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굿바이 허비(hubby)!

사용자 삽입 이미지어떤 종교에서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표현도 쓰는 모양인데, 사람이 곧 하늘은 아니겠으나 사람이 다른 생물보다는 우선인 것 아니겠느냐. 네게 잘못이 있다면 개로 태어난 것일테고 내게 잘못이 있다면 인본주의의 이상에 동의하면서도 너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는 것일게다.

이제 겨우 9개월이 되었구나. 처음에 네 녀석은 맥주깡통만한 크기로 그 네오티니의 귀여움으로 보살핌 받기에 마땅한 그런 어린 생명체였다. 오히려 그 어린 시절의 네게 난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구나. 조금 커서야 너는 내게로 왔고 그렇게 함께 지낸 시간이 벌써 반년이 흘렀구나. 오늘 너를 떠나보내는 나는 지난 반년 진정으로 행복했음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못난 주인을 만난 탓에, 원래를 개를 기르지도 못하는 아파트에서 지내느라 참으로 수고가 많았다. 그래도 어찌 그리도 착하게 자라주었는지 짓지도 않고 티비에 나오는 다른 버릇없는 애완견들처럼 행동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기특해보였는지 모른다. 네 녀석이 처음 내 앞에서 ‘앉아!’와 ‘손!’을 했을 때 그것을 얼마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마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이 이런것임을 그 때 처음 알았나보다. 놀고 싶을 때면 인형이며 공을 물고 천진난만하게 다가오는 네 녀석의 순진무구함이 얼마나 눈물겨웠는지 모른다. 그것에서 위안하며, 세상에 대한 냉소를 멈출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네가 내게 세상을 가르친다.

하루의 대부분을 실험실에 있어야 했던 터라, 아침과 저녁 무렵에만 나를 볼 수 있었던 네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이해한다. 저녁도 실험실에서 시켜먹던 내가 그래도 6시면 네 녀석을 산책시켜주러 아파트로 돌아왔던 마음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산책을 나갈 때면 신이 나서 짖어대던 네 녀석의 외침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착하고 또 명랑하면서도 늠름했던 너의 모습을 잊지 않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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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내가 키우던 개들은 너와 같은 순종이 아니었다. 모두가 잡종견이었고, 언제나 마당의 작은 집에서 자라났었다. 실상 너를 기르기 전까지 나는, 집안에서 개를 키우는 사람들을 혐오했었다. 여전히 그 마음엔 변함이 없지만, 진정 개를 사랑한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다워져야 하는 것처럼, 개도 개다워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당없이 사는 처지에 너를 맡게 된 처지에 그런 철학을 지킬 여력도 안되었지만, 그래도 솔직히 너와 함께 뒹군 그 시절은 즐거웠다. 아마도 외지에서의 지독히도 오랜 생활이 내게 널 의지하도록 만들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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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널 떠나보내며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를 만든 후에야, 너처럼 착한 개들에게도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어야겠다고. 개의 장례식까지 치러주는 부자나라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사람처럼 살지 못하는 곳도 여전히 많은데, 그것은 참 잘못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드는구나. 그래서 네게 더욱 미안하다. 어린 시절 마당에서 개를 길러본 후론 처음, 나의 개를 가져보았는데 그 시간이 너무나 짧았던 듯 해서 미안하고, 별로 잘해준 것도 없는데 나를 너무나 잘 따라주었던 네게 미안하고, 아까 차를 타고 떠나면서 나를 쳐다보던 그 눈빛에 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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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비, 사람이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그런 사회가 오면, 우리 함께 어디 조용한 산골짝으로 들어가 평화롭게 살기로 하자. 그 날이 올때쯤엔 네가 새끼를 치고, 또 너의 새끼가 새끼를 치는 그런 세월이겠지만, 그래도 우리 그런 약속을 하자. 사람이 개보다 먼저일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끌어오르는 이런 감정을 이해하면서, 그리고 인간에 내재된 이 ‘측은지심’의 감정을 쥔채로 인간답게 살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추신: 네 이름을 지을 때 많이 고민했단다. 세상의 중심에 서라는 뜻으로 허브(hub)를, 귀엽고 부르기
쉬우라고 거기에 -y를 더했다. 비록 나는 그리 살지 못할지라도 넌 가는 곳 어디서든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람들을 엮는 허브가
되어주길 바란다.

추신: 지나치게 의인화된 개들의 이야기엔 과장이 많다. 너도 곧 나를 잊겠지만, 몇 년후 혹여라도 네가 나를 알아본다면 정말 모든 것 다 때려치우고 함께 산으로 들어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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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애정이 많았던 허비였나 보네요… ^(^

    수고롭게 걸어주신 엮은 글만 본 기억이 있었는데, 이제야 그 밑에 달린 댓글을 발견했답니다. 덕분에 다시 한번 다녀갑니다.
    저만의 해석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이 하늘”이라는 말은 생명체가 곧 하늘처럼 귀하다는 뜻이 아닐까요…

    좋은 주말 보내고 계시죠? 앞으로도 좋은 글들로 소통할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2. 아른 아른 합니다. 눈에 밟힌다는 게 아린건가 봐요.ㅎㅎ

    쓰면서도 그런 의미 때문에 고민했지만, 넋두리이니 그냥 넘어갔습니다. 동학과 천도교의 시대적 고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답니다.

  3. 귀국하실때 쯤이면 아파트가 아니라 산 속의 전원주택을 마련해야 되겠군요.^^
    장담컨대 허비 정도의 지능이면 우재씨 알아볼거에요.
    개라고는 마당에 진돗개만 키우던 우리 집에서 옛날 요크셔테리어 새끼를 엄마와 제가 집안에서 한 2년 키우다가 아빠의 성화에 못이겨서 제가 서울 올라온 후 저랑 친한 동생네로 보낸적이 있었는데, 같은 서울 살면서 아주 가끔이라도 보던 나는 자기 보낸거 기억하고는 밉다하면서, 거의 5년 이상 지나서 만난 저희 엄마를 보고는 아주 난리를 치더이다. 반갑다고, 자기 데리러왔냐고…
    마음 주고 키우면 어떤 동물이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첫 정을 기억하는 듯 해요.
    ㅡ,.ㅡ 저도 놀리면 재미나던 허비 가끔 보고싶은데, 우재씨는 오죽할까 싶네요…토닥토닥

  4. 나도 허비 많이 보고싶다.. ㅠ.ㅠ
    오죽했음 사진보내라고 오빠 괴롭혔겠어 ^^
    꼭 다시 데리고 오자. ^^
    흰둥이랑 허비랑 모두 모여 행복하게 ~ 룰루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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