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니시 긴지와 기무라: 일본의 과학과 서구의 과학

http://heterosis.egloos.com/811833 원문


원문: 이마니시 긴지와 기무라: 일본의 과학과 서구의 과학 by 김우재



기무라와 함께 현대진화론에 큰 영향을 미친 또 한명의 일본 학자를 꼽으라면 그는 바로 이마니시 긴지(Imanishi Kinji, 일본명 今西 錦司 금서금사, 이후 긴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02년에 태어나 1992년에 죽었다. 기무라가 1924년에 태어나 1994년에 죽었으니 그보다 20년 앞선 대선배인 셈이다.

그를 딱히 한 분야의 학자로 잘라말하기는 어렵다. 분명 그는 곤충학으로 학문을 시작했지만 훗날 일본 영장류학의 기초를 세우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그는 인류학, 생태학, 철학 또한 전문 등반가로서도 전문적인 영역을 확보했다. 그는 매우 부잣집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19세기 과학의 중흥기의 유럽 귀족가문의 조건을 타고난 인물이다.

히말라야에도 오른적이 있는(골턴도 대단한 여행가였으며 여행에 관한 많은 저술을 남겼다. 골턴의 저술 중 절반 이상이 여행에 관한 것이다) 긴지의 관심사를 등산 이외의 것으로 좁혀 보면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환경 속에서 살아 가는 종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서 그의 유명한 서식역 분할(habitat segregation)개념이 등장한다. 크로포트킨이나 당시 일본 철학의 한 계보였던 기타로 니시다(Kitaro Nishida)의 공개념등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긴지는 생명을 전체로서 보기 원했고, 환원주의를 싫어했다.

그는 그의 연구 대부분을 교토 중심부를 흐르는 가모가와 강변에서 수행했고 이곳에 서식하는 날도래 유충을 연구했다. 그의 ‘서식역 분할’ 개념은 바로 이 수생생물을 연구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서식역분할’이라는 개념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어느 한 지역에 다양한 생물의 종류가 있어서, 각 종은 하나의 종사회를 형성하면서, 사회적으로는 각 종이 단위가 되어 다른 것들과는 교섭없이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 있어서는 말하자면 경제적인 결부가 맺어져 있다. 그것에 의해 어느 지역에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생물은 상호간에 얽혀 있으면서도 각각의 사회를 성립시키고 있다. 다시 말하면, 다양한 종의 사회가 어느 지역에 중합되어서, 나아가서 그 종들은 경제적인 결부를 통하여 하나의 세트로서의 구조를 가지게 되어 있다. 그러한 생물의 종사회의 중합을 전체사회라고 부른다. 그 전체사회라는 입장에서 말한다면, 하나하나의 종사회라는 것은 전체사회에 대한 부분사회라고 볼 수 있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은 명제들로 요약될 수 있다.

1) 종에 속하는 개체들은 동일한 생활유형에 따라 살아가기 위하여 상호간의 동종인식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종의 법칙을 협력적으로 따른다.
2) 따라서 그들은 종-사회(species=society, SS, 일본어로는 Shu(Species)+Shakai(Society)를 이룬다. 이를 이마니시는 종사회(specia)라고 부른다.
3) 모든 종사회는 조화롭게 전체 생물권을 형성한다.
4) 새로운 종의 집단은 종사회로서의 단일성을 유지하려는 과정과 이 집단이 전체 생물권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진화한다.
5) 종분화는 종사회를 분할하거나 나누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즉, 서식역 분할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연관되어 있는 종들-아종-이나 종분화가 진행되고 있는 종들은 서로 다른 생활습관과 서식역을 선택함으로서 같은 지역에서 고립되지 않더라도 종분화가 가능하며 서로 조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분할이 가능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한 이마니시의 답변은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작의 부재가 이마니시를 둘러싸고 1985년부터 네이쳐지에서 펼쳐진 많은 논쟁의 불씨가 되었다. 사실 이에 대해 그는 한마디를 남겼다.

“변할 때가 되면 변한다.”

그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말하고 만것은 아닌데 다음의 인용문을 보자.

개체와 종 위에 존재하는 또 하나 전체사회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생각을 펼쳐 본다면, 전체사회의 입장이 변하면, 그와 함께 전체사회에 대한 부분사회로서의 종사회가 어떤 새로운 환경에 떨어뜨려져서 살지 않으면 안되는 때가 오고, 그러면 이 종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개의 개체도 그 경우에는 개개의 개체의 입장에서 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처음에 말했던 대로, 개체간에 갑을이 없다고 하는 것은, 어떤 조건의 밑에서는 그 개체의 각각이 똑같게 반응한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면 역시 종이 변하지 않으면 안되는 때에는 개체도 변한다. 그 개체의 변화라는 것도 다윈이 생각했던 것처럼 개개의 개체의 ‘random’한 변화가 아니고, 한 종 속의 개체라는 것은 어느 개체도 전부 같은 방향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

현재의 진화론적 정설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 발언을 당시 긴지는 매우 용감무쌍하게 제시했다. 굳이 들자면 현재 진화론의 정설은 선택의 단위에 있어서-다층 선택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기는 하지만- 유전자와 개체를 중심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한 그는 정향적인 진화설과 비슷한 발언을 하는데, 진화에서의 돌연변이의 발생이 환경과 일종의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즉 다윈에 의하면 환경과는 관계 없는 우연한 변이들이 생기고 자연선택에 의해 이들이 선택되지만, 이마니시에 의하면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여 하나의 종사회의 내부에서 동시에 다발적으로 정향적인 돌연변이가 나타남으로써 이것이 축적되어 신종의 출현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진화의 역사에서 특정한 시기가 되면 동시다발적인 돌연변이가 발생하며, 이러한 돌연변이는 방향성을 가지고 매우 단시간에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돌연변이에 의해 종의 분화가 가능해진다. 현재 우리가 이러한 급작스런 변화를 볼 수 없는 이유는 그에 따르면 현재가 진화의 ‘정체기’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진화의 속도와 관련해서 굴드와 점진주의자들의 대립을 떠올리게 하는데, 속도와 관련하는 한 이마니시의 설명이 틀리지는 않다. 하지만 돌연변이의 방향성은 현재로서는 직접적인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요약하자면 긴지에게 돌연변이란 환경의 변화때문에 종의 필요에 의해 발생하는 사태다. 종에서의 개체들이란 거대한 환경의 눈으로 보았을 때에는 비슷하므로 똑같다고 볼 수 있고, 결국 개체들의 집합인 종은 함께 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쟁을 인정하지 않는 긴지도 서식역 분할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서식역을 두고 벌어지는 경쟁을 가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긴지에게 종내에서의 경쟁은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더 나아가 그는 130만종이 넘는 엄청난 생물종의 다양성에 주목한다. 이처럼 광대한 다양성과 자신의 ‘서식역 분할’을 결합시킬 때 그에게 나타나는 사상은 생태계가 경쟁의 장이 아니라 평화공존의 상태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은 세포내 공생을 밝히면서 이를 근거로 자연계를 평화와 공생의 장으로 몰고 간 미국의 미생물학자 린 마굴리스(Lynn Magulis)를 떠올리게 한다. 마굴리스의 마이크로코스모스의 저술이 1986년이었으니 여기서 긴지는 서구 학자들보다 또한번 앞서갔다.

그가 발견한 ‘서식역 분할’이라는 현상은 자연계에 분명히 존재하는 현상이다. 현재 이마니시가 비판받는 부분은 이러한 서식역 분할 때문이 아니라 그가 이 현상을 해석한 방식 때문이었다. 그는 홀스태드에 의해 1985년 네이쳐지에서 최초로 거명된 이래 논쟁의 중심이 되어 왔다. 그에 대한 논쟁사는 매우 유명하므로 첨부하는 이성규의 논문이나 이마니시 진화론에 대한 간략한 소개 해놓은 예전 김우재의 사이트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이후 일본에서 지속된 이마니시의 진화론에 대한 영향과 논쟁에 관해서는 첨부하는 논문 <The Recent Controversy in Japan on Evolutionary Studies in Reference to Explosive Speciation of the Cichlids in Lake Victoria:Focused on Species=Societal Theory of Evolution>을 참고하기 바란다.

여기서 그가 개체와 종과 전체사회를 논하는 것이 일본의 특징적인 문화인 전체주의를 떠올리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텐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이 점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별로 하고 싶은 말이 없다. 일본 문화와 생물학적 전통과 관련해서 많은 글들이 특히 서구학자들에 의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이들은 동양의 자연과의 조화라는 철학과, 전일주의적 관점을 강조하며 마치 서구에는 그런 것이 없는듯 말하고, 이로서 동양과 서양을 완전히 갈라놓으려 하는 점이 맘에 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마니시를 다윈이나 스펜서와 비교하며 그가 동양의 유기체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멍청한 짓거리다. 유기체적 사고를 하는 이가 자연의 무작위성보다는 정향진화를 주장하고, 스펜서와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또한 그의 사고가 동양을 대표한다면 동양의 유기체적 사고란 개체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그런 전체주의적인 사고를 의미하는 것인가? 동양의 전일론과 서구의 환원주의, 동양의 전체주의와 서양의 개인주의라는 낡은 잣대로 과학을 난도질하는 것은 역사를 세밀하게 보지 않은 자들의 무지일 뿐이다.

과학이 분명 역사의존성과 문화의존성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에는 측정량과의 연결성과 재생가능성이라는 제한이 분명히 존재한다. 또한 기무라와 긴지라는 두 인물 모두가 다윈의 진화론에 반하는 이론을 만들었다는 시각으로 일본문화와 과학을 접근하려는 이들도 반드시 기억해두기를 바란다. 과학을 외재주의적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과학을 진정으로 해친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두번째 주제는 그의 평생을 두고 지속되는데 바로 영장류의 행동에 관한 연구였다. 진화론에 관한 연구에서 그는 많은 논쟁이 되었고 또한 최근에 그의 이론들이 문제가 있음이 그의 후배들에 의해서도 분명해지고 있지만, 영장류 연구에서 그의 연구업적은 독보적이며 현재 세계의 영장류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의 영장류 연구 결과는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에 비유될만한 것이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구마를 씻어 먹는 원숭이가 바로 그와 동료들의 작품이다. 그가 세운 일본 교토(京都)대학 영장류연구소는 현재 세계적 권위를 자랑한다. 이마니시 긴지 이래 이타니 준이치로(伊谷純一郞), 가와이 마사오(河合雅雄), 마쓰자와 데쓰로(松澤哲郞) 등의 학자들이 학맥을 이으며 세계 영장류학을 선도해 오고 있다. 그들은 고구마를 씻어 먹는 원숭이의 행동습관을 발견함으로써 동물사회의 문화 전파와 계승을 입증했고, 동물사회의 구성원에 일일이 이름을 붙이고 장기간 관찰하는 방법론을 정착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의 제자들은 자연스럽게 원숭이들의 친족관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1964년 해밀턴이 친족선택 이론을 발표하기 전에 연구에 착수했다.

영장류 연구에서 가장 유명한 이를 꼽으라면 단연 국내에도 방한한 바 있는 구달 여사일 것이다. 구달은 루이스 리키(Louis Leaky)의 제자로 리키는 3명의 유명한 여제자를 두었다. 1957년 가장 먼저 비서의 신분으로 참여한 제인 구달(Jane Goodal)이 침팬치와 인연을 맺었고, 1966년 다이안 포시(Dian Fossey)가 리키 박사의 제의로 고릴라 연구에 참여했으며, 1968년 비루테 골디카스(Birute Galdikas)가 오랑우탄에 자신의 인생을 바치게 된다. 이 세사람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국내에도 알려져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리키가 영장류 연구가 인류의 조상과 인간의 진화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줄 것임을 알고 제자들과 연구에 착수하기 이전에 이미 일본에서는 긴지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연구에 착수했고 독자적인 관찰기법까지 확보해 놓았다. 그러나 리키와 긴지를 비교하기전에 레이 카펜터(Ray Carpenter)라는 미국의 영장류 연구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생리학자로 출발해 결국 영장류 연구를 하게 되는데, 그의 주관심사는 영장류의 사회적 관계와 이를 도식으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100여마리의 원숭이를 일일이 이름붙이고 세대에 걸쳐 이들을 관찰한 일본 연구가들처럼 할 수는 없었고, 결국 긴지를 찾아가 많은 것을 함께 연구하게 된다. 또 카펜터는 뒤에 일본 영장류 연구의 지원자로 남게 된다.

이마니시와 그의 팀이 1958년 이러한 연구결과를 들고 미국을 방문했을 때의 반응은 매우 차가운 것이었다. 그들은 연구대상을 인간처럼 대하는 그들의 방법을 비웃었고(이 점은 구달에 대한 학자들의 최초반응과 유사하다) 그 많은 원숭이들을 인간의 능력으로 구별할 수 있느냐는 회의적인 반응이 뒤따랐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의 이론이 아무리 독창적이더라도 서구에 흡수되기는 힘들었고 언어장벽이 또 한번 그를 가로막았다. 과학의 영역에도 영어의 독재는 분명히 존재한다.

드발은 최근 그의 리뷰에서 이러한 이마니시의 연구에 일본의 철학과 문화가 깊이 배여 있으며, 일본이었기에 가능했다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지만, 정확한 분석없이 그러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 잘은 모르지만 드발이 서구사회에서 왕따를 당하면서 동양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런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는 거의 동시대를 살면서 진화와 관련해 어쨌든 세계적 논쟁을 벌인 두명의 거대한 학자가 탄생했다. 한명은 긴지고, 또 한명은 기무라다. 긴지가 전통적인 박물학과 동물행동학의 위치에서 진화론에 접근했다면, 기무라는 집단유전학의 수리적 기법으로 진화론에 접근했다. 진화론에 접근하는 학자들의 유형은 다양하다. 이 점이 바로 진화론이라는 학문이 여러 학문간의 융합의 흔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긴지와 기무라를 다루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은 이들이 접근한 분야가 일본에 존재했다는 그 사실이고, 나아가 이 분야들이 존재했으며 성장할 기반이 마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과학의 성장과 발전, 새로운 이론의 탄생과 과학자의 등장에 있어서 동양적 세계관과 서양적 세계관이 어떻게 달랐는가 하는 낡은 이분법이 아니라, 바로 한 사람의 과학자가 등장하는 데 있어 요구되는 시스템이 무엇인가 하는 바로 이점인 것이다. 또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왜 일본은 가능했으나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는, 이러한 과학자의 등장이 요원한가 하는 것이다. 일본은 서구 과학의 전통에 우리보다 먼저 접할 수 있었고, 그 길을 충실히 따랐으며 학제와 대학등에 있어 많은 부분이 과학의 발전에 분명 유리했다. 우리의 경우 식민지 시대와 이후 박정희 정권에 이르러 가속화된 경제논리등만을 언급해도 충분하리라 보인다. 이러한 차이와 과학과의 관계를 누군가는 밝혀주기를 기대한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한국의 STS들과 과학사가들이 이러한 부분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올리는 파일들은 이마니시 자신이 직접 쓴 논문 두편과, 서식역 분할과 관련하여 이마니시 진화론에 대한 소개인 이성규의 논문, 그리고 최근 프란스 드 발이 쓴 이마니시의 영장류 연구에 관한 논문, 또한 위에서 언급된 일본에서의 이마니시진화론의 전개양상에 대한 논문등이다. 드 발의 논문과 관련하여 최근 드발의 <원숭이와 초밥요리사 : 동물행동학자가 다시 쓰는, 문화란 무엇인가?> 이 번역되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읽으시면 좋을 듯하다.

드 발의 글을 제외한다면 영어로 된 이마니시에 대한 제대로 된 소개글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일권에서 이마니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것 같은데 -Wuthenow, Asa-Bettina and Satoko Kurahara, (transl) 2002. Imanishi Kinji. Die Welt der Lebewesen. München: Iudicium Verlag GmbH.2> Wuthenow, Asa-Bettina and Satoko Kurahara, (transl) 2002. Imanishi Kinji. Die Welt der Lebewesen. München: Iudicium Verlag GmbH- 이유는 잘 모르겠다.

더불어 이마니시 아카이브가 현재 건설 중이며 이 작업에는 알버타 대학의 인류학 교수 Pamela Asquith 가 힘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녀에 의해 긴지의 책 <The World of Living Things>가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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