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뭘하고 먹고 살아야 할까

생명과학자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한단다. 부쉬 정권 때는 대학에서의 일자리가 줄줄이 도산을 맞더니, 이젠 제약회사의 일자리마져 사라지는가 보다. 한국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거의 대부분의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대학이라는 좁은 관문을 보고 죽도록 달리고 있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수가 없다.

강유원의 강의를 듣는다.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의 딸이 가진 현금자산이 6800만원이란다. 생각해본다. 내가 1000만원 대의 돈을 만져본 적이 있었던가. 없다. 그럼 난 도대체 뭘 하고 살았단 말인가. 내 친구들은 집도 사고 차도 사고 골프도 치는데, 나는 뭘하고 살았길래 통장 잔고엔 단돈 1000만원도 없을까.

오래전부터 생각해 본적은 있다. 그냥 과학동아에 들어가 볼까. 책이나 써볼까. 다 때려치고 기자나 되어볼까. 아니면 돈 많은 사람 꼬셔서 연구소나 차려볼까. 할 줄 아는거라곤 글 쓰는 것 밖에는 없으니 뭐 그걸로 밥벌어 먹어 볼까.

고민은 고민으로 끝난다. 이 바닥에 들어선 이상 양키들에게 인정 받는 성과도 좀 내보고 싶고, 당당하게 금의환향하고도 싶고, 그래야 내가 하고 싶은 일, 세상을 한번 뒤집는 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고.

또 생각해본다. 나보다 연구를 잘 할 수 있는 박사들이 더 많지 않을까. 그냥 나는 그 작업들을 잘 풀어주는 그런 일에 능한게 아닐까. 그러다보면 또 자존심이 뭉게지기도 하고, 그건 아니라고 도전해보고 싶기도 하고. 매트 리들리가 30대 중반에 나 같은 고민을 했던것 같다는 기억도 나고. 큰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었지 아마.

최근 몇달, 참 고민이 많다. 진지하게 조언 혹은 제안 해주실 분 없으신가요?

27 Comments

  1. 진지하게 여건이 되면 니트족을 꿈꾸고 있습니다. 하고싶은 공부하는덴 그게 제일 좋을듯 합니다. (제 상황에선)

  2. 프리터랑 착각했어요 ㅠㅠ

  3. 직종은 많이 다르긴 하지만 웬지 공감이 갑니다.

    <퀀트>라는 책에서 앞부분에 지루할 정도로 왜 필자가 물리학의 세계에서 결국 금융공학으로 빠지게 되었는가가 나오는데, 조교수 지위를 버리고 AT&T연구원을 거쳐 골드만삭스로 가기 직전까지 인생행로가 왜 그렇게 가슴에 와닿던지..

    위로는 못해드릴 망정 우울한 리플을 달아 죄송하군요. ;;;

  4.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인간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어떤 가치를 생산하여 시장에서 교환하면 벌 수 있습니다. 혼자하셔도 되고, 능력되시면, 그 가치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추고 노동자를 고용하여 이윤을 취하시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혼자 하실거면, 이왕이면 한명의 욕구보다는 가치를 대량 복제하여 다수의 욕구를 한꺼번에 채워주는 쪽이 더 낫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스타라고 부르지요. 생물학 계통으로는 리처드 도킨스가 눈에 띠는군요.

    이게 안되면, 고임금 노동자가 되는 것도 괜찮겠죠. 최소한 집사고 차사고 골프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이거말고는 현금자산 6800만을 만들기는 아무래도 힘드실 겁니다.

    우선 님께서 가장 잘 생산할 수 있을 것 같은 가치가 무엇인지를 먼저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정말로 현실화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정해진 프로세스를 따라 실천하시면 됩니다.

    이상, 농담이었습니다. ㅠ.ㅠ

    제가 보기엔 아무래도 책을 쓰셔서 출판하는걸 제일 잘 하실 것 같습니다만… 학계에 계시면 책내는게 더 경력에도 좋지 않을까요? 혹시 대박내면… 우리나라 대학들이 앞다퉈서 모셔갈지;;

  5. 생물과학도인데 김우재선생님도 그런 생각을 하신다니요…
    그냥 밥먹고 삽시다. 퇴직당할 위험이 있으신건 아니잖아요?
    ‘이 바닥에 들어선 이상 양키들에게 인정 받는 성과도 좀 내보고 싶고’ 이 한마디가 너무 와닿네요.

  6. 뻔히 아시는 얘기이지만 생명과학이 응용될수있는 산업이란 결국 의료산업 아니면 농축산업

    둘중 하나인것이 아닐까…. 라는것 까지밖엔 모르겠네요. [도움안되는 얘기만 써버렸다! 죄송 –; ]

  7. 저 역시 분야는 다르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기에 좀 찡하군요.

  8. 유사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저도 비슷한 고민을 합니다. 노력하다보면 길이 있겠지요.

  9. 전 어렸을 때 그림을 무척 잘 그려서 사람들이 모두 미술가가 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팝칼럼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밥줄이 걸려있으면 괴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았습니다. 돈벌이 때문에 내 자존심이 꺽이거나 내가 이룬 성취가 돈벌이로 폄하되는 일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혀 관심이 없는 분야를 직업으로 삼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분야에 가서 잘 할 자신이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냥 자본주의를 핑게로 그 ‘바닥’ 근처에도 가보지 않고 도망쳐 다녔던 것이죠. 우재 님은 이미 그 ‘바닥’에 계시니 양키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성과를 꼭 내시길 바랍니다.

  10. 고민은 누구나 있기마련이죠^^ 재산이 6,800만원이 조금 넘게 있는 저 역시 고민이 많죠… 13년 이라는 직장생활을 했건만 서울에 아니 수도권에 자그마한 집하나 있지 못하니까요 ~~ 하지만 상대적인 것 같네요! 인생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님께선 이미 하고싶은 그 가치를 쫒고 있지 않나요? 그것으로 기쁨이지 않습니까? 돈버는 것 조금 늦어도 될 것 같네요. 미국애들 기 팍죽이시기 오세요!!! 폼나게^^ 진짜 하고싶은 일을 한다는 것,,,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임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화이팅~

  11.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공유하신 용기도 대단하십니다. 제 경우도 미국에서 혼자 벌어 네 식구가 살다보니 자산보다는 liability 만 늘어가는 것 같아요. 물론 거기에는 비합리적인 소비도 무시할 수 없지만요. rich dad poor dad 라는 책 있잖아요. 그 책 읽어보니 완전히 왜 제가 그렇게 헤메며 사는 지 딱 들어맞더라구요.
    그런데 저같은 사람은 평생 돈을 못벌겠더라구요. 우아하게 돈버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거기다 돈을 벌려면 돈이 있는 곳으로 뛰어들어야 하는데 돈이 안되는 곳으로만 뛰어다니거든요. 자본주의 첨병 산업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마음속으로는 그 산업계의 풍토를 경멸하고. 블로그 한지 6년이 넘었지만 검색광고 한 줄 내 거는 것조차 마음에서 용납이 안될 정도니까요.
    결국 뇌를 다시 포맷하는 길만이 돈 버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재님 건투를 빌고 언젠가 우재님 같은 분이 금전적 문제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게 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원합니다.

  12. 아거님 말씀 감사드립니다. 돈도 벌고 바른 길도 가는 그런 두마리 토끼 함 잡아볼께요 ^^

  13. 남미의 어느 바닷가에 돈 없는 어부들이 삽니다.
    바다에는 고기가 지천이라 그들은 배고프면 고기를 잡아 옵니다.
    적게 잡힐 때는 그 다음날 또 나가야 할 때도 있지만
    많이 잡히면 한달 동안 고기를 잡으러 가지 않아도 됩니다.

    도시에서 어떤 사업가가 고기가 잘 잡히니 같이 수산업을 하자고 합니다.
    어부가 묻습니다. 그래서 뭐 하게요?
    사업가가 말합니다. 돈 많이 벌어 부자 되지요?
    어부: 부자 되면 뭘 할건데요?
    사업가: 경치 좋은 바닷가에 가서 낚시나 하며 놀렵니다.
    어부: 저희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

    우재님이 어부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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