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하루

제국에선 하루가 참 빠르게 간다. 아마도 어두워지면 무엇을 하기가 두려워지기 때문이리라. 시내에 나갔다가도 5~6시가 되면 슬슬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거리는 금방 부랑자와 미친 녀석들의 고함으로 얼룩져 버리고, 관광객들이 돌아다니는 몇 블럭 이외의 거리는 어둡고 음습하기 때문이다.

웃기게도 샌프란시스코는 벌써 4번째 방문이다. 어째 미국에만 오면 이곳으로 온다. 말이 씨가 된다고 결국은 이 나름대로 친숙한 곳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적어도 공항에서부터 관광객으로 보이지 않고 내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이곳이다. 영어란 사용하지 않으면 절전모드에 들어간 컴퓨터처럼 버벅거리게 마련이고 시동이 걸리기까진 시간이 좀 필요한 것인듯 하다. 한두번 버벅거린 것 빼고는 마치 오래 살았던 사람인냥 거리를 활보하고, 또 당차게 걸었다. 선그라스와 당당한 걸음걸이면 관광객을 물고 늘어지는 부랑자들에게 대항하는 최고의 무기가 된다. 백인처럼 걷기. 이게 어려운데, 백인들은 좀 공작새처럼 걷는다. 부랑자들은 기가 막히게 관광객과 원주민의 차이를 알아차리는 것 같다. 담배를 하나 꼬나 물고 걸었더니 흑인 부랑자 한명이 담배좀 달라고 하던 걸 빼면(무시하고 걸었다. 2년전엔가 좀 주려고 했더니 무려 5까치를 빼았아 가더라) 절반쯤은 원주민으로 동화된 듯 하다.

정말 웃기는 도시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관광객들이 잔뜩 몰려 있는 파우웰 스테이션 근처, 그러니까 마켓 스트릿과 파우웰 스트릿 그 블럭의 주변으로 한 두 블럭만 지나면 곧바로 음습한 지대가 나온다. 길가엔 부랑자들과 거지들과 이상한 차림의 흑인들이 정말 이상한 모양새로 서있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꼬나보거나 수다를 떨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단 그런 곳은 지나가기가 갑갑하다. 대낮에야 그냥 지나쳐버린다 해도 어두워지면 그런 거리를 걷기 싫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전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번화가에서 북동으로 두어블럭 위에 할렘가 비슷한 곳이 있다고 한다. 그곳에 절대로 발을 들여놔선 안된다고 하던데 뭐 똑똑한 관광객이라면 대충 분위기 보고 걸음을 접어야 한다. 정말 웃기는 곳이다. 블럭과 블럭 사이가 천양지차다.

대중교통이 그나마 잘되있다는 도시인데, 여기 정말 웃기다. 담만 충분이 크다면 얼마든지 공짜로 출퇴근을 할 수 있다. 무니(MUNI) 버스같은 경우는 차장이 표검사를 하지만 같은 무니라도 지하철은 탈 때 표검사가 없는 역이 많다. 다운타운을 제외하면 거의 표검사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끔 내릴 때 경찰인지 뭔지 하는 사람들이 서서 표검사를 하거나 주말에 차에 직접 경찰들이 타기도 하는데, 순진하게 한 두정거장 갈거면서 표를 끊을 필요는 없다. 걸리면 작살이지만 외진 역에서 걸릴 확률은 거의 제로다. 게다가 끊어주는 표라는 게 갱지로 만든 얆은 종이라 잃어버리기 딱 좋다. 반년 전에 방문했을 때도 전자티켓을 준비한다고 차에 그런게 달려 있었는데 여전히 준비중이란다. 명박은 얼마나 대단한가. 티머니를 그리도 빨리 공급시키다니 말이다.

주의 깊게 이 곳을 관찰하면 모든 것이 상당히 좋게 말하면 여유롭게, 나쁘게 말하면 게으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는 그것이 미국의 장점이라 말할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런지는 의문이다. 모든 일을 처리할 때마다 엄청난 종이와 마주해야 하고, 서류하나 발급하는데 4주가 걸리고, 뭐 뷰로크라시라는 것이 언제나 그런 식의 편의주의로 흐르게 마련이지만 참 이곳의 공공서비스라는 것도 답답하기 짝이 없다. 이럴때는 한국의 전산시스템이 참으로 위대해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어릴 때 종로에 나가면 정신 나간 아주머니가 소리를 지르고 다니곤 했다. 거의 동네마다 그런 사람이 한 두명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한 두명 뿐이었다. 여긴 그런 사람이 블럭마다 수십명이다. 도대체 가장 풍요롭다는 사회에 가장 정신나간 사람이 많이 보이는 것은 무슨 변고일까? 양극화가 가장 심각한 나라 중의 하나라는 이유일까, 아니면 이곳의 문화가 가진 특징일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의 대부분이 유색인종이고 보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까고야 마는 이놈의 반응은 본능인지 학습인지 모를 정도로 무서운 것이다. 진화심리학자들 중에 인종차별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결론은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혐오는 일종의 자기보호 본능이라는 것이다. 물론 매우 나이스하게 결론은 그것에 대한 객관적 분석과 인종주의를 없애기 위한 방안으로 메꾸어졌지만, 그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정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혹은 인정하고 바꾸어야 하는 것인지 애매모호한 것이다.

대충 급한 일들은 마무리가 된 듯하다. 주말이면 뭘 해야할 지 계속 궁금할 것 같은데, 어차피 포항에서도 시내에 나가 주말을 보낸 적이 없었고, 자그마한 방이고 자그마한 부억과 거실이지만, 독서와 사색을 위한 어포던스에 약간의 투자를 해야할 듯하다. 그래도 누군가 남겨두고 간 푹신한 소파와 테이블 덕에 많은 돈을 절약했다. 프린터를 하나 사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곳에 들일 돈이 거의 다 세이브 되었으니 좀 생산적인 것에 투자할 가치도 있을지 모르겠다.

생전 처음으로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어봤는데, 세상에 맛있다. 한 5~7번은 먹을 수 있는 국수가 1불이고, 소스가 5불 정도 한다. 이거면 됐다. 이젠 김밥을 스파게티로 바꿀때다. 위가 견뎌주길 바란다.사용자 삽입 이미지

18 thoughts on “제국의 하루

  1. 먼저 SF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해야겠지만 “순진하게 한 두정거장 갈거면서 표를 끊을 필요”가 있어 보이네요. 돈을 아낀다고 하기엔 양심이 없는 것이죠. 이명박 같은 인물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된 이유를 이런 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겠죠. 참고로 SF가 미국에서 가장 인종에 대해 유연할 겁니다. 오히려 중국인이 아닌 동양인이 중국인에게 차별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http://www.sfgate.com/maps/sfhomicides/ 참고 하세요. 요즘 정말 살인사건 많이 납니다.

  2. 우선,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반적으로 서민들의 양심이나 윤리의식을 문제삼는 전략은 명박스러운 이들에 의해 주로 자행되는 통치행위였다고 역사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통 지혜로운 정부는 국민들의 윤리적 의식을 다그쳐 그들을 쥐어짜낼 생각을 하기보다는 국민들에게 알맞은 시스템을 구축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택스도 내는 제가 한두정거장 그냥 얻어타던 말던 그건 양심의 문제와도 별 상관없고 님에게 꾸중들을 그런 정도의 죄악은 아니라고 보면, 더더군다나 명박이 대통령이 된것과는 더더욱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SF이야기가 나오니 SF에 대해 좀 아는척 하기위해 이런 곳에 친히 댓글을 다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뭐 제가 나중에 중고차가 좀 필요한데, 아니면 운전면허좀 따려면 운전해줄 사람도 좀 필요한데 그런걸 도와주시기 위해 펜을 드셨다면 참으로 고마웠을 듯 합니다. 아이디도 SOMA이신걸 보니 그 근처에 사시거나 그 근처를 동경하시는 듯 한데 좀 꺼져주시고,

    둘째, 미국에서 인종에 가장 유연한 동네에서 도대체 왜 중국인이 다른 인종을 차별하는지도 의문이고, 도대체 왜 살인사건이 많이 나는지도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마에 살면 그다지도 현상에 대한 정합적 판단이 사라지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발 부탁이건데, 이런 좌빨스러운 아나키스트가 운영하는 사이트일랑 쳐다보지 마시고 제발 소마에서 그대로 계시면서 좀 꺼져주시기를 바랍니다. 친히 4줄의 답을 남길정도면 댓글이 궁금해 다시 돌아오리라는 심리학적인 기대로 장황하게 답글 남겨봅니다. 이게 마지막이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제가 좀 까칠합니다. ^^

  3. 어느 부분에 놀라야 할지조차 고민하게 만들 정도로 다른 것 투성이네요.
    잘 도착하셨다니 다행입니다.

    한국보다 마음이 아픈 분이 많으시다는건 아마 규모가 너무 커져서 따라서 확대된게 아닐까….라는 안일한 생각을 해봅니다 ^^; 인구 비율로 따지면 비슷할지도 몰라요 ‘ㅂ';;

    일전에 일본에 놀러갔을때 가장 놀란것이 마징가 제트를 생산 가능한 기술력을 (다만 생산하지 않을뿐이다…라고 주장하더라구요) 가졌다는 일본의 지하철역이었습니다. 적어도 2차대전 말기에 지어진 듯한 역사를 쓸고 닦고 고쳐가면서 열심히 쓰더라구요. 선진국이라고 해서 우리처럼 모두 엎어버리고 새로 짓는건 아닌가봐요. 다른건 몰라도 서울이 외양만은 미래도시에 가장 근접한 듯 합니다.

    가구를 사실거면 신품은 이케아를 추천합니다. 싸고 예쁘다고 하더군요. 요즘 가격이 올라 가격 우위를 점차 잃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단 예뻐요…. ^^; 중고가 더 나을지는 현지 시스템을 잘 몰라서 모르겠네요.

    흥미진진한 미국 생활기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4. IKEA를 말하는거져? ㅋㅋ 가구는 대충 해결됐어요. 돈 한푼 안들이고 살만해졌음. 돈 절약해서 부자될라구요. 위에 사람 같은 넘한테 구박안받고 살려면 차도 좀 사야겠음. 어째 이놈의 제국은 한국사람이 오면 금방 네오콘으로 둔갑시켜버린다니까.

  5. 와우 실시간 댓글! ^^ 안사고 해결하는게 최고죠. 가구를 사느니 차를 사는편이 더 나을거 같네요.

    그나저나 네오콘…. ^^; 일전에 포스팅하신 제국숭배주의자가 된 교수님들이 생각나면서 씁쓸해집니다

  6. ‘도킨스’를 검색하다 님 블로그를 발견해서 이것저것 재미나게 읽다가 샌프란에 계신걸 알고 놀랐네요.

    시간이 좀 되시면 나중에 16th BART역 중심으로 해서 Mission District 근처도 (SOMA를 혐오하시는 걸 보면 이미 가보셨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거닐어 보시고, 관광지가 되어버린 North Beach의 서점 말고 도 한 번 가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좌빨-아나키스트” 코너가 아예 따로 있습니다. (아, SF에선 1년에 한 번 씩 3월 쯤인가 아나키스트 서적 축제도 열립니다.)

    쓰다 보니 SF에 대해 아는 척을 하기 위해 문장 수가 점점 늘어 가서 이만 줄입니다. 아무튼 생면부지이지만, 괜히 반갑습니다.

  7. 반갑습니다. 미몹에서 김우재님 블로그 보고 반해버렸었는데, 갑자기 사라지셔서 궁금했었습니다. 티스토리에서 다시 발견하곤 늘 즐겁고 고마운 마음으로 글들 읽고 있습니다. 젊음의 열정도 부럽고, 정치사회적 맥락에서의 님의 분명한 입장표명도 참 신선하고, 과학적 관찰과 인문학적 성찰이 날렵하고 유연한 모습으로 연결되어 있는 님의 글들 때문에, 일종의 팬이 되어버렸네요. 미국으로 가시면 어디에 계시나 궁금했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실 거라는 오늘 글 보고 갑자기 괜히 고맙고 기쁩니다. 젊은 사람들과 새로운 교류 많이 하시고 언제 남는 시간 있으시면 저 같은 늙은이에게도 한 번 식사할 수 있는 기회도 주시길 ㅎㅎㅎ. 옆동네 오클랜드에 삽니다.

  8. 1. 나라가 부유해질 수록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심화되니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생 살아갈 희망과 정신줄을 함께 놓아버리는 사람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2. 땅덩이가 넓고 인구가 많으니 정신줄 놓은 사람도 상대적으로 많을 수 밖에…

    그 스파게티 정말로 우재씨가 만든거 맞아요?? 진짜진짜?? 우와!!! 맛있어보여요!! 해산물오 가득하네요~ 우와~ (나보다 낫네요 ㅋㅋ)

    나중에 여유 좀 생기면 휴대용 플러쉬 같은 애교있는 호신용 물건을 좀 마련해야 하는 동네인 듯 하네요.. 흠.
    아, 그리고 메일 확인 했어요? 메일 보냈는데…

  9. 세상에 김밥대신 스파게티라니…
    저렇게 2달만 먹으면 위가 못견뎌요
    저도 2달동안 핑거푸드만 먹다가 항복했는걸요

  10. 요리사 하셔도 되겠습니다. : )
    한번 전화를 드려봤는데, 역시나 그 번호는 더 이상 연결되지 않더군요.
    조만간 목소리 한번 들려주시길..
    (이거 무슨 연애댓글 같네요. ㅡ.ㅡ )

  11. 대다수의 소위 ‘미국물’ 좀 먹었다는 사람들이
    ‘라스베가스에선 이런 일은 상상도 못할 일이야’
    라며 미국의 선진성을 찬양하고 한국의 후진성을 질타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님은 제가 처음으로 접하는
    미국을 까는 미국물 드신 분이네요…;;

  12. 아무래도 밀보다는 쌀을 위가 더 잘 견뎌내는 것 같습니다. 볶음밥 정도로 타협을 보시는게 좋겠죠.

  13. 허허. 노동에 대한 대가의 지급을 그처럼 무시하면서 겉으로 무슨 유행인양 스스로 좌파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요. 좌파라 하기엔 너무 겉멋만 들었네요. 당신과 같은 가짜 좌파 때문에 피해보는 진짜 노동자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당신 같은 인물이 자본가가 되면 가족 같은 회사 떠들면서 착취하고 정치한다면 민주주의를 위해 학생운동을 했다는 경력을 내세우면서 한나라당에 입당할 것으로 생각되네요. 당신 이름도 알고 작은 동네 SF에서 공부한다니 그 낯짝 한번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SOMA에 사는 것은 맞으니 기대하기를. 어디 얼굴 보면서 말하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보겠소. 말만 좌파 양반.

  14. 예전에 진화심리학 모임에서 한 번 뵌 적 있는데, 미국에 오셨군요. 이루시려는 바 열심히 공부하셔서 꼭 성취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정치인들에게 정기적으로 호르몬 투여하는 방안이 통과되기를 저도 빌겠습니다.(그 때 들은 말인데, 참~~ 기억에 남네요. ㅋㅋ) 그럼, 열심히 공부하세요. 종종 블로그 읽으러 오겠습니다.

  15. 기억납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 꼭 한번 나중에 뵙기되길 기대하겠습니다.

  16.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에 십년넘게 있으면서 SF엔 한번도 가보지 못했어요. 그냥 시골사람이 언제 서울 한번 가보나하고 동경하는 거랑 비슷합니다. 여기도 별거 아니다 라고 하실 지 모르지만, 이곳 아리조나 같은 곳(중서부, 남부도 마찬가지)에 사는 무지한 미국인들은 그곳이 리버럴들이 모여살고 맥주대신 와인을 마시는 못되먹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죠. 저에겐 미국의 보편적인 모습보다 고상한 유럽에 가까운 곳이겠구나 하는 상상을 불어일으키고…
    막상 가면 환상이 확 깨질까요?
    하시는 일 잘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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