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동의보감과 유네스코, 그리고 과학

동의보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유네스코의 초대 사무총장이었던 생물학자 줄리안 헉슬리의 <유네스코의 목적과 철학>을 지인들과 곧 공동번역하기로 한 상태에서 이 소식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우선 나는 동의보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동의보감은 399년 전 출판되어 동아시아 공중보건의 향상에 크게 기여했으며, 그 방대한 분량과 체계적인 분류법만으로도 인류사에서 보기 힘든 대작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기우를 해본다. 유네스코의 S가 Science라는 걸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유네스코의 초대총장이 과학자였음을 잘 알지 못하는 이 땅에서, 이런 기우는 부질없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동의보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두고 “자! 이제 동의보감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으니 한의학도 과학이다”라는 식의 ‘한의학의 과학화’라는 섣부른 선동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만약 한의학이 과학이라면 400년 전의 서구의 자연철학자들의 저술들에서도 우리는 과학을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400년이 된 동의보감이 여전히 한의학의 주된 교과서로 쓰이고 있는 것이라면, 한의학은 과학이 아니다. 굳이 과학자들의 세계에서 교과서가 빠른 속도로 계간되고, 새로운 지식이 낡은 지식을 갈아치우는 행태를 분석한 토마스 쿤을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400년전의 저술이 여전히 유효한 분야는, 그것이 직접 우리 몸에 적용된다 해도 과학이 아니다. 또한 한의학이 과학이 아니라고 해서 저급한 것으로 취급될 이유는 없다. 서양의학이 생물학을 비롯한 근대과학의 성은을 입은 것은, 서양의학의 환원주의적 접근법과 근대과학의 방법론이 유사하기 때문이었지, 서양의학 그 자체가 과학이기 때문이 아니다.

의학의 학문적 성격을 한마디로 구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기술이 단순한 과학의 응용이 아니듯이, 의학도 단순한 자연과학의 응용이 아니며, 기술이 일종의 사회과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듯이, 의학도 그러하다는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footnote]이건 서양의학자 비르효가 이미 100년 전에 주창한 말이며 여전히 유효하다. http://bit.ly/hijEe[/footnote](예를 들어 강신익의 논문 <의학의 두 문화: 환원인가 구성인가>를 참고하라). 서양의학의 방법론에 자연과학적인 면모가 흘러들어간 역사는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끌로드 베르나르가 그의 책 <실험의학입문>을 저술하던 당시까지도, 의학에서 근대과학적 방법론을 찾아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베르나르는 그것을 철저히 고민했던 사람이다. 근대과학의 혁명기 이후, 모든 학문분야가 그랬듯, 의학에도 자연과학의 입김이 스며들었지만, 여전히 의학은 모든 것을 알고 사람을 치유하는 학문이 아니다. 사람에의 적용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하고, 사람이라는 복잡한 유기체를 다루는 의학은 자연과학과 같은 엄밀성에만 의존할 수 없다. 의학이 과학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들은 솔직한 의사가 아니다. 의학에는 자연과학적 성격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의학을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아니다.

서양의학이 이러한데, 한의학이 새로운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더욱 무지하다. 한의학은 과학이 아니다. 400년전의 교과서를 여전히 사용중인 한의학은 철학적 성격이 강한 학문체계다. 나는 한의학을 경멸하지 않는다. 다만 한의학의 성격과 자연과학의 성격을 구별하지 못한 채, 마치 한의학이 과학이 되어야만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몇몇 어리석은 학자들의 목소리를 경계할 뿐이다. 한의학은 그 자체로 가치 있다.

다만 수 천년의 경험이 어떠한 식으로든 조직되어 있는 한의학의 경전들을, 진정 과학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증상과 처방 그리고 그 효과에 대한 새로운 분석과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어떤 증상에 대해 어떤 탕재를 처방했고, 그것이 특정한 형질의 개인에게 어떠한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한 통계적 종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한의학은 이론의 독단으로 점철된 철학의 일종, 그 이상이 아니다.

근대과학의 승리는 이론의 독단으로부터 측정량을 구출해낸 세속화의 역사에 있다. 그리고 서양의학은 그 과학의 세속화 역사를 경험하며 그 옆에 서 있었다. 한의학은 그렇지 않았다. 만약 한의학이 진정 과학이라는 그 이름으로 불리고자 한다면, 이제 그 시작을 알릴 때다. 나는 침의 효과를 믿는다. 그리고 자연과학적 방법론이라는 인류최대의 상식적 분석활동의 힘도 믿는다. 그렇다면 이제 그 두가지를 조합해 볼 때다. 그 시험을 통과했을 때, 한의학은 세속화될 것이고 그제서야 세상은 인간의 생리학적 활동에 새로운 면모가 존재했음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한의학이 해야 할 일은, 지나치게 많은 이론들을 하나하나 측정량으로 검증해나가는 것이다. 그것만이 한의학이 새롭게 탄생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소녀시대+한의학'으로 검색하니 이 사진이 나온다. 이유는 모르겠다. 응?

30 Comments

  1. 한의학이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나요?
    ‘과학적인 면을 어느정도 가진다’라고 하면 타협의 여지가 있을 지 몰라도 단정적으로 ‘과학이다’라고 말하면 이건 정말…

  2. 새로운 형태의 과학이라다라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일론이라는 태그로 검색을 해보세요.

  3. 그렇군요…
    그런 분들은 주로 과학이라는 단어 앞에 수식어를 붙이는 것을 좋아하나 봅니다. 갑자기 ‘정신분석은 주체의 과학’이라고 주장하시는 분이 생각나는군요.

  4. 오랜만에 쉬운(?) 글이군요. 저 사진이 왜 소녀시대+한의학 검색에서 나오는지 제가 알아냈습니다. 저 사진이 “한의신문”의 기사에 있더군요. 그냥… 그렇다구요. ;;

    그런데 사진의 처자는 누구인가요? 전 티파니를 좋아합니다. 그냥… 그렇다구요. ;; (흠… 이거 유행어로 밀어도 될 듯… 응?)

  5. 그런 사람들은 상당히 영악해요. 과감하고 저돌적인 창조과학자들보다 더.

  6. 저건 유리 입니다. 헬로베이비에서 요즘 ‘윤율맘’으로 각광받는 윤아와 함께 나오는 그 유리이자, 소원을 말해봐의 다리치기에서 갑자기 앞으로 걸어나오는 역을 맏은 그 유리이자, 아저씨들이 상당히 좋아하는 그 유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유리는 별로. 티파니는 막상 보면 안 이쁠것 같아요. 응? ㅋㅋ

  7. 우리나라 과학계가 새로운 것을 많이 잉태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너무나 분위기가 경직되어있기 때문이라던데…

    암튼, 님의 말씀과 주장은 타당하나… 왠지 고리타분하고 꽉ㅡ막힌 듯한 답답함이 느껴지는군요~ ^^

    너무 배수진을 치고서 상대를 밀진 말아주시길~ ^^

    요즘은 융합이 대세라면서요~ ^^

    물론, 그렇다고 한의학을 과학이란 범주까지 넣기엔 좀 무리가 있습니다만! ㅡ,.ㅡ

  8. 공감&동감
    개인적으로 한의학이 양의학에서도 인정할 이중맹검 실험법을 고안(?)해서 각 치료법의 효과를 통계적으로 부석해서 21세기형 신동의보감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더불어 효과적인 약재의 경우는 성분분석을 기본으로 중금속 걱정없는 제약기술을 새로 연구했으면 한다능… 한의학은 현재 과학적으로 보이길 원하는 도술이 된 것 같네요.

  9. 과학계의 경직은 유교적 권위주의에서 오는 실험실 문화때문이지, 이런 논의의 경직성 따위가 아닙니다. 범주를 혼동하지 마시길.

  10. 전 한의대생인데 정말 공감가네요ㅎㅎ한의계는 현재 과학화 노이로제에 걸려있는듯…
    물론 한의학 자체만으로 효과는 있지만 그 기전을 이해하기 힘드니 점점 외면받는것 같아요
    한의학도만 이해할수 있고(이해하는 사람도 있고 그저 믿는사람도 있어요) 환자나 외부사람이 보면 이해가 안되니…미신과 한의학이 분리되지 않아서 슬픕니다.
    빨리 증상 처방 치료의 연관관계가 밝혀져서 단순히 믿는차원을 넘어서서 일반 사고를 가지고도 이해할수 있는 수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잘 보고가요~

  11. 글 잘 읽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한의학에 science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기를 쓰는 건
    과학에 대한 일종의 열등감 때문입니다.
    조선에 science라는 건 근대 시기에 ‘계몽’의 이름을 걸고 들어왔으니까요.

    그게 1950~60년대 한의사들을 거치면서
    ‘한의학도 science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한의학도 science다’라는 식으로 주장하게 되고…
    그렇게 되는 거죠.

    우선 한의학 그자체만을 제대로 소화하는 것이 먼저다 라고 생각하고 공부하는 분도 많기는 해요. 근데 그 경우 한의학을 무슨 신앙처럼 여기게 되는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사실…
    의학은 과학이다라고 말하는 의사들도 웃기고
    한의학은 과학이다라고 말하는 한의사들도 웃깁니다.
    본문의 글에서 언급된 것처럼 각기 다른 이유에서요.

    결국 사람 몸에 적용되는 것이니깐
    ‘계몽’과 같은 ‘감정적 호불호’에서 비롯되었음이 분명한 주장은 좀 누그러뜨리고
    일단 인간의 몸에 대한 최선의 가능성을 뽑아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글 내용이 참 공감이 돼서 댓글 남겨요
    아, 저는 한의사입니다 ^^

  12. 저도 궁금해서 검색해 봤습니다
    한의신문에 난 기사에 딸려있는 사진이더군요.
    기사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F.T아일랜드&소녀시대 시트콤 출연

    이재진 권유리 최수영 ‘못 말리는 결혼’서 삼각관계 열연

  13. 결국 유물론이냐 아니냐의 문제겠지요. ‘인과 관계의 유물론적인 논리 적합성’을 존중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이기도 하구요. 서양의 의사들이 대부분 기독교 신자였지만, 의학의 논리에 ‘기독교’가 개입하는 것을 철저히 배격했지요. 하지만 한의학은 아무리봐도 물질적 인과관계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고, 그래서 결국 한의학은 망할겁니다.

  14. 솔직한 의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관념을 이제는 떨쳐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15. 정보에 감사. SM은 소시를 너무 혹사시킨다능. 적자라서 할 수 없는 일이겠으나..

  16. 한의학에도 유물론적 요소는 있지요. 문제는 관계를 정량화하는 데 있어. 지나치게 추상화된 관념에 의지한다는 게 문제가 될 겁니다. 기독교가 망하지 않듯 한의학도 망하지는 않을 겁니다. 저는 그런 세상은 다양성의 관점에서도 바람직 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저 지금보다 세력이 줄겠죠. 덕후스럽게 그렇게 가게 될지도 모르지요.

  17. 그런데 소녀시대와 한의학을 함께 검색한 이유가 뭐지?

    난 ‘수영’에게 한표…

  18. 여긴 아직 초져녁입니다. 후후. 아직 일요일이란 말이지요. 후후

  19. 그건 니가 요즘에 내 블로그를 자주 오지 않기 때문이지. 난 무조건 윤아.

  20. 유리가 평소에 마를 갈아먹는등 건강식품을 챙겨먹는것이 한의학~의 이유가 아닐런지 ㅎㅎ

  21. 누군가 동의보감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사실에 대한 포스팅을 해주시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김우재 님께서 잘 정리해 주셨네요.
    저도 김우재님과 (아마도) 비슷한 환경에서 유사한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괜히 친한척 해봅니다.

    한의학 특히 탕재로 들어가게되면 참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이걸 약으로 봐야하나 아니면 식품으로 봐야하나…

    물론 침도 마찮가지이구요.
    물리적인 자극을 주는것인데 과연 무엇을 건드리는 것인지…

    오랜 경험으로 축적된 내용이기에 한의학 자체가 소중하긴 합니다만 그걸 수치화 계량화 시키지 못했던 것이 아쉽지요 (소개되는 명의들을 보면 결국 ‘음식맛은 손맛이라는…’).

    하지만 수치화 되지 못한것들은 가끔 myth로 남게되고, 사실 이것이 주는 신비함이 가장 위험하다고 봅니다.

    여기서 야매 약장수들이 탄생하게 되는것이 아닐까 싶네요.

    언론에서 자주 소개되는 ‘아무런 처방없이 풀만먹고 암을 치료했어요’ –> (사실은) ‘채식도 했고’ 가 맞는 말이겠지요, ‘깨끗한 공기를 마시기위해 산을 찾았고, 그 덕분에 질병에서 해방되었어요. –> ‘아침 저녁 좋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산책도 했고’ 겠지요?’ 이런 이야기들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관념을 심어주기에 충분한데, 여기에 대한 반성은 없고 오히려 좋은 기사라는 소리가 나오더군요 (여기에선 수구언론이건, 진보언론이건 아무런 차이점이 없는게 신기합니다).

    이런 섹시한 기사와 제목이 사람들에게 부적절한 관념 (활자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된 ‘그냥 그대로 믿어버리기’) 을 심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전 두렵네요.

    p.s.; 가시오가피즙을 산에 올라가 직접 나무에 생채기를 내고 빨아 드시는 분들의 사진을 본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부디 행운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22. 똑같음….이것은 일본이 중국에서 731부대라는 것을 만들어서 포로를 대상으로 한 실험으로 과학적으로 임증 되었음…그리고 가장 편하게 자는 자세는 심장을 위(오른쪽)로 자는 자세임…심장을 밑(왼쪽)으로 자는 자세는 자기 몸이 아프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세고…완전히 얻어져서 자는 자세는 자위하고 싶은 자세임..똑바로 누워자는 자세는 옛날 공자가 말하기를 그 자세는 시체가 누워자는 자세라고 했음..마지막으로 적어도 한의학에서는 엉덩이에 넣어서 머리까지 통하는 침은 없음..만약(if) 있다고 주장하는 한의사가 있다면 그 한의사는 100% 가짜임…

  23. 상당한 뒷북이 되겠습니다만, 우재 님의 표현 방식인 ‘한의학의 세속화’는 사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한국의 ‘젊은’ 한의사들이나 한의대생들이 아주 선호하는 구호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세속화를 원하면 원할수록 의학계의 지론인 의료 일원화에 한층 다가서는 꼴이 될 터인데, 의학계는 이러한 세속화를 오히려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저로선 답답하게 느껴질 따름이며, 한의학계는 이러한 세속화가 어떠한 사회적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보이지 않는 듯해서 역시 답답하게 느껴질 따름입니다. 양쪽 모두 동서양 의학의 근대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폐단이라 생각합니다.

    <동의보감>이 씌어지던 조선 중기의 한의학이 오늘날의 한의학과 다른 매우 이질적인 것임은 -장담컨대- 양식 있는 한의사라면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일 겁니다. 그만큼 이미 한국의 한의학은 또 다른 의미에서 세속화가 진행 중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현재 한국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의학 vs 한의학’이라는 고상한 듯 보이는 학문적 담론의 영역이 아니라, ‘의사 vs 한의사’라는 지극히 현실적 담론의 영역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젊은 한의사들의 세속화, 즉 과학화 주장이 앞으로 어떤 식의 결과를 나타내게 될지에 대해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아주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다만 그 사이에서 자연스레 치료적 혼란에 빠지게 될 국민들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24. 실제 환자를 보는 임상의사 입장에서는 한의학이 과학이라고 주장하시는 분이 적어도 그에 걸맞는 노력이라도 해 주면 좋겠습니다. 현대의학 역시 통제 불가능한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인지라 과학이라고 부르기 어려우나 과학적인 방법론을 통해 증명을 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어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또한 새로운 의학적 발전의 기초는 자연과학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런 변화의 장점이라면 좀 더 객관적인 증명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한의학은 그런 면에서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현실적으로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은, 한의학의 안정성에 대한 의문입니다. 한의학 이론이 과학이 아니라고 해서 그 이론이 틀렸다거나 한의학 치료가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이론이 맞다거나 효과가 있다는 증명도 사실상 어렵죠. 그러나 이것 보다 더 문제는 그 안정성에 대한 검증 역시 안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쓰이다 이제 더 이상 쓰지 않는 한약재들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아는데 대부분 현대의학에서 인체에 해롭다고 알려진 성분이 들어 있다는 것을 자연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성분을 분석해 얻어낸 결과죠. 한의학에서 이루어지는 치료들이 모두 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 것이고, 더군다나 새로운 치료 방법이 이런 과정 없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도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고민은 순수한 학문적인 고민이 아니겠으나, 의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상 개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어느 부분에서는 이루어지고 있는 변화겠으나 이런 변화에 대한 인식이 한의학의 전반적인 인식은 아닌 것 같고 그 속도도 더딥니다. 이런 측면이 의사로서 한의학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을 수 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25. 변수끼리의 상관성을 확정하는 가장 정교한 방법은 현대 과학이 분명하겠죠. 그러나 그런 실험적 과정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도, 한의학은 변수간에 상당히 객관적 상관성을 획득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완벽하게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일반인들의 효율적인 사고 방식을 ‘휴리스틱’이라고 정의합니다. 예를 들면, 복잡한 함수를 쓰지 않고도 거의 효율적인 가계운용을 하는 아주머니들의 사고, 복잡한 탄성과 반발을 이해하지 않고도 당구공을 ‘느끼고, 이해하는’ 당구 선수들의 사고와 같은 것이 휴리스틱의 대표적 예입니다. 한의학도 이와 마찬가지로 약 A를 투여했을 때, 어떤 질환들을 개선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휴리스틱들이 극도로 고도화 된 예입니다. 물론 한의학이 완벽한 실험적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바이어스(편차)’를 내포하고 있을 것임이 예측되지만 바이어스의 크기를 효율적으로 제어함에 따라 감히 과학에 유사 근접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완벽히 과학적인 실험만이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은 아니다라는 개인적인 견해이므로 너무 나무라지는 마십시오. 물론 한의학이 기존의 결론들을 끊임없이 검증받아야 한다는데는 100프로 동의합니다.)
    400년전의 학문이 발전도 없이 쓰이는 것을 의심하셨는데(방약합편->동의수세보원->현재까지 여전히 발전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 지금으로부터 400년이 지나면 미래의 과학자들이 양자역학을 부정해야만 한다는 뜻입니까. 예수가 태어나던 시절부터 이미 존재했던 경락이나 한방이론이 1600년이나 발전하여 완성된 동의보감일진데, 양자역학에 비견은 못하더라도 뉴턴역학에서 양자역학에 버금가는 발전은 해왔던 한의학입니다.
    제가 종교를 비판할 때 곧잘 저지리는 실수는 그 종교에 대한 최소한의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저의 기존 상식을 활용하여 종교를 비판하는 것이었습니다. 님의 지식은 존중하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시장에 떠도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한의학을 비판합니다. ‘소문’을 믿지 않고, 사실에 근거하는 소크라테스의 정신은 현재에도 유효한 것이라 생각하면서 잡설을 이만 줄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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