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해지면 지는거다

내가 무슨 우석훈의 화두 ‘명랑’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게다가 본격연예블로거로 전환한다는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분을 위해 이런 글을 써야 한다는 게 이상하다는 것도 아니다. 왜 진지해지면 지는가를 좀 설명해보기 위해서 글을 쓴다.

쿨게이들의 가벼운 드립질에 대한 혐오로 가득한 내가, ‘진지해지면 지는거다’라고 말한다는 건 ‘진지해지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진지해지면 진다’라는 말은 ‘진지해지지 않으면 이긴다’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벼워져야 이긴다’라는 말도 아니다.

‘진지해지면 진다’는 말이 나온 맥락은 소녀시대에 대한 댓글 때문이었다. 내가 왜 거기서 그런 말을 했을까 한번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한윤형의 블로그에 가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스타리그에 대한 수 많은 글들이 보인다. 최근에 딴지일보에 올린 글은 더욱 치열한데 꽤 읽을만 하다. 나도 오래전에 ‘저그 최초 우승의 의미’라는 글을 쓴 적이 있어서 잘 안다. 그럼 한윤형이 안 진지할까. 얼마나 진지한데.

자 그럼 왜 진지해지면 지는걸까 생각해보자. 왜냐하면 그게 전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든 사안에 대해 매 순간 진지해지면 어떻게 될까 한번 생각해보자. 인간의 두뇌는 과도하게 집중을 하거나 가끔 쉬어주지 않으면 정말로 열을 받는 구조로 되어 있다. 뚜껑열린다라는 표현이나, 머리가 뜨거워라는 표현은 생물학적으로 참이다. 일단 신경세포가 작동하기 위해 전기신호가 필요하다는 점도 그렇지만, 세포 내부에서도 새로운 시냅스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스트레스 신호전달체계를 만들고, 이 과정이 대부분 열이 발산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렇다. 한줄 요약하자면, 진지해지려면 좀 쉬어야 한다는 거다.

게다가 요즘처럼 명박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에 쥐가 나는 시절에, 진지한 사회비평이 제대로 먹히지도 않는 이 답답함 속에, 24시간을 진지 모드로 살아간다는 건, 지는 거다. 뇌에 축적된 열이 제대로 식혀지지 않으면 그게 홧병이 된다. 홧병 나면 명박보다 먼저 죽는다. 그러면 명박 이후의 세상을 그려 볼 수가 없다. 그러니까 진지해지면 지는 거다.

그런 작위적 존재로 나는 소녀시대를 창조한거다. 한윤형이 스타리그를 어떻게 생각하는 건지 잘 모르지만(정말 좋아하는것 같기는 하다), 나는 스타리그를 모르는 지식인이 도대체 젊은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실감나게 해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심각하게 해본 적이 있다. 소녀시대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소녀시대와 스타크래프트와 일본만화를 모르고, 현재의 20대와 30대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건지 나는 상상할 수가 없다.

이 블로그에서 소녀시대가 보기 싫다면 안와도 좋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소녀시대를 언급하면서 문체 말고, 본질적인 면에서 안 진지했던 적이 있던가. 글의 제목만 읽고 내용을 평가해버리면 곤란하다. 대체로 다음뷰에서 들어오는 독자들이 그렇다. 다음뷰는 아예 제목 뽑기의 달인들이 모인 쓰레기 공간이 되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진지해지면 진다. 이기기 위해서 가끔 진지함을 놓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소녀시대를 통해서도 충분히 진지한 이야기의 장을 펼쳐 나갈 수 있다. 실상 강단 학자들의 위기는 그들이 소녀시대를 모른다는 데 있는 것인지 모른다. 정말 나는 진지하게 철학자와 텔레비젼의 관계를 생각해보곤 한다. 일상생활이 내 중요한 화두 중 한 쪽인 이상, 이건 그냥 우습게 넘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녀시대가 진지함의 방해물로 여겨진다면, 그건 편견의 산물이다. 그런 식으로 진지해지면 지는 거다. 속세를 떠난 중이 세상을 바꾼 적은 없다. 소녀시대를 떠난 학자가 세상을 바꿀리도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19 thoughts on “진지해지면 지는거다

  1.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전 제 블로그하다가도 경박한 드립질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가 있어서(…) 좀 반성도 되는군요.

    이건 딴소린데요. 한윤형의 블로그 갔더니 칼 폴라니 등이 들어간 이택광 비판글을 쓴 사람과의 논쟁이 하프마라톤사이즈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던데 사실 둘 다 진지하지 않은 건 아닌 것같아 보였습니다. 진지함의 스케일이 전혀 다른게 문제인 듯. 구경하면서 흥미도 더러 있었는데 나중엔 답답해지더군요.

  2. 안 그래도 그 논쟁을 좀 정리해보려던 참이었습니다. 내일이나 모레중에. 일단 그런 식으로 진지한 건 좋은 겁니다,.

  3. 핑백: My Eyes on You
  4. 마음대로 글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책임감은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는데 말이다. 응원보다 값진 비판이다.

  5. 저도 “소녀시대를 통해서도 충분히 진지한 이야기의 장을 펼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대 직장동료들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 아냐고 물었더니 전부 모르더군요. “광야”도 모르고 “아침이슬”만 들어본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작년 촛불 시위 때도 “< 임을 위한 행진곡>이 사라진 자리는 윤도현이 록 버전으로 부른 < 애국가>와 크라잉넛의 < 오 필승 코리아>가 차지했다”고 합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94470 강유원 선생님도 아오이 소라의 예를 들면서 사람들을 이어줄 ‘허브’가 중요하다고 했더군요. http://allestelle.net/resources/2009/06/06/1316 저는 군가풍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느니 소녀시대 “힘내!” 부를 겁니다. http://parxisan.egloos.com/4416455

  6. 소녀가 정치하는 시대가 되면 어떨까요? MB시대 말고 소녀시대… 나름 좋은 면이 있지 않을까

  7. 핑백: foog.com
  8. 진지해지면 지는거다 라는 말은
    여유를 잃어버리면 지는거다 라는 말로 해석했습니다.

    여유를 잃어버리면 굳어버리고 그러면 부서지는길밖에 남지 않죠.

    하지만 ‘진지하게’ 진지해지면 지는거다 여유를 잃어버리면 지는거다 라고 되뇌이면
    어쩌면 더 진지해지고 더 굳어버리는것 일지도 모르겠군요.

    예상치 못하게 진지함을 풀어버리는 문득 다가오는 청량감은 어디서 오는것일까요?

    의도를 버릴때 더 본질에 접근할수 있지만, 그걸 의식하면 역시 지는겁니다.

  9. 핑백: Anoxia Kim
  10. 저는 진지함이라는 게 ‘감정 몰입’이라고 봅니다. 어떤 거에 대해서 감정 몰입이 심하게 된다면, 그 몰입이 가끔씩은 다른 사람에게 반감을 주지요. 운동권의 몰입이라든지, 하는 사례들이 대표적이지 않습니까. ㅎㅎ 옛날에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게 있었는데 마침 블로그에 실어 논 거라서 트랙백 보냈습니다. ㅎ

  11. 진지하지 않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를 느껴요. 도대체 ‘뻘 소리’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웃음 조차 사실은 사회적 결계에 의해서 작동되는 데 말이죠… 쿨한 유머 뒤켠의 억압된 잠재적 유머라고 해야할까?? 아.. 진지한 뻘소리군요.. ㅎㅎ

    속세에 발을 딛고 살아야 하지 말입니다…

    아. 그리고 장교 제대해서 안 놀아주시려구요?? ㅋㅋ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