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실험과학자의 일상

연구실 세미나는 매주 1회, 수요일 오전에 진행되는데 연구원 전원이 참석해야 한다. 이 세미나는 해당하는 주의 당번인 두 명의 보고자가 보스와 연구실 멤버 전원 앞에서 자신의 연구 진척 상황에 대해 발표하는 자리다.이런 기회는 연구원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지며 또한 상당한 중압감이 느껴진다. 연구는 종종 생각만큼 진척되지 않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미나는 가차없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갓 박사학위를 취득한 현장투입용 주전이다. 모두 20대 후반에서 30세 전후. 지식도 신선하고 연구 진행 방법도 숙지하고 있으며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이곳에서 새로운 연구 테마로 독립해 자신만의 연구실을 갖겠다,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해 획기적인 대방견들을 해내겠다, 그리고 최종 목표는 스톡홀름, 눈부신 조명과 우레와 같은 박수. 박사후 연구원은 모두 이런 희망과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로 이곳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꿈은 첫 연구실 세미나에서 철저히 깨지고 만다.
더듬더듬 발표를 끝내자마자 보스는 말문을 연다.
오늘 이 발표까지 너한테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있었느냐.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 겨우 이 정도밖에 못했으냐. 이건 대체 뭘 의미하는 것이냐.

아무 말도 듣지 않겠다는 듯 보스의 말은 계속된다.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필요한 시약이 도착하지 않았다. 반응이 생각처럼 일어나주지 않았다.

그런 건 변명이 되지 않아. 왜냐하면 분석 기계를 보수하는 일, 시약 종류를 발주하고 재고를 관리하는 일, 실험 순서, 이 모든 게 연구자 능력의 일부니까.

매뉴얼대로 시험관에 액체를 넣었는데 제대로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은 초등학생도 할 수 있어. 아니,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아이라면 분명 너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반응액을 혼합할 수 있을 거야.
네가 대학을 나와 대학원에 진학하고 고생해가며 박사까지 딴 이유가 뭐지? 매뉴얼대로 반응 실험을 하고 ‘저, 제대로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라고 보고하기 위해서였나? 제대로 반응하지 않은 이유를 생각하고 그 원인을 규명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네가 여기에 있는 거다.

따라서 이 세미나 자리에 ‘이렇게 열심히 했지만 잘 안 됐습니다’라는 부정적인 자료만 가져오는 행위는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건 단 하나. 네가 무능하다는 사실뿐이다. 내가 오늘 유일하게 확인한 것은 연구실의 보스로서 나는 무능함에 대해 급여를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일도 무능함에 대해 급여를 지불할 생각은 없다. 연구는 자선이 아니니까. 이 말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래, 밑바닥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보스는 돈을 지불하고 박사후 연구원은 그 돈에 고용되어 있다.

보스의 사형 선고가 끝나면 연구실 다른 동료들로부터 갖가지 지적과 지탄 세례를 받는다. 정제를 위한 칼럼조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사전에 칼럼을 충분히 냉각시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용액의 염분 농도가 적절치 못했던 것은 아닌가. 이 효소는 산성 pH에서는 안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 지난 주 JCB 논문, 보았는가? 그에 따르면 마그네슘 이온은 적어도 1밀리몰은 필요해. 네 반응액의 농도는 너무 낮아.

부정적 자료에 대한 연구실 멤버들의 충고는 친절한 조언처럼 들리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제대로 된 박사후 연구원이라면 결코 저질러서는 안 될 부주의나 지식 부족을 적나라하게 들춰내는 행위다. 동시에 충고를 아끼지 않는 우수한 그에게 ‘이는 당연한 상식이며 나는 게으름 피우지 않고 항상 충분히 준비하고 있습니다’라는 보스를 향한 은밀한 자기PR이기도 하다.

이리하여 박사후 연구원은 한 달에 한 번 꼴로 돌아오는 연구실 세미나 당일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산다. 눈부신 조명과 우레와 같은 박수는 점점 멀어져 가고 그는 둔탁한 공기와 우울한 구름을 바라보며 한숨짓는다.

내가 쓴 글이 아니다. 후쿠오카 신이치의 최근작인 <나누고 쪼개도 알 수 없는 세상>의 147-150쪽을 옮긴 것이다. 그의 책들을 사이언스타임즈에 세 편으로 나누어 리뷰하기도 했지만(1편, 2편, 3편), 분자생물학자로 훈련받은 그의 책에서 실험실의 적막함과 즐거움 그리고 분자생물학자들의 사유를 느낄 수 있다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나에게 실험가로서의 정체성을 문제삼다니… 실험과 사유 사이에서 어지럽게 방황하다, 철학자들의 무능함을 욕하며 일단은 과학자로서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한 것이 5년 전의 일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박사를 마친 즉시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요즘 유행하는 것처럼 자유기고가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송고해야 하는 글 한편을 쓰다가 엊그제 해놓은 실험이 너무 궁금해 꼬박 4시간을 현미경 앞에서 머물다 온 사람에게 실험과학자로서의 정체성이 의심된다니? 저런 저열한 인간들을 위해서라도 지금 진행중인 연구들은 CNS에 차례대로 내던가 해야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그게 저런 비열한 사고방식으로 일관하는 인간들에 대한 응징이 되리라 믿으며.

인용한 후쿠오카 신이치의 구절 위에는 다카노 기미히코의 책에서 인용한 구절이 놓여 있었다. 생각해보니 실험실에서 지낸지 벌써 12년이다. 그 반짝이는 청춘이 모조리 실험실 속에 있었다.내일이 랩미팅이다. 벌써 밤 10시. 글은 내일이나 넘길 수 있겠다.

청춘은 층층나무 아래로 지나는 바람 혹은 끝없는 선로의 반짝임  -다카노 기미히코 <층층나무>

나누고쪼개도알수없는세상과학자들은왜세상을잘못보는것일까
카테고리 과학 > 교양과학
지은이 후쿠오카 신이치 (은행나무,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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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험은 정말 노동이군요. 몇몇 인문학자들이 과학적 지식에 대해 논평하는 것에 내용을 보기보다 먼저 콧방귀를 끼고 무시하는 일부 실험과학자들의 태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첫문장에서 후쿠오카 신이치인 줄 알았습니다. 아직 PI가 되지 못한 생물학자의 일상을 어떻게 봐야할 지 저도 난감합니다. 지나왔으니 좋은 추억, 혹은 당연한 과정으로 봐야할 지, 그 때의 막막함을 그대로 전해야할지… 실험만 하는 사람보다는 사유하면서 실험하는 생물학자가 더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우선 저는.

  3. 1편 링크가 이상한 곳으로 되어 있습니다.Mission from Hungary to Europe

  4. 아! 잘못 알았군요. 제가 시각장애인이라 페이지 타이틀만보고 잘못 판단했습니다. 죄송합니다.

  5. 제3자가 보기에는 그닥 매력있는 연구분위기는 아닌거 같군요, 특히 실수를 철저하게 급여로 간주하는거라든지, 연구는 자선이 아니라는 드립은-_-…

  6. 글 말미까지 설마설마 하며 읽었습니다. 한가지 미스테리가 풀리는 글이었습니다. 김우재는 왜 이길을 가는가에 대한.. 근데 다른 미스테리가 생기는군요.. 이길이 너무 좀스럽다고 느끼지는 않았는지. 나 처럼 약간의 자폐증, 강박관념이 있는 사람은 아닌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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