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난독증이 생겼습니다

촛불논쟁이 한창이랍니다. 안또니오 네그리 사마의 전도사 조정환씨와 랑시에르와 라깡 사마의 추종자 이택광 선생께서 촛불의 성격에 대한 논쟁을 진행중이시랍니다. 엄청난 사건이었던 만큼 분석은 필수겠지요. 저는 그런 분석 및 논쟁이 활발하다는 것에 대해 참으로 환영하는 사람입니다. 근데 제가 이 분들 글을 독해하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난독증은 아닐까 하는 심각한 우환이 생겨버렸습니다. 사실 좀 끼어들고 싶은데 독해가 안되니 난감합니다. 좀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무식한 이공계생이라 도움이 필요할 듯 싶습니다. 아래 글을 번역해주시는 분께 책을 한권 선물로 드립니다.

내가 이렇게 촛불을 비판하는 까닭은 ‘정상국가’와 ‘쾌락의 평등주의’라는 판타지를 거스르는 실재의 충동을 촛불의 주체들이
수용하지 않았다는 판단에 의거한 것이다. 이 실재의 충동이야말로 명박산성을 넘어가는 ‘진리적 사건’을 만들어낼 원동력이다. 이
실재의 충동은 그 무엇도 아닌 자본주의의 모순이고, 계급투쟁이고, 적대의 충돌이다. 이것이야말로 상징계에 머물면서 상징계에
저항하는 표현할 수 없는, 판타지 너머에서 그 판타지와 대결하는 역동적인 진리이다.

물리적으로 명박산성을 넘지
않아서 문제라는 뜻이 아니다. 물리적인 차원 이전에 작동하는 상징적 차원에서 이미 촛불은 명박산성을 넘어가지 못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구조주의는 거리로 나서지 않는다”는 68년의 구호에 대해 “그 사건이 바로 구조주의가 거리로 나선
것”이라고 지적한 라캉의 말을 전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2009년의 촛불이 끝났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그
법의 지배를 끊임없이 문제삼는 전략을 수립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나는 이런 맥락에서 중간계급이 열어낸 그 공간에서 발생한 낯선 정치적인 것의 자리로 어떻게 ‘자본주의를 넘어선 정치’가 귀환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게 내가 촛불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까닭이다. [반론3] 나는 촛불을 어떻게 보는가?

32 Comments

  1. 정직하게 고백하자면, 저런 얘기가 싫어서 제가 인문학 때려 치운 거에요.

    이념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하면, 민주적으로 글을 좀 쓰라는!

  2. 어떤 책을 선물해주실지를 먼저 알고 싶군요. 책이 마음에 들면 번역을 좀 해드릴 수도 있어요. (제가 번역 전문 아닙니까?)^^

  3. 파이어아벤트의 책이 출판되었답니다. 그 책을 선물해드리죠~~근데 번역이 가능하단 겁니까? 예상외의 지출이 생기겠다는…

  4. 공감 120% 하지만, 인용문의 글쓴이와 논쟁 맥락을 모르니… 할 수 있는 말은 없고, 심한 거리감이 아쉽습니다.

  5. 파이어아벤트라면…(농담이구요), 번역에 조금 시간이 걸릴 겁니다만 시도는 해보겠습니다.(질은 보장 못함. 라캉을 모르는 탓에…)

  6. 그리고, 이택광씨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한 사전 단계로 다음 글을 추천합니다. 아마도 가장 쉬운 버전일 겁니다. (이택광씨의 짧은 강연 내용입니다.)

    http://blog.naver.com/siff1998/65764259

  7. 음. 제가 봤던 한 두권의 철학책 번역이 딱 저런 문장이었는데… 멋진 문장으로 번역을 해주셔서 제가 다른 좋은 책을 보도록 해주신 그 번역가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군요.

  8. 이미 키보드 워리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있던데? 위에 링크 타고 돌아다녀보면 누군지 알 수 있음.

  9. 독해 불가;;; 일단 가져온 글에서 사용된 용어의 정의를 묻고 싶지만, 저 글을 쓴 사람의 정의가 추가되면 더욱 이해하기 힘들어질 듯 하군요.
    컴플렉스가 있나…저렇게 쓰면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들을 하는 건가;;;
    (댓글 초반에 욕으로 시작할 뻔 했다능)

  10. 어, 어…
    저… 외계어는 귀여니만 쓰는게 아니었군요.
    아님, 무식한 컴쟁이 머리를 탓해야하나…;;;;

  11. 포퍼에게 부찌깽이를 든 비트겐슈타인의 그런 행동도
    저 같은 난독증 증상을 가지고서야…꿈이죠..^^
    그런데 촛불의 다양성을 저리 간단하게 분석할 수
    있다는게 부럽긴 하네요…

    누구 말마따나 관찰하기도 힘든 것들을 굳이 설명하고
    설명하기도 힘든 것들을 굳이 관찰하는 이유를 저도
    알고 싶어 집니다 …역쉬 아는게 힘!

  12. 그런 시도자체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시도들이 지나치게 나이브하다는 게 문제일 뿐. 국내 학자들의 문제는 시도자체가 다양하지 않다는 점 뿐 아니라, 학자적 불성실함이 몸에 배어있다는 데 있습니다.

  13. 외계어를 모르면 최근의 한국 인문학계의 논의를 귀담아 들으실 수 없습니다.

  14. 옳은 말씀입니다..제가 거기까진 생각을..ㅠㅠ
    전 그런 분들의 정치적 속내를 알고 싶다는
    그런 작은 바램일 뿐입니다…

  15. .. 기본적으로는 같은 인문학자끼리의 이야기니까요. 같은 의사/같은 수학자 끼리 이야기할 때 서로 알아먹는 단어/용법으로 말하는게 훨씬 편하지 않습니까.

    .. 다만 인문학의 위치나 파급력을 생각해보면 인문학이 좀 더 쉬워져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하는 바입니다.

  16. 전공분야의 terminology를 비전공자가 이해 못하는 것이 비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과연 저 논쟁이 전공자 대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방법을 거쳐 어떤 ‘결론’에 도달 할 수 있을지는 회의스럽습니다. 저도 인문학전공자는 아니지마는요.

  17. 어휘에 대해선 컴쟁이들도 별로 할말이 없습니다. 자고나면 듣도보도 못한 해괴한 약어며 용어들이 쏟아지는 곳이라 실무자들도 짜증이 나거든요. 그래서 업무보고나 설명회 같은걸 할 때는 일부러라도 쉽게쓰려고 노력합니다만, 잘 안되긴 하데요.

    인문학자 분들이라면 무식한 컴쟁이들보단 국어공부를 더 많이 하셨을텐데, 조금만 풀어써주셨더라면 좋았을것 같네요.

    뭔가 진지하고 읽어볼만한 논의가 진행중인것 같긴 한데, 당췌…

  18. 여기 까칠하게 댓글 다신 분들 중에 인문학 전공이신 분은 있으신 건가요? 그냥 궁금하네요.

  19. 의사나 과학자들의 테크니컬 용어는 적어도 그들끼리는 알아먹습니다. 그들이 그 용어를 쓰는 것은 그편이 보다 의미가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대학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심리학을 강의하는 나로서도 난독증입니다.

  20. 같은 자곤이라도 그런 자곤이 필요에 의해 등장한 것인지, 아니면 단시 스타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를 따져 봐야 하지 않을까요?

  21. 용어의 문제도 중요합니다. 필요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타일의 문제 때문에 자꾸 이상한 단어들이 도입된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22. 이공계라 해석이 불가하다는 것은 농입니다. 스스로를 이공계라 딱지붙히기 시작하면 이땅을 못 뒤집습니다. 저건 인문계-이공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학문 담론을 소화하는 지식인들의 성실함에 관한 문제일 뿐입니다. 과학은 맨날 좀 쉽게 풀어달라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지들의 학문에 대해서는 점덤 더 알 수 없는 말들로 진실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 우스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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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브리꼴뢰르bricoleur 2009/05/16

    Willard Van Orman Quine(1908~2000). 논문의 분위기와는 달리후덕하구만..

    일상 언어는 발생적으로뿐만 아니라, 정교한 바꿔쓰기를 통해 인위적인 용법을 더욱 궁극적으로 명료화하기 위한 매개로서도 사실상 근본적인 것으로 남는다.
    (W.V.O. Quine, 논리적 관점에서, 제6장 논리학 및 보편자의 실체화[서울:

  • Curious Minds 2009/05/16

    1. 길게 쓰다가 말았는데, 길게 쓸 이유가 없어서 그렇다. 2. 들뢰즈, 라깡, 바디우, 랑시에르, 아감벤을 읽고 공부하는 건 좋다. 동시대인들이 어떤 사유를 하는지 알고 같이 논의를 하는 건 좋은 일이니까. 그렇지만, 세미나 노트같은 글들을 남발하면서 그게 학문 연구라고 생각하는 함량 미달의 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이 사회 변혁의 사상적 기초를 위한 몇 가지 계기들을 품고 있다고 해서 그 이론을 장황하게 되풀이하는 게 사회 변혁을 위한 운동을 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