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괴테, 대문호의 과학

우리는 가장 근접한 것을 가장 근접한 것에 연결하거나, 가장 근접한 것을 가장 근접한 것에서 추론하려는 신중함을 수학자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우리가 감히 계산을 할 수 없는 경우조차도 우리는 계속해서 마치 우리가 가장 엄격한 기하학자에게 대답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왜냐하면 수학적 방법이란 그것이 지닌 신중함과 명확함 때문에 바로 모든 주장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대상과 주체의 매개로서의 실험>중에서.


한글 위키피디아의 괴테 페이지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독일어: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년 8월 28일 ~ 1832년 3월 22일)는 독일의 작가이자 철학자, 과학자이며, 한때에는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이었다.” 우리가 아는 괴테는 <파우스트>와 <젋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괴테다. 하지만 괴테가 스스로를 “시인이기에 앞서 자연학자로 인정받기를 원했으며, 그의 전 생을 통해 자연현상에 대한 탐구의 고삐를 한 시도 늦추지 않았을 뿐 아니라, 뉴턴으로 대변되는 수리계량학적 물리학에 맞서 (별 성공을 거두지 못한) 논쟁을 거듭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아니 실은 과학사에서 괴테는 생물학사의 전성설과 후성설을 다루는 부분에서 빈번하게 등장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괴테는 그저 대문호로만 인식될 뿐이다. 김연홍, “괴테의 자연개념.” 독일문학 81 (2002).”

따라서 김연홍의 말처럼 “따라서 괴테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괴테의 자연개념의 이해는 피해갈 수 없는 불가결의 선행조건”이지만, 나아가 이런 이해 속에서만 “모든 이론은 회색”이라는 <파우스트>에서의 일성이 이해될 수 있는 것이지만, 괴테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과연 생물학사를 공부했는지는 미지수다. 예를 들어 우리는 에른스트 마이어의 <이것이 생물학이다>를 읽으면서 괴테를 떠올려야 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야 자연과학을 진지하게 탐구했던 괴테에 대한 연구들이 국내에 등장하고 있는데, 과학사가 정혜경의 논문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정혜경, “괴테의 식물형태학: 자연철학과의 밀착성과 낭만주의적 속성을 중심으로.” 한국과학사학회지 28, no. 2 (2006). 물론 이 논문의 결론부는 고쳐써야 한다. 긴 글이 될 듯하다. 귀찮은 분들은 읽지 않으셔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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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말들은 <괴테, “색채론, 자연과학론.”, 장희창, 권오상 옮김, 민음사 (2003).>을 참고로 했다. 숫자는 이 책의 페이지를 의미한다.

쇼펜하우어가 평생을 헤겔과의 경쟁관계 속에서 살았다면, 괴테는 뉴턴에 대한 열등감 속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턴에 대한 적대감은 <분석과 종합>의 유명한 다음 구절에서 잘 드러난다.

 “또 다른 일반적인 관찰로 돌아가 보자. 단지 분석에만 전념하고 종합을 두려워하는 세기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것과 같이 양자가 합해져야만 학문을 살아 있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가설도 전혀 없는 것보다는 낫다. 왜냐하면 가설이 틀리다는 것이 결코 해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잘못된 가설이 굳어지고, 일반적으로 인정받아 일종의 확신이 되면서, 아무도 그것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고 그 확신을 조사할 수 없게 되면 이것이 원래의 재앙이며 우리는 수세기 동안 이 재앙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 예로 뉴턴의 이론이 언급되었으면 한다. 이미 그가 살았을 적에 그의 학설이 지닌 결함들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그가 기여한 기타 위대한 공로와 시민 사회와 학계에서 그가 누린 지위로 인해 반대론의 등장이 허락되지 않았다. 특히 뉴턴 이론의 전파와 고착화에는 프랑스인들의 책임이 아주 크다. 그러므로 프랑스인들은 그들이 범한 실수를 보상하기 위해 19세기에는 그 복잡하고 고착화된 가설의 신속한 분석에 힘써야 할 것이다. 370″


18세기 뉴턴의 기계론은 단순히 과학에 머물지 않고 경제, 역사, 정치, 윤리의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계몽주의가 만개했던 프랑스에서 뉴턴주의자들과 데카르트주의자들 간의 경쟁관계 속에서도, 뉴턴주의는 급속히 퍼져나갔다. 루소와 볼테르는 뉴턴주의의 열렬한 전도사들이었다. 여기서 괴테가 비판하는 뉴턴의 이론이 ‘고전역학’의 그것인지, ‘광학’인지, 혹은 ‘기계론’ 전반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시인 괴테가 받아들인 뉴턴의 이론은 문화로 침투한 기계론과 그의 광학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왜냐하면 <색채론> 자체가 뉴턴의 <광학>에 대한 비판서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과학론>에는 뉴턴의 고전역학에 대한 언급은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괴테가 비판하는 뉴턴의 이론이란 결국 유럽에 널리 퍼져있던 기계론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해서 <광학>에 이르는 범위라고 말할 수 있다.

괴테를 당시 독일에서 유행하던 낭만주의 사조 속에 위치시킬 때, 자연과학에 관한 그의 접근방식은 ‘전일론’, ‘유기체론’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사실 좀 더 적당한 단어는 ‘反기계론’이될 듯하지만, 괴테가 그렇게 단순하게 사유했던 인물은 아니다. 우선 괴테 자신의 입으로 근대철학 속에서의 괴테의 위치를 짐작해보자.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은 이미 오래전에 나와 있었지만 완전히 내 영역 밖에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에 관한 대화에 몇 번은 참가했었다. 그리고 약간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나는 우리들의 자아와 외부세계가 우리들의 정신 생활에 얼마나 이겨하는가, 라는 오래되고 중요한 문제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칸트의 말을 빌려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모든 친구들에게 전적으로 찬동했다. 즉 우리들의 모든 인식은 경험과 더불어 시작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인식이 경험에서 유래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모든 친구들에게 전적으로 찬동했던 것이다…

헤르더는 칸트의 제자였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반대자였다. 그리하여 나는 더욱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나는 헤르더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었고 또한 칸트를 따를 수도 없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유기체가 갖고 있는 특성들의 생성과 변형 연구를 열심히 지속하였는데, 식물들을 다루는 방법이 안내자 역할을 함으로써 나에게 확실한 도움을 주었다. 자연을 계속해서 분석적 방법으로 보는 한편, 하나의 발전은 살아 있는 신비로운 전체로부터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나는 알아차렸다… 그런데 이제 <판단력 비판>이 내 수중에 들어왔다. 이 <판단력 비판>으로 인해 나는 내 생애에서 아주 즐거운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책 속에서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서로 간에 아주 다른 일들이 병렬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즉 예술의 산물들과 자연의 산물들이 동일하게 취급되어 있었고, 미학적 판단력과 목적론적 판단력이 서로 교차되면서 밝혀지고 있었다…. 문학과 비교생물학이 동일한 판단력의 지배를 받음으로써 이 둘이 서로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 나를 기쁘게 했다…. 내가 내 것으로 만든 방법이 칸트 학파의 철학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내 갈 길을 서둘러서 갔었다….나는 바로 칸트 학파의 철학자들과 비슷해지지는 못했다. 그들은 내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나에게 아무런 대답도 주질 못했고 또 도움도 주지 못했다… 이 역시 얼마나 신기한가 하는 것은 쉴러와 나의 관계가 본격화되면서 비로서 드러났다. 우리의 대화는 시종일관 생산적이거나 이론적이었고 보통은 양자를 합한 것이었다…. 우리들은 우선 대중 철학자들에 의해, 그리고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다른 유형의 철학자들에 의해 부당한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이 말이 조성했던 예술과 학문에 대한 보다 높은 생각을 통해 나 자신을 보다 고상하고 풍족하다고 여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 나의 지속적인 발전들은 특히 니이타머의 덕이다. 그는 친절하면서도 끈기 있게 나를 위해 어려운 주요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고 개별적인 개념들과 표현들을 진술하고 설명해 주려고 노력했었다. 추후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시기 즉 지난 세기의 마지막 십 년을 나의 입장에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충 윤곽만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그 당시에 그리고 나중에 피히테, 셸링, 헤겔, 훔볼트와 슐레겔 형제들에게 신세 진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진술할 수 있을 것이다. 333-338″

체적으로 괴테의 <자연과학론>은 베이컨 식의 경험주의라는 테두리 속에서 자연에 대한 괴테의 이미지를 정당화시키는 과정이다. 괴테의 자연관은 다음과 같은 말들 속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왜 그를 낭만주의자 혹은 전일론자라고 부를 수 있는지, 아니 반기계론자라고 부를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구절들이다.

“생명이 있는 자연계에서는 전체와 관련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321” 

“자연의 체계란 말은 모순된 표현이다. 자연은 어떤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생명을 갖고 있고 또 생명체, 알려져 있지 않은 하나의 중심으로부터 나온 결과이자 인식 불가능의 경계선을 향해 가고 있는 생명체이다. 348”

“개별 생명체에서 우리가 부분들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전체로부터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그것들은 전체 속에서 또는 전체와 함게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부분들은 전체를 재는 척도로 사용될 수 없고, 전체는 부분들을 재는 척도로 사용될 수 없다. 우리는 유한한 한 생명체의 존재라는 개념과 완전무결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인식한 수는 없고, 그렇기 때문에 이 유한한 생명체를 모든 존재가 포함된 거대한 전체와 마찬가지로 무한한 것으로 천명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미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한한 모든 생명체는 무한한 것에 참여하고 있거나, 차라리 그것 자체 안에 무한한 것을 갖고 있다. 310” 

괴테의 과학이 단순하지 않은 이유는, 현대적 관점에서 바라보아도 수긍할 만한 업급들이 그의 <자연과학론> 곳곳에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실험에 대한 괴테의 생각을 살펴보자. 성급한 계량화에 대한 주의는 현대과학이 안고 있는, 그리고 과학자가 주의해야할 덕목으로 이제는 상식이 된 것이다.

사물을 측정하는 일은 대강의 행위이며, 이 행위가 생명체에 적용될 경우 극히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생동하며 존재하는 사물은 그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것에 의해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 자신이 측정의 척도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이 척도는 고도로 정신적인 것이며 감각을 통해서는 발견될 수 없는 것이다. 원을 측정할 때의 직경이라는 척도는 원주에 적용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인간을 기계적으로 측정하려고 했다. 화가들은 척도 단위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서 머리를 택했다. 그러나 이러한 척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세한 결함을 내지 않고서는 나머지 부분들에 적용될 수 없다. 310″

‘대상과 주체의 매개로서의 실험’은 상당한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핵심적인 문구를 인용해보자. 이 부분은 실험자의 주관성, 현대 과학철학자들에 의해 ‘관찰의 이론의존성’이라고 명명된 과학의 특성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물론 최대한 객관적으로 실험과 관찰에 임해야 한다는 소박한 과학의 미덕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인간은 자기 주위에서 대상들을 인지하자마자 그것들을 자기 자신과 관련시켜 관찰한다. 사실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운명 전체는 그 대상들이 그의 마음에 드는지 그 대상들이 그의 흥미를 유발하는지 그리고 그 대상들이 그에게 유익한지의 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물들을 관찰하고 판단하는 너무나 자연스런 이 방법은 당연하리만큼 손쉬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간은 이 방법에서 수천 가지 범하기 쉬운 오류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 오류들은 종종 인간을 부끄럽게 만들고 또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기도 한다….마음에 드는 것을 좇아 연구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식물학자라면 식물의 아름다움이나 유용성에 자신의 마음이 움직여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인식의 척도와 판단의 자료를 자기 자신으로부터가 아니라 그가 관찰한 사물들의 영역으로부터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절제가 인간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여러 학문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이러한 방식으로 무한한 것을 파악하려는 여러 가설들, 이론들, 체계들 그리고 기타 유형의 관념들에 인간이 어떻게 도달하고 또 도달해야 하는가를 우리는 이 조그마한 논문의 제2편에서 연구해 볼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연과학 연구에서는 예술작품을 대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행동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술가는 자기 작품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에게 쉽사리 충고를 하거나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이유로 그것을 공식적으로 관람시키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그에 반해 자연과학 연구에서는 모든 개별적 체험과 예상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313-325″

“나는 나의 광학에 관한 논문들 중 처음으로 쓴 두 편에서 그와 동일한 계열의 몇 가지 실험을 수행하려고 시도했다. 이 실험들은 우선 서로 인접해 있고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으므로, 우리가 그것들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조망해 보면 단지 한 가지의 실험일 뿐이며 여러 다양한 견해들 중 단지 한 가지 체험일 뿐이다.

그처럼 여러 가지 체험들로 구성되었지만 한 가지일 뿐인 체험은 분명히 비교적 높은 차원의 것이다. 이 체험은 공식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공식을 이용해서 수많은 개별적인 계산 유형들이 나타난다. 그와 같은 비교적 고차원의 체험을 목표로 하는 것이 자연과학자의 의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분야에서 연구했던 훌륭한 인물들이 우리에게 그런 방향의 모범을 제시하고 있으며 우리는 가장 근접한 것을 가장 근접한 것에 연결하거나, 가장 근접한 것을 가장 근접한 것에서 추론하려는 신중함을 수학자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우리가 감히 계산을 할 수 없는 경우조차도 우리는 계속해서 마치 우리가 가장 엄격한 기하학자에게 대답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왜냐하면 수학적 방법이란 그것이 지닌 신중함과 명확함 때문에 바로 모든 주장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322-323″

그렇다면 괴테에게 실험이란 무엇인가? 괴테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는데, 그는 ‘측정량’의 가장 중요한 특성, 즉 ‘재생산 가능성 reproducibility’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들이 우리 세대 이전의 체험들이나 우리 자신 혹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와 동시에 겪은 체험들을 의도적으로 반복하고, 때로는 우연히 때로는 인위적으로 발생한 여러 현상들을 재현할 때 우리는 이것을 실험이라고 부른다.

“이 실험의 가치는 우선 그 실험이 단순한 것이든 복합적인 것이든 일정한 조건 아래서 일정한 기구와 필요한 기량만 구비되고, 필요한 상황들이 맞아떨어지는 경우에는 언제라도 다시 성립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317-318”


경험적 자료들의 중요성, 실험이 자연의 진실을 보여줄 수 있는 뛰어난 방법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괴테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각각의 실험이 개별적으로 아무리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고 하더라도 다른 실험들과 하나로 결합되어야만 그 가치를 지닐 수 있다…두 가지 현상은 서로 긴밀한 관계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있는 것처럼 긴밀한 관계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몇 번의 실험에서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끌어내지 않도록, 그리고 이들 실험에서 직접적으로 무엇인가를 증명하려고 하거나 어떤 학설을 이 실험들을 통해 확인하려고 하지 않도록 충분히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경험에서 판단으로, 인식에서 응용으로 넘어가는 과정인 이 통로는 인간 내부의 적들이 그를 기다리며 매복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318”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가까이에 있는 이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이 글에서 일종의 모순적인 내용을 기술하여 강력하게 주의를 환기시키려고 한다. 하나의 실험, 결합된 몇 개의 실험들은 아무 것도 증명하지 못한다는 것, 어떤 명제를 몇 개의 실험을 통해 직접 증명하려고 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다는 것, 그리고 가장 커다란 오류들은 사람들이 이 방식이 지닌 위험과 불충분성을 통찰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는 것 등을 나는 감히 주장하겠다. 319”
“영리한 사람이라면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자료들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만큼 더 기교를 사용한다는 것, 자기의 절대권을 보여주기 위해 현존하는 자료들 주에서 마음에 드는 유리한 것들만을 조금 발췌해 낸다는 것, 나머지 자료들은 자기 의견과 상충되지 않도록 정리할 줄 안다는 것, 불리한 자료들은 결국 뒤엉키게 하고 덮어두어 제거할 줄 안다는 것, 그리하여 전체가 이제 더 이상 자유로운 공화국이 아니라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궁전과 같이 되어버린다는 것 등을 우리들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320”

“자기 자신과 남들에 대해 정직하게 행동할 수 있는 자는 개개의 실험들을 아주 조심스럽게 수행함으로써 고차원적인 체험들을 이끌어내려고 할 것이다. 이 고차원적인 체험들은 짧고 평이한 명제들을 통해 표현되고 나열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체험들이 더 많이 표현되면 될수록 그것들은 수학적 명제들과 마찬가지로 개별적 혹은 종합적으로도 변화가 없는 불변의 상황 속으로 진입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고차원적인 체험들이 갖고 있는 요소들은 많은 개별적인 실험들로서 누구에 의해서라도 조사되고 시험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개별적인 부분들이 하나의 일반적인 명제로 표현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쉽게 판단될 수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자의가 행사되지 않기 때문이다. 324”


아마도 괴테가 주장하는 것은, 과학의 세속화과정 속에서 이론의 적용범위가 측정량에 의해 한정되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당연한 상식일지 모른다. 괴테는 우려하고 있다. “과학의 이론을 지나치게 일반화하지 말라!”고. 아마도 뉴턴주의자들 혹은 기계론자들에 대한 비판이었을 이 주장은 당시로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과학의 발전과정은 괴테가 우려했던 과정들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어쩔 수 없이 현상을 단순화하고, 이론을 일반화하며,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사유하기 때문에 과학을 발전시킨다. 과학의 세속화란 과학 내부에 존재하는 그러한 위험성이 ‘측정량’에 의해 제한받는 과정이다. 괴테의 우려는 과학 외부에 존재하는 철학자의 ‘충고’가 될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과학자로서의 충고는 아니다. 괴테는 과학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현재의 시점으로 괴테를 평가하자면, 괴테는 과학철학 혹은 과학사회학자와 비슷한 스탠스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한 근거는 20세기에 들어 라이엔바흐에 의해 확립된 ‘정당화의 맥락’과 ‘발견의 맥락’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들이 곳곳에 보이기 때문이다. 

“서로 연관 없이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체험된다고 해서, 또 실험들을 단지 서로 고립되어 연관이 없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해서, 그것들이 서로 고립되어 있다는 말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우리가 이 현상들, 이들의 연관을 발견하느냐 하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우리가 이 현상들, 이들의 연관을 발견하느냐 하는 것이다. 321”


과학학 연구에 인류학적 방법을 도입한 라투어의 원조는 어쩌면 괴테인지도 모르겠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하인로트 박사는 <인류학>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나의 방식과 활동에 대해 호의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351”


아무리 양보해서 과거의 시점에서 괴테를 평가한다 해도, 괴테는 과학자라기보다는 과학학자에 가깝다. 당대의 과학자들이 괴테를 무시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괴테는 과학자로서뿐만 아니라 과학철학자로서도 실패한다. 그 이유는 첫째, <자연과학론>이 ‘논증’이 아니라 ‘선언’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텍스트이기 때문이고, 둘째, <자연과학론>에서 괴테가 주장했던 과학의 소박한 규범들을 괴테 자신이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괴테는 “나는 이 설명으로 내 동료들을 만족시킬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대상과 주체의 매개로서의 실험’ 자체가 선언의 연속일 뿐이다. <경험과 자연과학>은 확실성을 추구하고, 자연을 단순화하려는 과학자들에 대한 비판이다. 경험에 대한 소박한 존중이 드러나 있지만 이 글 역시 선언의 연속이다. 이 글은 짧으므로 그대로 옮겨보자. 여기서 괴테의 태도가 확실히 드러난다.

“우리나 다른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부르는 현상들은 그 본성에 있어서 확실하고 확정적이지만, 외형상으로는 자주 불확정적이고 불확실하다. 자연과학자는 현상들의 확실한 점을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개별적인 환경에서 현상들이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주목할 뿐 아니라 그 현상들이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가에도 주목한다. 내가 특별히 연구하고 있는 분야에서 자주 언급하듯이 순수하고 항구적인 현상을 얻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많은 단편적 경험들이 존재한다. 이와 같이 단편적인 경험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일종의 이념을 정립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가들이 흔히 그렇게 하듯이 하나의 가설을 위해 정수들을 분수들로 만드느냐 하는 것과 순수한 현상의 이념을 위해 단편적 경험을 희생시키느야 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관찰자는 순수한 현상들을 육안으로는 볼 수 없고 많은 것이 순간적인 그의 정신 상태, 신체 기관의 상태, 빛, 대기, 날씨, 대상들, 취급 방법, 그리고 수천의 다른 상황들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상의 특성에 매달려 이것을 관찰하고, 측정하고, 심사숙고하고, 기록하려 하는 것은 바닷물을 마셔서 바다를 비워야 하는 것과 같다.

자연을 관찰하고 고찰함에 있어서 나는 가능한 한 다음과 같은 방법을 고수했다. 근년에는 더욱이 그렇게 했다.

현상들의 지속성과 수미일관성을 어느 정도까지 체험하고 나서 나는 거기에서 경험적 법칙을 이끌어내고 그 법칙을 미래의 현상들을 위해 기록해 둔다. 법칙과 현상이 비슷한 경우들에서 일치하면 내가 승리했던 것이고, 완전히 들어맞지 않으면 나는 하나하나의 상황들에 주의를 기울여, 이 모순되는 실험 결과를 얻게 된 새로운 조건들을 찾아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몇 번인가 같은 상황 하에서 나의 법칙에 반하는 경우가 나타나면, 연구 전체를 다시 계속해서 한 차원 높은 관점을 찾아야 한다고 나는 인식한다.

내 경험에 따르면 이런 때가 바로 인간 정신인 대상들의 보편성에 가장 많이 접근해서 그것들을 자기 가까이로 끌어들여 합리적인 방법으로 그것들과 (일상적으로 우리가 그렇게 하듯이) 융합할 수 있는 시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연구에서 제시해야 할 것은 다음 세 가지일 것이다.

1) 경험적 현상
2) 학문적 현상
3) 순수한 현상

경험적 현상은 모든 사람들에 의해 자연에서 인지되고 나중에 실험 등을 통해 학문적 현상으로 격상된다. 이 경험적 현상이 처음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상황과 조건들 아래서 그리고 다소 정리된 연속성 속에서 제시됨으로써 격상된다. 순수한 현상은 모든 경험과 실험의 최종적인 결과이다. 이것은 결코 고립되어 있을 수 없고 연속되는 현상들 속에 반드시 나타난다. 이 현상을 표현하기 위해서 인간 정신은 경험적으로 불확실한 것을 확정하고 우연을 배제하며 순수하지 못한 것을 분리하고 얽히고 설킨 것을 풀어헤쳐 미지의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만족할 수만 있다면 여기가 아마도 우리 역량의 최종 목적지일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원인에 대해 질문이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현상들이 나타나는 조건들에 대해 질문이 던져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상들의 필연적인 결과, 수천 가지 상황하에서의 그것들의 영원한 반복, 그것들의 불변성과 변화 가능성 등이 관찰되고 가정되고 인정되고 그러고 나서 인간 정신을 통해 다시 확정된다.

이 작업은 사변적이라고 불릴 수는 없는 것이다. 330-332″

왜 경험이 불확실한 것인지, 그것이 과학 내에서 어떻게 그 불확실성을 보여주는지에 대해 괴테는 이 짧은 글 속에서 제대로 논증하지 못하고 있다. 이 짧은 글은 그저 “경험은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라는 괴테 자신의 취향을 현란한 수사로 장식하고 있을 뿐이다.

실험자자 자신의 주관을 배제해야 하며, 실험의 결과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항상 주의해야 하고, 나아가 한 이론가의 주장이 독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괴테의 주장은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글 속에서 처참하게 무시된다. 괴테는 뉴턴을 비판할 때 사용했던 비판의 칼날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괴테는 ‘낭만주의’라는 이념 속에서 당대의 과학을 재단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과학의 소박한 미덕에 기여할 수 있었던 지점마저 놓쳐버렸다. <아름다움>에 관한 글을 보자.

“내가 두더지를 관찰하면서 주목한 것은 다른 부분들에 대해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 동물은 균형을 잃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조화를 이룬다는 인상을 줄 수 없다. 그러므로 두더지는 정말로 아름답지 못하다. 그 동물이 지닌 형태가 단지 얼마 되지 않는 한정된 행동들만을 허용하고 있고 또 일정 부분들의 우위가 그 동물을 완전히 조야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동물이 반드시 필요한 한정된 욕구들만을 방해받지 않고 충족시킬 수 있기 위해서는 완전무결한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욕구 충족 외에 어느 정도 목적 없는 자의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여력과 능력이 그 동물에게 아직도 남아 있는 경우에만 그 동물은 우리에게 정말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심어주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동물이 아름답다고 말할 경우, 내가 이 주장을 그 어떤 비례의 숫자나 척도를 통해 증명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헛수고가 될 것이다. 나는 위의 진술로 다음과 같은 것만을 말하려고 한다. 즉 이 동물의 경우 모든 지체들은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하나가 다른 하나의 활동을 바해하지 않으며 오히려 완전한 균형으로 인해 그것들의 필연성과 욕구가 완전히 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이 동물은 완전히 자의에 따른 행동과 동작만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말(馬)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말이 자유 속에서 지체들을 사용하는 것을 본다. 326-327″

괴테는 말에 대한 취향을 정당화하면서 자신이 뉴턴을 공격하면서 끌어들인 선언들을 과감히 뭉개버린다. ‘아름다움’이라는 낭만주의자의 가치가 과학에 스며들자마자 수학에 대한 존중과, 실험에 대한 존중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럼 인간은 어떨까?

“이제 인간에게로 눈을 돌려보면 우리는 인간이 동물로서의 속박에서 거의 벗어나 있는 것을 발견한다. 327”


괴테도 자신의 논문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안다.

“그리하여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아름다움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특성들을 제시하고 또 자유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개개의 대상을 제한하고 결정지을 것인가를 관찰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취급 방법은 다른 방법들과 구별되고, 또 예비 작업으로서 후세의 자연과학도와 문학도들이 이용할 수 있으려면 해부학적, 생리학적 근거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토록 다양하면서도 놀라운 전체를 표현하는 데 적합한 강의 형식을 고안해 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329″

따라서 “나는 <아름다움이란 자유가 있는 완전함이다>라는 이념을 기관의 특성들에 적용해 보려고 한다”라던 괴테의 시도는 실패한다.

그렇다고 해서 괴테가 헛된 시도를 했다는 것은 아니다. 과학에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문학인으로 살면서도 과학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리고 현재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그 어떤 인문학자들보다도 과학을 진지하게 탐구해갔던 (괴테가 직접 실험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의 모습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크다. 예를 들어 당대의 유명한 과학자 블루멘바흐와 볼프를 언급하는 ‘형성충동’이라는 장을 보자. 괴테가 얼마나 최신과학의 성과들을 탐독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미 언급된 중요한 문제에서 수행되었던 것에 관해 칸트는 그의 <판단력 비판>에서 다음과 같은 태도를 표명하고 있다.

“이 후성설을 고려해 보면, 이 이론의 증명뿐 아니라 부분적으로 이 이론의 무모한 사용을 제한함으로써 그 응용에 필요한 진정한 원칙들을 수립하는 데에 블루멘바흐(J.F. Blumenbach, 1752-1840: 독일의 생리학자이자 해부학자)보다 더 많은 일을 수행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와 같은 칸트의 양심적인 증언은 나에게 블루멘바흐의 저서를 다시 연구해 보도록 자극했다. 나는 이 저서를 이미 이전에 읽기는 했었으나 간파하지는 못했었다. 이 책에서 나는 한편으로는 할러와 보넷, 다른 한편으로는 블루멘바흐 사이의 중간인으로서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볼프를 발견했다. 볼프는 자기의 후성설을 위해서 하나의 유기체적 요소를 전제해야만 했다. 이 유기체적 요소로부터 유기체적 생활을 하도록 정해진 개체들이 양분을 섭취한다. 그는 이 물질에 일종의 본원력을 부여했다. 이 본원력은 스스로 생성되려고 하는 모든 것에 적용되며 이러한 이유로 인해 자신을 창조자의 지위로 격상시키고 있다.

이러한 유의 표현들은 아직도 몇 가지 미진한 점을 남긴다. 왜냐하면 유기물은 살아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 항상 무언가 물질적인 개념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힘이라는 단어는 우선 물질적인 것을, 더욱이 기계적인 것을 나타내며 그러한 물질로 구성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는 일종의 알 수 없는 이해 불능의 지점으로 남아 있게 된다. 이렇게 해서 블루멘바흐는 최고의 최종적 표현을 얻었고 이 수수께끼 같은 단어를 의인화해서, 이 문제의 단어를 ‘형성 충동’이라고 불렀다. 즉 형성을 야기하는 충동 내지 강한 활동력을 가리킨다….철학의 영역으로 돌아가 진화론과 후성설을 한번 더 고찰해 본다면 이것들은 단지 우리들의 마음을 애태우는 말들이다. 진화론은 물론 교양인에게는 거부감을 갖게 하지만 일종의 섭취 내지 수용론이 이 학설은 언제나 수용 주체와 피수용체가 전제된다. 그리고 전성설을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무엇이라고 불리든 우리는 선행되어야 할 모든 것을 우리가 인지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예정 설계, 예정, 예정 조화 등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하나의 유기체가 모습을 드러내게 될 때 생성력의 통일성과 자유로움은 변이의 개념 없이는 이해될 수 없다고 감히 주장하는 바이다. 343-345″

마지막으로, 과학사가 정혜경의 논문은 18세기~19세기를 살았던 대문호 괴테의 과학자로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혜경, “괴테의 식물형태학: 자연철학과의 밀착성과 낭만주의적 속성을 중심으로.” 한국과학사학회지 28, no. 2 (2006). 하지만 이 논문의 결론부는 지적하고 넘어가야겠다. 

 “그의 자연과학이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과학 패러다임에 부합하는 설명을 내놓았느냐의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의 과학이 경험적 확증을 향한 관찰과 실험에 기초한 경험과학의 정당성을 추구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나아가 그의 원형 개념이 후대 동/식물 형태학의 근거가 되었다는 점에서, 동식물의 세계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있어 유기체의 미세구조에 초점을 맞추는 세포학이나 유전학의 패러다임이 지배적인 오늘날이지만 괴테가 제창했던 형태학은 여전히 간과할 수 없는 무게와 잔상을 드리우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정혜경, “괴테의 식물형태학: 자연철학과의 밀착성과 낭만주의적 속성을 중심으로.” 한국과학사학회지 28, no. 2 (2006).


괴테의 <색채론>이던 뉴턴의 <광학>이던 그들의 연구는 이미 인지신경과학자들에게 넘겨졌다. 그들의 연구는 괴테나 뉴턴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와 비슷한 현상을 우연히 발견한다 해도 그것은 뉴턴과 괴테의 덕분이 아니다. 그것은 이론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과학 외적인 활동의 일부일 뿐이다. 뉴턴과 괴테의 광학 연구가 가지는 의미는 철저히 과거 시점에 한정되어 있다. 그것의 현재적 의미는 과학이 아니라 과학사 혹은 과학 외적인 것에서 구해져야 옳다. 정혜경의 논의는 로버트 리쳐드의 ‘낭만주의 과학 Romantic Science’ Richards, Rj, The Romantic Conception of Life: Science and Philosophy in the Age of Goethe (Science and Its Conceptual Foundations). (Chicago University Press, 2004) 에서 따온 것 같은데, 낭만주의 과학이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만약 그런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낭만주의 과학자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괴테가 아니라 블루멘바흐나 볼프다. 과학사가들의 이러한 태도는 창조과학에 대한 이성규와 박희주의 접근처럼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과학사에 대한 연구가 현재의 과학활동 자체에 영향을 줄 수는 없다. 과학사가들은 과학자들에게 훈수를 두는 존재들이 아니다. 과학사의 가치는 과학의 기술적 규범에 영향을 미치는 데서 구해지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제도적 규범들에 영향을 미치는 데에서 구해져야 한다. 우선 과학자 괴테가 지니는 의미는 과거시점에서 구해져야 한다. 이는 과학사라는 학문 내부를 의미한다.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려면, 괴테라는 인물로부터 현재 한국의 학계를 비판하는 논거 정도를 끌어오면 되는 것이지,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이 지배하는 환원론적 패러다임으로부터 생물학을 ‘구원’하시기 위해 과학사학자들이 나설 필요는 전혀 없다. 위에서 보여준 것처럼, 괴테라는 대문호의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독일의 토양, 그런 것을 한국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과학사가들은 이런 문제를 고심해야 한다. 

그리고 통섭이 화두가 된 이 시점에서 괴테라는 대문호, 예술가의 전형이라고 하는 이의 과학에 대한 태도로부터 과학자가 아닌 오히려 예술가들에게 괴테의 과학자로서의 모습이 보여질 필요성이 더욱 대두되는 것이다.

“학문에 어느 정도 공헌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전체 생애를 바치고 학문 전체를 조감하면서 다루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물론 이것은 전문가에게는 아주 합당한 요구 사항이다. 하지만 학문 일반의 역사, 특히 자연과학의 역사를 두루 살펴보면 우리는 더 뛰어난 많은 업적들이 개별적인 분야에서 한 개인에 의해, 아주 빈번하게는 문외한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말하자면 예술가는 내용과 형식을 자신의 고유한 본질의 깊이로부터 불러일으켜야 하고 소재를 지배적인 위치에서 다루면서 외적인 영향들을 오직 자신의 형성을 위해서만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유에서 예술가는 딜레당트를 존경해야만 한다. 그 대상이 학문일 경우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왜냐하면 애호가는 여기에서 만족스럽고 유용한 어떤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문은 예술보다도 훨씬 더 경험에 의존하는데 상당한 방면으로부터 수집되어야 하며 많은 손들과 머리들이 없이는 해낼 수 없다. 지식은 전달될 수 있으며 이러한 재보들은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이 획득한 것을 많은 사람들이 자기 것으로 삼게 된다. 그러므로 학문에 공헌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란 없다.”

더 재미있는 것? “반대자들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나의 존재가 역겹고 그들은 나의 행동의 목표를 비난하며 그 목표를 위한 수단을 잘못된 시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거부하며 또 무시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고 나로서는 인생의 모든 것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친구들이 나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도 무한 속으로 이끌어가는 것도 기꺼이 허락한다. 나는 언제나 진실된 교화의 필요성에 대한 순수한 신념을 갖고 그들의 말을 경청한다. 352”

또한, <자연 단장 -1738년 ‘티푸르트 산문’에서>는 일독의 가치가 있다. 이 글은 “자연! 우리는 그것에 둘러싸여 있고 또 휘감겨 있다.”로 시작해서 “모든 것은 자연의 공로이다”로 끝난다. 

글이 길어졌다. 별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은 대강의 감상을 혼자 보기 위해 정리한 글일 뿐이다. 괴테의 말로 마무리하자. 

“많은 사람들이 오고갈 것이며, 지식은 늘어날 것이다. 286” 

“그러므로 예술의 방법은 자연과학, 수학의 방법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기본적 진리에 달려 있으며, 이 진실의 양상은 사변에서보다는 실천에서 쉽사리 나타난다. 왜냐하면 이 실천이야말로 정신에 의해 수용된 것, 그리고 정신적 이해력에 의해 진리로 여겨지는 것을 판단하는 시금석이 되기 때문이다.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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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좋은 정리 감사합니다^^

  2. 관련된 논쟁을 거의 다 읽어봤는데,
    한국 사회의 한 이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꽤 흥미롭더군요.

    싸움이야 싸움대로 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된 사회과학자가 논쟁에 참여하였다면
    한국 사회에서 문과와 이과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구분된 이유가 뭔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사실 이과학문의 전통이라는게 서구식 전통이라서,
    한국의 전통적인 지식인에게는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고..
    386 세대 때 지식인들이
    엄밀한 공부 안하고 너무 빨갱이 지식만 살피다가
    피를 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좀 진지하게 파보면 재미있는 연구가 될 것 같은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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