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종교자본주의적 계급사회

이 글은 쓰레기다. 그냥 두는 것은 훗날 기억을 정비해 다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다. 작금의 사태를 바라보는 내 스탠스는 포카라님의 그것과 비슷하고, 이 개같은 현실로부터 나를 구원하고자 하는 실천의 방식도 포카라님의 바로 그것이다. 내가 장자까지 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 개좆같은 정권을 싸발리느니 책한권 글자하나라도 더 읽고 공부하며 칼을 갈고 말련다.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에 열불이 나면서도 어떻게든 희망을 보려했던 이 글이 이따위 결론이나 내는 것을 보고나니 나는 그냥 욕먹을지언정 책이나 읽고 그런 글이나 쓰며 잠시 세속을 등지련다. 쿨리, 생시몽, 크로포트킨, 신채호, 갤브레이스, 다니엘 벨, 맥루한 그리고 폴라니..내가 아니더라도 그런 고민을 했던 몽상가들은 지천에 널렸었던 것 같다. 그저 닥치고 RNA나 디비 팔 일이다.[footnote]그런 의미에서 다음 글에서는 지난번에 소개하려 했던 그 강적이나 소개하련다.[/footnote]


역사는 많은 것을 추상화 시켜 시대를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사실 그것은 경향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에 가깝다. 모든 역사적 사건이 역사로 기록될 수 없다는 데에서 비롯되는 사태이거나, ‘모든 역사란 현대사’라는 명제 속으로 포섭되는 역사학의 필연일지 모른다.

따라서 50년 후의 역사가가 우리가 사는 시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판단할지를 예상해 보는 일은 추상화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가능한 일이다. 역사는 추상적인 이미지로 과거를 현실이라는 화폭 속에 그리지만, 현재는 너무나 많은 사건들로 인해 언제나 구체적인 사실들로 구성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서 50년 후의 역사가가 바라볼 우리의 모습을 그리지 못한다. 그것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따라서 역사를 두려워 하는 자야 말로 지식인이다. 역사를 알고 미래의 역사가를 두려워하는 이들이야말로 가장 진보적인 지식인이라 할 수 있다. 산타야나 리뷰는 역사적 사실을 알고 이를 현실의 지침서로 삼으며 역사를 두려워하라고 가르치지지만, 미래의 역사가를 두려워하는 것이야말로 산타야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일지 모른다. 내가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잘 먹고 잘 살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일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그런 삶을 살 수는 없지만, 미래의 역사가에 대한 두려움은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대립시키는 일과 다를 바 아니며, 소유와 존재의 긴장 관계의 다른 말일지 모른다.[footnote]과 학에서 혹은 과학학에서 또는 철학에서 이런 화두는 ‘화성인이 되어보라’는 말로 표현된다. 화성인 지리학자가 되어 지구를 관찰하는 것은 적어도 인간 중심의 시각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는 시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사고하는 자가 어찌 화성인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떤 철학자는(어떤 과학자의 개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시도를 ‘3자현상학’이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footnote]

단재의 고민과 도힐러의 분석: 유교의 정치체계적 수입

조선의역사는 무정신의 역사이다. 우리나라에 부처가 들어오면 한국의 부처가 되지 못하고 부처의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공자가 들어오면한국의 공자가 되지 못하고 공자의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예수가 아니고 예수를 위한 한국이 되니이것이 어쩐 일이냐? 이것도 정신이라면 정신인데 이것은 노예정신이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

단재 신채호 <독사신론> 중

단재는 역동적인 이 땅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관해 고민했다. 식민지라는 상황 속에서 그는 절망으로부터 희망을 발견하려 애썼다. 무정신의 역사를 가진 조선은 새로운 국가형태로 나아가기 위한 비판의 대상이었고, 새로운 국가는 민중의 각성에 의해 태어날 운명으로 생각되었다.

민중이 어떻게 각오하는가?

민중은 신인이나 성인이나 어떤 영웅 호걸이 있어 <민중을 각오>하도록 지도하는 데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요, “민중아, 각오하자” “민중이여, 각오하여라” 그런 열렬한 부르짖음의 소리에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민중이 민중을 위하여 일체 불평·부자연· 불합리한 민중향상의 장애부터 먼저 타파함이 곧 <민중을 각오케>하는 유일한 방법이니, 다시 말하자면 곧 먼저 깨달은 민중이 민중의 전체를 위하여 혁명적 선구가 됨이 민중 각오의 첫째 길이다.

단재 신채호, <조선혁명선언>중

급박한 상황속에서 단재의 목소리는 선동적이고 선언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시대속에서 단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리고 단재의 추상적 분석은 구미의 한국사학자 도힐러에 의해 다시 나타난다. 조선은 기나긴 유교화의 과정을 거치며 안정적인 사회가 되었다. 공자의 조선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단재와 달리 도힐러에게 조선의 유교화는 500년이라는 안정적인 존속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도힐러 교수는 조선사회에 관한 그 자신만의 독특한 일반화를 시도하였다. 즉 고려적인 사회를 유교화하는 과정이 매우 점진적으로 진행되었으며, 17세기 이후 적장자 중심의 친족제도, 상속제도가 확립되기까지는 무려 25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그는 유교화라고 해석하였다. 결국 이런 유교화의 오랜 과정은 주자의 성리학적인 이념의 구현을 목적으로 한 것이지만, 조선사회는 결코 중국(宋)의 모범을 추종하기만 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조선사회는 그 나름대로 매우 독특한, 그런 의미에서 중국과는 매우 다른 각도에서 성리학적인 이념을 해석하였으며, 그 결과 중국에서보다도 더욱 유교적인 사회가 될 수 있었다고 하였다. 이는 곧 자신들의 역사적 · 사회적 경험의 토대 위에서 유교적인 이상에 관한 한국인들만의 독특한 해석이요 수용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정두희, <歐美에서의 한국사 연구의 경향> 중

‘역사적 해석’은 그 기록이 기술하는 대상 속에 포함되지 않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하지만 ‘역사적 적용’은 역사를 기술하는 이의 정체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조선사회에서의 유교에 대한 단재와 도힐러의 해석은 같다. 조선은 공자의 나라인 중국보다 더욱 유교적인 사회로 인식된다. 단재가 도힐러와 다른 것은 이러한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이며 시대적 고민 속에서 역사적 사실을 적용하려 했던 단재의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도힐러는 관찰자로 머물지만 단재에게 조선은 단순한 관찰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이라는 국가가 유교적 정치기반으로 500여년을 존속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그 사건을 비극으로 볼 것인지, 신비함으로 볼 것인지, 나아가 이 역사적 해석을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지는 조선의 후신인 대한민국에 속한 이들의 문제다. 도힐러의 해석은 가치있는 것이지만, 그 해석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데 있어 우리는 도힐러가 강조한 조선사회의 안정성을 무시할 필요가 있다. 민중에게 있어 그 500년은 끔찍한 비극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힐러의 분석은 유교적 정치이념과 경제체제의 관계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는 점에서 살펴볼 여지가 남아 있다. 유교는 경제체제가 아니라 정치이념으로 수입되었기 때문이다. 사농공상의 가장 하층에는 장사치들이 놓여 있었고, 이러한 상인 계층은 18세기나 되어서야 사회에 전면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허쉬먼이 <열정과 이해관계>에서 기술한 서양사의 질곡이 조선이라는 땅에서도 일어났던 것이다. 유교와 기독교는 일종의 정치체계로 기능하고 있었고, 자본주의라는 틀 속으로 포섭되지 않은 채 존재했다.[footnote]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나, 역사학계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조선의 ‘내재적 발전론’에 관한 논의는 다루지 않겠다. 역량이 부족할 뿐 아니라 적어도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의 이행은 외부의 영향 없이 독자적으로 이행했던 유럽과는 달리 복합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footnote]

열정과 이해관계10점
앨버트허쉬먼/나남출판

과연 중국이 이러한 경향으로부터 예외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도힐러의 다음과 같은 분석은 조선에 수입된 유교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중국 강남지방의 전통사회에서는 가문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재산이 매우 중요한 토대가 되었지만, 고도로 계층화되었던 조선사회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세습적인 지위와 권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였다. 중국의 역사 속에서는 세습적인 계급의식을 타파하기 위하여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면, 조선의 유학자들은 바로 그런 의식으로부터 사회를 이끄는 힘을 얻으려 노력하였던 것이다.

정두희, <歐美에서의 한국사 연구의 경향> 중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자본주의의 맹아가 이미 조선후기에 싹트고 있었다는 점을 주장하던, 아니면 그러한 맹아는 철저히 수입된 것임을 ‘식민지 근대화론’을 통해 주장하던 우리는 하나의 결론을 만난다. 그것은 바로 정치체계로서의 유교가 경제체계로 확장되기 이전에 조선의 운명은 끝났다는 사실이다.

기독교의 사회체계적 수입

기독교의 전래는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의 역사적 이행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기독교는 유교가  철저한 정치체계로 수입[footnote]우리는 삼봉 정도전으로부터 이러한 경향성을 읽어낼 수 있다.[/footnote]된 것과는 달리, 철저하게 사회체계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아무리 조선후기에 중상주의적인 학풍이 등장하고, 이로부터 자본주의의 맹아를 찾을 수 있다 해도 유교는 신분계급을 철폐하는 이념을 적극적으로 제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조선후기 유교는 신분제를 더욱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시대에 기독교는 종교 이전에 하나의 사회이념으로 기능했다. 신분제의 완전한 철폐는 긴 식민지 지배기간을 거치며 완결되지만, 기독교가 이러한 완결에 이념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현재의 기독교의 모습이 어떠하던 간에, 훗날의 역사가는 기독교가 이 땅에 수입되면서 크나큰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음을 기술하게 될 것이다.

빠른 속도의 근대화는 기독교 이외의 많은 것을 함께 수입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역시 진통을 겪으며 수입되었다. 기나긴 민주화의 역사는 민주주의의 안착이 겪은 시련을 대변한다. 자본주의 역시 이 땅의 상황에 맞추어 발전해 나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수입된 기독교와 자본주의는 점진적으로 융합해가기 시작했다. 기독교 윤리와 자본주의를 연결시키려 했던 베버의 분석은 구한말의 상황[footnote]우리는 기독교적 이념과 자본주의 모두를 수입했다.[/footnote]에도, 현재의 대한민국에도[footnote]대한민국의 기독교는 프로테스탄트윤리의 근간을 이루는 금욕정신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footnote] 적용될 수 없는 것이지만 묘한 형태의 여운을 남긴다. 성장위주의 정책을 펼치는 보수정권의 논리와, 교회성장을 지상최대의 목표로 삼는 한국교회가 닮아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자본주의는 기독교와 이미 오래전에 융합되었다.[footnote]이러한 비판에 관해서는 박득훈 교수의 논문들을 참고할 것. 예를 들어 <한국교회의 현재와 미래-한국교회, 자본주의의 예속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박득훈 – 대학과 선교, 2007. 하지만 나는 기독교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종교가 자본주의와 융합되었다고 진단한다.[/footnote]

대한민국의 문화경제학적 문법[footnote]문화적 문법이라는 용어는 정수복 교수의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에서 차용한 것이다.[/footnote]

학자로서 가장 하기 쉬운 것은 종교비판이다. 종교비판이 종교적 비합리성과 그 성격을 달리하는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는 것은 역사적 책무이지만, 그 상이성 때문에 종교비판은 너무나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도 가장 쉬운 일 중의 하나다. 종교라는 성스러움이 사라진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처럼 쉬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 신분제 철폐의 이념을 제공했던 구한말의 기독교와는 판이하게 변질된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지탄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기독교계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는 고상한 학술적 논의들은 민중의 의식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혼잣말에 불과하다.

도올은 무속과 유교, 불교와 기독교가 차례로 누적된 형식으로 대한민국을 이해한다. 또한 성서와 논어의 대결로 미국과 중국의 대결을 이해하려는 엄청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이 종교박물관이면서도 종교분쟁이 없는 이유로 언제나 ‘유교적 합리성’을 든다. 중국와 미국을 유교와 기독교의 대결로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대한민국을 분석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footnote]나는 그의 해석을 받아들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에게서 구체성을 발견하기 어렵고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을 단순히 기독교적 비합리성과 유교적 합리성의 대결로 단순화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footnote]

일단 그의 의견을 받아들인다면 불교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가 관건이다. 2008년 문화관광부에 의해 출판된 <한국의 종교현황>은 내국인의 불교인구가 22.80%라고 말하고 있다.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친 종교인은 29.26%다. 촛불시위나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천주교를 개신교와 차별화려하는 시도는 실상 이명박을 지지한 개신교와 천주교인의 비율이 그닥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무의미한 것으로 본다. 불교계의 이명박 지지가 기독교 계열과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이명박은 전국민적 지지를 얻으며 당선되었다. 무종교인들의 지지성향 역시 종교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성향은 노무현을 지지했던 종교인과 무종교인의 비율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도 잘 나타난다.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유교와 기독교의 대결도 아니고, 그 사이에 서 있는 완충제로서의 불교도 아니며, 종교인과 무종교인의 대결도 아니다. 이 웃기는 땅은 모든 것이 섞여 있다. 종교로 그들의 성향을 나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대한민국에서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 있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지도 않는다. 종교는 무의식적인 이념으로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 속에서 종교적 이념은 유권자의 정치적 성향에 인관관계로 작동할만한 힘을 지니지 못한다.

명박의 당선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유권자들의 정치적 성향이 오로지 ‘경제적’ 현실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기독교인의 대다수가 명박을 지지했을지 몰라도 이러한 편향은 무종교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명박의 종교편향을 두고 종교성으로 당파를 나누려는 시도 역시, 국회의원의 66%가 기독교계열이라는 사실이나 민주당 한나라당을 가릴 것 없이 기독교인의 비율이 압도적이라는 사실 앞에 무기력할 뿐이다.

<출처 한국일보>

기독교적 양반사회?

예를 들어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쉬운 기독교 비판, 나아가 소망교회라는 부자교회를 중심으로 한 명박의 행태를 통해 기독교적 양반사회를 구현하려는 명박의 의지를 분석해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아우르는 기독교의 압도적인 세력과, 점점 더 부유층으로 편중되어 가는 기독교의 변질을 두고 쉽게 이러한 판단 속에 안주하며 통쾌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미국의 식민지에 가까운 현실을 직시하며 기독교를 국가적 이념으로 삼고 있는 전근대적 깡패국가 미국과 한국을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기독교의 국가라는 미국보다 더욱 극성스러운 기독교 문화를 지닌 한국은 일면 미국의 축소판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대비가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갖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분석으로부터 더 나아가 기독교가 정치를 지배하는 암울한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장로가 대통령인 국가에서,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인맥이 정치에 등장했다는 점도 이러한 분석에 무게를 더할것이다. 중세적 암울함을 지닌 이러한 대한민국을 마르크스적으로 혁명시키는 이론을 건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첫째, 기독교와 타종교적 문법의 갈등을 기본으로 하는 ‘외재적 모순’을 한 축으로 중세적 기독교 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의 쇠퇴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가난한자로부터의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가진 기독교 내부의 교리적 모순을 기반으로 ‘내재적 모순’론을 들먹이며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을 지적한 마르크스의 흉내를 낼 수도 있다.

허나 우리는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기독교의 현실이 개탄스럽고 기독교에 대한 증오를 명박에게 싣고자 해도 기독교가 이러한 비극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미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기독교도 불교도 유교도 현재의 대한민국을 대변해주는 이념을 제공하고 있지 않다. 종교 그 자체만으로는 저소득층에서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더욱 높고, 한나라당의 실책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지지율이 바닥을 기는 이 사태를 설명하지 못한다. 특히 종교적 성향이 정치적 성향과 그닥 상관 없이 흘러가는 이 땅에서 정교분리를 거론하며 종교편향을 논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종교자본주의적 계급사회

유교는 정치이념으로 조선에 자리잡았다. 기독교는 일종의 사회이념으로 조선에 수입되며 대한민국으로 전승되었다. 이미 오래전에 종교윤리와 경제이념이 하나로 융합되었던 유럽과는 달리, 이 땅에서 종교윤리는 경제이념과 융합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나는 이제서야 대한민국에서 그러한 융합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 종교는 정치이념으로서도 경제이념으로서도 큰 파괴력을 갖지 못한다. 대한민국의 국교는 ‘자본주의’[footnote]이 자본주의는 전세계적 자본주의가 아니라 대한민국에 특수한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것이다. 앞으로 사용되는 자본주의라는 용어는 모두 그러한 용법으로 쓰인다.[/footnote]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종교사는 불교 이후에 유교가, 유교 이후에 기독교가 들어선 것이 아니며, 이 모든 종교들이 자본주의라는 하나의 종교로 귀속되어간 과정일 뿐이다.

미네르바 사태는 자본이 종교가 된 이 땅의 현실이 표면에 드러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가장 보편적인 인류의 특징은 정치나 종교가 아닌 먹고 사는 문제, 즉 경제적인 것이었음이 대한민국에서도 드러났을 뿐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근대화 과정은 민주주의의 발전이나 종교의 발전으로 평가받을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경제이념이 점진적으로 종교화된 과정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천주교의 일부를 대변할 뿐인 정의구현사제단의 등장과 김수환 추기경의 민주화 노력은 천주교라는 종교를 기독교와 대별시키지 못한다. 여전히 교황이라는 절대군주를 지닌 천주교야말로 언제나 가장 보수적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종교이기 때문이다. 촛불집회에 참석하며 종교편향을 비판했던 불교계의 이면에 이익집단적인 측면이 깔려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불교도 기독교계의 변질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길을 걸어 왔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footnote]’종교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논의가 있었다는 점을 글을 다 쓴후에 찾아냈다. 대통령의 종교가 문제인가? 종교의 권력화가 문제인가?출처 : 대통령의 종교가 문제인가? 종교의 권력화가 문제인가? – 오마이뉴스[/footnote]. 대한민국의 3대 거대 종교는 자본주의라는 종교의 속물적 근성에 물들었다는 점에서 전혀 다르지 않다. 유교적 합리성은 나이계급제를 부추기고 남녀차별의 벽을 공고히 하는 사회체계로 기능 할 뿐 전혀 상식적 합리성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교적 이념은 조선으로부터 기인된 계급사회의 악몽을 다시금 드러낼 뿐이다. 도올이 유교적 합리성을 말할 때 그것은 주자에 물들지 않은 공자의 본모습을 아는 학자 도올의 두뇌 속에만 있는 것일 뿐, 민중 속에 물든 유교는 그러한 모습이 아니다.

결국 해방 이후 근대화의 페달을 밟아 온 대한민국의 발전사는 경제이념이 사회전체를 지배하는 모습으로, 자본주의가 일종의 무의식적 종교로 자리잡는 과정으로 생각할 수 있다.[footnote]나는 이러한 분석이 전세계적인 것인지, 대한민국에 특이한 것인지를 구분할 능력이 없다.[/footnote] 결국 대한민국 모든 당파의 대결은 자본주의라는 종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데에서 기인한 교파대결로 볼 수 있다. 성장과 분배라는 대립각을 해석하는 데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갈리고, 분배를 이루는 속도와 방법론에서 민주당과 민노당이 갈릴 뿐이다. 모든 정파는 자본주의라는 종교의 그늘 속에서 기능한다.

별다른 힘을 갖지 못한 종교들은 자본주의라는 종교에 기생적으로 융합할 뿐이다. 종교윤리가 자본주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틀 속에서 종교가 추구될 뿐이다. 그리고 명박은 이를 체계적으로 완성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이러한 판단 속에 ‘계급배반의 역설’을 이해할 수 있는 틀이 생긴다. 계급배반의 역설은 소득계급을 아우르는 종교로부터 그 연원을 찾을 수도 있지만, 이들을 아우르는 자본주의라는 종교로부터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모두가 자본주의라는 종교로 통일되어 있는 마당에 누가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삶의 행복을 ‘자아실현’보다는 ‘부의 추구’에서 찾는 마당에 소위 ‘계급배반의 역설’이라 불리는 역설은 역설도 아니다. 그것은 당연한 통계적 표본일 뿐이다.

새로운 종교개혁

따라서 조선을 지배했던 유교이념은 대한민국의 기독교를 닮은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닮았다. 조선은 유교가 지배했고, 대한민국은 자본주의가 지배했다고 훗날의 역사가는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자본주의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변질이었고, 재벌로 대표되는 계급사회를 지탱한 원동력이었음이 드러날 것이다. 유교가 기독교와 같은 종교성을 지니지 않은 국가이념이었듯, 자본주의도 대한민국의 그러한 국가이념이었음이 밝혀질 것이다. 실학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왕을 타파하지 못한 조선의 한계처럼, 대한민국도 결국 자본을 타파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될 것이다.

조선의 운명을 돌이켜본다면 결국 대한민국의 운명도 절망적으로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라는 계급사회의 지지대를 걷어낼 혁신이 결국 외부에서 올 수 밖에 없었다면 대한민국도 조선이 걸어간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지 모른다.

중국에서 수입한 유교가 조선의 유교로 탄생하는 과정에서 성리학이라는 비극적 괴물이 탄생했듯이, 서구로부터 수입된 자본주의는 ‘한국형 자본주의’ 혹은 ‘천민자본주의’라는 괴물을 낳았다. 특히 다양한 종교가 역동적으로 드나들었고, 그 어느 국가보다도 무의식적 종교 성향이 강한 이 땅에서 그것은 ‘종교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자리잡았다.

신채호는 민중의 자발적 각성을 호소했고, 동학은 그렇게 일어섰었다. 동학이 일어선 배경에는 종교적 이념이나 정치적 이념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로 단합했던 민중의 서러움이 있다. 당시나 지금이나 모든 것을 덮는 것은 먹고 사는 문제다. 결국 경제체계가 모든 체계를 압도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류의 본성일지 모른다. 그리고 모든 혁명은 그 먹고 사는 문제가 극단으로 치우쳤을 때 발생하는 사태라고 생각된다. 만일 지금 대한민국에 계급배반이라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면, 그것은 이 땅이 아직 극단으로 치닫지 못했다는 안도일 수도 있고, 종교자본주의로 통일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종교이념이 경제적 소외계층의 각성을 지연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에 물든 소외된 민중이 여전히 ‘부의 추구’라는 종교 이념을 신종하고 있는 한, 민중의 대오각성은 불가능할 것이다.

언제나 희망을 제시하고 싶지만,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괴물 앞에 나는 무기력하다. 구체적으로는 은행을 중심으로 한 현대사회의 통화제도, 금융제도가 가장 큰 악의 축이라고 생각되지만, 전세계적인 이 사태를 막아볼 도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 그 어떤 국가보다 더욱 이 자본이라는 종교에 매몰된 통일종교국가에서 대안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생각한다.

자본주의를 부수는 일, 그리고 몽상에 가까운 대안을 실현시키는 일은 그저 두뇌속에서 그리고 가능하다면 먼 훗날의 기록속에서만 상상해볼 일이다. 하지만 대안은 있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가능성도 있다. 자본주의라는 종교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계급, 민중이면서도 민중이 아니고, 자본가이면서도 자본가가 아닌 계급이 전면에 나서면서 세상은 뒤집힐 것이다. 그제서야 ‘소유’라는 종교자본주의의 이념이 ‘존재’라는 개념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footnote]사 실 자본주의가 종교가 되는 시대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 악의 축인 통화제도를 겨냥하고, 그리고 기술관료주의를 새롭게 조명해보려는 것이 나의 주된 목표 중 하나다. 하지만 그 길에 서 있는 엄청난 학자들(예를 들어 칼 폴라니만해도)의 무게는 이러한 작업이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임을 짐작케 한다. 우석훈이 짧게 칼 폴라니 30년을 언급할 정도면 나는 짧게라도 언급할 자격이 없을지 모른다. 우선은 공부나 하련다. 지나치게 성급했다. 구체적인 공부의 선행이 일반화의 전제조건이다.[/footnote]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변화가 이 땅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footnote]하지만 내가 사는 동안은 아닐 듯 하다.[/footnote]

12 Comments

  1. 아이쿠…글이 길어서 읽느라 눈이 다 빼곰. 재미있고 흥미롭고 의미있는(적어도 저에게는) 글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생물학 공부를 하시면서도 다른 분야에 참 다식하시네요. 마치 논문 읽는 것 같습니다;;; ㅎㄷㄷ

  2. 아이고..쓰레기글에 이런 댓글을..다식이 아니라 사기를 치는 거랍니다. ^^;;

  3. 어이쿠의 연속이군요. 그나마 길게 쓰는 재주밖에 없는지라…죄송할 뿐입니다.

  4. 정말 재미있고 진지한 고민입니다. 부의 추구라는 종교이자 이데올로기가 압도하여 기독교는 물론 불교까지 잡아먹고 있는 현상에 주목해 주신 점이 진짜 흥미롭습니다. 제가 요즈음 고민하는 부분에 닿아 있고요.

    저는 오히려 세상에 희망을 두는게 어리석을 뿐이고 세상은 그저 환상이요 배경이라는 생각이 강하지만 그 세상을 도피하자는 주의는 아닙니다.

    개혁과 진보를 신봉하지만 실생활에서 그저 최선을 다하고 기회가 닿는 대로 연대를 실천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인 희망과 몸바침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5. 명박시대에는 모두가 허무주의라는 틀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 합니다. ‘허무주의’, 이게 제가 명박의 시대를 규정짓는 한 단어입니다. 명박은 모두를 허무하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6. 쓰레기라는 판단이 서신 이유는 아무래도 정치와 종교라는 핵심 개념에 대한 분석에 나서지 않으셨기 때문인 듯 합니다. 제 생각에는 구체적인 조직 또는 결사와 유효한 규범을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이 두 개념은 구분될 수 없으므로, 구분을 가능하게 해 주는 본질적 속성, ‘종차’는 이 세계만을 염두에 두고 있느냐 저 세계를 핵심적인 목표로 두고 있느냐 정도일 듯 합니다. 콰인이 준 충격에도 불구하고 역시 분석에는 사용의 맥락을 드러내 주는 힘이 있다는..

  7. 쓰레기가 아니라 명문인데요 ^^

    한국의 종교는 자본주의라는 것에 100% 동감합니다. 결국 돈이 모든 것을 덮고 있지요. 한국의 기독교도 자본주의에 물든 기독교이구요.

    또한 그 현상이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나라마다 속도만 느릴 뿐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 흐름 앞에 개개인은 참 무력하지요.

  8. 문제는 결국 ‘통화제도’라는 괴물. 그것이 시대정신이 되어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듯 합니다.

  9. 이글 닫으니까 창이 54개로 증식하더군요 결국 관리자로 껏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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