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마시는 과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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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부터 이야기를 해보자. 2006년에 생물학 분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학회들 중 하나인 CSHL(Cold Spring
Harbor Laboratory) Meeting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왓슨이 탁월한 정치력으로 뉴욕 인근의 부자들이 밀집한
부근에 세운 이 연구소는 실상 그 연구성과보다는 교과서의 집필이나 미팅장소로 더욱 유명한 곳이 되었다.왓슨은 이곳 부자들을 살살
꼬드겨서 부자들의 이름을 건물에 새겨주는 댓가로 그들이 소유했던 고저택이나 창고 등등을 기부받았다.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의
대부분의 건물들이 부자들이 살던 집이다. 나중에 혹시라도 이곳에 가시게 되거든 그곳의 선임연구원들이 공짜로 제공하는 투어에 꼭
참가하시길 바란다. 아무리 미국을 욕하더라도 기부의 문화로 충만한 그곳의 과학환경을 배울 절호의 기회이므로.






미팅은 아침일찍 시작해서 밤 늦게 끝나곤 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미팅이 끝나자마자 많은 대가급 과학자들이 펍으로 달려가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여기서 특히 나이가 들어보이는 교수들을 제외하곤 대학원생과 포스트닥, 그리고 교수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다들 셔츠에 반바지 차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학회에서 양복을 입는 일은 과학자 사회에서 상당히
드문 일이다. 펍의 분위기가 어떠냐면 한마디로 실컫 농담을 주고 받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엄청 감동받은 리뷰 논문을 쓴 대가급
아저씨라는 걸 아는 식이다. 술한잔에 모두 친구가 된다고 했던가.

학회가 끝나기 전날밤엔 모두가 거하게 취해 펍에서 자신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과학을 이야기하고 공동연구를 제안하고, 실험에 필요한 도움을 청하고 받는 자리가 마련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두가 술집에 서서 이리 저리 옮겨다니며 무려 ‘과학’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국내 학회를 뻔질나게 들락거려봤지만 이런 분위기를 한번도 보지 못했던, 게다가 학부시절부터 술자리에서 과학이야기 좀 하려다가 분위기 깨진다며 언제나 왕따를 당해온 나에게 이런 장면은 차라리 충격이었다.

통계역학의 창시자였던 루드비히 볼츠만은 연구를 마친 저녁엔 거의 선술집으로 가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즐겼다고 한다. 그곳에서 많은 아이디어들이 솟아나왔고, 또 그가 적이라고 생각한 에너지 일원론자들이 술집에 등장하면 ‘앞으로 돌격!’ 해서 논쟁 또 논쟁. 그런 낭만적인 과학자들의 삶이 19세기엔 살아 있었다.

게임이론을 확장시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도 내쉬와 동료들이 술집에 모여 ‘아담 스미스’를 연호하며 잔을 부딪히는 장면이 나온다. 주의 깊게 보신 분들은 기억이 나실 것이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 내쉬는 술집에 들어오는 여자들과 동료들의 부킹을 바라보며 ‘내쉬 균형’에 관한 기본 틀을 세우는 것으로 설정이 되어 있다. 놀랍지 않은가? 술집에서의 노벨상 아이디어라니.

불우하게 자란 수학 천재의 이야기를 그린 ‘굿윌 헌팅’에서도 술집에서 윌의 동료가 하버드의 여자를 꼬시려다 역사학을 들먹이며 껄렁거리는 한 대학원생을 윌이 혼내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주로 미국 역사, 아마도 경제학사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영화를 주의 깊게 보신 분이라면 윌과 그의 정신과 의사의 첫 만남에서 윌이 서재를 뒤적이며 무려 <미국민중사>의 저자 ‘하워드 진’을 언급하는 부분을 기억하실 것 같다. 여하튼 그 하버드의 펍은-만약 영화처럼 그런 분위기라면- 내게는 참으로 부러운 그런 장소였다.

과학자에게 술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많은 서구의 과학자들이 티타임 시간에 다른 동료들과의 대화속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발견했다고 진술하듯이, 과학자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란 연구실 안에서만 발견되는 고된 노가다는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웃기지도 않는 연구를 수행했던 냉전시대의 미국 랜드(RAND) 연구소는 일종의 놀이터였다고 한다. 명목상으로는 미국의 국방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던 이곳에서 연구하던 항목에는 “소련의 벽돌 가격, 서핑, 의미론, 핀란드어 음운론, 원숭이들의 사회적 무리짓기, 인기 있는 장난감 가게 퍼즐 ‘즉흥적 광기’의 분석”과 같은 주제들이 들어 있었다. 문제는 이런 실없어 보이는 연구들 중 일부가 훗날 예상치 못한 이익을 가져오기도 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곳에서 ‘게임이론’의 효시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과학자들의 놀이는 노가다보다 중요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마냥 놀라는 말은 할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실’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에 대한 많은 반론을 준비할 수 있지만,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사는 학자들의 삶을 또 나는 부정하기 힘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좀 날나리 양아치 같은 학자들이 이 땅에도 있어줬으면 좋겠다. 제자들을 몰고 밤마다 술집으로 가서 학문을 이야기하고 논쟁과 토론을 즐기다가, 갑자기 자신이 논적을 불러 도전을 하는 그런 로망이 이 땅에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 왜들 이렇게 학문을 진지하게만 보려고 하는지, 왜들 좀 즐기지 못하는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개발독재의 잔재인지, 아니면 유교문화의 압박인지 알 수 없지만 이런 식으로라면, 즉 날나리 양아치나 괴짜들이 대학에 붙어 있을 수 없다면, 그리고 배를 골며 너무나 고달프게 학문을 해야하는 시간강사들이 많아진다면 이땅에 기초학문 따위는 곧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폰 노이만의 전기 비슷한 책을 읽고 있다. 게임이론 뿐 아니라 컴퓨터의 발전에도 엄청난 공헌을 한, 이 미친 천재의 이야기에는 과장된 면이 많지만, 그래도 그의 괴짜스러움을 받아들인 미국의 관용이 부럽기도 하다. 사상적으로는 깡보수였다고 하는데 뭐 냉전의 희생자쯤이었다고 해두자. 폰 노이만이 오랜 시간을 보냈던 프린스턴 고등과학원은 랜드 연구소보다도 더한 놀이터였다는 전설이 있다. 이곳에서 유명한 고주망태였던 그의 일대기를 그린 책구절을 소개하며 마치련다.

폰 노이만에 관한 이야기들 속에서 그는 때때로 고주망태 술고래로 각색된다. 사실이기는 하지만 폰 노이만을 보통 기준에 따라 판단하기는 어렵다. 음주는 프린스턴 환경의 일부였다. 보트는 지친 수학자의 정신에 알코올이 미치는 ‘치료효과’에 대한 고등연구소 사람들의 믿음에 관해 이야기했다. 오펜하이머의 집은 ‘버본주점’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폰 노이만의 집에서도 역시 술은 무료로 강물처럼 흘러넘쳤다. 집주인도 손님에게 질세라 여기에 동참했다. 그는 주기적으로 유리잔에 주둥이를 담그는 유리로 만든 새를 가지고 있었다. 한 파티 석상에서 그는 모두 다 새가 잔을 주둥이로 쫄 때마다 한 잔씩 마셔야 한다고 선언했다.

프린스턴에서 폰 노이만의 집에 여러 해 동안 함께 기거한 동생 니콜라스는 자니가 동료들과 ‘잘 어울리기 위해’ 취한 척하곤 했다고 말해주었다. 주흥이라고 하기엔 도가 지나친 이야기들도 있다. 폰 노이만은 보리 위스키 1쿼트(약 1리터)를 한 시간 내에 마셔버릴 수 있었고, 그러고도 운전을 했다고까지 주장되었다. 물론 이것은 과장일 수도 있다. 문서로 된 출처나 내가 직접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로부터 폰 노이만의 음주벽이 그의 연구를 방해했다는 근거를 찾을 수는 없었다.

윌리엄 파운드스톤 <죄수의 딜레마>, 42페이지




죄수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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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 |
양문 펴냄
많은 사람들에게 폰 노이만은 전자 디지털 컴퓨터의 개척자,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던 뛰어난 과학자,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에 등장하는 스트레인지러브 박사의 모델이 된 인물 중 하나라고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는 20세기 전반 냉전시기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정치`경제`과학 분야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전설적 인물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게임이론이 자리잡고 있다. 게임이론은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려 하며 잠재적


18 thoughts on “술마시는 과학자들

  1. 잘 읽었습니다. 한국의 술문화에서는 꿈같은 이야기군요. 시간이 점점흐르면 저런일도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2. 술먹는데야 우리도 결코 뒤쳐지지 않는데 요는 술자리에서 무려 과학 이야기를 하게끔 용인하는 관용과 격식을 구애하지 않는 문화겠죠. 윗분과 달리 저는 극단적으로 우리나라 말에서 경어체가 폐지(!)되지 않는 한 이놈의 계급문화와 서열문화는 고치지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3. 이게 단순한 언어의 차이를 넘어서 아주 문화에 고착되어버린 뿌리깊은 관습 같습니다. 외국에도 서열문화는 존재합니다. 우리처럼 아주 표면적이지는 않고 아주 음흉해요. ㅎㅎ

    우리나라는 항상 평균적인 인간들만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한국은 과학자들도 술자리에서 과학 이야기 하면 욕먹는다니 조금 충격입니다… ㅇㅁㅇ (죄송합니다, 외국에 산 지 오래 되어서)

  5. 당연히 존재하겠죠. 인간은 다 똑같은데요. 다만 우리나라는 특히 언어에서 비롯되는 서열세우기가 너무 심한 것 같아 드린 말씀입니다. :)

    추.
    주말모임엔 연락주십시오. 가능할지는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가능하면 참석토록 하겠습니다.

  6. 핑백: keizie's me2DAY
  7. 사이언스는 아니고 엔지니어링이긴 하지만… 술에 일가견이 있는 교수님을 모시고(?) 있는지라 웃으면서 봤습니다. 폰 노이만이 술고래였군요-_-;; 수업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교수님이 계셨다면 공부하는게 더 즐거웠을 것 같습니다. ㅋㅋ

  8. ㅋㅋㅋ. 술고래 많죠.
    울교수님도 그렇고, 그 제자인 나도 그렇고.
    가끔 웃길 때가 있어요.
    다음날 연구실 갔는데,
    교수님은 교수님대로 전날 얼큰이 취했구나 싶은.
    나도 그 전날 얼큰이 취했으니깐…

    서로 안부를 묻죠. “전날 한잔 했구나.”
    교수님은 물을 사다 마시고, 전 제 책상에서 30분간 눈을 붙입니다. 졸려서.ㅋㅋ

    현진건의 말대로 세상은 술권하는 사회가 맞는데…..
    그러게요….ㅋㅋㅋ 우리 랩에서 단 둘만 술을 좋아라 해서. 교수님하고 나만. ㅋㅋㅋ

  9. 술자리고 아니고를 떠나서, 사이언스를 한다는 사람들이 왜 수다(?)를 나눌땐 정작 사이언스는 주제에서 빠져버리는지.. 다른 분야는 아는게 없어서;;할말이 없다구요.ㅡㅡ;;

  10. 우리 한국인들 사이에는 나이나 서열을 뛰어넘어서는 안된다는 “금기”가 의식 속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저보다 서열이 위인 사람들 앞에서는 말하기 전에 내 말의 파급효과를 의식 혹은 무의식적으로 “계산 혹은 계량”하곤 했었고 하고 있으니까요.

    님이 참여했던 외국 학회에서 과학도들이 여가를 빌어 술을 마시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들이 연구할 땐 주변에 누구 하나 신경쓸 필요없이 연구에 몰두하고, 학회에 나가는 것은 아마도 그들에겐 일종의 휴가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잠시 자기가 몰입했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 해방을 즐기고 다시 목표로 하는 연구로 돌아가야겠다는 무의식과 의식을 겸한…그러면서도 아무리해도 풀지못했던 문제들을 우연히 그러나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만나 자신도 모르게 털어놓아보면서 객관성도 확보하고, 아니면 뜻하지 않았던 해결의 실마리를 얻기도 하고요…

    우리에게 아쉬운 것은, 정말 절실히 필요한 것은, 신분이나 격식이나…기타 등등 따지지 않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듣고 싶은 말 다 듣는 그 “소통”의 정서나 문화적 바탕이 부족하다는 지적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럴 수 있을 때가 과연 오기는 오겠지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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