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원, 사이비, 덕후, 쿨게이

공자가 향원에 대해 보여준 분노는 그의 궤적을 두고 볼 때 상당히 의외가 아닐 수 없다. 그는 노나라 재상이 되자마자 소정묘를 죽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공자와 맹자 모두 이들을 ‘사이비’라 칭했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진짜가 아니라는 뜻이다. 둘 다 꽤나 골머리를 앓았다는 얘기다. 공맹에게도 향원이라는 존재는 처치곤란한 문제거리였다. 얼마나 답답했는지, 사이비를 설명하는 문장도 ‘사이비를 미워한다’라는 증오섞인 말로 시작할 정도다. 향원과 사이비라는 말, 당시로서는 지방의 관료들 중 그럴 듯한 위선자들을 칭하는 말이었다. 여전히 정치인들중에는 향원들이 많다. 아니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향원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것이 정치라고 아예 대못박아 놓고 정당화하기 바쁘다. 정치프로라는 말은 ‘나는 향원이오’라는 말과 같다. 따라서 대한민국 관료사회는 사이비들의 집합소다. 이들에 관해서는 따로 할 말이 없다.

사이비라는 말은 현대에 이르러 여러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종교의 이단을 뜻하는 말로도 사용되고, 의사과학을 뜻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사이비 종교, 사이비 과학, 가장 흔히 듣게 되는 ‘사이비’의 용례다. 사용처는 다르지만 두 용어 모두 그럴듯한 그 정체에 대한 분노를 함축하고 있다. 사이비 종교는 종교처럼 보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사이비 과학도 과학처럼 보이기 때문에 문제다. 아예 종교가 아니고 과학이 아니면 문제될 것이 없는데, 이들이 종교라고, 과학이라고 우긴다. 게다가 이들에 동조하는 세력이 있다. 그게 문제다. 공맹의 기우도 거기에 있었을 듯 하다. 공맹이 보기엔 이건 분명 아닌데, 이들을 따르는 세력이 꽤 된다. 우민을 욕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 사이비는 덕을 해치는 자들이다. 미운 존재다. 더 나아가 국가의 존망에 위협이 된다. 그래서 공자는 소정묘를 척결한다.

사이비 종교, 사이비 과학. 이 두 집단에 대한 대중의 상식은 이제 꽤나 진보해서 왠만한 상식을 갖춘 이들은 잘 걸려들지 않는다. 실상 이제 사이비라는 말을 떼어버려야 할 정도다. 왠만해선 대충 비슷한 패턴의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구분이 상당히 쉬워졌다. 많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와 과학의 경우엔 정통이라는 개념이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에 사이비의 구분이 더욱 쉬웠다. 문제는 정통이라는 게 모호한 분야에 사이비가 등장할 때다. 이젠 도대체 누가 사이비고 누가 정통인지를 구분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된다.

미네르바가 있었다. 참으로 희극적인 해프닝이 일어났다. 그를 추앙하던 집단은 그의 이력이 낱낱이 공개되자마자 그를 버렸다. 이전까지 그의 분석력에 대해 전문가 이상이고, 탁월하다라는 칭찬을 늘어놓던 대중이 갑자기 그를 버렸다. 결국 대중의 지지 속에는 암묵적인 스팩에 대한 동의가 있었던 거다. 미네르바는 대충 서울대 정도의 스팩 아니면 50대의 경제전문가 정도는 되는 거였다. 그래야 말이 된다. 그래야 미네르바가 사이비가 아니게 된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한 청년이 순식간에 사이비가 되어버렸다. 참 슬픈일이지만 그랬다.

미네르바가 활동하던 분야가 경제학이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가장 조직화되어 있다는 분야다. 흔히 경방고수라고 칭해지는 이들의 대부분이 미네르바처럼 익명으로 활동중이다. 네티즌들의 지지는 하늘을 찌른다. 심지어는 경제학 교수들도 미네르바를 지지한다. 사이비와 진짜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인문학 덕후들이 있다. 출판시장의 발달로, 인문학 박사들의 과잉으로 이제 인문학은 그 위기 속에서도 분명 가장 대중화된 시기를 맞았다. 이제 인터넷에선 왠만한 독서가 아니면 감히 프랑스 철학에 대해 논할 자격도 주어지지 않는다. 모두가 나름의 해석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교수라는 작자들의 권위마져 의심받는다. 도무지 구분할 길이 없다. 사이비를 구분하겠다고 주류라는 권위를 확고히 하면, 수구꼴통이라는 비판에 직면한다. 그만큼 인문학의 접근성이 낮아졌다. 이제 누가 전문가인지 아닌지 불확실하다. 분명 사이비가 판치고 있을 텐데 구분이 어렵다.

논객들이 있다. 문장력만으로, 논리력만으로 승부하는 이들이다. 이제 그들을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지 알 길이 없다. 논객이 넘쳐난다. 너도 나도 논객이다. 대부분이 정치논객이다. 정치라는 장르, 접근도가 상당히 낮은 지형이다. 러셀이 다 늙어서 정치를 했던 이유, 촘스키가 늙어서야 정치비판에 나선 이유, 알만 한 거다. 정치적 비판에 관여하는 두뇌의 기능은 피질보다는 변연계에서 일어나는 행위다. 복잡한 이성적/논리적 판단이 아니라는 말이다. 정서적 판단이다. 사이비와 향원이 넘쳐날 수 있는 이유다.

쿨게이들이 있다. 팩트골룸이라고도 부른다. 보통 긴 호흡으로 자신만의 글쓰기를 하지 못한다. 그냥 냉소와 조롱으로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 팩트랍시고 몇줄 깔짝이는 정도다. 그리고 으스댄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논객 수준에 끼지도 못한다. 블로그 글쓰기에서나 존재가 가능한 이들이다. 결코 발전하지 못한다. 대개 사이비를 판별하는 기준이 작동하는 실제세계에서 쿨게이들은 쉽게 가려지기 때문이다. 아니 아예 그쪽 바닥으로는 올라올 수도 없다. 몇 년의 피나는 연습이 필요한 과정을 건너뛰고 고수들과 직접대면을 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날뛸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쿨게이들은 댓글로 날뛴다. 절대 긴 호흡으로 숨쉬지 못한다. 하악하악이다. 이들을 쿨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인터넷이라는 신무기다. 인터넷에서 떨어뜨려 놓으면 쿨게이들은 병아리가 된다. 삐약삐약이다. 자신들은 아니라고 항변하겠지만 일종의 덕후다. 게다가 항변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호흡이 짧기 때문이다. 그냥 ‘웃기고 자빠졌네’ 정도의 변연계, 아니 뇌간 수준의 초딩용어로 ‘흥!’하고 코를 풀 뿐이다. 그게 쿨게이다.

쿨게이들에서 조금 진화한 형태가 있다. 보통 자기 생각은 잘 드러내지 않는 문서덕후들이다. 어디서 그렇게 자료들을 모았는지, 다양한 형태의 자료들을 짜집기 해서 글을 만든다. 이들의 글이 길어지는 것은 짜집기할 자료들의 양에 정비례한다. 보통 인용하는 글이 70%를 넘는다. 논문으로 치면 표절이고, 자격미달이다. 어디서부터가 필자의 생각이고 아닌지가 논문의 핵심인데, 이들에겐 그런 분석력따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라는 영화가 있었다. 최민수가 주연이었는데, 이 영화감독은 하도 많은 헐리웃 영화를 본 덕에 결국 자기만의 영화를 만들 수가 없었다. 결국 만든 작품이 헐리웃 영화들의 짜집기였다. 쿨게이들은 뒷통수를 강타당하는 충격이 없으면 이 단계에서 진화를 멈춘다. 아직 그 이상으로 진화한 쿨게이들을 본적이 없다. 그래도 사이비 혹은 향원이라 불릴만 하다. 진지한 지식인들에게 꽤나 골치아픈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미네르바가 이 부류에 속했었다고 생각한다.

백가쟁명의 시대다. 다양한 사상이 등장한다. 제자백가의 시대에 ‘잡가’라는 게 있었다. 다른 사상들을 짜집기했던 학파다. 아마 공자는 이들을 향원이라 부르고 싶었을 것 같다. 날이 갈수록 향원과 사이비를 구분하는 게 어려워진다. 아주 간단하게 사이비와 향원을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현실세계에서 펼쳐지는 진검승부를 보면 된다. 보통 인터넷 덕후들과 인터넷 사이비들은 오프세계에서는 병아리이기 때문이다. 사이비를 구분할 기준이 없다면 그걸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현게탄다라는 말이 있다. 부족전쟁에서 유행하던 말인데, 현실게이트로 돌아간다, 부족전쟁의 중독에서 벗어난다라는 말이다. 인터넷 사이비들에게 필요한 말이다.

26 thoughts on “향원, 사이비, 덕후, 쿨게이

  1. 아주 오래전에 전여옥 의원과 DC인사이드의 오프라인 간담회가 생각납니다.

    신나게 전여옥을 키보드로 까던 DC폐인들이,

    실제 전여옥을 대면하자 전여옥의 말빨에 눌려 찍소리도 못하고 결국 단체사진 한 장 찍고 돌아갔다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인데…

    키보드로는 신나게 이야기해도, 결국 실제 말할 능력은 되지 않았다는 데에서 쿨게이의 원조는 키보드배틀러… 그러니까 DC폐인들이 아닐지 싶습니다.

    꼭 그렇지 않도라도 뭐 비슷하게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2. 쿨게이는 누가 봐도 작은 s와 큰 s의 두명을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만 제가 옳게 읽었는지 확인은 해주지 마셨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3. 오타 발견 두번째줄 ‘노정묘 -> 소정묘’

    좌파라면 모름지기 사이비 보다는 딸깍발이에 마음이 가야…중학교때 교고서에서 이 수필 읽으면서 참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4. 그 미네르바는 이제 도미하여 경제공부를 시작하니 학자로 진화하는건가요? ㅎㅎ

  5. 보통 긴 호흡으로 자신만의 글쓰기를 하지 못한다
    ->이 부분에 감동 받았습니다. 디씨갤에서 가장 수준 낮은 갤러리가 몇줄 갈기는 글들만 있거든요. 커뮤니티 수준을 저는 글의 길이를 보면 대충 판단이 됐는데 님말을 들으니까 정확히 정리가 되네요. 보통 수준 낮은 커뮤니티들은 댓글수준도 안되는 글 찍 갈기고 가는게 전부더군요.
    그리고 싸이로 인간성 판단하는 법도 알아냈는데, 자신만의 글쓰기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충 싸이봐서 자기생각이 전혀 안담긴 싸이나 블로그를 보면 그 사람의 깊이를 대충 알 수 있겠더군요. 감사합니다.

  6. 내가 쿨게이인지 아닌지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은 자기 반성에서 나오니까요.

  7. 논객들은 소피스트들이 아닐까요? 반의 반이 정이라는 그럴듯한 논리에 휩싸인

  8. 이 스타일이 딱 전국시대의 글들이 보여주는 스타일이라는 직관이.. 다이내믹하고, 하여튼 까는데 쓰기 좋은 스타일입니다.

  9. 이런 용어들이 있었군요… 팩트골룸, 문서덕후라니, 표현이 절묘하네요.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인터넷이 자리잡으면서 오히려 글을 쓰고 전파하기는 쉬워졌다고 생각하는데, 글 자체의 완성도나 전달력은 인터넷이 없던-친숙하지 않던- 시절이 나은것 같네요. 글도 써봐야 느는데 대개의 커뮤니티에서는 긴 호흡으로 글을 쓰기가 쉽지 않은것이 사실..

    신조어도 배우고 저 자신의 졸필도 반성하고 갑니다. 이런 글을 쓰려면 하루이틀 급조된 공력으로는 안될것 같네요..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10. 쿨게이가 뭡니까 -_-;; 오랜만에 와서 글 보는데 좀 ;;

    제가 쿨게인지 팩트골룸인지 논객인지 뭔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글이군요 -_-;;

    좀 산만한 글이긴 하지만 잘 읽었습니다.

  11. 핑백: 歲寒時節
  12. 오타를 발견한 리플의 오타를 발겸한 리플의 오타

  13. 아저씨 글은 너무 어려워. 나처럼 주방에서 칼질이나 하는 부엌떼기 대전 촌놈에겐 소화하기 어렵다는 거지.. 누가 나대신 글들을 잘게 씹어서 형태를 알아볼수 없게/소화가 잘 되게 끔 해준다음에 내 입에 넣어 줘쓰면 좋겠어.. 내가 소화할 능력이 될때까지.. 옹알이하는 갓난쟁이였을 때 처럼 말이야.. 음훼훼훼
    나 완전 취했네. ^^

  14. 그게 DC인사이드 정치사회갤러리의 한계를 보여준 사건이지요.
    ‘절라디언’ ‘좌빨’ ‘뇌물현’ 타령밖에 모르는 딴나라당 주구들이거나
    뭔가 그들을 까고는 싶은데 내공은 후달리는 얼치기 쌈닭들 투성인데
    뭐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전여옥은 그래도 그 바닥에선 프로인데.
    어설픈 자들이 나서니 될 일도 안 되지요.

    더 큰 문제는 그 사건이 있은 후로 정치사회갤에서 틈만 나면
    밀리터리내무반갤러리를 테러한다는 점입니다.
    밀내갤이 반MB적이고 친노적인 성향이 있는 탓인지
    날마다 죽자살자 달려들어 물어뜯고 난리도 아니더군요.
    시대의 비극입니다.

  15. 잘 읽었습니다. 제 블로그에 담아갑니다.
    내 마음의 풍경에서 흘러들어왔습니다. ^^

  16. 반대합니다. 쿨게이를 검색하다 들르게 되었습니다.
    미네르바를 놓아버린 것은 그가 가진 경력과 외적 조건 때문이 아니라.
    그는 더이상 예전처럼 글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문에 동일인물인지 아닌지 의구심도 들구요.
    동일인물이든 아니든 그가 계속 글을 썼다면 대중은 그가 30대 고졸이라고 해도
    그를 믿었을 꺼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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