다. 뭐 ‘현자의 돌’이라고 번역했으면 좋았을 테지만 어린이들에게는 ‘마법사의 돌’이 더 좋았겠지.
김나희님은 이걸 ‘현자의 돌’로 번역했으면 하시는 것 같은데 원래 “번역은 반역”인데다가 흔히 ‘현자의 돌’이라 불리는
‘철학자의 돌’은 연금술로부터 나온 개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번역의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

근대 과학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마지막 연금술사로도 불리는 뉴턴의 시대까지도
여전히 화학은 연금술과 혼재되어 발전했다. 화학사가 국내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분야인지라 연금술에 관한 지식들도 단편적이지만,
실제로 연금술이 화학으로 탈바꿈하는 데에는 수많은 도구의 발전과 이를 통한 정량화 기술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실상 17세기
까지도 여전히 화학 반응이라는 개념은 정착하지 않은 상태였고, 입자들의 종류와 혼합 및 운동 방식에 의해 질적 속성을 설명하려는
기계론자들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사랑과 증오(재미있지 않은가? 화학사를 공부하다 보면 놀라 자빠진다. 화학반응을 설명하기 위해
사랑과 증오를 들먹이며 거의 그리스 시대로 그대로 빠져들어가는 과학자들의 상상력이란 말이다)’ 같은 당시의 질적 개념을 동원하곤
했다. 그러니까 그러한 질적인 것들이 양화(quantification)되기 시작하는 것이 과학으로서의 화학의 18세기적 출발점이
된다.

명확히 나누기는 어렵지만 분명 18세기의 어느 순간엔 현대적 관점에서 화학이라는
것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철학자의 돌’, 정확히 말하자면 ‘현자의 돌’이라 불리는 이 개념은 그보다 훨씬 이전의 연금술사들에
의해 사용되던 개념이었다는 말이다. 즉 이걸 의미에 맞게 번역하면 ‘현자의 돌’이 아닌 ‘마법사의 돌’이 더 맞다. 당시의
연금술사들은 값싼 금속을 금으로 만들고자 하는 오컬트한 마법사들 집단과 같았고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판타지들이 그런
연금술사들로부터 마법사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니까 말이다. 여하튼 구엘락(Henry Guelac)이라는 위대한 하지만 국내의
과학사학자들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과학사학자분 계시다. 이 분의 논문 ‘화학에서의 정량화(Quantification in
Chemistry)’는 희대의 명문이자 내가 읽어 본 과학사 논문들 중 최고의 수준이다. 대부분 안 읽으시겠지만 뭐 그렇다고.
그러니까 내 말은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것 뿐 아니라 장수와 회춘까지도 가능한 물질을 뜻하던 ‘현자의 돌’은 말이 ‘철학자의
돌’이지 그 뜻은 ‘마법사의 돌’에 가깝다는 뭐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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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이 아름다운 사진 한장 때문에 이 지루하고도 긴 글과 나의 공부가 시작된
것이다. 이 그림은
조선일보가 보도한 메신저호에 관한 포토기사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거 누가 보면 지구라고 착각하기 딱 좋다.
위 사진 수성 맞다. 오해를 없애기 위해 우선 조선일보가 가져온것이라 판단되는 원본을 보여드린다. 네이쳐지에 실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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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는 몰라도 시퍼런 부분을 바다처럼 보이게 하려고 꽤나 뽀샵질을 해대셨다.
이건 뭐 황교주 사건 때 김선종이가 한 조작만큼은 안되지만, 뭐 많은 생물학자들이 이 정도 뽀샵질은 하니까 뭐. 나는 뭐 좋은
의도였다고 볼란다. 독자들을 위해 조금 더 이쁘고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어 주려는 조선일보 어떤 기자의 의도였다고 믿을란다.

그럴래다가 무려 5개의 국내 신문사가 사이언스지의 메신저호 기사를 내보내고 있을
때 150여개의 영문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슬픈 현실에 사로잡힐 무렵, 그 150여개의 기사들에 조선일보와 같은
사진이 단 한장도 없다는 더 큰 슬픈 현실을 접하고는 무려 이 논문의 출처가 되는 사이이언스지에까지 쳐들어가는 과감성을
발휘해버리고 말았다. 저게 물이 아니라면 도대체 왜 시퍼럴까라는 호기심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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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이 사이언스지에 실린, 그리고 네이쳐와 조선일보가 뽀샵질로 잘라다 붙혔다고
여겨지는 사진이다. 그러니까 원래는 왼쪽과 같은 흑백 사진인데 이걸 반사율에 따라 색깔을 매긴거란다. 천문학 전공이 아니라
정확한 전문용어는 모르겠고 뭐 원래는 칼라 이미지가 아니라는 사실만 알아두자. 그리고 절대 저거 바다 아니다. 그것도 알아두자.

2004년에 지구를 출발한 메신저호가 그 먼 공간을 가로질러 보낸 아름다운 수성의 사진 한장으로부터 참 이야기가 멀리도 왔다. 헌데 수성, 수성 하다보니 왠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른다. 아. 명박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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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수성이란 삼국지 시리즈에서 공성전 혹은 수성전을 할 때 쓰는 말이고, 왜적이나 오랑캐로부터 나라를 지킬 때 사용하던
말이며, 혹은 민란이나 폭도들이 등장했을 때 그것도 조선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나 사용하던 말인 듯 한데, 우리네 대통령은
자랑스레 수성을 하고 계시다. 아마도 촛불을 든 우리네 민중이 대통령에겐 폭도들인 듯 하다.

메신저호는 2001년의 3월이면 본격적으로 수성 궤도에 진입한다는데, 우리는 그 후로도 1년을 수성 혹은 공성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1. 해리포터 1권의 부제는 영국판이 philosopher’s stone, 미국판이 sorcerer’s stone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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