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박정희에게 보내는 1975년 한 서울대생의 편지

이 편지를 보낸 후 그는 할복 자살했다고 한다. 김상진이라는 이름을, 역사는 내게 가르쳐주지 않았고, 이제 배워 기억하려 한다. 씨알의 소리에서 가져왔다. 김상진기념사업회가 운영중이다.
박대통령에 드리는 공개장
각하께서 5.16직후 발표하신 혁명공약에서 민정이양을 선포하였을 때, 우리 국민은 정의로운 혁명가에게 갈채를 보냈고, 삼선에 출마하셨을 때, 우리 국민의 얼굴은 어두워졌으며, 유신헌법이 공포되었을 때, 국민의 눈동자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 감히 입을 열고자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어 보건데, 지극히 제한된 자유 속에서 울분을 감추며 그것을 인내로 이겨나가는 습성을 익혀왔고…
사회는 어둠의 짙은 그린자로 뒤덮이고 학원은 병들어 교수는 학생들에게 양심과 정의가 무엇인지 가르치기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각하께서는 아직도 계속되는 학원사태가 일부 몰지각한 학생들의 선동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각하께서는 아직도 현 사회의 각 분야에서 어떤 희생도 불사하고 과감히 투쟁의 대열에 서서 소리높이 외쳐대는 절규가 일부 분수를 모르는 사회인사의 망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부패와 부조리가 난무하는 우리 사회이지만 그래도 순수한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양심적 입장에서 반항이나마 할 수 있는 곳이 대학입니다.
이렇게 죽음을 불사하고 자신의 양심이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행동하는 저도 시국을 판단할줄 모르는 몰지각한 학생일까요? 저는 저의 생명을 값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몰지각한 행동으로 생명을 버릴만큼 어리석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대통령각하…왜 각하 혼자만이 이 시국에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갈 유일한 존재이며 이 조국의 안녕과 민족번영을 위해 각하만이 중대한 사명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는 오류를 버리시지 못하는 겁니까?
왜 우리 사회의 이유 있는 저항을 각하의 독선 속에 파묻어 버리시려는 것입니까? 헌법 전문에 나타나 있듯이 우리 국민은 숭고한 애국애족정신을 이어받고 그래서 용남할 수 없는 불의에 항거하며 어떤 희생도 불굴의 의지로 대항해 나갈 줄 아는 슬기와 용기를 간작하고 있읍니다. 인간이 느껴야할 기본적 양심이 무엇이고 사회가 촉구해야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민족이 획득해야 할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가를 우리 국민들은 알고 있읍니다.
우리 사회에 범람하는 불신이 뜻하는 것이 무엇이며 인간 개인에게 이유 없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무엇을 뜻한단 말입니까?
그러나 올바른 역사의 방향을 잘못 인식한 위정자는 산 경험이 말해주듯이 언젠가는 역사의 한 페이지 위에 하나의 오점을 남긴 채 불명예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저 민족의 들리지 않는 피맺힌 절규가 무엇을 뜻하며 간절한 무언의 호소가 무엇을 바라는가를 왜 각하는 모르시는 것입니까?
죽음으로써 바라옵나니, 이 조국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에서 바라옵나니, 국민의 양심으로써 진실로 진실로 엎드려 바라옵나니, 더 이상의 무고한 희생이 나지 않도록, 더 이상의 혼란이 오지 않도록 숭고한 결단을 내려주시기를 바라옵니다.
1975.4.20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축산과 4년
김 상 진
  1. 김상진이라는 사람을 처음 들었습니다. 저걸 봐도 ‘잡아와’라고 했을 것 같은데.. 잘 갈무리 해두어야 겠습니다.

  2. 첫문단은 좀 많이 거슬리네요. 정의로운 혁명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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