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측정이론의 딜레마

측정이론(Measurement Theory)에 관한 국내의 연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겨우 찾아낸 연구는 심리학과 사회과학에서의 측정이론의 역사와 이론들을 개괄한 이순묵의 논문이다. 이순묵, “측정이론의 세줄기.” 한국심리학회지 인지 및 생물 2 (September 1990). 측정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개 두 분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측정이론을 철학적으로 연구하는 과학철학자들과, 이를 실용적으로 적용하는데 몰두하고 있는 심리학 혹은 사회과학의 이론가들. 전자로 가장 유명한 이는 아마도 수피스(Patrick Suppes)일 것 같다. 그의 책 Suppes, Patrick, and J.L. Zinnes, Basic measurement theory. (Institute for Mathematical Studies in the Social Sciences, Applied Mathematics and Statistics Laboratories, Stanford University, Stanford, Calif., 1962). 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아직 자세히 읽어보지는 못했다.
과학의 현장에서 측정이론이 정교화 되고, 나아가 하나의 분과처럼 굳어진 곳은 심리학에서였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초에 이르는 기간 동안 수 많은 실험심리학자들이 이런 고민을 했다. 물리학의 고전적인 방법론을 차용하는 것에서부터, 통계학과 확률적 사고를 도입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혹은 치명적인 실수들도 생기지만) 심리학의 발전사는 곧 방법론과의 투쟁이기도 하다. 스티븐스(S.S. Stevens), 서스톤(L. L. Thurstone), 스피어맨(Charles Edward Spearman) 등등 심리학을 자연과학과 대등한 학문으로 만들기 위해 방법론을 고민했던 학자들은 손으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고 다양하다. 다양한 전통 속에서 심리학의 정량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많은 논쟁이 있었다. 예를 들어 비엔나 출신의 에곤 브룬스윅(Egon Brunswik)은 미국 심리학자들과 잦은 갈등을 빚었고, 이 과정에서 왕따가 되었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심리학이 성공적(?)으로 정량화의 방법을 찾은 것은 미국에서였다. 이 과정에서 일반지능(g)에 대한 연구가 중요했고, 이것이 현재 우리가 아는 아이큐의 원조가 됐다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가끔 심심할 때마다 측정이론에 관한 책을 수집하고 논문들을 읽고 있다. 나는 측정 자체의 이론에 대해서 학부는 물론 대학원에서조차 관련 강의를 들어본 적이 없다. 생물학이나 화학은 물론 물리학자들도 측정이론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측정이론을 개발하고 발전시킨 것은 심리학자들이었다 (사회과학 전반에서 측정이론은 매우 심각하게 취급되는 것으로 안다). 왜 그랬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질적 현상을 양적으로 기술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움을 겪는 쪽은 누구일까? 그건 무엇 때문일까? 이 단순한 문제를 놓고 서양의 학자들은 지난 100년을 고민해 왔다. 그 결과가 완벽하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심리학의 한 갈래, 그 커다란 전통은 그렇게 완성된 것이다.
이 그림은 스티븐스의 기념비적인 1946년 사이언스 논문 Stevens, S.S., “On the theory of scales of measurement.” Science 103, no. 2684 (1946): 677–680. 에서 따온 것이다. 측정이론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마 반드시 이 논문을 (과학철학쪽에서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이들은 현장의 심리학자가 내놓은 분류법을 무시할지도 모르지만) 거쳐가게 될 것이다. 내가 알기론, 아직도 스티븐스의 이 4가지 분류법은 심리학 교과서에 실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측정의 4가지 수준은 비율자, 차이자, 순서자, 구분자로 구성된다. 각각의 ‘자(scale)’는 구분자에서 비율자로 갈 수록 엄밀해진다고 생각하며, 자신보다 아래 수준의 자들이 가지는 특성을 가지고, 그 수준에 와서만 가지는 특성을 지닌다. 자세한 설명은 이순묵의 논문이나 심리학 교과서를 참고하면 될 듯하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측정이론 자체가 심리학이라는 학제를 과학의 모양새로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과학과 차이를 드러내는 부분들에 관한 것이다.
추신: 그나저나 120불을 주고 측정이론에 관한 책을 한권 구입했는데, 이 학자 현장에 대한 경험이라고는 전무한 순수한 이론가였다. 체코의 학자였는데, 어째 이 책 한권 달랑 내놓고는 아무런 정보가 뜨지 않는게 수상했는데, 리뷰를 하나 슬쩍 보니 왜 이름이 거론되지 않는지 알 듯 하다. 여하간에 부정적인 의미로 귀중한 책인 것 같긴 하다.
  1. 심리학 중에서도 측정이론에 관심이 많은 고등학생입니다.
    전에 님께서 어떤 사이트에서 일반지능에 관한글을 쓰신적이 있는 걸로 기억합니다.

    김우재님이 일반지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신지 참 궁금한데요.. 만약 님께서 일반지능이론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신다면 그걸 뒷받침할만한 논거가 혹시 있나요?

    개인적으로 저는 일반지능이론을 더 신뢰하는 입장입니다만 김우재 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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