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90년에 초판이 나온,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비주류의 과학사가들에 의해 기획된 <Companion to the History of Modern Science (Routledge Companion Encyclopedias)>의 제 2장 “The HIstory of Science and the Working Scientist”을 번역한 것이다. 저자는 존 R.G. 터너(John R.G. Turner)라는,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영국의 진화생물학자다. 요즘 한겨례 사이언스온에서 ‘과학과 제국주의’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진행중이다. 곧 마무리가 되는 시점인데, 우연히 터너의 글을 발견한 것은 커다란 행복이었고, 따라서 기꺼이 번역을 감내하기로 했다.현장에서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으로 과학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첫째, 이런 작업은 과학자에겐 거의 불가능하다. 터너의 말처럼 과학자들이 역사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훼손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방식의 과학에 대한 이해가 어쩌면 과학이 작동해온 미덕 중 하나를 훼손하게 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무지막지하게 단순한 방식으로 과학을 이해해야만,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것인지도 모른다. 이건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다.

둘째, 과학학자들에게 현장에서 작동하는 과학을 이해시키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다. 아마 그들은 영원히 과학의 본모습을 알지 못할 것이다. 도대체 예술가가 예술에 대해 느끼는 열정과 고민을 어떻게 미학자 따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다. 과학학이라는 걸 한다는 학자들의 나이브하고 게으른 지적 태도로는 절대로 과학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그저 대강의 스케치도 못하고 한 귀퉁이나 멋대로 그리다가 나자빠지게 될 것이다.

그럼 현장의 과학자에게 과학이란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할까? 터너가 과학을 ‘우주의 버스 시간표’로 비유하듯이, 이 문제에 대한 간단한 대답은 존재할 수가 없다. 터너는 이 글을 통해 과학사와 현장 과학자의 관계가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제국주의와 과학의 관계를 다루면서 나도 요즘 헛소리를 하고 있지만, 그건 한국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과학사의 역할은 이러해야 한다는 주장에 불과하다. 만약 한국에서의 과학사가 내 소원처럼 그 소명을 다하게 된다면, 그 이후엔 나로서도 과학사가 현장의 과학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터너의 말처럼 과학사란 그저 과학자의 취미 정도나 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터너의 말처럼, 이에 대한 확실한 답은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

이 장문의 글을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읽는 이들이라면, 여기서 많은 통찰을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젠 지겹다. 호킹이 신에 대해 뭔가를 지껄였다고 난리 버거지를 떠는 언론도, 도킨스가 신을 모독했다며 종교전쟁이랍시고 지적 개지랄을 떠는 꼴도 지겹다. 역사적 과학철학이라는 헛소리도, 통섭이라는 헛소리도 마찬가지다.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로 욕을 먹어 싸다. 도대체 전세계에서 이렇게 조폭처럼 단순 무식한 과학자 집단이 어디에 있을까? 지들이 누려야할 권리도 못찾는 이런 무지한 집단을 구제해줄 필요가 있을까? 나는 이제 선을 그을 것이다. 확실히 선을 그으려고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창조과학에 미친 광신도들은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 평생이 지나도 이 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도킨스 오빠에게 미쳐 있는 얼빠진 과학자 풋내기들도 이 글을 읽지 마라. 나는 창조과학자들보다 과학을 무슨 전가의 보도처럼 마구 대중에게 휘두르는 너희들이 더 가증스럽다. 과학학이라는 학문을 진지하지 않게 공부하는 이들도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 특히 과학사회학자들은 이 글을 읽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한국에서 과학이라는 활동을 머튼이나 라투어의 손톱만큼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과학사회학자를 본 일이 없다. 마지막으로 혹여나 과학학을 한다는 이들이 이 번역문을 인용하게 된다면, 당신들의 양심에 맞추어 성실히 인용구를 달길 바란다. 내가 알기론 이 책을 제대로 읽은 한국 과학사학자들도 없으며, 과학자로서 역사를 고민하는 이들을 진지하게 읽어본 과학사가들은 한국에 없다. 특히 과학학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논문 표절을 허구헌날 논문을 읽을 때마다 발견하는 나로서는, 그 집단의 지적 양심을 믿을 수 없다. 베끼지 마라. 인용하면서 내가 어리다는 이유로, 과학자라는 이유로, 당신들의 적이라는 이유로 원문을 인용할 생각이라면 차라리 그리해라. 당신들은 학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번역에 거의 12시간이 소요됐다. 밥도 굶고 한 걸음에 달렸다. 피곤하다.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 뿐 아니라 과학사 및 과학철학, 과학사회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각 문장은 대단히 함축적이며, 때로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려울 것이라 생각되는 부분에는 역주를 달아 두었지만, 더 궁금하다면 각자 알아서들 공부하시기 바란다. 인터넷이라는 훌륭한 무기를 놔두고, 맨날 게으르게 나에게 툭툭 나이브한 질문이나 던지는 이들의 태도에도 이젠 신물이 난다. 제대로 된 질문을 할 능력이 없으면 그냥 나를 무시하던가, 공부해라. 적어도 난 그렇게 해왔다. 역주는 모두 내가 쓴 것이다. 원문엔 주석이 전혀 없다.

2010년 11월 10일. 새벽 1시 33분. 초파리 한마리가 모니터 위를 어슬렁 거린다
과학사와 현장의 과학자


존 R.G. 터너(John R.G. Tyrner)

현장의 과학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관련되어 있는 한, 과학사와 현장과학자의 관계에 대해 단순 명료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속의 유혹을 받지 않고, 과학적 방법론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수단이라는 것에 대해 확신 없이, 혹은 과학자의 성공적인 노력이 세계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 있어 크게 기여한다고 확신하지 않거나, 따라서 그들의 기획이 과거에 있었던 그 어떤 것들보다도 진보한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채로, 과학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가 있다면 그는 뭔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현장의 과학자들은 역사와 관련된 주제들에 관심을 갖는 학자들을, 지적으로 허약해진 것으로 간주하는 버릇이 있다. 즉, 과학사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란 현장에서 물러나서 과학적 재능이 거의 남아 있지도 않은 나이 든 과학자들이 퇴역 후에 잔디 밭에 누워서 하는 취미정도로나 여긴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들을 경멸적인 어투로 그런 과학자들을 ‘폐학기(philopause)'[1]라고 부르곤 한다. 오래된 이론들은 맞거나 틀리다. 그것이 맞는다면 그걸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고, 틀렸다면 거기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중심적인 과학자들의 역사에 관심은 최근에 논쟁이 되는 주제들에 관해 종설논문(review)이라는 형태의 글을 쓰는 정도 이상으로는 절대 확장되지 않는다. 과학은 예술이나 인문학과는 달리 최근까지도 과학 활동을 직접 수행하는 이들에 의해서만 비판이 이루어져 온 분야이다. 그 바깥에서 과학에 대해 트집을 잡는 기생충 같은 간부 집단은 없었다[2]. 물론 과학자들이 충분히 늙거나, 유명해지거나 충분히 고집불통이 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들 자신의 역사를 쓰기도 했다.

이는 과학자들이 취해야 할 이상한 태도라고 여겨질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때로는 이러한 행위가 그들에게 지적 속물이라는 비난의 여지를 남기기도 하고, 자신의 분야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게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창조적인 예술이 언제 냉정하고 객관적인 (예술에 대한) 역사적 이해 덕분에 진보한 적이 있었는가? 목수의 역사를 알면 더 좋은 선반을 만들 수 있는가? 모자르트와 말러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갖추면 더 좋은 교향곡을 작곡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작곡이라는 행위가 반드시 음악사 속에서의 위치를 이해함으로써 개선되는가? 역사가들은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과학자가 과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언어학적으로 만들어진 환상에 불과하다: 과학자들은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물리적 우주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다[3].

과학자들이 얼마나 많은 과학사의 정보를 알고 이해하고 있느냐는 문제가, 과학사회학을 공부하는 박사과정 학생들의 논문주제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 자신의 분야의 역사적 발전경로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고, 베이컨으로부터 이어지는 과학의 발전경로에 대해 텔레비전, 혹은 쾨슬러(Koestler), 브로노프스키(Bronowski) 등의 유명한 과학자들로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역사적 자각은 아마도 특정한 과학분야에서는 더 중요할지 모른다. 다루는 주제 자체가 역사적인 특성을 지닌 분과는 그 분야의 학자들이 역사에 좀더 관심을 기울이도록 만들지 모른다. 예를 들어, 진화생물학자들이 다른 분야의 학자들보다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아마도 찰스 다윈과 같은 환상적인 인물에 의해 진화생물학이라는 분야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완전히 지배되고 있다는 점이 이들을 역사애호가로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학문의 성격 자체가 역사적인 이런 극소수의 학문 분야에서는,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작지만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고대의 혜성과 초신성에 대한 기록들을 가지고 핼리혜성의 주기에 대한 계산을 수행했던 핼리(Halley)와 천문학자들, 혹은 최근의 게자리 초신성이 중국의 고대 폭발 기록으로부터 연구된 사례들이 자주 거론된다. 오래된 기온에 대한 기록들은 장기간의 기후 변화를 추정하는데 이용되어 왔고, 이산화탄소에 의한 온실효과나 지구 온난화와 관련되어 중요하게 다루어 지고 있다. 더 기발한 착상은 티코 브라헤의 온도 기록과 당시의 항해 기록들을 가지고 스페인 무적함대의 좌초가 일어난 해의 날씨 지도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역사생태학과 생물지리학은 생물 종의 변화라던가 외래종이 새로운 서식지에 적응하는 정도를 도식화해서, 예를 들어 영국에서 토끼의 생태적 위치가 변화해간 과정을 연구한다. 진화생태학으로 역사적 풍경을 종합하려는 시도는 바다달팽이 집단의 진화를 재구성할 수 있게 만든다. 물론 과학자가 과거의 자료들을 들춰서 자신의 연구를 수행하려고 할 때, 과거의 자료를 보는 방법 -예를 들어, 과거의 온도계가 작동한 원리를 아는 것- 을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는 있을지 몰라도,이러한 시도로부터 역사학의 방법론과의 긴장관계가 형성될 이유는 없다.

과학과 역사학의 방법론이 충돌할 때는 역사가 (과학에 대한) 해석적 비판을 시도할 때 일어난다. 과학자에 의해 쓰여진 ‘과학적 역사(Scientific history)'[4]는 영웅신화가 인간이라는 종족을 위해 봉사하듯이, 과학자라는 종족을 위해 봉사하는 용도로 쓰인다. 초보자, 대학생, 그리고 대학원생들에게는 어떤 조상을 숭배해야 하는지가 교육된다. 그리고 이렇게 선택된 과학자 조상들의 이론은 각 분야에서 현재 옳다고 인정되는 관점에서, 단선적 혹은 누적적 진보의 과정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고대 그리스의 학자들조차 미래를 예비한 이론가 혹은 대가 끊겨버린 이들로 구분되어 버린다 -고대 그리스인인 데모크리토스로부터 자신의 물리학을 재조명하려는 물리학과 교수야말로 물리학의 대를 끊어버리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과학에 막 입문한 초보 과학자는 자신의 위대한 조상들처럼 되고 싶어할 것이며, 자신이 선택한 분야를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시키겠다고 희망하게 될 것이다. 또는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자신의 분야에서의 탐구하던 방향 자체를 뒤바꿀 위대한 발견을 꿈꾸게 될 것이다. 물론 사려 깊은 학생이라면 이러한 관점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공헌할 수 있는 과학의 진보란 것을 이뤄봐야 결국엔 모든 과학 이론은 어떤 의미에서 틀린 것이라는 점을 증명하게 될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나쁜 이론으로부터 구분된 좋은 이론이라는 것은 기껏해야, 오스카 와일드가 ‘삶 내내 지속되는 사랑’과 ‘불장난 같은 연애’를 구분 지었던 것처럼, 성공적인 이론도 결국 불장난에 다름 아니며, 그런 것이 더 오래 지속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5]. 문헌을 잠시만 살펴봐도, 대부분의 예전 과학자들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며, 그 중의 극소수만이 옳았었고, 과학사가 영웅적인 실패담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거의 대부분의 과학자들을 역사적 실패자로 낙인 찍는 것이다. 과학연구의 질을 해당 저자의 논문이 얼마나 많이 인용되었는가의 여부로 판단해버리는 현재의 평가 시스템은 이런 방식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현대적으로 재탕된 것 뿐이다.

따라서 이처럼 전통적인 ‘과학적 역사’의 관점은 젊은 과학자들에게 아주 극소수의 영웅신화를 제공한다. 갈릴레이와 로마의 대립이 아마 가장 유명할 것이다. 어떤 신화와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드라마 주인공의 행동 규범은 매우 깊이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실험과 관찰로 쓰여진 권위를 존중하는 주인공이 과학자 사회에 대한 충성심을 가지고, 조직화된 정치권력(집단, 국가, 교조에 대한 충성)에 대항한다는 식의 영웅담이다. 불가지론 혹은 다양한 종류의 무신론을 섭렵해나가는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조직화된 종교의 해악을 깨닫는다[6]. 비슷한 해석이 근대 유전학에 대한 소비에트 연방의 조직화된 탄압, 즉 소련에서의 리센코 유전학의 발흥에 대해서도 적용될지 모를 일이다.

과학에 대한 과학자들의 관점은 영웅(갈릴레이)에 대한 경건심을 극도로 표현하고, 그 반대편의 이들을 매우 모욕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과학자들은 과학적 계몽주의자인 갈릴레이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철학적 혹은 종교적 무지몽매함에 빠져 있던 로마인들과 자신의 이론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고 생각하게 된다. 지질학의 격변설과 균일설의 논쟁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재생산되고, 당연히 다윈의 이론을 두고 벌어진 월버포스-헉슬리의 논쟁도 마찬가지다. 거기서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진 쪽은 나쁜 놈, 혹은 바보로 묘사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세계에 대한 현재 우리의 해석이 옳다면, 당연히 그때도 그런 해석이 옳았을 것이라는 관점이다. 따라서 멍청한 패자들을 가로막았던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과학 이론에 대한 편견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과학자들이 역사를 바라보는 인식이란 결국, 과학적 종설 논문이 과거로 확장 적용된 것에 불과하다. 종설 논문은 옳은 것을 틀린 것으로부터 구분해내려는 시도이며, 승자와 패자를 가르려는 것이며, 자신의 진영(당연히 승자진영)으로부터 반대자들을 구분해내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무언가 일어난 일들에 대해 모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매우 진지한 역사적 저술들은 그저 뒤늦게 역사가들이 깨달은 하찮은 해석쯤으로 치부된다. 그리고 이처럼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해석하려는 특별한 습관이, 역사 속의 영웅적인 과학자들을 인과관계나 시간의 화살로부터 벗어난 존재들로 생각하게 만든다.

역사는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어렵다. 하나의 사안이 몇 십 년만 지나도 과학자는 과거의 과학자들이 말한 것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과학자들에겐 그 문건들을 현재적 맥락에서 읽어내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과학담론의 단어들은 단 십여 년 만에 그 의미가 뒤바뀌어 버리기도 한다. 따라서 특히 빠르게 발전하는 분야에서는, 약간 오래된 문헌을 읽는 것 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사실조차 모른 채 언어학적으로 나이브한 과학자들은 과학담론의 언어가 지닌 의미가 무슨 과학적 권위에 의해, 그리고 자신들에 의해 고정된 것처럼 착각을 하곤 한다. 결과적으로 단순히 과학적인 이유로, 또는 학문적인 목적으로 과거의 과학 문헌들을 검토하려고 할 때조차도, 과학자는 예전 문헌들의 의미를 아주 심각하게 왜곡시킨다.

긴장, 모순,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 바로 이런 ‘과학적 역사’의 관점에서 과학자들은 편안함을 느낀다. 당연히 이런 관점을 가지고 과거의 기록들에서 흥미를 느끼게 된 과학자는, 과학이 더욱 정밀한 세계에 대한 이해의 방향으로 진보해 왔다는, ’19세기적 과학자의 관점’을 갖게 된다. 과거의 과학자들을 그들의 분야를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여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승자와 패자)해서 생각하는 이러한 행위는, 과학자들이 과학에 대해 위와 같은 관점을 고수하게만 하는 게 아니다. 이러한 관점은 실제 현장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들이 경쟁하는 연구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즉, 경쟁자의 연구를 틀린 것으로 간주하고 폐기 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는 말이다. 영웅적 과학자들을 논문에 언급하는 것은 아주 일반적인 일이 되었는데, 왜냐하면 자신이 만든  이론이 그 분야에서 지배적이고 올바른 이론임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윈을 언급하는 것은 진화학자들에게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다른 진화 생물학자들이 연구자의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다. 또한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다윈의 주장과 반대되는 구절을 삽입하면 더욱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다윈은 ‘중립가설[7]’을 주장했는가, 그는 ‘단속평형론[8]자’였는가, 아니면 그는 ‘종 다원론자[9]’였는가, 혹은 모든 것은 생물학자들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 것인가[10]. 이러한 전략들 중에서 가증스럽고 해로운 변종의 하나는 과거에 이미 거부된 영웅적인 과학자 한 명을 다시 부활시켜서, 그 영웅을 자신의 비정통적인 주장의 근거로 삼는 것이다[11]. 과학자가 제 아무리 균형 잡힌 역사적 관점을 가지고 자신의 분야의 역사를 기술한다 해도,자기 분야를 정당화려는 욕구를 참는다는 것은 어려워 보이며, 결국 그런 식의 역사서술은 개인의 지적 여정의 서사시, 혹은 확장된 자서전 이상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역사는 이처럼 인정투쟁[12] 혹은 연구비를 얻기 위한 정치적 싸움의 도구로 사용된다. 진화 생물학자들이 다윈을 이용해 먹는 것처럼, 분자생물학자들은 이중나선의 구조를 발견한 왓슨과 크릭을 영웅으로 묘사하면서 인정투쟁을 펼친다. 분자생물학자들이 대학에 자리잡고 연구비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왓슨과 크릭은 다윈과 같은 방식으로 이용되곤 했다.

과학자들은 때때로 지난 이십여 년 간의 과학사 분야에서 이루어진 발전에 무지하거나 이를 적대시 한다. 과학은 이론, 해석, 관찰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자기자신만의 기준을 구비하고 있으며, 이러한 체계는 과학의 내부문제로 취급된다. 이론의 선택에 철학적이거나 정치적, 혹은 종교적 규준이 끼어들 여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료된다. 과학에 대한 이러한 과학자들의 사고방식은, 과학사학자들이 과학의 성격을 외재적, 지적, 사회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식으로 이해한다고 믿게 만들고, 따라서 이러한 과학사학자들의 태도를 의심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생태학자가 경쟁에 관한 이론을 그의 퀘이커 교도로서의 관점-자연은 경쟁이라는-으로부터 빌려왔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게 되면, 아마 가장 상스러운 욕을 듣게 될 것이고, 기껏해야 과학의 체제 내에서 이론이 평가되는 방식과는 들어맞지 않는다는 반박을 듣게 될 것이다. 지능의 유전에 관한 이론을 지지했던 지난 시기의 과학자들이 인종적, 사회적 편견에 영향을 받았다는 가정은 정말 부정하기 어려운 역사적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과학자들을 처리하는 방식은 매우 단순하다. 그들을 사기꾼이나 사이비과학자로 매도하고 과학자 그룹 밖으로 쫓아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과학자들은 안심한다. 예를 들어, 이런 방식으로 심리학자 시릴 버트(Sir Cyril Burtt)의 연구들은 심리학계에서 모조리 사라져버렸다[13]. 극단에서, 이론과 관찰을 순전히 그들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만 평가하는 상대주의적인 과학사회학의 연구가 있고, 이러한 관점은 현장의 과학자들에게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 물론 그 과학자는 어떤 구성(construction)[14]이 진짜로 세계를 더 잘 설명하거나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이론은 이러한 설명들과 예측을 제공하는 능력에 의해 선택 혹은 기각되어야 한다는 것도 안다. 아마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과학자들 중에서 아직도 과학이 ‘진리’를 정립해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이는 이제는 거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과학자가 ‘과학은 우주의 버스 시간표(시간표를 가진 사람은 안 가진 사람보다 제 시간에 버스를 탈 확률이 조금 높을 것이다)와 같은 것'[15]이라는 실용적인 관점을 견지한다고 해도, 어떤 이는 시간표를 계산하는 어떤 방법은 다른 방법들보다 버스 도착시간을 좀 더 정확하게 예측한다고 말해야만 안심하게 될 것이다. 플라톤주의자의 관점에서는 세상에 만약 단 하나의 물리적 실재가 있고, 이를 설명하는 동등한 방식의 두 가지 묘사가 있다면, 이러한 단계는 과학의 발전에서 잠정적인 흠집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더 나은 단 하나의 설명방식이 나타나서 경쟁 중인 두 개의 이론을 교체할 것이다. 과학의 세계에서는 진정한 다원론이란 가능하지 않다. 물론 극소수의 과학자들은 다원론적 실재를 믿지만 말이다.

따라서 맞던 틀리던 간에 쿤주의자(Kuhnian)들이 주장한다고 알려진 과학에 대한 상대주의적 관점은 대부분의 과학자들에게는 재앙이 된다. 갈릴레이에 대한 신화는 과학이 종교, 정치, 철학적 가정들을 초월해 있다고 가르치며, 물리적 세계는 우리의 편견을 따르지 않는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그래도 지구는 돈다!). 만약 세계에 대해 기능적으로 우수한 서술, 즉 과학의 이론이 마르크스주의나 기독교의 교리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이론적으로 수정되어야 할 것은 마르크스주의나 기독교 교리여야만 하는 것이다. 완전히 상대주의적인 관점은 리센코주의 유전학이 멘델주의 유전학과 동등한 기술이라고 주장할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가 이론을 선택하는 방식은 부르주아 자본주의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 기인한 것일 터이다[16]. 이러한 상대주의적 과학관은 자신만의 문학, 풍자, 종교 등을 지닌 유대인들의 독특한 문화가 존재하듯이, 과학도 그러한 문화 위에서 독특한 특성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이 의미하는 것은 히틀러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유태인의 과학’이라고 규정한 것이 올바른 일이라는 뜻이기도 한데(따라서 그의 행동은 윤리적으로는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지적으로는 비난 받을 수 없게 된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상대주의자들을 개똥 취급하게 되는 것이다.

사태가 이렇기는 하지만, 과학 외부의 사회적 맥락을 구체화하는 과정으로서의 과학에 대한 상대주의적 관점은, 급진적이고 비주류인 이론을 가진 과학자가 정치적으로 자신의 반대편에 서 있는 과학자들을 설득하는 방식으로 사용되기도 한다[17]. 과학은 편견을 구체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관점은, 좀 더 광범위하게 인정받는 주류 이론을 단지 자본주의 혹은 인종차별주의에 기초해 있다는 주장으로 배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근거가 된다. 급진적인 과학 이론을 주장할 때 과학자들은 과학의 상대주의적 관점을 써먹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과학 이론은 내재적으로 발전한다는 관점은 설 자리가 없으며, 급진적인 이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는 자신이 서 있는 사회정치적인 우월성을 바탕으로 이론의 정당성을 주장하게 된다. 따라서 역사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서술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은 진정한 과학적 의미에서는 그 자체로 오류가 된다. 왜냐하면 상대주의자들의 관점에서 과학적 이론은,그렇게 객관적인 서술이 아니라고 주장되기 때문이다(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로부터 즉각적으로 이론이 기대고 있는 데이터들이 조작되었거나 잘못 해석되었다는 주장이 따라 나온다. 지능의 대물림에 대한 최근의 논쟁(양 쪽의 데이터들이 모두 조작된 것이었는데)은 좋은 사례가 된다[18].

하지만 이처럼 과학 외부의 사회적 요인들의 힘을 가정하거나, 과학을 정치적으로 악용했던 과학자들을 모조리 과학 외부로 쫓아낸 후 사이비과학자로 규정하는 방식은 오히려 과학에 해로운 것이다. 20세기 우생학 운동의 지도자격이었던 과학자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과학자 사회로부터 축출되었고, 그들의 정치사회적 입장만을 기준으로 비판 받았다. 역사가는 진짜 과학자들과 사이비 과학자들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따라서 과학자들과 역사가들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간극이 존재한다. 우리가 역사는 헛소리라는 과학자들에게 동의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들에게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고 제안할 것인지[19]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세심한 과학자는 이전 세대의 중요한 연구들을 살펴봄으로써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전략을 세울 수 있다(이건 작곡가가 모짜르트를 듣는 것과 정확히 같은 이치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다른 과학자들의 작업을 논문에 언급함으로써 그들이 물리적 세계에 관심을 갖듯이 다른 과학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만약 어떤 과학이론이 옳다면, 그 이론의 과거는 어떤 면에서 과거와는 무관하다. 하지만 만약 그 이론이 틀렸다면,그것이 왜 그리고 어떻게 틀렸는지를 이해하는 한가지 방법은 그 이론이 떠오른 지적 맥락, 이론의 기원이 된 철학적, 사회적, 정치적 편견에 대한 이해를 통하는 것이다. 관찰결과들을 이러한 방식으로 범주화하는 것이 어려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론에 독립적인 관찰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식이 과학자들에게 점차 이해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과학의 누적적인 본성은 결국 모든 이론이 틀렸음을 함축한다: 따라서 어떤 이론도 그것의 외재적 관계에 대한 언급 없이는 완전히 이해될 수 없다. 나는 이러한 자각 없이도, 내가 20년 동안 피셔(R. A. Fisher)의 ‘자연선택의 근본 정리(fundamental theorem of natural selection)’-진화론의 가장 복잡한 이론 중 하나인-을 명료화하려고 노력한 과정 속에서 바로 이런 성찰을 발견했다고 믿는다[20]. 피셔의 정리는 생물학에 대한 그의 관점이나 다윈에 대한 그의 열광 뿐 아니라, 우생학에 대한 그의 이상주의와 자신의 기독교적 교리 속에서 다윈주의를 통합해보고자 했던 이상을 총체적으로 고찰했을 때에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분열[21]은 역사 속에서 때때로 결합하기도 했었다. 과학자들이 근대 역사학자가 사용하는 방법론으로부터 완전히 결별하고 그러한 훈련을 받지도 못하는 현재보다는, 모든 역사가 휘그주의 역사였던 과거에 이런 결합이 더 자주 있었던 것 같다[22]. 역사를 국지적 역사 혹은 위인전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몇몇 과학적 사회가 그들의 기록들을 신성시하고, 과학자의 부고를 기사화하고, 과학자 위인전과 과학자에 대한 역사적 기념물을 건설하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과학자가 남긴 문서들, 편지들, 또는 과학 분야와 관련된 문서들(영국 유전학회는 최근 이러한 일을 하고 있다)을 모두 모으고 있고[23], 영국 학회들처럼 학회 세션에 역사분과를 삽입하기도 한다. 몇몇 과학자들은 역사학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즉 역사학에 초당적인 의미의 역사가로 변신해왔다. 이들 중 아주 극소수만이 두 직업을 잘 조율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과학자들은 다루기 까다로운 과학적 주제들을 깊이 이해하는데 큰 공헌을 해왔다. 그들은 주로 그들 자신의 분야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선호하고-현장의 과학자가 엉뚱하게 외국 문명의 고고학을 연구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그리고 최근의 역사를 다루기도 한다. 18세기와 더 오래된 세기들은 안 그래도 바쁜 현장의 과학자들이 연구하기에는 좀 더 많은 훈련과정과 숙달을 요구한다. 다음과 같은 가설을 검증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과학자로서 좀더 헌신적이지 않을 수록 혹은 그의 분야에서 유명한 이론들을 정립한 사람일 수록, 역사에 대해 좀더 객관적일 수 있을까?[24] 그리고 역사로 전향한 과학자들은 다시는 연구실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인가(즉, 폐철기도 다른 노화현상들처럼 비가역적인 것인가)? 요즘 들어 과학이 발전하면서, 과학자들은 다른 과학자의 능력을 그가 내놓는 연구결과가 아니라 그가 얼마나 많은 연구비를 거둬들이는가로 평가하는 것 같은데, 과학사 연구엔 돈이 별로 들지 않으니, 연구비도 별로 딸 수 없을 것이다. 아마 과학자들에게 과학사 연구는 그다지 효율적인 캐리어 쌓기 전략은 못될 것이다[25].

만약 사태가 이렇다면, 우리는 물질 세계에서 만족을 별로 못 느끼는 과학자들이 얼마나 역사에 매력을 느끼는지를 물어 볼 수 있겠다. 과학자들이 순수한 과학적 논쟁에만 몰두하는 그들의 덜 정교한 동료들을 위해 과학사를 얼마나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지도 한번 고민해 볼만 하다. 그리고 역사에 대한 연구가 과학자들에게 과학 활동 자체가 종국엔 무의미하거나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수렁에 빠지게 할지도 모른다는 것도 한번 생각해봄 직하다. 역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과학자들은 역사에 대한 연구로부터 과학적 논쟁의 본성에 대한 좀더 균형 잡힌 이해를 얻을 수 있어야만 한다. 특히 자신의 분야와 관련된 논쟁 혹은 이론의 선택에 있어서 더욱 그렇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이론들은 보통 하나로 종합되는 경향이 있으며, 반대편 적들의 이론이 기각되는 방식이 주가 아님을(전통적인 영웅신화가 뭐라 하건 간에)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최근의 이론들에 대한 접근에서 좀 더 유연함을 가질 수 있어야만 하며, 자신이 세운 가정에 대해 더욱 진전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하며, 오랫동안 폐기 처분되어 있던 관점에 대해 재고해 볼 수 있는 더 큰 의지를 기를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에 대한 교육방식은 과학자에게 자기인식을 심어주는데 있어서는 항상 실패하고 있다. 대학생이나 과학자들에게 아주 단편적인 역사적 지식을 심어줘 봐야, 매우 기형적인 사고를 갖게 될 뿐이다. 역사에 대한 현대적 접근법이 점점 퍼져나가면서, 더 많은 과학자들이 잠시 과학이라는 좁은 관점에서 빠져 나와, 과학을 인간적 맥락에서 살펴보려 하고 있다. 물론 그런 과학자들이 할지라도, 거의 언제나 전문적인 역사학자들과는 다른 관점을 갖게 되지만 말이다. 선취권을 향한 과학자들의 지대한 관심(내가 먼저 발견했다!)은, 이들이 역사학적으로는 그다지 선호되지 않는 방식으로 역사를 다루도록 유혹한다. 역사적으로 빼어난 인물 모두를 훨씬 더 빼어난 한 인물의 선구자격으로 다루는 것이다[26].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과학이 독립해 있다는 생각은 대부분 과학자들의 자기환상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아주 정치적인 동물일 수 밖에 없다. 교수 혹은 연구원으로서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타협하고, 논문을 출판하기 위해서 동료들과 정치적 타협을 해야 하며, 연구비를 타내기 위해서는 정부관료들과 빈번하게 협상을 하는 이들이 어떻게 정치적인 동물이 아니라는 말인가. 과학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거대조직의 통제에 놓이게 되면, 과학이라는 순수한 활동에는 절대로 사회적/정치적 입력이 없고, 과학은 스스로를 조절하며 생산적인 결과물들을 내놓는다는 과학자들의 소박한 희망은 점점 더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어쩌면 남은 세기 동안 계속 과학을 하고 싶은 과학자에게는 과학사에 대한 이해가 매우 귀중한 자원이 될지도 모르겠다.

과학사 그 자체에 대해서라면, 이 학문도 이제 영국의 다른 인문학 분과들이 처해 있는 운명에 놓여버린 것 같다. 영국 대학의 돈줄을 쥐고 있는 자들을 포함하는 진정한 지적 속물들은 과학사가 반드시 현장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들 혹은 과학자들을 고용한 산업에 어떤 경제적 효용이 있어야만 그 경제적/실용적 효용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과학사는 다른 역사 분과와 똑같은 쓰임새를 갖는다. 현대세계에서 과학과 기술이 지배적이고, 과학혁명이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파급을 몰고 왔다는 점을 생각해보았을 때, 과학사는 정말이지 거의 연구가 안된 분야나 다름이 없다. 경제학이나 정치학에 종사하는 이들과 비교해보면 이러한 점은 분명해진다. 이러한 점들은 너무나 중요해서 정말이지, 자기중심적이고 과학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지닌 현장의 과학자들에게 이 문제를 맡기기는 힘들어 보인다[27].


[1] menopause가 폐경기인데 이에 빗대어 과학자가 늙어서 더 이상 학문을 할 수 없는 노쇠해져 버린 상태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2] 이 글은 1990년에 쓰여졌다. 여기서 예술과 인문학과 과학이 다르다는 말은, 영화비평가나 문학비평가와 같은 이들의 위치를 점유하는 집단이 과학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물론 1980년대를 거치면서 과학사회학이라는 분과가 점착하면서 이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3] 역사학자(historian)는 역사(history)를 연구한다. 하지만 과학자(scientist)는 과학(science)을 연구하지 않는다. 이해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4] 터너가 사용하는 ‘과학적 역사’ 즉, Scientific History란 과학자들이 분야에서 은퇴하거나 더 이상 연구하지 않게 된 이후에 자신의 업적에 대해 자서전 식으로 시시껄렁하게 출판하는 그런 글들을 말한다. 당연히 거기에 면밀한 역사적 분석이나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전혀 과학적일리 없지만, 이 글을 잘 읽어보면, 터너가 역사적 관점이 결여된 개똥철학을 지닌 이런 과학자들의 역사에 대해 조롱하는 의미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오스카 와일드를 읽지 않아서 이게 뭘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이론의 잠정성을 의미하는 것일게다. 아마도 오스카 와일드의 냉소적인 성격으로 짐작하건데, 연애나 사랑은 순간적인 불장난일 뿐, 영원한 사랑 같은 건 없다는 식의 조소를 날린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터너는 과학의 이론도 그와 비슷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언젠가 이야기했듯이, “이론은 오고가지만 개구리는 변함이 없다”.
[6] 도킨스가 아마 이 단계쯤이지 않을까 싶다.
[7] 중립가설(neutral theory of evolution): 보통 일본의 진화학자 모투 기무라에 의해 제안된 가설로 알려져 있다. DNA 수준에서는 다윈의 자연선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DNA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돌연변이가 이롭지도 해롭지도 않다는 이유로 체택되었다. 기무라의 제안은 확률이론을 바탕으로 한 수학공식으로 제안되었고, 쥬크와 킹과 같은 생화학자들에 의해서 ‘비다윈적인 진화’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시기 제안된 바 있다.
[8] 잘 알려져 있듯이, 굴드와 엘드리지가 주장한 단속평형설을 뜻한다. 진화가 누적적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주류학계의 점진주의자들에 대항해서, 굴드와 엘드리지는 대멸종과 캠브리아기 대폭발, 그리고 기타 고생물학적인 증거들을 바탕으로 때때로 진화의 과정에 단절이 존재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굴드는 이러한 과정에서 다윈의 이론이 자신의 단속평형설을 뒷받침한다는 논증을 펼치곤 했다. 터너는 이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9] 다윈의 저작이 <종의 기원>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다윈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종(species)이라는 실체가 뚜렷이 구분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에 대한 생물학적/철학적 논쟁이 존재하는데 터너는 이러한 논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10] 아다시피, 최근 영미의 생물학자들과 생물철학자들, 그리고 이걸 그대로 직수입해서 한국에서 판을 벌려보려고 하는 학자들은 아주 가관이다.
[11] 그 대표적인 예로, 라마르크를 재등장시켜 진화론을 뒤엎으려 시도하는 학자들을 들 수 있다.
[12] 인정투쟁(fight or struggle for recognition):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벌이는 일련의 투쟁을 뜻한다. 예를 들어 유럽중심주의 사관이 형성되는 과정은, 중국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던 유럽의 인정투쟁이다.
[13] 당연히 20세기 초중반의 우생학자들을 의미한다.
[14] 여기서 구성(construction)은 사회구성주의(social constructionism)의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사회구성주의를 지지하는 과학사회학자들은 과학의 이론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15] “Science is like a bus timetable. Forget ”truth”: if you can put together a good timetable, you will have a much better chance of catching a bus (과학은 버스 시간표 같은 것이다. 진리라는 개념을 머리에서 지워버려라. 좋은 버스시간표를 가지고 있다면 버스를 탈 확률이 조금 더 높을 것이다.)” 이 은유는 터너가 만든 것이다. 다음 에세이에도 이 표현이 등장한다. John R.G. Turner, “What’s the Forecast?”, April 16, 2000, New York Times.
http://www.nytimes.com/books/00/04/16/reviews/000416.16turnert.html
[16] 소련의 리센코주의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찾아보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과학이 오용된 사례로 항상 거론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리센코라는 유전학자가 공산주의 이념에 멘델식 유전학의 불연속적인 특징이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라마르크식의 유전을 주장하고, 이에 반대되는 연구나 학자들을 모조리 숙청한 사건을 가르킨다.

[17] 알게 모르게 과학자들도 상대주의적 과학관을 때때로 차용한다는 뜻이다.

[18] 이 단락과 이전 단락은 토마스 쿤 이후 계속되어온 과학에 대한 상대주의적 입장과, 과학사회학의 발흥, 그리고 비엔나의 논리경험주의와 과학전쟁 등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19] 유명한 조지 산타야나의 경구다. “역사를 알지 못하는 이는 그 실수를 되풀이한다” 산타야나 리뷰(santayana review)라고도 한다.
[20] 실제로 터너의 평생연구의 주제 중 하나가 유전학자이자 통계학의 아버지인 피셔의 자연선택에 관한 정리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것이었다.
[21] 과학에 대한 설명에서 내재적/외재적 접근의 분리를 뜻한다.
[22] 휘그주의 역사란, 목적론적 역사관 혹은 낙관주의적 진보주의적 역사관을 뜻한다. 과거 영국의 의회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은 모든 역사적 사건들이 의회주의를 향해 나가는 진보의 과정이라는 관점으로 역사를 해석했다. 직선적인 역사관을 지니고 있었으며, 역사를 현재와 맞닿는 실용적인 관점에서만 해석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과학사의 시작이 휘그주의 역사관이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많은 점에서 비슷하기 때문이다.
[23] 다윈의 모든 손글씨들이 이런 방식으로 수집되었다. 다윈에 대한 과학사가들의 관심은 거의 편집증적이라 할만하다.
[24] 이 말은 냉소적인 것인데, 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서 과학사에 입문했거나, 혹은 너무 두각을 나타내서 자기 이론을 역사적으로 정당화하기를 원했던 과학자들이 과연 과학사를 얼마나 객관적으로 기술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25] 느낀 사람이 있었으면 다행이지만, 이것도 냉소적인 조소다.
[26] 모든 생물학자들은 다윈을 향해 가는 여정에 있었다던가. 다윈이라는 엄청난 영웅을 역사의 말미에 위치시키고, 나머지 위대한 과거의 과학자들을 모조리 다윈으로 향해 가는 역사에서의 선구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
[27] 과학자들을 믿지 말라는 뜻이다. 터너는 이 글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한번 느껴보라는 것 뿐이다. 글은 대부분 상당히 냉소적인 어투로 되어 있다. 순진하게 해석하지 마시길 바란다.

11 thoughts on “과학사와 현장의 과학자 (번역)

  1. 선댓글 후감상 합니다.
    지난번 오랫만의 강의도 잘 들었습니다.
    번역하느라 고생 많으셨겠어요. 고맙습니다.

  2. “과학학에 대한 어설픈 이해를 가지고이글을 읽지 말아야”라는 경고에도 과학학에 이해고 뭐고 없는 한 사람이 호기심으로 읽었습니다. 다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과학이 경제적/실용적 입력에 영향을 받는 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동감입니다. 그런면에서 우리나라에도 과학의 학파가 형성되길 무척 희망합니다. 그들은 내 논문을 scoop시키는 적일 뿐 아니라 동시에 내가 과학의 본래 목적을 (저는 모든 과학의 궁극 목적은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잊고 표류하는 것을 막아주는 안전핀 역할을 해줄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재박사님 말씀하시는 소양들이 부족하지요. 저를 포함하여서요.
    바쁘신 중에 번역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3. 과학자님 절반 읽었어요. 이어서 나중에 읽어 볼래요. 수고가 많으셨겠습니다. 감사 드려요. 잘 모르지만 열심히 읽어 볼게요.

  4. 잘 봤습니다.

    @ 앞에서는 ‘폐학기’고 뒤에서는 ‘폐철기’네요.

  5. 좋은 글을 번역해주신 것 같네요. 잘 읽겠습니다.

  6. 정말 신랄한 글이군요ㅎ 그러면서도 과학사를 과학자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는 건 굉장히 자조적인 것 같아요.

  7. 번역 잘 해 주셨네요. 참 어려운 내용이네요. 논문에 참조하려거나 하는 목적이 아니고 블로그에 올려주실 목적으로 번역하신거라면 감사드려야 할 듯 하네요.

  8. 아.. 이런글에 공감을 가지시고 번역까지 하시는 분이 왜 그렇게 라깡을 못잡아먹어 안달이신지..참.. 이해하기가 어렵군요…

  9. 최근에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인문학의 위치 및 경계설정에 대해 생각하게 된 인문학도입니다- 한번 죽 읽어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는데, 개인홈피 및 지인들과 공유하는 클럽에 글을 옮겨도 될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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