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을 숨기고 산다는 것

어차피 조용히 살다가 뜨려는 땅 미국에서, 미국 아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던, 그게 정치적 이야기가 되었든 경제나 과학 이야기가 되었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너희 나라가 망하던 말던 나는 그다지상관 안하겠다는 태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 아무리 리버럴이라고 자신을 표명하더라도 그 안에서 꿈틀대는 제국주의자의 풍모를 여러번 목도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입견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신경 쓰기 싫다). 물론 내 절친 (아나키스트 사서) 제임스는 예외지만.

여하간에, 오늘 골 때린 일이 있었다. 평소에 내 정체성을 랩에서는 거의 드러내지 않는 편이고 그럴 생각도 없지만 오늘 열폭해서 한 녀석을 조질 뻔 한 걸 잘 참아냈으니. 그러니까 플라이룸에서 (초파리 방에서는 항상 수다꽃이 만발한다. 입과 귀는 놀기 때문에) 미국 경제 위기 이야기가 나온 마당이었는데, 한 백인 녀석이 중국 포닥도 앉아 있는데, 미국 위기가 무슨 중국 때문에 더 가중되는 듯이 블레임을 하는 거다. 중국 포닥이 착했으니 망정이지, 이 개쉑을 내가 그냥. 게다가 거기서 중국 민주주의 이야기 꺼내는데, 평소에 졸라 리버럴이라는 할머니까지 나서서 중국을 욕하고 뭐 그러는 거다. 하워드 진 이야기를 해주려다가 (어차피 전에 잠깐 이야기해보니까 하워드 진이 누군지도 모르더라) 참았다. 열이 올라서 잠시 담배를 피우러 나가 10여분을 산책했다. 할 일도 많았는데.

내 실험실 책상엔 책이 절반 정도 쌓여 있고, 물론 나는 그냥 조용한 그런 포닥이라고 생각하는 게 우리 랩애들일텐데…가끔은 진짜로 개박살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리버럴이라고 깝치면서 정치/경제 이야기를 마구 떠벌리는 자식들에겐. 그래도 결심한다. “나 조용히 살다가 뜰란다. 무관심이 가장 큰 혐오니까” 에효.

6 thoughts on “정체성을 숨기고 산다는 것

  1. 글에서 화가 잔뜩 묻어나지만, 참았다 하니 다행입니다. 忍 忍 忍
    근데… 담배도 피세요?? (몸에 나쁜 건 다 하는군요? ㅋ~)

  2. 그들이 피눈물을 흘리는 날이 올겁니다. 힘내세요.^^

  3. 그나저나 미국은 곧 뜨시나요? 내년쯤엔 한국에 오시는지… -지나가던 궁금한 팬.

  4. 중국이 환율 조작해서 세계 경제에 피해 주고 있는 건 사실일텐데요.

  5. 랩에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 대목에서 순간 lab인지, rap인지 햇갈려서 ‘아, 랩도 할 줄 아시는구나.’ 생각했어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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