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성실 그 사이

대만 출신의 잘 나가는 신경생물학자가 대학원생들에게 보낸 편지라고 한다. 원문

To all lab members:

Over the past several months, it has become clear to me that if there is no drastic change in the lab, Poo lab will soon cease to be a productive, first-rate lab that you chose to join in the first place. Lab progress reports over the past six months have clearly shown the lack of progress in most projects. One year ago, when we first moved to Berkeley, I expressed clearly to everyone my expectation from each one in the lab. The most important thing is what I consider to be sufficient amount of time and effort in the lab work. I mentioned that about 60 hr working time per week is what I consider the minimal time an average successful young scientist in these days has to put into the lab work. There may be a few rare lucky fellows like Florian, who had two Nature papers in his sleeve already, can enjoy life for a while and still get a job offer from Harvard. No one else in the lab has Florian’s luxury to play around.

Thus I am imposing strict rules in the lab from now on:

1. Every one works at least 50 hr a week in the lab (e.g., 8+ hr a day, six days a week). This is by far lower than what I am doing every day and throughout most of my career. You may be smarter or do not want to be as successful, but I am not asking you to match my time in the lab.

2. By working, I mean real bench work. This does not include surfing on the computer and sending and receiving e-mails for non-scientific matters unrelated to your work (you can do this after work in the lab or at home), and excessive chatting on nonscientific matters. No long lunch break except special occasions. I suggest that everyone puts in at least 6 hr concentrated bench work and 2+ hr reading and other research-related activity each day. Reading papers and books should be done mostly after work. More time can be spent on reading, literature search and writing during working hours when you are ready for writing a paper.

3. I must be informed in person by e-mail (even in my absence from the lab) when you are absent from the lab for a whole day or more. Inform me early your vacation plan. Taking more than 20 working days out of one year is the maximum to me. In fact, none of you are reporting any vacation and sick leave on your time sheet (against the university rule, although I have been signing the sheets), but you know roughly how many days you were not here.

On the whole, I understand and accept the fact that you may not fulfill the above requirements all the time, due to health reasons, occasional personal business. But if you do not like to follow the rules because it is simply a matter of choice of life style, I respect your choice but suggest you start making plans immediately and leave the lab by the end of January 31. I will do my best to help you to locate a lab to transfer or to find a job.

If you do accept the conditions I describe above, I am happy to continue to provide my best support to your work, hopefully more than I have done in the past. I will review the progress of everyone in the lab by the end of June of 2002. I expect everyone to have made sufficient progress in the research so that a good paper is in sight (at least to the level of J. Neuroscience). If you cannot meet this goal at that time, I will have to ask you to prepare to leave my lab by the end of August.

일주일에 50시간을 일하는 것이 미친 짓이라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른 분야의 과학에 비해 노동력이 상당히 요구되는 (실험)생물학 분야에서, 실험에 투자하는 시간이 반드시 생산성과 비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다 (물론 생각 없이 실험만 하다간 열심히 딴짓만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무밍 푸’라는 이 교수의 사고방식이 반드시 이 분야의 성공한 과학자 전부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 경험으로 많은 성공한 (그리고 성공하고자 하는) 과학자들이 이런 방식으로 대학원생과 포스트닥 등의 피고용인들을 괴롭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느끼는 감회는 현장에서 이러한 교수들과 불화를 겪는 단순한 피고용인의 그것과 또 다르다. 과학에 관한 글을 쓰면서, 나는 현재의 성공한 과학자 이전의 세대들(가깝게는 20세기 초중반, 멀게는 19세기까지)의 이야기를 읽고 또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밍의 선배들이 무밍의 방식으로 혹은 무밍이 그의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방식으로’만’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다. 과학의 역사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밍이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를 그렇게 만든, 과학을 둘러싼 변화가 나는 두려운 것이다. 존 지만(John Zimann)이 말했듯이, 지만이 과학연구를 수행하던 바로 그 이전에 과학계는 큰 구조적 변화를 겪었다. 지만은 그것을 ‘아카데믹 과학’에서 ‘포스트 아카데믹 과학’으로의 이행이라고 불렀고, 그 변화의 장단을 따지기 전에, 그 변화의 내용을 분석했다 (아무도 읽지 않겠지만, 사이언스타임즈에 이런 내용을 쓰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과학자들은 과학연구를 일종의 비즈니스 모델로 사고하기 시작했다. 무밍이 사용하는 단어들에도 이러한 변화가 잘 드러난다. 예를 들어 그는 우리 랩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생산적(productive)’이지 못하다”고 말한다. ‘productive’라는 말은 과학 분야에 몸담고 있는 이들에게는 이제 매우 친숙한 단어다. 이는 질 좋은 논문을 단시간에 잔뜩 쏟아낸다는 걸 뜻한다. 무밍이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시간관리의 철학도 마찬가지다. 그는 정확히 회사의 경영자가 노동자를 다루듯이 학생들을 다루고자 한다. 경영자가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주고 그들의 노동시간을 사는 것처럼, 무밍도 그가 월급을 주는 학생들과 연구원들의 노동시간을 살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과학을 둘러싼 환경은 이렇듯 급변했다. <뷰티풀 마인드>의 존 내쉬나,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의 아인슈타인이 연구하던 시절과 현재의 환경은 판이하게 다르다. 더 이상 그런 낭만적인 과학은 ‘없’다. 그런 낭만을 즐기고 싶다면 무밍의 말처럼 지독하게 연구해서 자신의 실험실을 가진 후에야 가능할 일이다.

나는 과학이 왜 이런 구조적 변화를 겪어야 했으며, 또 그런 변화가 진정으로 과학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 공부하고 사색하며 이 궁핍한 환경을 살아가고 있다. 그 길의 끝에 놓인 것이 무엇일지 나도 알지 못한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아침 8시 30분 경에 실험실에 나와서 무밍이 권한 것보다 더욱 격한 실험을 했다. 정확히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계속 초파리들과 씨름했던 것 같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그 시간 동안 식사는 하지 않았고 커피만 마셨다. 잠시 방에 돌아가 밥을 먹었고, 저녁 9시경에 다시 실험실로 돌아왔다. 낮 동안엔 하지 못한 논문 작업을 하기 위해서다. 무밍 교수의 실험실에 가면 나는 아주 칭찬 받는 사람이 될 듯 싶다.

문제는, 누구도 나에게 이렇게 열심히 일하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전적으로 지금의 나는, 과학을 즐기고 있으며 그 열정이 나를 움직이고 있다. 하루 종일 가쁘게 일하고 있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거의 없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가끔 이상한 실험데이터를 들여다보며 그 이유를 고민하는 시간 뿐일 것이다. 가만히 누워 있다가도 떠오르는 실험 아이디어에, 술을 한 잔 하다가도 실험실로 돌아가 다시 초파리들을 꺼내 교배를 시키고는 잠이 드는 횟수가 늘어가고 있다. 몸이 분명 힘들어 침대에 누워 드라마를 보다가도, 갑작스레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당장 옷을 걸치고 실험실에 나가 준비를 해야 잠이 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누구도 나에게 이렇게 일하라 말하지 않는다. 나의 보스는 그런 것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는 전적으로 모든 것을 연구원들에게 맡기며, 과학적 사실들과 관련된 주제들에 관해서만 날카롭게 토론할 뿐이다. 가쉽거리겠으나, 나의 보스에 비하면 무밍은 성공한 과학자도 아니다. 성공의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 분야는 과학을 연구하는 이들이, 그들의 전통이 희미하게나마 살아 있는 곳이다. 과학이 무엇이던가?

과학을 예술과, 과학자를 예술가와 비교해보라. 하루 종일 미친듯이 예술작품에 몰두하는 예술가가 무밍과 같은 지도교수의 강요로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는 것인가. 그의 예술혼을 만드는 것은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이다. 성실은 열정 다음에 온다. 화이트헤드가 교육의 단계에서 로망스를 가장 처음에 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인내를 가르치려면, 그에게 열정을 먼저 선물해야 한다. 그래야 그는 그 고통스러운 인내의 시간을 즐겁게 감내할 수 있다. 무밍은 자신의 성공 방식을 아랫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매우 보수적이고 완고한 늙은이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그들을 꼰대라 부른다. 사회에 존재하는 그런 꼰대들을 나는 그저 못본 척 해도 상관 없다. 하지만 그가 과학에 관여하는 한, 그리고 그런 꼰대쉽을 과학의 전통인 듯 선전하는 한, 나는 그런 무지함을 참지 못한다.

시드니 브레너가 예쁜꼬마선충 연구에 뛰어들었을 때, 그와 동료들을 10년 동안이나 그 지루한 연구에 매달리게 했던 것은 열정이었다. 한쪽 눈을 거의 못쓰게 되면서까지 선충의 세포지도를 그린 호비츠와 설스턴의 그 성실함은, 선충을 통해 한 종의 유전자의 기능을 모조리 파헤쳐보겠다는 그들의 열정이 이끈 결과였지 브레너의 강요가 아니었다. 시모어 벤저가 박테리오파지에서 초파리 행동유전학으로 분야를 옮겨갔을 때, 아마 무밍과 같은 이는 생산적이지 못하다며 나무랐을 그런 일을 감행했을 때 그를 이끈 것은 열정이었다. 가쉽거리겠지만, 벤저는 야행성이었고 따라서 실험실에서는 거의 보스와 마주치지 못했을 인물이었지만 그의 보스 막스 델브뤽은 그에게 열심히 일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 (오히려 델브뤽은 벤저의 부인에게 편지를 보내 “벤저에게 그만 좀 일하라고 전해주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확히는 “논문 좀 그만 쓰라고 하세요”였는데, 아마 무밍 따위가 들으면 미쳤냐고 할 일이겠다. 그러니 델브뤽과 벤저는 무밍 따위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이다). 나는 무밍이 좀 잘나가는 과학자라 할지라도 결코 벤저나 델브뤽, 브레너에 견줄 그런 과학자가 아니며, 아닐 것임을 잘 안다. 그는 결코 그들을 넘어서지 못한다. 무밍과 같은 과학자는 실은 널렸기 때문이며, 브레너, 델브뤽, 벤저처럼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그런 창의적인 과학자가 될 수 없는 부류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거인들의 꽁무니에서 그들이 흘린 똥이나 받아 쳐먹는 똥개들이다. 현재의 과학계는 불행하다. 그런 똥개들이 성공한 과학자인냥 행세해도 되는 참 낭만이라고는 없는 그런 동네이기 때문이다.

델브뤽은 ‘유행하는 과학을 하지 말라’고 했다. 이 말이 암시하는 것은 다양하다. 이는 무밍 같은 부류처럼 남이 개척해 놓은 영역에서 똥이나 받아 쳐먹으면서 대단히 성공한 과학자인척 행세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유행을 따라가는 연구는 이미 독창적일 수 없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델브뤽, 벤저, 브레너의 과학자로서의 삶이다.

나는 델브뤽, 벤저, 브레너에게서 무밍이 말하는 그런 보수적이고 비즈니스적인 과학관을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무밍과 같은 저열한 과학자가 감히 벤저나 델브뤽, 브레너와 같은 반열로 거론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과학계가 저열해졌다고 한들, 저런 치들이 지배하는 그런 곳은 나에게는 지옥이다.

내가 <과학지식인열전>을 집필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 점 때문이다. 나는 역사 속에서 과학의 전통을 보았고, 현실 속에서 그 전통의 소실을 경험했다. 이 두 괴리를 메꾸기 위해 나는 읽고 실험한다.


추신: 무밍 푸의 편지를 읽고 잔뜩 쫄아 있을 대학원생들은 대학원에 가지 않는게 좋다는 말은 꼭 해야겠다. 무밍과 같은 류의 교수들이 대부분이다. 무밍 같지 않으면서 성공한 교수를 찾는다는게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뜻이다. 정말 대학원에 가고 싶다면 숙고의 숙고를 거쳐, 정말 제대로된 지도교수를 찾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게 인생에 좋다.

개인적인 소회라면 무밍의 조언 같지도 않은 조언은 내 경험에 의하면 완전히 반대다. 대학원 시절의 나는 무밍과 비슷한 아류의 보스에게 지도받았었고, 거의 비슷한 내용의 실험실 전체 공지를 받아본 적이 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고, 오히려 더 실험실과 멀어졌었고, 우울증이 찾아왔고, 게을러졌었다. 당연히 매우 ‘비생산적’인 연구활동이었다. 지금의 보스는 나에게 어떤 강요도 하지 않는다. 오직 랩미팅에서, 또는 개인미팅에서 치열하게 과학적 사실들로 논쟁할 준비만 되어 있으면 된다. 나의 일상에 대해 그는 한 마디도 관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 그리고 연구결과들은 고무적일 정도로 ‘생산적’이다. 그건 누가 나에게 강요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과학을 향한 열정이 나에게 시킨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성실은 열정의 열매다. 성실은 강요될 수 있지만, 열정은 그렇지 않다. 무밍 같은 교수들은 열정을 ‘죽인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과학계를 지배할 수록, 그들은 과학을 ‘죽인다’.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은 지독히 잘못된 관념이다. 중요한 것은 열심히 하는 ‘이유’이며, 그 성공의 ‘가치’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성실이 이끄는 파국의 가장 좋은 예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각하다.

자신의 연구에 대한 애정과 열정보다, 성공만을 위해 달려나가는 과학이 초래하는 파국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황우석이다.

무밍의 방식으로 과학을 이끄는 것은 단순한 스타일의 차이를 넘어, 과학의 파국을 의미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 젊은 과학자들은 데이터를 조작하고, 그것으로 그들의 보스를 속인다. 그것이 과학의 파국이다.

9 thoughts on “열정과 성실 그 사이

  1. 좋은 글 늘 감사드립니다. 요샌 논문논문하다보면 내가 하는 연구의 고객이 저널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주객 전도된 듯한… 왠지 이러다간 똥개되기 쉽상…;;

  2. 아, 그래도 공식휴가는 제가 받는거보나 기네요-_-a 컴터앞에만 앉아있는걸로 졸업하고는 신경생물하려니 몸이 안따라줍니다요ㅠ.ㅠ 현재의 보쓰가 포닥때 경험했다던 일화가 기억나네요. 지도교수가 오랜시간 동안 일하는 자기를 보면서 한마디하더랍니다. “일 적당히하고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 글 정말 잘 읽고갑니다! 한마디한마디 맘에 새기고 갑니다!

  3. 핑백: Serene Rhapsody
  4. 핑백: UUUUU
  5. 너무 열심히 하다보면 자기가 왜 그 일을 하는지 까먹다 보면 주객전도가 일어나기도 하죠. 근데 이런 현상이 연구에서만 보이는게 아니니라는게 씁쓸하죠. 어쨋든 좋은 글 감사합니다^^

  6.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는 글이네요. 반성의 여지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7. 짧은 몇구절에 마음이 움직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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