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존중

가끔 직관은 정확하다. 김영건 선생님의 답신을 읽으며 마음을 편다. 좀 더 넓은 논의가 가능했고, 마음을 열어두면 대화가 가능한 철학자들은 얼마든지 있으리라 믿는다. 여전히 노정태는 ‘나의 자랑질’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거두지 못하고 비꼬는 것으로 분을 삭히려 하지만, 신경쓰지 않겠다. 건투를 빈다고 했으니 이제 김영건 선생님과 내가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대화를 시작하려 한다. 천천히 무르익는 논의가 될 수 있기를. 안 그래도 사이언스타임즈의 <꿈의 분자>를 마무리 하고, 새로운 시도를 준비중이다. 그 논의들은 김영건 선생님과의 대화가 가능한 지점에 서 있다. 가제는 “코스모폴리스, 과학적 사회”인데, 아마도 과학자이면서 사회변혁을 꿈꾸었던, 과학자이기도 철학자이기도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다룰 것 같다. 다른 분들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1. 아마도 전부는 아니겠지만, 우리의 <인문학자>, 혹은 <철학전공자>들은 물리적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공부를 별로 하지 않는 주제에 마치 대단한 것처럼 <늙은 척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 비유적으로 써놓아서 무엇을 지칭하는지 별로 명백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2. 몇몇 포스팅을 보면서 오해될 수 있는 측면을 수정한다면 더욱 논점이 분명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가령 한 탁월한 개인이 과학자인 동시에 철학자가 될 수 있지요. 그를 과학자로 부를 것인지 아니면 철학자로 부를 것인지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3. 진짜 개인적 생각인데, 아주 소수의 철학과만 남겨 놓고 다 공중분해 시켜 각 개별학과로 철학전공자들을 보내야만 아주 미약하게 철학이 어떤 기능을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학부과정에서는 철학 텍스트보다는 다양한 텍스트를 읽고 대학원 과정 정도에서 철학을 전공하도록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도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서먹함이 많이 줄어들 수 있겠지요.

4. 너무 성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기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갖는 것을 보면서 더욱 풍부한 사유가 가능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사유를 기초로 해서 있는 강단 철학을 공박하고 철학에 자꾸 무엇인가 요구한다면 자폐증이 치유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치유되는 사람은 치유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살고. 너무 빠르게 변화될 것을 기대하면, 신경질만 납니다.

5. <철학은 과학을 기초로 탐구되어야 한다.>는 주장, <철학은 사라지고 과학이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 <철학의 자율성이 과학과의 연관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라는 주장들이 <그 망할 칸트> 때문에 명백하게 구분되지 않은 측면도 있습니다.

[출처] 답신 1|작성자 풍경

12 thoughts on “인간적인 존중

  1. 알렙님의 블로그에도 답글을 남겼지만, 노정태씨는 ‘철학을 하는 것’을 ‘철학에 대해 공부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고 더군다나 ‘철학하기’보다 ‘철학에 대해 공부하기’를 더 우위에 놓는 이상한 자기 모순에 빠져버린 것 같아요.

  2. 한 분야에 입문하는 이가 자신의 학문에 깊이 빠져드는 것을 뭐라고 탓하기는 그렇습니다. 다만 거기에만 빠져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엔 노정태씨가 지닌 위치가 지나치게 큽니다. 그래서 비판도 했던 것이고. 하다보니 흥분해서 비난도 했던 것이고. 응?

  3. 공부하는게 우위라… 망한 학문인가요?

  4. 여담으로, 김영건 선생님의 문체는 참 차분한 호소력이 있고 전달하는 바가 명료히 보이도록 하는군요.
    우재님 새로운 연재글 기대합니다!

  5. 사이언스 타임즈의 연재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미르 이야기부터 애독자입니다. ^^
    배울만한 스승을 찾고 언제나 노력하시는 모습을 배우고 갑니다.
    우재님을 보면 연구자로도, 글쓰는 것으로도 너무 높아보여서 저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늘 느끼게 되네요. (…)

  6. 이번 논의를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으로 참 답답함을 느낍니다. 노정태라는 한 인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지만 그를 대하는 김우재님의 태도가 아무래도 너무 지나친 것 같습니다. 십년이 넘게 눈팅으로 살아아오는 동안 ‘모르면서 깝죽대지 마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 블로거를 본 적이 없는데, 유독 노정태의 그런 투의 말에 당사자도 아닌 다른 사람들이 과도하게 태클을 걸고 있는 것이.. 혹시 노정태님의 말대로 패거리문화가 아닌가 의혹이 들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평소에 과학도들에 대해 반감을 표하며 인문학을 사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한 철학 전공자 분도 백기를 들고 제발로 적군들(?)을 찾아다니며 같이 물타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이런 인터넷문화에 참 회의가 들기도 하고요. 김우재님의 노정태님에 대한 감정은 예전의 글들에서도 줄곧 느낀 바지만(혹시 내가 모르는 사적인 원한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영건님의 권위에 굴하는 게 아닌 자발적인 마음으로 말입니다. 눈팅일 뿐인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데 대해 주제넘은 짓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글 깨나 쓰는 제 잘난 맛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치기어린 싸움보다 주제에 집중하는 생산적인 논쟁을 보고싶어하는 관전자의 권리(?)를 인정해주시면 고맙겠네요.^^

  7. 아이고..애독자시면 거기에 댓글도 좀 남겨주세요 ^^ 로그인후 댓글이라 좀 불편은 하실거라능..

  8. 제가 잘 흥분해서 그럽니다. 죄송할 따름입니다. 안그래도 생산적인 일들을 좀 해보려고 합니다. 하고 있구요. 그냥 흥분하며 흥분한대로 살고 그래왔습니다. 실은 블로그에 글을 이렇게 쓰면 뭐하나 그런 생각도 들고. 그래도 쌈질은 꽤나 사람의 전투력을 올려주지요. 그런 의미로 봐주셔도 괜찮다는 생각을 합니다. 뭐 제가 인덕이 부족한겁니다. 그건 어쩔수가 없지요. 요즘 선덕여왕의 비담을 보며, 어째 쟤는 나랑 비슷해라는 생각을 한답니다. 저도 200명을 위해 1명 희생할 수 있거든요.

  9. 제 얘기를 하신 것 같은데 일단 저는 철학전공자라고 불릴만한 자격은 없구요.

    애초에 제가 알레프 님 블로그에 달던 덧글들은 처음에는 “알레프 님이 아이추판다 님을 옹호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노정태 님이 언제나 그렇듯 상대방을 찌질이 집단으로 치환시켜 버리는 걸 보고 좀 어이가 없어서 같이 시시덕거린 상황이 되어버렸군요. 그거야 온라인게임 덕후들이 레벨 올리듯 적군을 찍어내는게 특기인 노정태 님의 의사소통 능력을 탓해야지 어쩌겠어요. 기본적으로 만일 이분들이 ‘패거리’라면, 전 거기에서 방외인입니다.

    그리고 노정태 님이나 아이추판다 님의 글을 제가 직접 읽어보지는 않았는데…노정태 님 입장은 틀렸다기 보다는 지금까지 자기가 지지했던 아이추판다의 입장을 오늘에서야 비판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라캉 척살 논쟁에서 공조를 취했던 아이추판다-노정태 양자 간의 ‘합의’를 처음부터 다시 들춰내며 싸워야 할 지경이 되었던 것 같구요. 그 사건 때 (비록 부적절한 짓을 많이 했지만) “인문학 텍스트는 그런 식으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포지션을 취했던 제 입장에서는 노정태 님이 스스로를 철학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하는 상황이 어이없어 보일 수밖에 없겠죠. 시간이 많았다면 저도 논점을 정리해 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블로거는 쌔고 쌨지만 그 블로거가 남을 무시할 만한 합당한 역량 혹은 근거를 가지지 못했을 경우 까였던 것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네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