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세종이 명박과 다른 이유는

최근엔 틈틈히 시간이 날때마다 KBS에서 방영했던 역사다큐 ‘한국사전’과 방영중인 ‘역사추적’을 즐겨본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과학사를 다룰 때에는 ‘그 시대의 시점으로 역사를 본다’는 인식에 충실한 나는 이 모순되어 보이는 두 어구가 상충하지 않고 어울릴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사실과 가치에 관한 간단한 소고와 상황윤리와 시대정신이라는 화두, 그리고 중용과 급진이라는 말들도 내게는 모두 한데 어우러져 한판 놀아볼 수 있는 짝들이다. 자세한 논의는 그냥 두뇌속에 묻어두련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최근의 나의 두뇌엔 포도당이 모자른 형편이고 몸은 지쳐 두뇌를 보좌하지 못하니까.

세종에 관한 다큐를 보고 있다. 그가 진정 위대한 것은, 그의 재위 초기 10년동안 언제나 가뭄이 들었음에도 그가 성군 소리를 들었다는 점이다. 중농정책을 시행하면서 스스로 초가에 살 줄 알았고, 기술을 발전시킴으로서 무에서도 유가 창조될 수 있음을 보여준 그는 진정한 성군이다. 개인적 윤리와 기술에 대한 이해와 백성에 대한 사랑이 이처럼 잘 어우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백성들의 문제는 ‘밥’이다. ‘웰컴투 동막골’에서 촌장이 했던 말은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잘 먹이는 것이 잘 다스리는 길이다. 뭐 지금이야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문제가 아니라 상대적 빈곤감이라는 복잡한 문제가 등장하긴 했으나 여전히 문제는 밥이다. ‘얼마나 많은 백성들을 굶기지 않는가’, 그것이 한 국가를 이끄는 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견지해야 하는 올곳은 단 하나의 진리다. 명박은, 지금까지의 정책을 보아서 우리의 명박은 1/5도 그렇지 않다. 나는 그가 추진하는 모든 국책사업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어느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그것만으로 다시 중산층이 살아나지 않는다는데에 있다. 나는 경제전문가는 아니나 적어도 통계학과 복잡계의 기본적인 원리만으로도 중산층이 중요한 이유를 설명해 낼 수 있다. 언제나 벨커브가 파워로로 기울어지면 기울어질 수록, 시스템의 붕괴가능성은 높아진다. 하나의 허브가 모든 접점을 장악한다면 랜덤한 공격에 취약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나의 이상은 벨커브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적당한 규모의 여러 허브 정도로 점철된다. 뭐 어쨌든 명박의 정책에서 나는 그가 말하는 ‘서민’을 허울로 밖에 느낄수가 없다. 그의 정책들은 장기적으로 모조리 양극화를 초래하는 것들 뿐이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그의 저책들이 단기적으로는 서민을 위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정말 말그대로 단기적인 것이다.

세종은 다르다. 그는 백성의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한 것을 넘어-그것만으로도 성군이라 칭송할 만 한데- 언문으로 백성위 지위를 평준화시키고자 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명박의 말대로 ‘돈 없어서 대학 못가는’사태가 없도록 장기적인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도대체 명박의 정책중 무엇이 강남 부자들의 자제들이 일류대학에 들어가고 다시 그들이 의사 변호사가 되며, 학력사회라는 웃기지도 않는 국가적 시스템에 종속된 채 부자가 되물림되고 가난이 되물림되는 망국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란 말인가? 고교 등급제를 추진해서 경쟁을 부추기면 엘리트들이 등장해서 하나의 천재가 천만을 먹여살린단 말인가? 그런 극단적 양극화로 인해 국가는 망한 이후에? 누누히 말하지만 지휘자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 모든 제국과 국가의 말로에는 경제적/사회적 양극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18세기 세계를 호령하던 중국도, 로마도, 그 이외의 모든 제국도 왕실의 다툼이나 기타 다른 이유를 아무리 가져다 붙힌들 기본적으로 부패한 양극화로부터 붕괴가 시작된 것이다. 건강한 중산층이 사회를 견제하지 않는다면 지배층은 부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번에 물러나는 어청수나 강만수는 새발의 피다. 정말 우리가 쫒아내야 하는 것은 공정택이다.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것이다.

명박에게 추천하고 싶은 다큐다. 역사공부좀 해라. 그리고 좀 욕심을 버리고 넓고 길게 봐라. 결국 남는 것은 운하나 치적 따위의 기념물이 아니라 그 지도자가 시대를 얼마나 잘 읽고 이해했으며 백성을 어여삐 여겼는지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역사적 평가가 왜곡되어도 언젠가 역사는 제자리를 찾는다. 명박이 위대해지는 길은 초가에 들어갔던 세종처럼 당장 그의 전재산을 그가 위한다는 서민을 위해 헌납하고, 기술을 통해 농업을 개량한 세종처럼 과거의 건설업의 영화에서 벗어나 경제구조를 재편하고, 한글을 창제한 세종처럼 서민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중산층을 다시금 부활시키는 일을 통해서일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50년 후의 역사는 그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멸국의 단초로 기억할 것이다.

세종 즉위 10년은 가뭄의 연속이었다. 세종은 이를 이겨내고 성군이 되었다 한다. 명박 집권 1년은 경제의 불황이었다. 명박은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세종을 벤치마킹하면 될 일이다. 내 아무리 명박이 미워도 그의 실정은 결국 서민의 불행일 것이므로 적절한 어드바이스로 마무리.

추신: 여전히 나의 혁명 계획은 진행되어야 한다. 조선사라는 거대한 흐름을 통해 보면 세종은 왕과 신하들 사이의 권력 투쟁의 장이었던 조선에서 최초로 가장 강한 왕권을 스스로는 피한 방울 뭍히지 않고 쟁취한 자이다. 다행인 것은 그의 심성과 윤리적 인식이 높았다는 것이고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강력한 왕권을 옳바른 방향으로 이끈 것이다. 하지만 신하들에 의한 견제는 훗날에는 비록 당쟁과 외척들에 의해 얼룩질지언정 초중반까지는 매우 긍정적으로 왕권의 부패를 견제하는 힘이었다. 세종 이후 조선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영정조가 등장하지만 이들 역시 강력한 왕권을 가진 성군이라는 이미지 뒤에는 이후 조선이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공통분모가 서려 있다. 따라서 명박이 성군이 되어도 망군이 되어도 나의 혁명의 전제조건은 마련된다….라는 그런 위안을 삼고 있다. 참 할 짓 없다.

 

  1. ㅎㅎㅎㅎㅎ 재밌다 이분. 사적유물론에 비춰보자면 지금의 자본주의는 사회적 생산관계의 모순이 매우 심화되고 있습니다만 혁명의 조건에 조응 할 만큼은 아닌 것 같네요. 하지만 모르죠. 세상일이란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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