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블루와 변희재, 그리고 소녀시대

더 블루의 곡들은 90년대 내 감성을 자극했던만큼 그 시대를 상징지우는 그런 대중가요다


변희재의 실크세대라는 웃기지도 않는 아젠다는 변희재 스스로가 속해 있는 그 어중간한 세대에 대한 고민은 담지도 못하고 있다. 변희재가 나와 동갑이다. 386에도 끼지 못했고, 이 후의 X세대 및 신세대로 불리우던 그 세대에도 끼이지 못했던 나는 대학 시절, 그리고 이 후에도 사회 속에서, 또 나를 둘러싼 관계 속에서 이 어중간함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고민한 적이 많다. 그리고 여전히 문화평론가 따위가 아닌 나는 그러한 고민이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변희재의 투정처럼, 이미 386운동권이 점령해버린 영역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지금의 20대가 아니다. 그들이 이미 40대 중반이 되어버린 386의 자리를 점하려면 20년은 족히 지나야 하는 것이다. 변희재의 투정은 스스로의 경험에서 나온 듯 하다. 뜨고 싶은 욕구에 있어 도올이나 진중권 및 강의석을 능가하는 저 변희재가 386이라는 암울한 시대를 승리한 단단한 벽 앞에서 얼마나 좌절을 겪었는지가 변의 뻘짓에서 볼 수 있는 정신분석학적 소견이다. 그 뿐이다. 변희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를 포함한 이 어중간한 세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아니라, 386에 대한 피해의식일 뿐이다. 그런 피해의식을 가지고 어떻게 미래를 바라보는 실크세대를 이끌겠다는 것인지부터가 의문이지만, 실크세대라는 어휘의 황당함은 더 가관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으로부터 내가 찾을 수 있는 내 세대들의 대표주자는, 유재석과 강호동, 그리고 이휘재와 김제동 이런 인물들이다. 그 외의 곳에서 나는 특별히 잘난 70년대생들의 모습을 찾지 못한다. 그리고 강호동은 아니지만, 유재석과 이휘재와 김제동을 관통하는 그 롤러장의 추억, 교련복과 올림픽과 컬러TV 등등이 내가 10대와 20대를 보낸 그 시대를 향수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70년대생 중 내가 아는 가장 유명한 이는 유재석이다. 그는 나의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표면상으로는 87년 6월의 목소리로 독재가 타도되었고, 다시 군부의 잔재를 선택한 국민들은 ‘보통 사람’이라는 노태우로부터 전두환과 같은 압제의 느낌을 갖지는 않았다. 국민의 시선에서 노태우는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지도자가 아니라, 오히려 민중의 항거에 항복한 패자의 모습이었고, 그 승복은, 노태우에게 승리를 안겨준 그 승복은 담대함으로 비춰졌었는지도 모르겠다.

올림픽을 비롯해서 정권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엄청나게 폭발적인 대중문화들이 양산되었고, 가요계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런 시절을 등에 업고 서태지가 등장했고 서태지가 사라질 무렵 SM이 등장했다.

나는 문화평론가가 아니다. 다만 노래방에 가면 내 잠자는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그 노래들은 80년대 말부터 90년대를 아우르던 통속적인 대중가요들이며 가는 그런 노래들이 마냥 좋은 그런 통속적인 인간이다. 나는 최수종-죄신실의 ‘질투’라는 드라마를 보며 성장했고, 그 ‘질투’라는 노래에 열광했으며. ‘파일럿’과 이후 ‘느낌’이라는 드라마에 나온 주제가들을 사랑했다. 김광석과 유재하와 박학기와 당시엔 어렸던 김현철을 들었고, 친구의 핸드폰이 아니라 집으로 전화를 하고, 핸드폰이 없이도 약속시간을 정해 서로 만나고 연락하고 하는 일에 익숙했다.

유재석과 김제동이라는 인물들만이 우리 세대를 대표짓는다는 것이 나는 부끄럽지 않다. 그것은 어중간한 시대를 살아야만 했던 이들이 고군분투해서 얻어낸 성취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느 세대던 자신만의 가치가 있고, 그 가치란 상황에 고유한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르다. 난세만이 영웅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태평성대에 꽃피울 수 있는 학문의 성격과 난세의 그것이 다르듯이, 그 둘의 우열을 가릴 이유도 없다. 난세에 대학시절을 공유하지 못했다고 해서 열등감을 갖는 나의 세대를 공유하는 이들이 없기를 바란다. 내가 보기엔 변희재는 그런 피해의식에 쪄들어 있다. 마찬가지로 난세를 겪었다고 해서 승리에 도취된 이들에게도 말한다. 고인 물은 썩는 것이고, 사회는 언젠가 그 사회를 경험한 적절한 세대들에게 배분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민주화세력의 추락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영웅주의와 세대우월론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소녀시대를 끌어들이다니. 삼촌팬의 이미지를 완화하는데 더 블루가 일조했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는데, 김민종 손지창이 ‘너만을 느끼며’로 다시 ‘더 블루’ 활동을 시작했다. 게다가 소녀시대까지 동원하면서 나름 세련되진 듯 하다. 소녀시대가 나오니 더 좋지만, 이 노래 자체가 내가 가장 즐겨부르는 노래 중의 하나라 더 좋다. ‘느낌’의 주제가였던 ‘그대와 함께’가 더 좋긴 한데 건승을 바란다. 즐감하시길.

5 thoughts on “더 블루와 변희재, 그리고 소녀시대

  1. 아..또 있다. 이영도가 유재석과 동갑니다. 나는 한번 꼭 이영도를 만나고 싶다.

  2. 나 또한 눈치보며 즐감했던 느낌의 주제곡이 더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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