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도대체 언제까지 인문학 수입국으로 남을 것인가?

시간이 날때마다 알라딘을 뒤적거리고 있다. 어차피 내가 인문학 전공자도 아니니 이런 이야기 해서 욕먹을 일 외에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할 말은 좀 해야겠다.

아무리 대한민국의 인문학이 독자적인 학문의 꽃을 피워 본 역사가 없다고 해도, 조선의 유교는 나름대로 주자학의 비판적 수용이었다.
정도전은 유교를 강력한 정치철학으로 꽃피웠고 중기 이래 많은 학자들은 비록 사대의 그늘 아래 있었으나 후기에 이르면 많은
학자들이 주체적 학문의 열매를 맺는다.

역사야 보기 나름일테다. 어쩌면 이 땅의 인문학의 역사는 수입의 역사라 해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원조 논쟁을
벌이기 시작하면 원조 학문이라는 순수성은 찾을 래야 찾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 뉴턴에 영향을 받은 프랑스 철학은 무엇이고
데카르트에 영향을 받은 칸트는 무엇이고 독일 철학과 프랑스 영국 철학의 원조는 누구인가? 그리스? 그럼 그리스는 그럼 순수한가?

어차피 이처럼 순수성 논쟁에서 자유로운 학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취해야 할것은 학문의 상황적 변용일 뿐이다. 이 말은 비록
우리가 서양의 고전 사상이나 철학의 원전들을 수입한 역사가 있고 이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해도, 최신 서양 인문학 따위를
수입할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내가 아는바 인문학이란 학 국가의 문화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며 한 국가 혹은 민족의
정체성에서 벗어난 인문학은 이미 죽은 학문이다. 따라서 내가 보기에 대한민국 인문학의 죽음은 기본적인 관심의 부족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지만 이미 그 속에서는 학문식민지를 자처할 때부터 죽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신채호를 비롯한 조선후기 개화기의 지식인들이 사회진화론을 수용한 것은, 제국주의의 바탕이 된 그 사상을 알고 시대를
이해하고 변혁해보려는 의도였다. 사회진화론의 수입에는 타당한 시대적 요청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일제를 거쳐 전후 몇십년간
진행된 서구 인문학의 수입도, 르네상스라는 인문학의 부흥기에 이슬람의 원전들이 번역된 역사를 생각해 본다면 견딜만 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부흥의 시기에는 충실한 번역이 이루어졌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도 저도 아닌 식의 번역으로 우리네 선조들의 사상조차
제대로 번역되지 않았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편협한 번역이 이루어졌다는 것도 문제다. 아무리 이 땅에 과학의
기본이 없다 해도 칸트를 번역하면서 죄다 실천이성에만 매달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초기저작인 오르가논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플라톤은 신났다고 번역해 대는 이 사태는 뭔가 잘못된 것이다. 아 뭐 어쨌든 번역의 시기였으니 그렇다고 해두자.

문제는 어느 정도 서구의 핵심 사상을 익혔으면 이제 우리의 인문학을 해도 될 터인데 여전히 이 땅의 인문학을 만드려는 시도는 없고
누가 더 최신의 인문하을 점거하는가 하는 데에만 매달리는 인문학자들이다. 맑스의 수입은 시대적 요청이었으니 그렇다 치자. 맑스를
대충 말기로 치면 이전의 학자들인 칸트-헤겔-니체 뭐 기타 등등의 서구의 원류 사상의 수입은 참을만 하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어느 땅에서 시작되었는지 몰라도 포스트모던의 열풍은 그렇다 치고, 데리다, 자깡, 네그리 어쩌구를 넘어 이제는 아예 데리다 이후
프랑스 최고의 철학자라는 소개말을 앞세워 발터 벤야민에 뭐…도대체 셀 수가 없다. 원래 이런건가? 아니면 우리나라만
이런건가? 가라타니 고진 같은 학자는 그래도 맑스와 칸트에 대한 비판적 독해로 동양에서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존재가된것 같은데
고진까지 수입을 하고 신봉하면 그게 고진에게서 무언가를 배우는 길인가? 아니면 고진 같은 학자가 등장할 분위기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가?
정치는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고, 인문학은 프랑스에 대한 사대주의라고 하면 반박할 말이라도 있는가?


과학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고 과학사나 과학철학은 다른가? 카르납부터 포퍼까지 좌악 일별하고 나면 국내 학자들에게 배울게
있는가? 하나도 없다. 이 바닥은 국내 인문학 바닥보다 더욱 신민성이 심각하다. 게다가 과학사라면서 주체적 학문을 하겠다고
조선에서 과학사를 운운하는 작태는 정말 꼴도 보기 싫다. 조선에 뭐가 있다면 그게 기술사지 과학사인가? 그걸 굳이 과학사로
둔갑시키면 청소년들이 애국심이라도 갖는다던가?


장담하는데 이 땅에서 고진 같은 학자가 나오면 장을 지진다. 젊은 학생들에게서 희망을 좀 볼 수 있으면 나을테지만 데리다 자깡,
네그리에 미쳐 돌아가는 젊은 인문학자들 사이에서 고진이 나올리가 없다. 인문학은 좀 위기여도 된다. 아니 좀 죽어봐야 된다.

뭐 어차피 최한기 같은 학자는 생전에 빛을 볼래야 볼 수 없었던 땅이다.

24 Comments

  1. 워낙 자생 풍토가 없어서
    저야 어느 분야 전문가가 아니지만
    쉽게 독창적인 분야와 학자가 없으리라 예측하긴 쉬운일일지도 모르지요.

    요새 <한국의 글쟁이들> 이란 책을 보고 있는데
    열심히 연구하고 책을 쓰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적지만 희망을 품어봅니다.

  2. 간단히 생각해 보면, 문제를 중심에 놓고, 학자들의 이름은 태도를 나타내는 구별 기호 정도로 취급하는 태도가 아직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성사적으로는 성인이라는 개념과 도통설의 폐해가 아닐까 싶군요.

  3. 자생풍토? 구별기호? 이같은 말이 무슨 소용있나요? 차라리 좋은 책 나오면 공동 구매합시다.

    저는 좋은 책을 볼 안목이 없어 고수의 리뷰를 참고하여 책을 한-두권씩 사주는 운동을 해주면 되지않을까요?

    공동구매 – 이거 괜찮네. 물론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야겠지만..

  4. 좋은 번역이 더 잘 이뤄져야 하는 부분도 있고, 자기 목소리를 좀 내면 좋은 부분도 있으니 두 가지 목적을 모두 이루기 위해서는 번역서와 한국 학자의 이론서 부분을 따로 정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언급된 오르가논의 경우 첫 부분인 <범주론, 명제론> 김진성 번역판이 열라 고전중(일 껍)니다. <형이상학> 김진성판은 4만 3천원으로 열라 비싸니 범주론, 명제론(아마 만 8천원일껍니다)부터 좀 팔아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5. 인문학자 나름의 항변도 있을꺼에요

  6. 범주론과 명제론 읽으면 살아가는데 어떤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요? 단순히 지식 넓히기 위해 읽는 것이라면 읽을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고전이라는 빌미로 읽었다간 개념나부랭이나 씨부리게 되지 않을까요?

  7. 그렇다면 스스로 좋은 책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부터 정확히 정리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명제론 범주론의 경우에는 우선 본문에 언급이 되어서 말을 꺼낸 것입니다만, 이 책을 보면 철학에서 사용하는 여러 기본적인 개념들이 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런 성격을 지닌 책이 철학 공부를 하는데 좋은 책이라고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것들입니다(특징 1. 관련 논의가 전통적으로 중요한 논의로 취급되어 왔다. 특징 2. 그것이 해석자를 최대한 덜 거치고 저자에게서 내게로 온 것이다). 그 외에는 읽는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 분인지 알지 못하여 일반적인 답 이상을 드릴 수는 없군요.

  8. 빡시게/ 말 가려서 하세요. 오르가논이 뭔줄은 알고 이야기하시는 건지요. 지식쌓기? 그럼 자기계발서랑 부자되기 책들이나 읽으시지 여긴 왜오시나요? 이곳 블로그 검색창에 ‘오르가논’이라고 쳐보시길. 한번 언급한 적이 있으니…장난한..

  9.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AEIO라는 대당삼각형이 중요해요?

    예를들어 모든 사람이 옷을 벗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다 벗은거 아닌가요?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당관계를 끄집어오면 일부만 벗은거죠? 맞죠?

    오르가논의 중요성을 아시는 분들은 인도-유럽어 족과 알타이어족 간의 위같은 사고 방식의 차이를 설명해주시길…이같은 고민이나 해봤어요? 즉, 오르가논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자들은 제가 볼땐 억지로 즐기는척!! 억지로 중요한 척 하는걸로 보일뿐!!

    전 몰라서…돈 잘버는 법이나 읽으러 가야되겠군요.

  10. 그걸 알게됐으니 오르가논이 중요한거죠. 그럼 고전을 현대에 맞춰 해석하자면 부족하지 않은 책이 있나? 고전의 의미가 뭔지부터 좀 숙고해보시길…말하는 투는 아주 대철학자시네..헐..

  11. 위 댓글에서 비밀번호 입력할때 오타낫나봐요 ㅡㅡ; 수정이 안되서… ‘모든 사람들은 옷을 다 벗었다의 부정은 상식적으로 옷을 다 입었다인데 오르가논에 의하면 일부만 입었다라고 해석해야함’이라고 수정하겠습니다. 대당사각형인지 삼각형인지..아무튼 좆나 억지스럽다는 겁니다. 그게 왜 기초가 되야되는 이유도 모르겠고… 논의? 고전? 철학????

    최소한 고전 논리의 양화사랑 현대 논리의 양화사를 비교하면서 오르가논을 강조해야되는거 아닌가요?

    해석의 최소 단계를 거쳤다??? 왠 경전 숭배?

  12. 그리고 그렇게 잘났으면 이런데서 댓글놀이하지 말고 블로그 하나 만들고 글이나 좀 써서 보여주던가..댓글놀이가 그리 재미있수?

  13. 남의 블로그라는 명분을 꺼낼줄이야. 이러면 할말없죠. 권력 쥔자가 권력을 휘두르는데…. 권력없는 놈은 응당 가야죠.

    안녕히계세요.

  14. 싸우시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좋은 책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견을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소개된대로 오르가논이 부족한 면이 있는 책이라 해도 이를 통해 좋은 책을 규정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싸우시려는 의도라면 현피뜨는게 더 나을 것입니다.

  15. 저는 왕님처럼 님 껴안고 놀만큼 자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빡시게라는 아이디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다 알고 지껄이는 거니까 이해하시고 그럼 안녕히~~~어느곳에서하 행복하게 ^^

  16. 밀의 <정치경제학 원리>도 번역이 안된 모양…그러게들..신나게 <자유론>이나 읽으세요들..

  17. 홉슨도 마찬가지..<제국주의론>은 두어번 번역이 있었나본데..산업생리학이 그의 학자적인 면모를 나타내는 초기작이라면 이 책이 번역되어 있어야 하는게 정상이다..

  18. 드물게나마, 진짜 인문학자가 보이기는 합니다만, 일부러 찾기도 힘들고, 말 그대로 연이 되야 접할수 있는 듯 합니다.
    “이공계 위기”라는 말이 나온 원인으로 인문학의 부재를 생각하고 있는 터라 크게 공감되는 글이네요.

  19. 뭐 복잡할 것도 없네요. 인문학 시장이 존재를 안하는데 인문학이 자생할 수 있나요? 다른 분야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국경’을 상정하는 한 말이죠. 예컨대 작곡계의 윤이상같은 존재는 독일에서니까 가능했던거지(백남준도 완전히 동일) 한국 ‘내’에서는 불가능하죠. 물론 한국에 살면서도 혼자 굶으며 아무도 모르게 역사적인 저작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죠. 학자란 그런 것이니까. 하지만 언제나 그렇지만 시대나 공간이 만들어내는 환경이란 생각 이상으로 중요할 때가 많은 법이죠. 제자백가나 르네상스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요. 한국이란 공간은 용기를 북돋기 보다는 좌절시키는데 더 유용한 듯합니다.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마도 무관심일 것입니다. 한국 사회의 패러다임은 여전히 생존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원시생명체적 관심사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이것에서 쉽게 떨어져서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설사 고등생명체라도). 제법 생각머리가 있어보이는 사람들 조차도 제가 한참 외국에 머물며 좀 민감해진 문화식별지로 분별해 보자면 금새 한국인의 그 사고방식과 그 태도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때가 많은 듯 합니다.

    그게 결정적인 문제는 아닐지라도 그런 태도들이 서로 피드백되고 서로 강화해 나가면서 특유의 한국적 현상들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제가 있는 곳에서는 그렇게들 발랄하던 사람들이 같은 한국인을 만나면 이웃임에도 인사 한 번 안(못) 하는 한국인들로 금새 돌아가 버리죠.

    다행히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20. 헉… 그랬나요? 당연히 번역되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유론>, <공리주의>는 너도나도 번역하려고 하는 판에…
    유행 따라가는 번역 풍토는 쉽게 변하지 않는 모양이네요.
    프랑크, 만델, 뮈르달 같이 예전엔 많이 번역 되었던 경우도 오래전에 절판된 이후로는 나오질 않으니…
    심지어 슘페터도 더이상 안나오더군요. 알튀세도 90년대 중반에 잠깐 유행탔던게 전부고…
    그런 측면에서 보면 아직도 소련이나 동독판 서적들 번역하고 있는 중원문화사가 용자라는…

    이론적인 측면에서도 예전에 있었던 사구체 논쟁은 나름 독특했다고 생각하는데, 요새는 그쪽 바닥에서 놀던 사람도 들뢰즈, 보드리야르, 심지어 아감벤이나 쫓아가고 있으니…
    차라리 국내 맑스 경제학자들끼리 벌인 정보재 가치논쟁같은 경우가 더 생산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21. 지난 8월에 밀의 <정치경제학 원리> 번역본을 나남에서 출판했군요. 공교롭게도 번역자가 아는 분이라능.
    이제 남은건 스라파인가…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