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초파리의 생리통

두서 없이 써 내려간 글이 도대체 이렇게 관심을 받는 이유는 다음 블로거 뉴스의 편집자께서 친히 글을 읽으시고는 ‘초파리는 어떻게 처녀를 고르’냐며 도발적인 화두를 던져 주었기 때문인 듯 하다. 두서 없이 쓴 글이라 책임도 따르고 그럼 본격적으로 조금 자세하고도 학구적으로 초파리 유전학의 기본적인 기법들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균형 염색체, 밸런서


처녀를 고르는 법을 알기 전에 우선 생물학을 전공한 나조차도 몰랐던 초파리 유전학의 놀라운 도구를 소개해야만 할 것 같다. ‘균형 염색체(Balancer, 그냥 밸런서라고 부르겠다)’라고 불리는 것이다. 처음에 나도 밸런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는데, Fly Pushing이라는 책을 바로 읽으면서 이 엄청난 도구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밸런서란 염색체의 재조합을 막는 도구다. 모간의 제자이자 위대한 유전학자 중 한명인 뮬러에 의해 1918년 처음으로 도입된 밸런서는 하나의 염색체에 여러 개의 역위(Multiple inversion)이 일어난 염색체를 말한다. 수많은 역위로 인해 밸런서 염색체는 정상적인 염색체와 재조합을 할 수 없고, 이 말은 결국 성세포의 감수분열 과정에서 역위가 일어난 부분에서는 염색체 재조합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도대체 이게 왜 좋은가 하면, 이 밸런서의 존재가 초파리 유전학을 다른 모델 동물들의 유전학으로부터 완전히 차별지어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유도하고 싶다고 하자. 이 유전자를 없애도 별 문제가 없다면 밸런서 따위는 필요가 없다.쥐를 모델로 하는 경우 치사유전자는 성체를 연구하기가 매우 까다롭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이유다. 하지만 초파리는 치사유전자를 가진 계보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밸런서를 이용하면 된다. 가장 최신 버젼의 밸런서들은 염색체의 대부분을 커버하기 때문에, 어떤 유전자의 돌연변이라도 밸런서 염색체가 커버하는 염색체 부위에 위치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치사유전자 돌연변이를 지닌 계대를 잡종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한쪽 염색체는 밸런서, 한쪽은 치사유전자면 초파리가 계속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어떤 돌연변이던 안정적인 라인을 유지하는 것이 초파리에서는 가능하다.


게다가 밸런서 안에는 우리가 쉽게 밸런서의 존재를 알 수 있게 하는 열성치사 유전자들이 들어 있다. 예를 들어 날개가 꼬부라진 Curly라는 유전자가 2번 염색체의 밸런서에 들어 있고, 털이 짧은 stubble은 3번 염색체 밸런서인 TM3에 들어 있다. 밸런서도 커버하는 염색체 부위에 따라 종류가 많은데, 1번이자 성염색체의 밸런서는 FM(First Multiple Inversion) 시리즈, 2번 염색체는 SM 시리즈, 3번은 TM 시리즈 이렇다. 4번 염색체도 있는데 크기가 매우 작아서 거의 재조합이 일어나지 않으면 중요한 유전자도 별로 없단다. 게다가 나중에 설명할 테지만, 밸런서에 존재하는 마커들이 열성치사라는 점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교미후에 밸런서 염색체만 쌍으로 가진 애들은 태어나지 못하고 죽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돌연변이 유전자 만을 가진 애들을 고를 확률이 두배로 는다. 멘델의 분리 법칙을 잘 생각해 보시길…


재조합이 없으므로 언제나 라인은 내가 원하는 그대로다. 게다가 밸런서가 있으면 내가 임의로 집어 넣은 형질전환 초파리의 어떤 염색체에 내 유전자가 들어갔는지도 알 수 있다. 이건 눈색깔을 마커로 따라가면 되는데 관심 있는 분은
이 오묘한 초파리 유전학의 세계로 빠져들어 보시길 바란다. 자, 이제 필요한 것은 필요할 때 필요한 계대들을 서로 교배시키는 일 뿐이다.

왜 처녀여야 하는가


간단하다. 초파리는 한번 교미를 하고 저장된 수컷의 정자를 이용해 알을 낳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 저장된 정자의 양이 많아서 평생 한 번 정도만 교미를 해도 다시 교미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만약 우리가 처녀를 고르는 데 실패하게 되면, 무려 10일 후에야 우리가 원하지도 않는 계대의 수컷 정자를 지닌 암컷으로부터 원하지도 않는 자손들이 쏟아져 나오는 사태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유전학의 기본은 언제나 메이팅, 혹은 교미이므로 어떤 계대를 어떤 계대와 교미시킬 것이고, 또 교미후 이들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가 정말 중요하게 된다. 처녀를 고르는 일은 따라서 원하는 계대를 만들고자 할 때 매우매우 중요하면서도 크리티컬한 그런 작업이 된다. 그래서 처녀를 고를 땐 게으름은 죽음이다. 알에서 깨어 난 처녀는 겨우 12시간 동안만 쳐녀인 채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수컷들이 가만 두질 않는다고 한다. 또 재미있게도 암컷의 뱃속에 정자가 존재하는 동안에 암컷은 수컷을 거부하는데 이게 재미있다. 우리 랩에서 이와 관련된 연구가 조만간 출판되는데 관심 있으신 분들은 초파리의 구애와 교미행동에 대해 공부해보시길 권한다. 정말 재미있다.



여하튼 이렇게 처녀를 골라 교미를 시키고 10일이 지나면 알에서 깨어 나온 애벌레들이 번데기가 되고 초파리로 깨어 난다. 멘델의 법칙이 이제부터 적용된다. 중요한 것은 밸런서 때문에 멘델이 했던 완두콩처럼 P에서 나온 F1을 F1끼리 교배시키고 또 나온 F2에서 분리법칙을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위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밸런서의 존재 덕분에 밸런서가 없는 애들만 골라내면 된다. 이미 밸런서 호모는 죽었을 것이므로 밸런서의 마커가 없는 애들은 우리가 원하는 유전자를 지닌 애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결국 마커를 구분하는 것만 잘 익히면 절대 우리가 원하는 계대를 놓칠 이유가 없다.


동정녀 초파리: 초파리 매직


처음에 공부를 하다가 초파리 처녀도 알을 낳는다(많이는 아니지만 낳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게 재미있는데, 처녀가 낳은 알은 수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화되지는 않지만 도대체 얘네들이 왜 알을 낳느냐는 것이다.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았는데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일종의 생리다. 여성이 생리하듯이 초파리의 암컷도 계속해서 발달하는 알들을 어쩔 수 없이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결국 초파리도 생리통이 있고 생리를 한다는 것이다.

자 그러니까 초파리 처녀들을 잔뜩 모아놓고 배지에 알이 좀 생겼다고 무서워 할 필요는 없다. 한 4~5일 후에 배지를 봤을 때 애벌레가 기어다니지만 않는다면 처녀를 아주 잘 고른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게으르지만 않다면 절대 처녀를 놓칠 이유는 없다. 간혹 수컷을 한마리 넣어버리면 난리가 난다는 것만 명심하면 된다. 그러니까 암컷인데 좀 오래된 것 같은애, 그리고 수컷인지 암컷인지 헷갈리는 애들은 과감히 버리면 된다. 양보다 질이다.

해밀턴에 의해 발견된 친족선택 이론은 개미를 비롯한 진사회성 곤충들의 사회가 성립될 수 있는, 즉 핵심은 암컷인 일개미가 알을 낳지 않고 자매들을 돌보는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다. 수컷이 염색체 한벌로도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하다. 처녀가 알을 낳는 초파리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해봤다. 초파리의 수정되지 않은 알이 처녀생식에 의해 부화할 수 있고, 그 부화된 알이 수컷이 된다면 초파리도 개미와 같은 사회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황교주가 인간 난자로도 처녀생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자기가 한 것은 아니지만) 증명했다는데 나도 처녀들이 나은 알을 모아 전기충격이나 좀 줘볼까(시간 날때) 생각중이다. 이러다가 무서운 초파리 집단이 탄생해서 인류가 멸망하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여하튼 이 이야기와는 별도로 초파리 수컷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성에 관한 논문이 최근 Current BIology라는 저널에 실렸다. 수컷들을 모아놓으면 혼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페로몬을 내고 자주 교미를 하던가 뭐 그렇다. 백투백으로 두개의 논문이 같은 랩에서 동시에 출판되었는데 초파리 가지고 사회성 실험을 할 수도 있을 듯 하다. 물론 자연에서 초파리는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사는 곤충이지만.. 실험실에서는 사회적으로 살아야 한다. 여하튼 그렇다.

이정도가 처녀와 관련된 초파리 이야기이고, 이젠 우리가 원하는 유전자를 초파리에 집어 넣기 위해 수행하는 Injection(주입)과 관련된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요즘 엄청나게 인젝션을 하고 있는데 익숙해지느라 고생좀 했기에.. 그리고 여기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11 Comments

  1. 개미도 결혼비행을 마치면 더이상 정자가 필요하지 않은걸로 아는데 사실인가요? 초파리는 개미랑 비슷할것 같기도… 그런데 초파리의 정자나 개미의 정자나 수명이 무한대인가요 하니면 사람의 정자처럼 일정한 수명이 있나요? (일정 조건에서만 살아나는 바이러스같은건가..)

  2. 역시 이런 글은 인기가 없군요…다음이라..다음이라..ㅋ 초파리나 여왕개미나 정자를 보관하는 낭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정자가 잘 보관됩니다. 냉장고 같다고 하면 되겠네요.

  3. 인기없는 글이라 해도 제겐 정말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연구좀 해봐야겠네요. 앞으로 이런글 많이 써주세요~

  4. 인기는 없을지 몰라도 재미있는데요
    다음 글이 기다려져요 🙂

  5. 하하..하…하하… 일반인(과학자가 아닌)의 관점에서 보면 말이죠…
    생소하지만 독특하고, 이 뭥미?스럽다가도 재미나는…
    경이로운 유전자공학의 세계여~~라는 말이 절로… 쿨럭쿨럭

  6. 생명과학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7. 아이고 ~~~ 바탕화면이 시커매서….. 저 같이 나이 먹은 사람들은 당췌 읽기
    너무너무 어려워서 서너줄 읽다가 포기 했습니다.
    혹시…… 밝게 해보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좋은 정보 그냥 흘려보내기 너무 아까워서요…..

    Waltonia Dr, Montrose, CA 에서 썼습니다.

  8. 안그래도 그런 걱정이 들었는데….이런. 노력해보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ㅜㅡ. 저는 블랙이 좋은데…흑

  9. 으아 죄송합니다. 당분간은 이 스킨을 유지해야할 성 싶습니다. 도무지 흰색은 제가 눈이 아파서.. ㅜㅡ,

  10. 아이고, 겨우겨우 스킨을 수정했습니다. 노안이시라니 어쩔수가 없..메일로도 알려드려야겠군요.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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