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과학자

과학이 세상에 기여하는 바는 무엇인가. 기술과 연결된 실질적인 도움은 답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과학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며, 과학이, 만약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의 체계가 존재한다면, 그 체계의 목적도 그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은 조금씩 자연에 숨겨진 비밀을 찾는다. 무엇을 찾느냐는 문제에 있어 과거의 과학자들은 자유로웠고, 현대의 과학자들은 아니다. 연구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은 연구비를 대는 각종 조직들이다. 그런 방식으로 과학은 과학자들도 모르는 사이 새로운 방식으로 철저히 변화했다.
놀라운 것은 과학자들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해왔다는 것이다. 산업체계가 변하고 경영자들과 노동자들이 대립하던 시기에도 과학자들은 그저 순순히 그 변화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지금에 이르렀다. 정부는 과학자들을 다독거렸으며, 그들을 미래의 주역이라고 추켜세웠다. 과학자들은 유치원생처럼 그 칭찬에 우쭐하며 자신을 둘러싼 현실의 변화를 돌아보지 않았다. 실제로는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들보다도 못한 존재이면서도, 스스로를 엘리트라고 착각하는 과학자들의 못난 습성은 그렇게 탄생했다.

과학 외부에서 벌어진 변화에 적응한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문화도 바꾸어가기 시작했다. 경쟁은 당연한 것이 되었으며, 그 와중에도 일개인으로서는 해낼 수 없는 연구를 위해 공동연구를 수행해야 하는 이상한 딜레마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과학자의 수는 필요이상으로 늘어갔으며, 이제 정부조차 그 많은 수의 과학자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정부의 책임만은 아니며, 그 변화된 체계에 순응한 과학자들의 잘못이기도 한다. 그렇게 과학이라는 체계가 급격히 변해갈 수록, 그 체계 속의 과학자들은 일종의 노예가 되어간다. 왜냐하면 연구실 밖의 과학자는 나약하고 초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구를 할 수 없는 과학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는 본질적이고 또한 현실적인 물음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과학자들의 수가 지금, 그리고 곧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를 할 수 없게 된 과학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들은 책을 쓸 수도 없고, 강연을 할 수도 없으며, 전망 좋은 직장에서 남들과 경쟁할 능력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예술가들처럼 사회에 문화적 공헌을 할 수 있는 기예도 갖추고 있지 못한데, 그들이 가진 기예라는 것이 고작해야 값비싼 장비가 없다면 무용지물인 그런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실 밖에서 과학자는 진정 초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선동을 보고 있으면 나오는 건 헛웃음 뿐이다. 노예가 되어 사는 과학자들의 수를 더 늘려야 과학이 사는 것이고, 나아가 과학은 처음부터 나라를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영리해서 정부와 과학자들의 그런 선동에 속지 않는다. 그들은 기회만 된다면 의대와 법대를 선택할 것이고, 대기업이나 전망좋은 IT기업에 취직할 것이다. 과학자의 수는 곧 줄어들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것이 있다면 당연히 그리 되야 한다. 정말 시장의 논리라는 게 논리적이라면 그리 되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청년들을 과학의 길로 이끄는 이들을 경멸한다.

누구도 예술의 혼을 찾는 예술가에게, “당신의 작업은 돈이 되느냐”고 묻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런 질문에 답해야 한다. 누구도 진정한 예술을 찾아가는 예술가에게, “당신의 예술은 국가발전에 어떤 도움이 됩니까”라고 묻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런 질문에 짐짓 애국자인 척 답해야 한다. 수준 높은 예술을 즐기기 위해  품을 파는 것도 마다하지 않던 사람들조차, 과학에 대해서는 반대로 행동한다. 과학은 쉬워야 하며 그것을 쉽게 해설해 주는 것이 과학자의 의무다. 누가 그런 의무에 보상해주는지는 알지 못한다.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을 그런 식으로 쉽게 다시 그려내는지도 알지 못한다.

과학은 그리고 현대의 과학자들은 이곳 저곳에서 치이고 또 치여, 이제 궁지에 몰리게 되었음에도 아무런 의심을 갖지 않는 헛똑똑이들이다. 이 비참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과학이 상식을 의심하는 숭고한 활동이라는 착각을 하는 존재들이다.  그러한 환상은 곧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신음소리가 한계를 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과학을 둘러싼 거대하고 어찌보면 왜곡된 변화를 목도하면서, 그저 실험실의 동료들과 대학에서의 안정된 자리를 위해 경쟁하며 그렇게 사는 것이 과학자로 사는 것의 전부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에겐 힘이 없다. 그저 조용히 한걸음 뒤로 물러서 고민해 본다. 연구실 밖에서, 과학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추신: 누군가 어떤 젊은 청년이 찾아와 과학의 길을 묻거든 이렇게 대답해주라. “당신이 의사들과 비슷한 훈련과정을 거치는 동안에도, 또다시 박사후과정이라는 임시직으로 몇년을 전전하는 와중에도 평범한 직장인들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힘든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나이 40이전에 안정된 직장을 잡게 된 그 시점에 당신을 되돌아보게 된다면, 같은 또래의 친구들과 확연히 다른 차이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당신에겐 -운이 좋다면 빚도 없고- 모아둔 돈이 한푼도 없으며, 부양해야할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긴 세월에 대한 보상이란 결국은 다시는 연구에 집중할 만한 환경조차 보장해주지 못하는 그런 것이었다는 것을.”

  1. 전 공대 박사 막바지에 와 있습니다만, 여러 구절에 공감이 갑니다. 과학이 살아야 나라가 사는게 아니라, 나라가 살아야 과학이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예전엔 논문수로 압박하더니 이제는 IF를 높이라구 하다니… 앞으로는 그냥 사업해서 돈벌어 오라고 할 것 같네요.

  2. 오랜만이야. 나도 요즘 아이들에게 전자공학이랑 로봇제어 가르치느라 이래저래 바쁘네.
    안 그래도 오늘 새벽에 꿈에 나오길래 참 반갑더구만.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가 내가 글 좀 쉽고 재미있게 쓰라고 투덜거렸거든. 근데 이번 글은 짠하기조차 하네. 맘에 들어.
    건강하게 잘 지내라.

  3. 저 또한 이학박사 막바지에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네요. 요새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돈이 없이는 실험조차 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정부의 돈을 얻기 위해서는 뭔가 ‘공헌’하는 말을 해야하겠죠. 진심은 그게 아니어도.. 이렇게 실험실 밖에서는 나약하고 자신의 권리조차 강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이들이 실험실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내 자신의 약함에 하루하루 한숨이 나옵니다.

  4. 모든 경제활동이 그렇듯 돈이 나와 먹고살수있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은 그게 누군가의 욕망을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매춘부는 남성의 성욕을 해소시키고 학원강사는 학부모들의 실체없는 공포심을 해소시키는데 일조를 하기 때문에 먹고살 수 있듯이, 과학자(기초분야)는 대중이 느끼는 “왜 우리처럼 우수한 민족이 노벨상 하나 못 받나” 또는 “우리나라 미래의 먹을거리는 어디서 나오나”하는 공포감이 그들의 세금을 기초과학 연구에 어느 정도 이용됨으로써 약간이라도 해소되기 때문에 덕분에 먹고살수 있는 것이겠죠.성욕이 당분간 없어지지 않겠듯이 그런 공포심도 당분간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어느정도 계속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약사들 박카스 수퍼판매 하나로 한방에 가는 것처럼 불안하지는 않겠죠. … 근데 왜 난 아직 연구비를 못 딴걸까요.

  5. 문득 이런 질문을 받았던게 생각납니다
    자넨 왜 물리학을 해서 이 고생을 하고있느냐

  6.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이러저런 생각을 하게 하네요. 그래도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내 이름 앞에 과학자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 그 과학자라는 타이틀의 의미에 대해서, 역사적 맥락에 대해서,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은 데서 좀 씁쓸합니다. 다만 길들여졌더라도 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데서 위안을 삼을 수 있을까요? 그것도 아닌가? 연구비를 받아내기 위해 ‘내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득 그런 의문도 드는, 비 내리는 날입니다.

  7. 간간히 들러 좋은 글들을 읽으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곤 했었는데, 글을 처음 남겨보는 것 같네요.. 저는연극을 전공해서 무대배우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전혀 다른 분야이지만, 이 글을 읽으며 문득 많은 공감이 되네요. 과학의 ㄱ도 잘 모르고 살아온 저이지만 어딘가 매우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열악한 대한민국의 현 무대예술계에서 과연 어떤 예술이 자나라고 또 자리잡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구요.. 어설픈 희망을 얘기하기에 이보다 더 안좋을 때가 있을까 라는 생각도 살포시 듭니다.. 아. 트위터에서 뵐 때 참 좋았었는데, 그렇지 못해 아쉬웠네요. 우재님이 늘 건강하시기를 바래요.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