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야독(夜讀)의 기록

트위터에서 누군가 의사 노먼 베쑨(Henry Norman Bethune, 亨利·诺尔曼·白求恩, 1890-1939)에 관한 트윗을 남긴 것이 어제 저녁이었다. 캐나다 출신의 베쑨은 스페인 내전과 중국 내전에 뛰어 들어 인도주의적인 의료활동을 펼쳤고, 중국 인민의 영원한 친구로 남았다고 한다. 한국의 의사들에 대한 악감정이 더욱 심해지는 계기가 될 것 같기도 하다. 테드 알렌, “닥터 노먼 베쑨.” 실천문학사 (2001).
베쑨은 그가 가장 잘 아는 무기, 즉 의사라는 자신의 직업을 무기로 투쟁에 참여했다. 캐나다의 뛰어난 흉부외과 의사였던 그는 의술을 단지 사람들의 질병만을 돌보는 것이 아닌, 몸의 질병과 사회의 질병을 통합적으로 파악하여 새로운 사회체제를 건설하는 것으로까지 그 의미를 확장시켰다. 그는 몸의 질병과 사회의 질병이 함께 고쳐질 때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인술을 펼 수 있다고 믿었다. 베쑨은 전장의 와중에도 학생들에게 의술을 가르치고 최초로 혈액은행을 운영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부상병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그대들이 먼저 그들을 찾아가시오”라는 그의 가르침은 시대가 세계의 민중들에게 짐 지운 투쟁에 의사들 또한 전사의 일부로서 참여하는 것임을 의미했다.
스스로 결핵환자이기도 했던 그는 많은 사람들을 치료했으나 자신을 패혈증에서 구제할 시간은 갖지 못했다. 닥터 노먼 베쑨의 생애는 이제 대륙과 계급을 뛰어넘어 수많은 민중들의 유산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닥터 노먼 베쑨, 노동자의 책>
스페인 내전은 언제나 내 마음 속에 탐구의 대상으로 깊이 자리하고 있다. 아나키스트들이 마지막으로 그 열정을 불태우며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격전장. 아마 내가 유럽 여행을 하게 된다면 가고 싶은 곳은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뿐이다. 오스트리아야 비엔나 학단의 흔적을 찾아 보고 싶기 때문이겠고. 여하튼 스페인 내전에 관한 논문 몇 편을 다운 받아 읽는다. 황보영조의 두 논문이 아나키스트들의 역할을 알아 보는데 가장 도움이 된다. 황보영조, “스페인 내전의 전쟁 이념 분석.” 이베로아메리카연구 (September 2001). 아나볼 논쟁은 전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였지만, 스페인 내전의 특징은 공산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이 프랑코의 군대에 맞서 협력을 했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스페인에서 바쿠닌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아나코 생디칼리스트들이 노동운동에서 큰 축을 이루고 있었다. 엔터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이라는 방대한 연구서가 번역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도 왜 스페인이라는 공간에서 아나키스트들이 그렇게 거대한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분석은 자세히 논구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책의 부제가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이라는데서 알 수 있듯이, 스페인 내전은 인류가 발명했던 모든 이념들이 충돌했던 역사의 흔적이기도 하다.
스페인내전에 대해 공부하면서도 쉽게 풀 수 없었던 가장 큰 의문 중 하나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유독 스페인에서’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들이, 다른 좌파 세력들 중에서도 ‘유독 아나키스트들이’ 그토록 광범위하고 강력한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사실 이 지점이 앤터니 비버가 스페인내전을 전체적으로 조망하여 재구성하는데 있어 가장 취약한 부분이기도 하다….  바람구두님의 리뷰 중에서.

 

아나볼 논쟁에서도 그렇고, 동아시아 아나키즘의 역사에서도 그랬지만, 국내나 국외의 사회주의자들에게 일반적으로 인식되어 있는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하지만 내가 보는 역사서들에서 아나키스트들은 자본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 진영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그런 존재들이었고, 언제나 배신을 당했으면 당했지 배신을 하지는 않았었던 존재들이다.
아나키스트들은 결국 저들이 배신할 것을 알면서도 그들과 동맹을 맺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적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절망적 희망을 품고 적대적 공존에 나선다. 바람구두님의 리뷰 중에서.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이처럼 부정적인 인식은 -그들이 이미 이념들의 격전장에서 패퇴했고, 역사에서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건재하다. 예를 들어,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서 출판된 <정세와노동>에 실린 한 2008년 논문을 보자.
다양한 사이비 좌익 집단들―무정부주의자들(Anarchists) 및 트로츠키주의자들―과의 ‘단결’은 자본가들과의 ‘단결’ 만큼이나 치명적이다. 편집부, “스페인 내전(1936-1939)의 교훈.” 정세와노동 32 (2008).
이에 대해 가타부타 반박할 생각은 없고, 지금으로선 그럴 여유도 나지 않는다. 스페인 내전을 중심으로 한 스페인의 전반적인 역사에 관해서라면 다음 논문이 큰 도움이 된다. 디터 콘니에츠키, “스페인 – 다시 시험대에 선 ‘성공적으로 진행된 정치적 민주화 과정’.” 전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 주 스페인 사무소 소장 (1985): 1-24.
베쑨이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내 관심을 끈 이유는 요즘 집필 중인 <잊혀진 전통>과의 연관성 때문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연재의 후반부에서 사회운동에 나섰던 과학자들의 전통을 보여줄 생각인데, 스페인 내전에서도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다지 자세히 뒤져보지는 못했지만 데이빗 게스트(David Guest, 1911–1938)라는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인물이 걸려나온다. J.D. 버날을 비롯한 영국 사회 지식인 계층, 특히 과학자 계층의 공산주의 운동 가담은 유명한 것인데, 아마 게스트도 그들 중 한 명이었던 것 같다. 아마 버날과의 연계점이 있을 것 같은데 그건 나중에 뒤져볼 일이다. 데이빗 게스트에 관한 평전이 있는 모양인데, 아마 수학자들이 좀 관심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Guest, Carmel Goldsmid, David Guest;: A scientist fights for freedom (1911-1938) A memoir. (Lawrence & Wishart limited, 1939). 게스트는 스페인으로 떠나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밝혔다고 한다. 수학자로서 사회를 바라보는, 내가 생각하는 과학자-지식인의 모습이 이 짧은 문장에서 잘 드러난다.
Today we have certainly entered a period of crisis, when the arguments of ‘normal times’ no longer apply, when considerations of most immediate usefulness come in. That is why I have decided to take the opportunity of going to Spain.
아마 게스트에 관한 문건들을 좀 읽어보다가, 1,2차 세계대전에 걸쳐있는 기간에 자유와 평화를 위해 투쟁했던 과학자들을 좀 뒤져보려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이 논문을 발견했다. Ridenour, L., “A scientist fights for peace.” Atl. Mon 179, no. 5 (1947). 이 논문은 사이버네틱스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천재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 1894-1964)에 관한 에세이다. 이 시기의 과학자들이 세계대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예를 들어 맨하탄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잘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아마 맨하탄프로젝트야말로 이후 과학자들과 현대과학기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양산하는데 가장 크게 공헌했던 사건일지 모르겠다. 위너가 맨하탄프로젝트에 초청을 받고도 이를 거부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데, 그 뿐 아니라 위너는 다양한 책들로 자신의 사상을 저술해 놓았다. 이 당시 활동했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좋은 방향이건 나쁜 방향이건 사회 속에서 매우 능동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과학자라는 직업이 탄생하고 그들 대부분이 매우 격정적이었던 이 시기야말로 우리에게 잊혀진 전통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의 암울한 기억에 대한 보상기제가 작동한 방식은 과학기술에 대한 증오로 나타났다. 여전히 영화에서 나타나는 과학자들의 이미지는 이 시대에 형성된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사실 이러한 인식이 당시의 시대를 보여주는 전부는 아니다. 과학자들은 크게 낙담하고 반성했고, 전쟁과 권력에 반대하며 투쟁하기도 했다. 아마도 나는 그러한 잊혀진 이야기들을 꺼내려고 시도할 것 같다. 위너는 그러한 사례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영웅주의 과학신화를 한꺼풀만 벗겨내면, 당시의 대부분의 과학자들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었던 지식인으로서의 이미지가 드러난다. 그걸 보이는게 <잊혀진 전통>의 목표다.
위너가 살던 시기는 전쟁으로 혼란스러웠을 뿐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과학기술에 대한 악마적 이미지가 형성되는 동시에, 과학기술에 대한 낙관주의적 시각이 융성했던 복잡한 세기였다. 잘 알려진 스노의 <두 문화>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탄생했다. 역사공부라고는 전혀 하지 않은, 기껏해야 소설이나 좀 써본 스노는 이러한 맥락을 파악하지 못했다. 오히려 위너가 그러한 면을 잘 포착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에른스트 피셔의 <과학혁명의 지배자들>의 일부를 옮겨본다. 참고로 툴민도 위너에 관한 글을 뉴욕타임즈에 남겼다. Toulmin, Stephen, “The Importance of Norbert Wiener.” New york times, 1964.
우리는 새로운 과학, 즉 선과 악이 모두 가능한 기술적 발전을 내재한 과학의 도입에 기여했다. 우리는 그런 기술적인 발전을 주위에 존재하는 세계로 계속 전달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벨젠 (독일 첼레의 북서쪽에 위치한 벨젠 마을 근처에 나치 포로수용소가 있었다. 이곳에서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가 죽었다 – 옮긴이) 과 히로시마이다. 우리는 결코 이런 새로운 기술적 발전을 막을 수 없다. 진보는 이 시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책임감이라고는 없는, 돈으로 움직이는 기술자의 손에 진보를 맡기지 않도록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대중이 현재 연구의 방향과 상황을 이해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소통은 사회의 모르타르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동안 소통의 통로를 방해받지 않고 유지하는 것을 과제로 삼았던 사회가 대부분 문화의 존속과 붕괴에 관련되어 있음을 보아왔다. 불행하게도 소통의 사제들은 서로 다른 원칙을 위하여 투쟁하고, 다른 가르침을 가진 교단과 종파로 나뉘어져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두 교단 중 하나는 지식인과 정신과학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과학자들이다.
나는 자연과학과 기계시대에 대한 지식인들의 적대적인 입장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대적인 태도는 긍정적인 것이고 건설적인 것이다. 그리고 기계시대가 진보하기 위해서는 많은 부분에서 적극적이고, 사려 깊은 반작용을 필요로 한다. 오히려 나는 기계시대에 관심을 거의 두지 않는 태도 때문에 지식인들을 비난한다. 그들은 자연과학과 새로운 기술의 핵심을 자세하게 알 필요가 있으며, 기계시대에 직면해 좀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 그들의 태도는 증오에 차 있지만, 그런 적대적인 태도가 무언가 행동하도록 자극할 정도는 아니다. 그들에게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현재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어떤 의식적인 태도보다도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노버트 위너 : 사이버네틱스의 세계 중에서
위의 글은 위너의 어떤 책에서 인용한 것인지 찾을 수 없었다. <지식인과 과학자>라는 챕터는 Wiener, Norbert, The Human Use Of Human Beings: Cybernetics And Society (Da Capo Paperback). (Da Capo Press, 1988). 라는 책의 일부인데, 해당 챕터에는 위의 인용문이 없다.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을텐데, 위너의 글들을 읽다보니, 위너와 함께 사이버네틱스의 철학을 건설했던 멕시코의 생리학자 아투로 로젠블루스(Arturo Rosenblueth Stearns, 1900-1970)가 눈에 들어온다. 위너는 그에게서 생물학을 배웠다고 한다. 로젠블루스와 위너가 함께 저술한 논문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이 세 편은 잘 챙겨두고 나중에 읽어볼 기회가 있을 듯 하다.
위너보다는 생리학자인 로젠블루스에게 더 관심이 가는 것이야, 인지상정일텐데 그에 관해서는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제한되어 있다. 아마 대부분의 저술은 스페인어로 되어 있는 듯 하다. 신경생물학의 과학철학에 관한 영어로 된 책을 한권 남겼는데 이 책이다. Rosenblueth, Arturo, Mind and Brain: A Philosophy of Science. (The MIT Press, 1971). 요즘 통계학사 공부를 하다보니 그가 쓴 이런 논문도 눈에 들어온다. 저장만 해두고 읽지는 않았다. 게다가 내 본업이 이제 신경생물학이다보니 언제고 기회가 되면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Rosenblueth, A., N. Wiener, W. Pitts, and J.G. Ramos, “A statistical analysis of synaptic excitation.” Journal of Cellular and Comparative Physiology 34, no. 2 (1949): 173–205.
아침부터 초파리들과 씨름하다가 잠깐 책상에 앉아 이러고 있는데, 훌쩍 6시간이 지나버렸다. 좀 놀아야겠다. 내일부터는 이런 공부를 좀 자제해야겠다고 결심해본다. 도대체가 두뇌는 이런 공부에 중독이 된 것 같은데, 먹고사는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아서 말이다.
닥터 노먼 베쑨10점테드 알렌 지음, 천희상 옮김/실천문학사

 

스페인 내전10점앤터니 비버 지음, 김원중 옮김/교양인

 

 

과학혁명의 지배자들10점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이민수 옮김/양문
  1. 좋은 글들 읽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데 별 도움이 안되는 독서가 의미있는 세상도 오겠죠?

  2. 스페인전은 Guernica 부터 생각나네요, 결과를 알고서도 싸우는만큼, 희망아닌 악으로, 그래서 더욱 잔인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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