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박의 유전학

정치적 성향이 생물학적이라는 기사를 본다. 언제부터인가 국내 기사를 통해 유입되는 BBC 뉴스의 과학관련 소식에 엄청난 회의를 느끼고 있다. 심지어 요즘엔 도대체 BBC에 나오는 과학관련 기사들 중 얼마나 제대로 된 것이 있을까라는 조사를 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기사들 중 정말 믿기 어렵고 자극적인 것들은 주로 심리학과 생물학에 걸쳐 있는 분야에서 나온다. 기사를 보고, 특히 마지막의 “진보, 보수, 우파 좌파 할 것 없이 용기와 배포를 갖고 넉넉하게 용서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다”는 웃기지도 않는 결론을 보고 나면 할말을 잃어버리게 되지만, 여하튼 해당기사를 원문으로 찾아들어가기도 귀찮고 해서 그냥 이 기사만 보고 생각해보기로 하자.

연구자들의 결론은 잘 놀라는 사람이 좀 더 보수적이라는 것이다. 이 결론이 정치적 성향이 보수적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려면 한 가지 가정이 필요하다. 이건 정말 멍청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잘 놀라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느냐는 것이 증명되어야만 정치적 성향이 생물학적이라는 결론이 뒷받침되는 것이다. 게다가 기사의 뉘앙스는 정치적 성향이 거의 유전적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생물학적이라는 것과 유전적이라는 것의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인간의 모든 활동엔 생물학적인 원인이 있다. 도대체 생물학적이지 않은 인간의 활동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따라서 환경이나 경험에 반대급부로 생물학적 기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무리 기자가 무식하다고 해도 ‘유전 대 환경’이라는 말은 들어보았을 것 아닌가. 아나..이 놈의 호기심은 참으로 질겨서 결국 기사 원문을 찾아들어갔다. 기사에서는 제대로 쓰여 있다. “It’s just that we have these very different physiological orientations. We’re not sure where they came from, they may be genetic…”. 그래 기사에는 제대로 박혀있다. 게다가 직역이라도 좀 하지, 이건 각색도 아니고 적어도 생리학적 기반이라고 썼다면 납득이 좀 가겠다.

여하튼 잘 놀라는 것이 유전적인가라고 말한다면 저자들도 인정하듯이 ‘잘 모른다’가 답이다. 물론 위험에 반응하는 민감도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들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유전자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역치가 존재하고, 특히 환경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런 유전자가 한 둘인 것도 아니며 대부분의 경우 리던던트한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유전학에서도 QTL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모든 것을 유전으로 돌리는 것을 꺼리는데, 많이 놀라는 사람들이 보수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만으로 이것이 유전적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참으로 우습다.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어릴 때 크게 놀라면 그걸 평생 지고 가기도 한다. 그런 기억까지도 유전적이라면 할 말 없다.


게다가 정치적 성향이 유전적이라면 첫째, 보수와 진보 모두 유전의 피해자로 전락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동시에 둘째, 세상이 무지하게 재미 없어지는 파국이 벌어진다. 만약 이 연구가 계속되어서 심지어 진보유전자라는 것이 밝혀졌다 치자. 그들은 진보유전자 J의 강력한 발현 덕에 잘 놀라지 않는다. 보수적 성향을 지닌 이들은 진보유전자 J의 대립유전자인 Jb를 가지고 있어서 너무나 잘 놀란다. 게다가 Jb는 J에 대해 우성이라 세상에 진보보다 보수가 많은 이유가 너무나도 잘 설명이 되어 버린다. 게다가 이렇게 진보와 보수가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사회에서 정치적 성향은 숙명이다. 참 재미없는 세상이다.


유전적인 측면을 뒤로 하고 이 연구를 살펴보면 어느정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세상의 급작스런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가 더욱 많이 놀라는 것이 당연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진보가 별로 안놀라는 것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근데 난 왁 소리에 놀라는 이런 생리학적 기반보다는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조금 더 근본적인 생리학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공감’이라는 것이다. 내 보기에 분명 진보가 훨씬 이타적이며 보수가 좀 더 이기적이다. 이게 더 생물학적(?)이지 않나 싶다. 진보는 가끔 자기와 전혀 상관 없는 타인의 권리를 위해 희생하며, 보수는 언제나 자신과 관계된 영역에 집착한다. 이기성과 이타성. 이거 진화생물학의 영원한 주제 아니었나? 차라리 이런 식으로 접근했어야 옳은 것 아닌가 싶다. 게다가 오래 전에
거울상 뉴런 혹은 미러 뉴런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차라리 보수와 진보가 두뇌의 이 부위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좀 fMRI로 찍어봤으면 좋겠다. 만약 반응이 다르다면 (당연히 수구꼴통일 수록 반응이 없겠지) 이와 관련된 유전자를 찾는 방식으로 보수와 진보의 유전학적 원인을 뒤져보는 것이 낳을 듯 하다. 만약 그런게 있을 것 같고, 연구비가 된다면 말이다.


그나저나 명박은 참으로 뭔가에 잘 놀라고, 또 공감이라고는 없는 사람인 듯 하다. 아마도 촛불에 가장 놀란 사람은 명박인 것 같다. 언론을 장악하려는 시도부터 시도 중인 정책들은 그가 얼마나 놀랐었는지를 너무나 잘 보여준다. 반대로 그것은 명박이 얼마나 진한 꼴통보수인지를 반증해 준다(영국 연구진의 결론이 맞았으면 싶다 지금은). 또 도대체 피해자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아무리 변명을 해봐야 1%를 위한 세금 감면이면서, 또 정책적 우선순위로 쳐도 이런 난국에 별 필요도 없는 정책인 종부세 완화를 추진하는 그의 머리는 보수도 이런 보수가 없다. 명박을 잡아 대출이자 값을 돈이 없어 집을 팔고 또 파는 이들의 모습을 좀 보여주고 그 머리를 fMRI로 찍어보고 싶다. 미러 뉴런이 존재한다는 두뇌의 F5 부위, 명박의 그 부위는 차가운 푸른 빛일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10 thoughts on “명박의 유전학

  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미러 뉴런에 대한 부분은 저도 공감하고 있습니다.

    헌데, 경제학도로서 짚고 싶은 부분이 세 가지 있습니다. 김우재님의 글 내용을 반박하려는 것은 아니고, 언급하신 연구의 배경과 관련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적어둡니다.

    먼저 제가 언급하려는 개념은 위험 기피 성향입니다.

    1/2확률로 200원을 주거나 0원을 주는 도박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이 때, 도박의 기대값은 100원입니다. 100원을 확실하게 얻는 것과 기대값이 100원인 도박을 하는 것 사이의 선호를 기준으로 인간의 유형을 나눌 수 있습니다. 위험 선호/위험 중립/위험 기피 입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위험 기피이고, 위험 기피인 사람들을 도박에 참여시키기 위해서는, 도박의 기대값이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돈보다 커야 합니다. (cf.기대값이 낮은 도박에 계속 집착하는 인간은 위험 선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외가 아닙니다.) 이를 통해 “위험 기피 성향”을 정의할 수 있습니다.

    위험 기피 성향이 큰 사람은 결과가 불확실한 상황을 상대적으로 더 싫어합니다. 그래서 보수적일 수 있죠. 이 개념은 가난한 사람이 보수적인 경우를 잘 설명해줍니다.

    다음으로,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정보 집합의 차이일 수 있습니다. 의사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 고려하는 정보의 차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회의 구조나 빈곤 문제, 혹은 경영적 지식에 대해 정보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에 정치적 성향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끝으로, 기본적으로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이해관계의 문제입니다. 사회의 초기 분배 상태의 분포 함수를 W(i)라고 가정합시다. W(i)는 i번째 사람의 소득을 의미합니다. W(i)를 완만한 기울기로 만들려고(즉 좀더 평등하게) 하는 사람과 W(i)를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W(i)를 완만한 기울기로 만드는 것을 W'(i)라고 합시다. W가 W’로 변함에 따라 이득을 보는 사람이 있고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W-W’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이득을 보는 사람은 물론 W를 완만하게 만드는 것을 선호할 것이고, 피해를 보는 사람 중에서 선호하는 사람과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 갈릴 수 있습니다. 아마 이게 우재님이 말씀하신 이타성 문제와 관계가 있겠죠. 그러나 피해를 보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좀 난삽하게 적은 점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2. 제 답글을 읽어보니 읽기 쉽지 않게 난잡하게 쓰여져 있네요…

    쉽게 정리해서 쓰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제가 지적하고자 했던 점은, 진보와 보수의 차이에는 공감 능력 이외의 요인들이 많이 있고, 그 중에는 언급하신 연구가 설득력을 갖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위험 기피 성향과 “놀라는 것을 싫어하는 성향” 사이에는 상당한 유사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설명이 불충분한 것 같지만;;; 이만 줄이겠습니다.

  3. 줄줄이 맞는 말씀인데요 뭘. 다 이해했습니다. 문제는 기술하신 세가지 카테고리의 성향이 혹시나 모두 공감의 문제로 환원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고 있다는 겁니다. ㅋ

  4. 사이언스타임즈 김청한 입니다. 모투 기무라 관련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박사님 블로그를 발견하게 되었네요. 좋은 글들 잘 보고 갑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p.s 저와 성향이 비슷한 것 같아 반갑습니다.

  5. ㅋㅋ 답장 보냈습니다. 그나저나 제가 조금 공격적이긴 했지만 너무 겁이 많으신거 아니예요? ^^ 여하튼 인정~~!!

    긴지와 기무라에 대한 자료는 구글을 뒤지시면 예전에 제가 놀던 과학과 철학 사이트에 제가 써둔 글들과 자료들이 좀 있을 겁니다. 기무라는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긴지는 더더욱 그러하니까 자료 찾으시려면 외국사이트를 뒤지시는게 빠릅니다. JSTOR같은 곳에 많은 자료들이 있습니다. 구글북도 마찬가지.

  6. 읽고 갑니다. 발기자들이 원문 각색하는 것이야 하루이틀 있어온 일이 아닌데요 뭘-_-;;

  7. 외국에서 나왔다는 과학에 관련된 소식이 국내에서 전해지는 건 통 믿을 수가 없더군요. 언젠가부터…

    얼마 전에 음악 취향으로 분류한 사람의 성격이란 얼토당토 않은 논문을 기사로 써냈던데.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귀찮아서 원문을 찾아 볼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는 슬픈(?) 전설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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