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와 생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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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를 보면 미디클로리언(mediclorian)이라는 생체에너지가 등장한다. 콰이곤 진의 설명을 들어보자. 

“Midi-chlorians are a microscopic life-form that resides within all living cells. 미디클로리언은 모든 살아있는 세포 속에 존재하는 작은 생물이다.”
“Without midi-chlorians, life could not exist and we have no knowledge of the Force. 미디클로리언이 없이는, 생물체는 존재할 수 없으며, 우리는 포스에 대해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인터넷에 많은 이야기들이 떠돌지만 이야기를 만든 조지 루카스의 생각을 알 도리는 없고, 다만 미디클로리언이란 일종의 박테리아로 살아 있는 생명체의 세포속에 존재하는 무엇이다. 여러가지 설이 난무하지만, 미디클로리언의 ‘수’가 제다이의 포스의 강도를 결정하는 잠재적인 잣대가 되고, 이렇게 추산된 미디클로리언 수치는 제다이마다 다르다. 훗날 다스 베이더가 되는 아나킨의 미디클로리언 수치가 엄청나게 높다는 말이 에피소드1에서 콰이곤 진의 입을 빌어 잠깐 등장한다.

생기론의 현대적 변주

생기론(vitalism)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생물학이라는 학문에서 생기론은 거의 추방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살아 있고, 게다가 생기론은 19세기 생물학이 정립되던 시기에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을 사로잡고 있던 일종의 지침서였다. 흔히 기계론과 생기론을 대립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많지만, 생물학자들의 두뇌속에서 이 둘은 그렇게 뚜렷하게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이 학술적 목적을 의도하고 쓴 것은 아니므로 한 예로 이상하 박사의 논문 <19세기 과학적 발견의 학제간 연구 정신: 혈액 순환설을 둘러싼 하비 대 데카르트의 논쟁으로 본 그 역사적 기원>을 링크하는 것으로 전문적인 이야기는 대신하기로 하자.

생기론의 역사적 함의를 간략히 서술하자면, 기계론적 물리학의 전통으로부터 생물학을 하나의 독립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지독한 물리주의자였던 끌로드 베르나르조차 ‘항상성 (Homeostasis)’라는 개념을 수용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이건 누구나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려 한다는 ‘김우재의 제 1법칙’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하지만 누누히 말했듯이, 이러한 과학자들의 정치사회학적 성향으로 과학을 상대적인 지식체계라 폄하해서는 안된다.

생기론의 세계관은 다음과 같은 구조의 벤다이어그램으로 표시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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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찬홍 교수의 홈페이지에서는 에릴엇 소버의 <생물학의 철학>을 공짜로 읽을 수 있다. 만족스러운 책은 아니지만, 생물학이 다루는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개괄을 하기에는 꽤 좋은 책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알아두어야 할 것은, 생물학이 물리학으로부터 독립하던 어느 시점에, 그리고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생물학만이 다루는 요소가 생기(vital)이라는 용어로 포장되었다는 것이다. 현대과학의 용어로 재해석하자면, 조금 더 복잡한 물리계정도일지도 모르지만, 생기론에 대한 생물학자들의 로망은 오래된 또 계속되는 꿈과 같은 것이다.

조지루카스의 미디클로리언은 생기론의 현대적 변주다. 비록 19세기 확률혁명과 양자역학에 의한 제한에 의해 불확실성의 시대가 열렸지만, 여전히 분자생물학은 기계론에 기대고 있고, 확실성을 추구하는 19세기까지의 물리학의 시대정신을 답습중이다. 아니 대부분의 과학이 과학자체에 의해 깨진 확실성의 추구라는 신념을 여전히 추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건 단순한 과학의 불융통성이 아니라 과학이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어찌보면 과학이 과학이기 위해 지켜나가야만 하는 지침서와 같은 것이다. 미디클로리언은 생명(포스)은 기계론적 설명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혹은 있어야만 한다는 어떤 신념과, 21세기의 과학이 전해주는 기계론적 생명관이 화해를 이루는 지점에서 생성되는 하나의 이미지다.

생기론적 꿈과 기계론적 제한의 협주곡

조지루카스는 스타워즈라는 거대한 세계관 속에서 때로는 동양적 이미지를, 때로는 과학적 세계관을 그려내는 작가다. 그런데 이런 생기론의 ‘꿈’과 기계론의 ‘제한’이 등장하는 것이 꼭 작가의 입을 통해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도 이런 인지적 부조화를 느끼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이홍규 교수는 진핵생물의 세포라면 모두가 지니고 있는 미토콘드리아로부터 질병에 관한 모든 설명을 얻고 싶어하는 것 같다. 오래전부터 이홍규 교수를 지켜보고 있는데 요즘엔 조금 뜸하신 것 같다. 하긴 세포질유전로부터 비멘델식 유전현상이 후생유전학의 서막을 알렸을 때부터 미토콘드리아는 생물학자들에게 하나의 아이콘이었다. 유전학자들에게는 언제나 라마르크의 유령이 살아숨쉰다고 한다. 미토콘드리아에 의한 세포질 유전은 멘델에 의한 결정론적 사고로부터 벗어나려했던 생물학자들의 이단적 사고가 찾아낸 쾌거였다. 참으로 과학은 무정부주의적으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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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이런 시도만인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찌보면 한의학은 생기론을 대놓고 시도하는 학문일지도 모른다. ‘기’라는 개념이 ‘에너지’라는 과학적언어로 대체되어가는 과정이긴 하지만, 사실 나는 한의학자들이 좀 자존심을 가졌으면 한다. 이건 정말이지 오래된 양의/한의 간의 논쟁이자 대한민국 찌질 스켑틱스들과 동양철학자들간의 논쟁이기도 한데 나중에 기회를 봐서 한번 의견을 개진해 보도록 하겠다.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봉한관’이라는 실체로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을 신비의 세계로 인도하고 계신 소광섭 교수의 연구에 관한 것이다. 물리학자인 이 과학자가 한때는 도올이나 장회익 선생과 함께 신과학운동을 했었다는 사실은 이미 <우희종 교수의 신비주의>라는 글에서 다룬바 있다. 사실 나는 소광섭 교수를 무작정 까대기보다는 그가 이런 연구의 궤적을 걷게된 배경에 더욱 관심이 간다. 여하튼 내가 도올을 인터뷰했던 당시의 도올의 답을 대신 링크한다.

그분 들은 모두 나름의 전문가다. 과학적 지식이 확고한 그분들에게 많이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배웠다. 나는 포괄적 세계관 즉, 코스몰로지를 구성하는 측면에 있어서 다양한 맛을 본 정도가 아니라 전문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그들이 포괄적인 전문지식인으로서는 부족할 수 있지 않을까.

전통을 과도하게 과학에 결부시키는 면이 있다. 봉한소체에 의해서 한의학이 미래가 열릴 것이라 보지 않는다. 과학이라는 것은 가설을 세워서 이것을 입증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 가설 자체가 바른 가설인가를 검증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상식적인 코스몰로지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중요하다.

한의학 경락의 문제에서 경락이 어떤 식으로든 측정 가능해야 하겠지만, 그것이 물리적인 사실로서 풀릴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뭔가 독특한 차원의 새로운 가설방식과 새로운 입증방식이 필요하다. 분명한 증후는 있는데 그 기능에 대한 존재론적 근거는 전혀 없다. 그런데 그런 과학은 없다. 현재 말해지는 엄밀한 의미의 과학에는 이것이 없다. 그 문제에 대해선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볼트중합체와 새로운 미디클로리언의 꿈

이번에 미르이야기 원고를 작성하면서 아주 재미 있는 구조체를 하나 보게 되었다. 볼트중합체 (The Vault Complex)라는 것인데, 세포내 단백질 생산공장인 리보솜(ribosome 보통 라이보좀이라고 읽는데 우리나라에선 리보솜으로 굳어버렸다)보다 몇배가 큰 위용을 자랑한다. 사실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체와 같은 세포소기관들은 원래 박테리아였고 따라서 크기가 클 수 밖에 없는 것이라 해도, 기능도 알려지지 않은채, 단지 RNA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 이 중합체의 걷한 크기는 상식적으로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세포마다 1만에서 10만개가 있다고 하니 숫적으로도 엄청나다. 도대체 RNA가 그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아니 나아가 도대체 볼트중합체의 기능은 무엇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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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중합체에 관해서 1년에 10여편의 논문이 출판되는 것을 보니 생물학자들은 이 웃기는 구조물에 대해 별반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아마도 기능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원래 생물학자들은 ‘기능’을 밝히고자 무진장 노력하는 일군의 과학자집단이기 때문에. 사실 이건 개인적인 경험인데 저걸 처음 발견한 분이 여자과학자고, 그 분을 만나본 적이 있다. 내 박사학위 논문과 관련된 분이라 한 30여분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볼트중합체 연구를 안하신다. 나중에 만나면 한번 왜 그러는지 물어봐야겠다.

그나저나 참으로 재미있게 생겼다. 꼭 팽이를 두개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겼는데, 대부분의 오르가넬(세포소기관)들이 대칭을 이루지 않는 것과 비교할 때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저런 대칭성이 어떤 기능에 연관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도 흥미로운 연구주제다. 게다가 혹시 아냐. 저게 조지루카스와 이홍규 교수와 소광섭 교수가 꿈꾸던 생기의 물리적 실체일지.

시간 되면 내 피좀 뽑아서 볼트 단백질 안티바디 사가지고 염색이나 좀 해봐야겠다. 나는 몇만개나 가지고 있는지 세어가지고 미디클로리언 수치라고 뻥을 좀 쳐봐야겠다. 우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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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thoughts on “스타워즈와 생기론

  1. 죄송하지만 원시세포와 인간의 DNA는 어떤차이를 가지고 있나요? 단순 염색체 길이의 차이인가요? 아님 차이가 분명한가요

  2. 볼트 중합체 안티바디..
    그거 생체 에너지 진단 시약이라고 이름 붙여 일반인들에게 팔면 돈 좀 되겠는걸요? ㅋ ㅋㅋㅋㅋ
    오컬트 매니아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거 같네요.

  3. 원시세포와 인간세포의 DNA는 완전히 다르죠. 길이의 차이뿐만 아니라, 시퀀스도 완전히 다르겠죠. 게다가 원시세포라는 것의 DNA 시퀀스는 현재 남아 있지 않아요. 그냥 시원박테리아들을 가지고 유추해볼 뿐이죠.

    더 구체적인 질문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다시. ^^

  4. 생명관에 대해서, 기계론과 생기론에 대해 조사하던 중 읽었습니다. 재미있네요~^^

  5. 오래된 글에 댓글을 달아주시니 기쁘기 짝이 없습니다. 생기론에 대한 생물학자들의 사고에 대해 더 공부를 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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