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꿀벌의 사회생물학

오늘 이스라엘에서 날아온 박사후연구원(후보)의 세미나가 있었다.  폰 프리슈의 전통을 따라 동물행동학을 연구하는 그런 전통적인 실험실에서 온 학자였지만, 이제 꿀벌의 행동연구에도 분자생물학적 도구들과, 초파리에서의 연구성과들이 활발히 도입되고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생체시계와 꿀벌 군락의 미세환경 사이의 관계를 부족한 도구들로 훌륭히 메꾸어 가고 있었다.
꿀벌의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이 끝났고, 마이크로어레이를 통한 분석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꿀벌을 연구하는 행동생물학자들에겐 유전학이라는 강력한 도구가 없다. 유전학 연구를 위해 꿀벌은 참 부적절한 종이다. 하나의 돌연변이 계대를 얻으려면 군락 전체를 유지해야만 한다. 물론 한 계대를 얻으면 10년도 넘게 유지하는 건 일도 아니다. 여왕벌은 10년을 넘게 산다. 하지만 누가 시도하려 할까? 계대 하나 얻는데 10년도 넘을 그 일을? 하지만 꿀벌이 양봉업이라는 산업에 연결되어 있으니 누군가 시도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2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면서 참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다. 아마 태어나서 처음으로 현장의 동물행동학자와 대화를 나누어본 듯 하다. 한국에 동물행동학자라 할 수 있는 학자는 거의 없고, 특히 꿀벌에 대한 기초적인 행동연구를 수행하는 사람은 아예 없다고 봐도 될테니까.
연구하는 동안 벌에 참 많이도 쏘였고, 그래서 알러지도 생겼다고 하더라. 2시간마다 아이 젖을 짜놓아야 한다며 올라가던데 그 모습이 참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 랩에 들어온다면 참 좋겠다. 내가 꿈꾸다 포기했던 그 전통의 학자를 가까이서 좀 지켜보고 싶다. 그리고 그런 전통의 학자들이 분자생물학의 강력한 도구들을 찾아 떠나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관찰하고 싶다.
포항에선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을 하고, 상상이 현실이 되는 삶을 살고 있다.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답답하고, 어떤 열정들은 사그라들고 있지만, 연구에 대한 열정이 다시 불붙는 것은 좋은 일이다. 글을 쓴다는 일은, 예전에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절반의 사기다. 참 뻔뻔하게 사기를 치는 학자들이 우리 곁에는 참 많다. 사기를 치면 안된다는 강박이 있던 시절은 끝난 듯 하고, 사기가 사기를 낳고, 이제 무엇이 사기인줄도 모를, 그런 시절로 우리는 향해가고 있는 듯 하다. 그런 시절의 글쓰기란 여간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시도하지 말아야할 그런 일인 듯 하다. 지겨워진다. 스스로에게도 세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일들을 너무 많이 벌려온 것 같다. 고민 중이다. 해결이 되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 언제나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