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정통적인 공부법

강유원 박사의 강의를 듣는다. 문사철로 대변되는 인문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쉬운 방법으로 공부하려는 유혹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라깡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일반심리학부터 읽으라는 이야기다. 주구장창 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나도 많은 것을 반성하게 된다. 나는 여전히 칸트를 읽지 않고 칸트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칸트에 대해 관심 있어하는 것은 그의 철학이나 윤리학이 아니라, 그가 뉴턴으로 받은 유산에 관한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에겐 칸트를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는 변명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강유원의 말이 옳다. 칸트와 근대 과학과 철학의 상호관계에 대한 논문은 많이 읽었어도 나는 여전히 칸트의 원전과는 무관한 사람이다. 그의 말처럼 5년 떠들 것이 아니라 15년을 떠들고 싶으면 닥치고 칸트를 읽을 일이다. 맞는 말 아닌가. <판단력 비판>만 훑어보고 <순수이성비판>을 읽지 않고 있는 나의 게으름에 일침을 가하는 말이고 절말 구구절절히 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인문학자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적어도 20년이 걸린다고 한다. 역사에서 시작했으면 역사 10년에 철학 5년, 문학 5년을 ‘정통’으로 공부한 후에야 인문학자라 불릴 수 있으니, 강유원 본인도 인문학자는 아니라는 말이다. 몇년 전에 ‘몸으로 하는 공부’라는 강유원식 공부법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데 그의 공부에 관한 철학이 배어 나오는 말이다. 힐쉬베르그의 <서양철학사>를 수십번 읽었다는 그에게서는 학자로서의 성실함과 끈기가 배어나온다. 존경할 만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인문학에 관해서 나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 나야 말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 온 케이스이기 때문일런지 모른다. 교양과학 서적만 읽다가 언젠가 과학철학이라는 분야의 책들을 읽게 되면서 인문학에 발을 디디게 되었는데, 그 이후 과학사를 접하면서 다양한 철학자들의 사상이 당대의 과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 뿐이다.

여하튼 정통적인 공부법으로 차근차근 쌓아올려야 한다는 말은 옳다. 적어도 인문학 공부는 그래야 한다. 랑시에르의 사상은 칸트에 기대어 있다. 서구의 현대 철학자들은 그들의 전통, 즉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이어져 오는 전통 속에 기대 있다. 그러니까 유행을 따라간답시고 데리다나 라깡부터 읽어제낄 것이 아니라 플라톤부터 읽을 일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 아닌가. 어쩌면 서구철학은 플라톤의 변주일 뿐이고, 칸트에서 독자적인 철학의 체계는 끝난 것인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강유원의 아들조차 니체는 아느냐는 조소에 플라톤부터 읽으라고 말했을 정도라니 그의 공부법의 정통성은 가히 부전자전인 셈이다.

사실 내가 무려 두시간에 걸친 이 강의를 다운 받아 들은 연유는 (이전에도 그의 강의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를 듣곤 했다. 그는 강의를 참 잘한다) 강의의 일부에 ‘과학사’와 ‘이공계 생의 인문학 공부’라는 파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리야드 및 호메로스, 단테의 신곡과 같은 문학작품이라면 아예 쳐다볼 엄두 및 흥미도 없는 나로서는 어차피 문사철로 대변되는 인문학자가 될 성품이 아니다보니 그냥 강유원과 함께 하는 과학사학자 서민우 및 공학자 양유성은 어떤 생각으로 인문학을 바라보고 있을까 하는 흥미가 생겼을 뿐이다.

아마도 두 명의 이공계 출신이 공역자로 들어가게 된 연유는 인문학, 특히 근대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근대과학에 대한 공부가 필수불가결하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강유원과 같은 정통적 공부법에 목매는 인물이 칸트나 데카르트를 공부하면서 (그의 전공인 헤겔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뉴턴으로부터 시작된 근대과학에 대한 기초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지 못했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에 대한 선이해가 필요하다. 칸트를 이해하려면 뉴턴을 먼저 알아야 한다, 이건 기본이다. 일전에 이야기했듯이 국내의 칸트 연구가 <실천이성비판>에 편향되어 있는 연유가 바로 이 때문일지 모른다. 국내의 인문학자들에게선 당시의 과학발전에 민감했던 칸트와 같은 성실함이 뭍어나질 않는다. 그들에게 칸트는 그저 윤리학자로 인식될 따름이다. 뉴턴의 물리학으로 철학을 종합하려 했던 칸트는 그들에겐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서민우의 강연은 과학사를 천재들의 역사가 아닌 우리에게 친근한 영역으로 잡아끌고자 하는 시도다. 맞는 말이다. 이런 시도가 과학이 비범한 인물들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으로 흐르지만 않는다면 과학의 역사를 지나치게 신비하고 우리와는 별개의 인물들에 의해 펼쳐지는 곳으로 각인시킨 서구학자들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과학사가 서민우의 표현처럼 과학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것으로 보지 않지만, 그러한 작업도 과학사의일부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양유성의 강연은 내가 뭐라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그런 종류의 것이었으므로 판단을 보류한다. 호메로스를 읽는데 이공계 출신이든 아니든 별 상관은 없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양유성이 하고자하는 인문학 공부는 인문계 출신이던 이공계 출신이던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인문학처럼 필로로기를 바탕으로 꾸준히 정통적인 책을 정통적인 독서법으로 읽어내려가면 되는 학문에 이공계와 인문계의 구분은 덧없다. 그냥 열심히 정통적으로 읽어가면 된다. 아닌가?

그러면 과학에 대한 공부는 어떤가를 생각해 본다. 과학은 인문학처럼 아카데미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도 공부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과학은 실험실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두뇌와 손의 합작품이다. 따라서 과학을 정통으로 공부하려면, 즉 강유원의 말처럼 과학담론에 관해 5년정도 대충 술자리에서 말하고 말것이 아니라면 과학을 정통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인문학스터디는 책을 읽는 방법과 책을 고르는 방법론으로 마련되는 것일지 모르지만, 과학스터디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을 정통적으로 공부하려면 실험실로 쳐들어가야 한다는 아이러니가 남는다. 이게 웃기는 일이다.

적어도 내가 과학사회학에 비판적이면서도 라투어를 존경하는 이유는 그가 실험실에 쳐들어가 몇년을 보내며 <Laboratory Life>라는 저작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읽어 볼만한 과학철학자 혹은 과학사학자들의 책은 끊임없이 과학자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저작을 완성시킨 이들의 저작들 뿐이라는 것을 내가 발견한 것도 우연은 아니다. 내가 국내의 과학사회학자들의 안이함을 비판하는 이유도 그들이 아는 과학이 실험실에 쳐들어가 과학을 정통적으로 공부한 연후의 것이 아니라, 서양 학자들의 연구결과들을 달달 외우고 복습하는 것 이상의 진전을 보여주지 못하는 학자적 불성실함 때문이다.

이공계 출신의 인문학공부는 이야기하면서 인문계 출신의 과학공부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이 바닥의 생리다. 이공계 출신이 인문학을 공부하려면 인문학자들이 말하는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인문계 출신이 과학을 공부하는 것은 또다시 인문학자들의 고질적 질병인 독서 그 외엔 없는 것이 이 바닥의 안일함이다. 과학은 그렇게 공부되는 것이라면 참으로 편하겠다. 과학이 그렇게 해서 이해되는 것이라면 참으로 좋을 일이다.

이공계 학부출신의 과학학 학자들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들이 과학을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나는 국내의 과학학 연구자들 중 라투어를 논하면서 라투어처럼 행동했던 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를 아는 것보다 예수를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통섭이라는 화두가 유행하면서, 과학을 말하는 것이 인문학자들의 필수가 되었다는 압박 아래에서, 국내의 인문학자들이 저지르고 있는 실수는, 인문학 공부에 대해서는 철저한 경계를 세워두고 그 방법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과학에 대해서는 너무도 쉬이 말한다는 점이다. 나는 그게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이제 인문학자들이 과학을 모르고 인문학을 연구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과학자들도 인문학을 공부해야만 한다. 그게 인문학이 윤리적으로 우위에 서있기 때문도 아니고, 인문학으로 과학을 제어해야 한다는 웃기지도 않는 윤리적 우월성도 아니고 인문학적 상상력이라는 해괴한 논리 때문도 아니지만 적어도 국내의 과학이 한걸음 더 나아가려면, 과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고 또 이를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그 무식에서 탈출할 필요가 있고 바로 그 해답이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국내엔 정말 많은 실험실이 있다. 과학자들이 비록 바쁜 이들이지만 어떤 성실한 과학에 관심 많은 인문학자가 실험실을 좀 경험해보고 싶다는데 모두가 그걸 거절할 성 싶지는 않다. 나는 국내의 인문학자들이 <이기적 유전자>나 <사회생물학> 따위의 책만 읽고 과학이 어쩌구를 말하는 시대를 지나, 이제 그들이 적극적으로 실험실로 쳐들어가 과학을 경험해보는 광경을 목격하고 싶다. 서울대 과사철의 커리큘럼이 어찌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나는 국내 과학학계를 좌지우지 하는 이 서울대 과사철이라는 집단에서 그러한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문사철 20년이라면, 적어도 사울대 과사철의 커리큘럼은 실험실에서의 2~3년은 포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생산된 과학학자들은 기존의 서양논의를 반복하는 모파상에 다를 바 아니다. 그리고 우리느 그런 안이하고 게으른 학자들은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런 풍토가 조성되지 않는다면 정말 혹여라도 내가 나중에 실험실을 차리게 된다면, 인문학자들을 초청할 셈이다. 기회를 열어주었는데도 암도 찾아오지 않는다면 지독하게 욕을 할 셈이다. 나는 책읽고 글쓰는 즐거움이 뭔지는 알 듯하고, 그런 생활에 전력하며 밥벌어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실험실 생활을 해야 하고, 몸으로 떼워야 하고 그렇게 과학을 안 연후에야 과학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몸으로 하는 공부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과학도 몸으로 하는 공부라는 것에 대해 깨달아야 한다. 적어도 과학은 몸으로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그 실체를 알기 힘든 지식체계다. 실험의 조작을 말하기에 앞서 과학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실험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나는 국내의 과학사회학자들이 과학자들의 양심을 들먹이면서도 실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다들 대충 서양학자들이 지껄야 놓은 틀 안에서 과학을 규정짓고 그 안에서 쉽게쉽게 말할 뿐이다. 구역질 난다.

공부는 정통적으로 해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럼 과학 공부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건 과학자들이 어떻게 과학을 공부하는지를 보면 답이 나오는 쉬운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연후에야 과학을 말하고 있는 그 어떤 국내의 인문학자도 본 적이 없다.

16 thoughts on “과학의 정통적인 공부법

  1. 지치심에도 불구하고 열정이 보이는군요.

    많은 부분공감하고 저를 돌아봅니다.

    실헙실에 계신 샘이 부럽기도 하구요.

    힘 내시길!

  2. 왠지… ‘이공계 출신의 인문학공부는 이야기하면서 인문계 출신의 과학공부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이 바닥의 생리다.’ -> 이 부분이 급공감이네요.

    (문과 > 상경계 학사 > 이학 석사에.. IT 컨설턴트로 일하는 사람인데.. 그렇습니다.)

  3. 현대”과학은 인문학처럼 아카데미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도 공부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이공계 출신의 인문학공부는 이야기하면서 인문계 출신의 과학공부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이 바닥의 생리”가 된 것 같습니다.

  4.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셨는지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댓글로 안부 물어 봅니다.

    인문학이나 과학말고도 다른 것도 참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전문가도 비전문가도 누구나 아무렇게나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앎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 누가 말했는지를 떠나서, 좋은 말이라고 생각되는군요.

  5. 핑백: Curious Minds
  6. 알레프님의 트랙백처럼, 글을 보라고 던져줄 사람들이 누구인지가 분명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스 라틴 고전문학 번역하는 분들이 실험실에 가야 그 주제에 대해 포괄적이고 허술하지 않은 이론을 건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과학에 대해 언급하는 학자들이 기본적인 대상일텐데..

    관심환기용 댓글 ㄳ ㄲㄲ

  7. 몸으로 때우는 (응?) 인문교육도 필요할까요?ㅎㅎ;
    말씀하시는 바 흥미롭고 또 저도 인문학자의 몸으로 하는 과학공부를 기대하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통섭은 단순한 독서암기에 불과할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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