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좌파과학의 전통

인문좌파가 좌파들의 아이콘이 되어가는 한국사회에서, 이제 막 과학에 입문한 과학도들 사이에 드문드문 진보적인 시선으로 과학과 사회를 고민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고민한다는 것이 좌파가 되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진보진영의 판에서 자신의 과학자로서의 정체성까지 잃으라는 뜻은 아니다. 내가 아는 한, 과학의 전통 속에는 과학자로서의 정체성과 자신의 정치적 사상을 잘 조화시켰던 이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들은 좌파가 되기 위해 인문학에 투신하지 않았으며, 과학에 대한 애정 속에서 사회를 고민했던 이들이다. 과학에 대한 좌파의 혐오는 시대적 맥락을 지닌다. 양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의 비극적인 사태에 대한 모든 과오는 비인간적인 ‘과학기술’로 향했다. 그러한 혐오는 자연스레 형성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혐오를 조장하는 데 당시의 철학자들과 인문학자들이 깊이 관여했다. 라깡도 알뛰세르도, 그들과 동시대에 살았던 많은 인문사회과학자들과 지식인들도 암묵적으로 그러한 시대정신에 합의했었다. 그렇게 두 학문은 괴리되었고, 과학자로서 사회를 고민하는 이들의 전통도 그들과 멀어져 갔다.1930년대의 영국에서, 영국 공산당과 좌파진영의 주요 인물들 중 상당수는 과학자들이었다. 과학자들은 스스로 단체들을 조직하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했었다. 그러한 전통은 미국에도 건너갔고 희미하게나마 유지되었고, 지금은 사라졌다. 굴드, 르원틴, 스티븐 로즈, 우리가 번역서들을 통해 알고 있는 인물들이 영국 좌파과학자들의 약한 후손들이었다. 둘 모두에겐 양차대전과 냉전이라는 시대적 맥락이 존재한다. 그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사회를 고민하는 과학자들은  자연스레 좌파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과학을 적대시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과학자로서 과학과 사회를 고민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문헌들이 과학사회학자들의 것임을 잘 안다. 그것을 읽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당신들보다 먼저 그것을 고민했던 선배들의 입으로 과학자로서 사회를 고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선배들의 목소리가 과학사회학자들의 그것과는 어떻게 다른지 몸소 체험해보라는 뜻이다.물리학자라면 위대한 현자 JD 버날의 목소리를 (천재를 원한다면 아인슈타인의 나이브한 사회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생물학자라면 <중국의 과학과 문명>의 저자로 더 유명한 조셉 니담의 목소리를, 화학자라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도 유명한 라이너스 폴링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들의 시대 속에서, 과학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과학자가 좌파가 되어갈 수 있었는지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과학의 전통은 단순하지 않다. 같은 시대적 맥락 속에서도 줄리앙 헉슬리를 비롯한 몇몇 과학자들은 자유주의를 택했다. 미국이라는 시공간적 맥락 속에서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서도 들을만한 목소리는 있다.  “과학자가 사회 속에서 기능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

제발 라투어와 머튼과, 스티븐 샤핀과, <과학과 계몽주의>와 같은 책을 읽기 이전에, 버날과 니담과 홀데인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보기를 기원한다. 내가 아는 한, 공산주의자로 살았던 좌파과학자들조차 단 한번도 과학의 가치를 폄하하지 않았다. 그들의 태도는 한국이라는 웃기는 사회를 사는 과학자들과 인문좌파들에게는 생소한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괴리를 메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들을 읽고 그리고 나서 과학사회학자들에게 귀를 기울여도 늦지 않다. 그것이 순서다. 과학자가 좌파가 된다는 것이 마르크스를 읽고 엥겔스와 레닌을 탐독하며,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읽는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과학자가 좌파가 된다는 것이 반드시 활동가로서 반핵운동이나 환경운동에 나섬을 뜻하지 않는다. 과학자가 정치적으로 좌파가 된다는 것이 반드시, 진보진영의 통합에 일조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버날과 홀데인과 니담의 삶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영국에서도 지금은 많이 퇴색되었지만, 좌파과학의 전통은 그곳에서 기원되었고 우리가 배워야 할 것도 그곳에 집중되어 있다. 개리 베르스키의 다음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The Visible College: A Collective Biography of British Scientific Socialists of the 1930s. 아마도 2011년 명저번역사업에 선정된 듯하니, 곧 번역이 될 것이다.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 책에 대한 설명은 다음의 웹페이지에서 옮겼다. 과학자가 사회적으로 진보적이 된다는 것이 지독히도 불가능해 보이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라도 한번쯤은 희망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본 연구는 20세기 초반 영국의 사회주의 과학자들의 전기를 기술한 Gary Werskey의 The Visible College: A Collective Biography of British Scientific Socialists of the 1930s 번역을 기초로 한다. 본 연구는 크게 네 가지 목표를 가진다. 첫째, 과학과 사회의 관계 측면에서 20세기 초반 사회주의 과학자들의 활동을 분석함으로써 19세기와 20세기 후반 사이의 과학사적 운동의 흐름을 파악한다. 영국의 근대사에서 ‘과학과 사회’ 측면에서 가장 주목할 활동이 이루어진 시기를 들자면, 19세기 초의 기계공학교 운동(Mechanics’ Institute Movement), 1930-40년대의 사회주의 과학자 운동, 1970년대의 STS 운동 등을 들 수 있겠다. 이 책은 이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20세기 전반의 사회주의자 과학자 운동에 관한 것으로서, 19세기 초와 1970년대의 두 운동을 연결 짓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에 대한 과학자들의 사회적 활동에 대한 연구가 국내외적으로 부족하다. 따라서 본 역서를 통해 1930년대 영국의 과학자들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와 개혁 등을 조사함으로써 역사적 변화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한다.
둘째, 20세기 초반 영국의 유수 과학자들에 대한 집단적 전기 분석을 통해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시사점을 제공하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집단 전기(collective biography)’라는 독특한 형식의 스토리 전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것은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 어떤 중요한 사회적 현상도 그것을 만들어갔던 인물들의 동기 및 열망들과 분리되어 이해될 수 없다’는 생각에 기초한 것이다. 이러한 독특한 서술 방식은 과학사 서술의 새로운 방법론이란 측면에서 국내의 독자들에게 소개될 필요가 있다. 영국은 프란시스 베이컨 이래로 17세기 과학혁명과 18세기의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많은 과학자들을 낳았고 왕립 협회의 설립 등을 통해 세계 여타 지역에 비해 왕성한 과학자 집단의 활동을 보였다. 기존의 많은 연구들은 20세기 현대 물리학의 출범 이전인 근대 과학에 초점을 두었으며, 20세기의 과학자들에 대해서도 연구 업적이나 성과에 집중하였을 뿐 해당 과학자들이 영향을 받은 사회적, 역사적 맥락 또는 그들이 영향력을 끼친 사회적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다소 관심이 적었다. 따라서 연구의 대상 저서를 통해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이들을 이해하고 과학의 사회적 영향력과 과학의 주요 요인으로서의 사회문화적 환경을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본 저서에 수록된 과학자들의 활동과 그 이후 시대의 과학자 운동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과학사적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본 번역 도서의 역사적 의의와 배경 자료의 제공을 위해 저자의 후기와 별도로, 역자후기(1930년대와 1970년대의 과학자 운동의 비교에 관련된 내용 추가 집필)를 작성하여 부록과 함께 제공할 계획이다. 특히 해당 내용은 국내외 전문학술지에 투고할 수준의 학술 논문 형식으로 투고될 것이다.
본 연구를 통해 기대되는 효과와 장점은 다음과 같다.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20세기 전반의 과학자들의 과학 활동 분석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본 번역도서는 Nature 지 등의 20세기 초반 과학연구 학술물에 대한 심도 있는 문헌 연구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통해 국내에서 기존에 다뤄지지 않았던 20세기 초반의 과학연구 활동에 대한 메타 분석이 가능하고, 또한 20세기 초반의 과학자 집단 활동 분석을 통해 과학사, 과학사회학 분야에 새로운 시각과 흥미로운 연구주제를 부여할 것으로 예상한다. 나아가 영국의 과학자 집단의 사회참여를 통해 오늘날 벌어지는 많은 과학관련 사회적 문제에 대해 오늘날 국내 과학자 공동체의 대처에 대한 논의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집단적 전기를 통한 과학자의 생애 분석을 통해 개인 활동 중심의 전기적 분석이 줄 수 없는 새로운 시사점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러한 집단적 전기의 구성을 통해 동시대를 살았던 과학자들의 사회문화적 맥락과 정치적 상황뿐만 아니라 시대적 흐름에 따르는 공동체적 변화를 분석함으로써 기존의 많은 과학자들의 생애를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근대말 조선 시대의 과학자(실학자), 일제 강점기 동안 활동했던 한국의 과학자들의 활동이나 냉전 시대 대량 살상 무기 개발에 참여했던 여러 과학자들의 활동들을 집단적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은 근대 과학을 주도함과 동시에 오늘날까지 많은 과학자들을 배출하고 있다. 특히 왕립 협회는 최초로 설립된 과학자 집단으로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해당 저서에 소개된 과학자들 중 일부는 왕립 협회의 회원으로서, 과학자 집단이 어떻게 과학자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영국의 과학자 집단의 사회 참여적 활동을 이해함으로써 과학과 사회가 소통하는 방식을 드러낼 수 있다. 나아가 이를 통해 오늘날 한국의 과학자 양성과정이나 사회참여에 대한 기준 마련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학술적 측면에서 볼 때, 본 연구는 과학사, 과학사회학, 과학정책학, 과학교육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 새로운 연구의 가치를 소개할 것으로 기대한다. 사회주의 과학자들의 과학 활동은 국내에 소개된 바가 적다. 특히 영국은 마르크스의 유물론이 탄생한 고향이기도 하며, 19세기와 20세기의 많은 과학자들은 학교 설립이나 법률 개정 등 다양한 사회 활동에 참여해 왔다. 이들의 활동은 20세기 러시아 과학자들의 움직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본 저서를 통해 영국의 20세기 전반부의 과학 활동을 이해하려는 관련 학문분야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구체적으로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관련된 학부 및 대학원 과정의 교재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요약:본 연구는 Gary Werskey가 집필한 The Visible College: A Collective Biography of British Scientific Socialists of the 1930s(초판 1978 발행, 재판 1988년 Free Association Books 발행)을 연구 변역 하는 작업이다. 이 과정을 통해 과학과 사회의 관계 측면에서 20세기 초반 사회주의 과학자들의 활동을 분석함으로써 19세기와 20세기 후반 사이의 과학사적 운동의 흐름을 파악하고, 20세기 초반 영국의 유수 과학자들에 대한 집단적 전기 분석을 통해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시사점을 제공한다. 더불어 본 저서에 수록된 과학자들의 활동과 그 이후 시대의 과학자 운동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과학사적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한글키워드(Keyword): 영국과학, 사회주의, 사회주의 과학자, 과학과 정치, 20세기, 합동전기, 레비, 할데인, 호그벤, 버널, 니덤
영문키워드(Keyword): British science, socialism, scientific socialist, science and politics, 2oth century, collective biography, H. Levy, J. B. S. Haldane, L. Hogben, J. D. Bernal, J. Needham

 

  1. “랭보의 시구에서 따온 말을 자신들의 투쟁의 좌표로 삼고 나아가 조직의 이름으로 내건 프랑스의 전직 알튀세르주의자들이 주동이 된 정치 그룹의 이름이 “논리적 반란(logical revolt)”이었다 한다. 언젠가 읽은 그의 가장 아름다운 글이라 할 어느 글에서 바디우는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던 이들 가운데 그리고 끝까지 투쟁했던 이들이 과학자들이었음을 이야기하며 왜 그들이 그랬는지 치밀하게 설명한다. 그것은 랭보의 말처럼 지극히 논리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과학자’가 (학문적 범주에서의) ‘자연과학자’를 말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과학자에게 있어 투쟁이 지극히 논리적인 일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어서 인용해요.

  2. 서동진이라는 사람의 글에서 인용한 건가? 인용을 했으면 출처를 얘기해줘야지, 궁금해서 찾아봤자나. -_-

  3. 인터넷 한참 뒤졌는데 못찾았다. 아마도 이 비디오에서 말한 것 같은데, 발음이 후져서 듣다가 포기. 그니까 서동진은 읽은게 아니라 들은거 아니냐? -_- 여하튼간에. http://slought.org/content/11385/

  4. 엄밀하고 근본적인 앎에 대한 추구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타협 없는 급진적인 태도로 이어지게 마련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합리성이나 정당성에 대한 의지가 인문학의 전유물일리는 전무하고, 말씀하신 소위 ‘인문좌파’들에게서는 오히려 그런 것으로부터 도피하려는 비겁함과 게으름마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네요. -蟲-

  5. 포덕/ 영문으로 다 찾아보고 하는 말이야. 서동진 알면 나중에 물어봐. 그 아름다운 글의 출처가 어디냐고. “언젠가 읽은 바이유의 어떤 글”이라니.. 아무리 논문이 아니라고 해도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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