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유전학 전통

http://heterosis.egloos.com/800249 원문

원문: 한국의 유전학 전통 by 김우재



기무라를 공부하면서 멘델에 대해 심층 분석을 시도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정말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된다. 결국 이러한 제문제들을 한국적 상황에 적용시켜보려는 노력이 언젠가는 있게 될 것이다. 아래의 글 

분자전쟁: 다윈에서 황교주까지

에서 나는 한국에 유전학적 전통이, 특히 집단유전학의 전통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말을 꺼냈다. 유전학과 생화학의 결합이 가능했던 전통에서 분자생물학이 탄생했다. 생화학은 화학의 전통과 양립할 수 있고 그 기반이 마련될 수 있지만, 유전학은 농업과 연관된 곳에서만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미셀 모랑쥬의 분석에서 프랑스는 유전학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채 분자생물학을 발전시킨 나라로 등장한다. 라마르크의 전통도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생화학자들과의 논쟁에서 자유로왔던 프랑스는 독특한 분자생물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 땅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벌어졌다면 그것이 프랑스와 비슷했는지 아닌지에 대한 확신이 아직 내게는 없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으나, 유전학의 전통이 강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 유전학의 전통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농업과 깊이 연관되지 않았다. 한국 유전학회의 설립이후 대부분의 논문은 토마스 모건학파의 영향을 받았음을 강력하게 증언하고 있다. 유전학회지 첫호의 논문들은 아래와 같다. 

1. 초파리 두 동포종간의 (同胞種間) 잡종 생재력에 대한 온도의 영향에 관한 연구 이원호 , 박형식 ( Won Ho Lee , Hyung Shik Park ) 
2. Human Lymphocytes 에 있어서 염색체 이상의 좌위와 (座位)복제 pattern 김무연 ( My. A . Kim ) 
3. 초파리 자연집단의 염색체 다형현상백용균 ( Yong Kyun Paik ) 
4. Salmonella typhimurium 내의 plasmid pKM101 존재와 유전자 uvrB 결손이 화학물질의 돌연변이 유발성과 독성에 미치는 영향 변우현 , 이세영 ( Woo Hyeon Byeon , Se Yong Lee ) 
5. 하늘나리의 핵형과 (核型) 염색체의 분염상 

이후 계속해서 등장하는 ‘초파리’라는 검색어는 다른 연구대상에 비해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당시 미국에서 유학했던 학자들이 대거 국내로 쏟아져 들어오는 시기였고, 미국유학파가 대부분의 국내 교수직을 차지하고 있는 현시점을 고려해보건데 국내 유전학에서 모건학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자 그렇다면 모건은 어떤 인물인가. 모건은 초파리를 유전학의 실험동물로 정착시킨 인물이며 유전학으로 최초 노벨상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보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멘델 이후 다루었던 피셔, 홀데인, 라이트와는 다르게 모건에게는 수학적 성향이 강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초파리의 염색체 지도를 작성함으로서 노벨상을 받았고, 모건은 세포학과 유전학을 결합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또한 모건은 진화종합의 인물들 사이에서 거명되지 않는다. 국내의 유전학자들이 모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인물들이었고, 이들이 피셔, 라이트, 홀데인의 전통과는 단절되어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수학적 성향이 강한 집단유전학의 전통이 거의 부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글이 언젠가는 완성된 형태를 갖추겠지만, 현재 내게는 학부시절의 한 은사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에 대한 회고가 내게 타이핑을 칠 동기를 부여해주었다. 그 분의 이름은 ‘최영’. 연세대학교의 유일한 유전학 교수이시다. 그는 유일하게 유전학이라는 이름으로 실험실을 갖추고 있으며 또 유일하게 유전학을 강의하는 교수다. 또한 제자가 없는 실험실에서 혼자 무엇을 하시는지 아무도 모르는 괴짜이기도 하다. 학부시절 우리에게는 그에 대한 기괴한 소문이 무성했다. 실험실에서 혼자 수학공식을 써두고 고민하는 괴짜 학자의 모습에서부터 싸이코의 모습까지.. 

그의 강의는 열정적이지는 않았지만 매우 차분하고 인상적이었다. 물론 십년동안 강의록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고, 수백개의 연습문제에서 골라내는 시험문제는 5문제중 2문제만 풀어도 A를 받는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그의 강의는 까다로왔다. 그의 강의에서는 주로 멘델리안 유전학과 이로부터 파생되는 인간질병을 다루었다. 집단유전학의 문제는 전혀 다루지 않는다. 진화론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그 분은 Wien 대학이라는 곳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일본에서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하셨다. 초파리의 Adh 유전자와 Nucleotide polymorphism이 주요 연구테마였다. 제자를 받지는 않으셨지만 한국 유전학회지에는 꽤 많은 논문을 게재하셨다. 그의 논문에는 수학공식이 등장하고 도브잔스키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피셔나 라이트는 등장하지 않는다. 도브잔스키는 모건의 제자다. 그는 라이트가 내어 놓은 간단한 수학공식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나는 솔직히 말해, 피셔~라이트의 전통속에 서 있는 국내 유전학자를 알지 못한다. 국내의 유전학자들은 초파리와 관계된 이들이 아니면(대부분 유전자 하나를 다루는 차원이다), 식물유전학자들(이들도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다루기는 하지만 집단차원의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다), 혹은 분자유전학자들(KO Mice등을 다루며 유전자를 없애거나 바꿔치는 기술을 사용하는 이들)이 전부다. 분명 우리의 생물학적 전통에는 피셔도, 홀데인도, 라이트도 없다. 

만약 그 전통이 있었다면, 그래서 생물학이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면 현재 생물정보학이니, 시스템 생물학이니 하는 문제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식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충격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최영 교수를 생각하는 지금 왜 그분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깊게 밀려온다. 물론 그 분은 매우 엄하고 무섭고 대화자체를 거부하는 분이시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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