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게르트 기거렌쩌(Gerd Gigerenzer) 책 번역!

이런 말도 안되는…기거렌쩌 책이 번역되었는데도 모르고 있었는데다가, 뭔가 제목이 이래? <생각이 직관에 묻다 – 논리의 허를 찌르는 직관의 심리학> 라니..

기거렌쩌는 제한된 합리성 개념을 정교화한 학자 중 한명이고 진화심리학에서 논의되는 비합리성 개념보다 훨씬 정교하고 실제적이며 구체적인 증거들을 발견한 과학자인데 ‘직관’이라니? Unconscious의 번역이 직관인가? 지각이 없는 상태, 즉 진화적으로 다듬어져 온 우리의 두뇌적 제한으로 인해 벌어지는 의사결정에 대한 이야기들이 기거렌쩌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인데 이게 뭥미? 여하튼 기게렌쩌의 책들 중 처음으로 국내에 번역되는 책인만큼 많은 분들이 사서 읽으셨으면 한다. 더불어 언제나 번역이 이런 식이지만, 학자의 가장 중요한 책은 번역을 미루고 짤막한 책들이나 대중서만 번역하는 행태들도 좀 사라지길… <Bounded Rationality: The Adaptive Toolbox)>가 가장 먼저 번역되어야 할 책이 아닐가 한다는..

19 Comments

  1. 원서 제목은 ‘Gut Feelings'(직관) 입니다. 사두긴 했는데 아직 읽지는 못했네요.

  2. 직관보다는 ‘직감’같은 걸 의도한 제목 아닐까요? 위에서 느끼는 것. 직관은 뭔가 예술적/문학적 의미를 주는데 기거렌쩌의 의도는 그런게 아니거든요.

  3. 인문학으로 과학 좀 그만 읽으시고 그냥 과학을 읽으세요들…

  4. 그 사이트의 상군서 부분을 확인해 보니 영문 번역문이 함께 실려 있네요. 그리 길다고는 못하는 분량이니 짬내서 읽으시면 될 겁니다.

  5. 번역판을 읽었던 사람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직관이라길래 합리나 논리에 반대가 되는 것인가 보았는데, 읽어가다 보니 기거렌쩌 이 사람이 말하는 feeling은 흔히 떠올리는 ‘직관’과 확연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heuristic’이라는 말과 연결지어 볼 때 말이죠.

    주인장님이 소개하시는 책의 제목 “bounded rationality”를 보니 “gut feeling”을 직관이나 느낌이라는 말로 옮기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지는군요. “bounded rationality”가 기거렌쩌의 주저인지요?

    저보고 번역하라면 feeling을 ‘짐작하기’나 ‘가늠하기’로 옮겼을 겁니다. 이 책의 원 제목의 단어인 “gut”은 ‘대범한’ 혹은 ‘주저없는’으로 옮겨주고요. 따라서 “gut feeling”은 ‘주저없이 가늠하기’ 정도가 되겠지요.

    그러고보니 번역서 제목을 이렇게 붙여주었다면, 지은이가 대중에게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훨씬 또렸해졌을텐데요. 고생한 번역자에게는 미안한 말일지는 몰라도 이 책을 읽은 사람으로써 안타깝습니다.

  6. ??? 이걸 왜 직감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직감(直感)과 직관(直觀)은 자주 혼동되거나 섞어서 쓰기도 하지만 둘이 나란히 등장할 때는 아주 다르게 봐야죠. 이 책은 어떤 상황에 대한 직접적 반응 내지는 앎의 감각적 형태로 나타나는 직감에 대해 말했다기 보다는 관(觀) 즉, 대상의 전체가 헤아림(이성)없이도 한순간에 파악되는 직관에 대해서 쓴 책이니 당연히 직관이 맞죠.

    그리고 제 위(?)에 댓글다신 분은 gut feeling이 사실상 직관(Intuition)의 구어체적 표현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시는 듯 합니다. 뭐 이런 말 자체가 부정확할 수 있는 것을 염두해 두고서라도 말이죠.
    참고: http://en.wikipedia.org/wiki/Intuition_(knowledge)

    그리고 전 작곡을 하기 때문에 직관과 꽤 친숙한 편이죠. 게다가 작곡은 결과물이 논리적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는 작업이기 때문에 직관과 논리적 작업의 차이나 관련 문제를 항상 접합니다. 그냥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읽지도 않았지만 직관에 의해서 통합되지가 않으면 그 결과물인 음악은 참 듣기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음악은 악보에서 보여주는 그럴싸한 논리로 속일 수가 없습니다. 청취자들 자체가 직관을 이용해서 전체를 파악하기 때문에 아주 미세한 어떤 실수조차도 처음엔 모르지만 몇 번 반복되면 끔찍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직관에 의해 통합된 상태에서의 작품의 논리는 그 자체가 직관적으로 매우 완벽하고, ‘아름답다’고 느끼게 만들죠. 아마도 아름다움은 어떤 균형이나 완벽성에 대한 직관적 통찰일 것입니다. 이런 것은 이런 통합적 작업을 해 본 사람이 아니면 그 과정에 대한 통찰이 없어서 쉽지 않을 수도 있겠군요.

    사실 논리는 매우 느립니다. 예술가들은(진짜 글쟁이 역시 포함) 그래서 직관에 의해 바로 파악해 버리는 문제를 학문하는 사람들은 볼 수 있는 눈이 있어도 그걸 가리고 더듬어 나가야 되죠. 어떤 사람은 그렇게 하는데, 그건 참 존경할 만한 일이지만 인생이 짧다 느끼고 좀 에고이스트들인 부류의 사람들은 그냥 창조하러 가게 되는 것입니다.

  7. 작곡가 한분이 열심히 관심을 가져 주시는데 답변을 할 틈이 없네요. 시간 내서 주신 질문들에 성실히 답해 보겠습니다. 총총

  8. 우재님의 반쯤은 사적인 공간에 마구 어질러서 죄송합니다 ^^

    그만큼 재미있게 하는 부분들이 많다고 보아주시면 되겠습니다. 종종 들르겠습니다. 물론 제대로 된 블로그 링크를 가지고…. 그런데 시간이 너무 없어서 언제 시작할지는 바로 장담은 못드리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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