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다큐멘터리의 구태: 곤충, 위대한 본능

https://medium.com/science-scientist-and-society-korean/4f6f770afb32 원글

두 달에 한번, 유전학자에게 엄청난 노동량을 선사하는 초파리 이사를 하면서 <곤충, 위대한 본능>이라는 MBC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이승기라는 잘나가는 연예인의 목소리를 깔고 보이는 말벌과 꿀벌의 전투, 장수풍뎅이들의 일기토와 무당벌레와 개미 그리고 진드기들의 공생과 협업은 장면 그 자체로는 외국 자연 다큐멘터리에 손색이 없었다.

어린시절부터 <동물의 왕국>을 비롯해 BBC와 PBS의 대분의 자연다큐멘터리를 봐온 나로서는 화려한 연출과 음악에 가려진 기획의 부재가 아쉽기 그지 없다. 말벌과 꿀벌의 전투, 장수풍뎅이들의 일기토, 개미와 진드기의 협업만큼 곤충 다큐멘터리에서 뻔한 장면은 없다. 쇠똥구리를 아무리 우겨넣어봐야, 유튜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뻔한 장면일 뿐이다. 내가 과학자를 꿈꾸게 했던 곤충들의 모습과 다큐멘터리는 내가 과학자가 되던 20년 동안 하나 변한게 없다. 외국 다큐를 국내의 곤충으로 그대로 찍어 냈다는 정도의 진보는 있었던 듯 싶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다큐라고 한다. 당연히 들어갔을 것이라 생각했던 최재천 교수의 자문 한마디 없다. 한국에 곤충학자라 불릴 사람이 전멸한 상태에서 자문 받을 사람이 없었을 만도 하다. 언젠가 강의에서 물었다. 진화생물학 교양서와 다큐멘터리가 넘쳐나는 것과, 한국에서 진화생물학자 수십명이 실제로 연구하는 환경, 어느 것이 더 과학에 사회에 건강할 것 같느냐고. 마찬가지다. 곤충 다큐멘터리는 범람해도 한국에서 쇠똥구리를 연구하는 과학자는 연구비 못 받는다. 그런 분야의 과학은 한국에선 과학이 아니므로. 그렇게 한국 과학의 다양성은 위협받고 있다.

차라리 자연계의 곤충의 교미를 보여주고, 실제로 그 연구가 초파리 유전학자들에게서는 어떻게 연구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 꿀벌의 방어행동과 초파리 공격성 연구를 엮었으면 어떨까? 모성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초파리 암컷의 산란지 선택과 엮었으면 어떨까? 자연사 전통에서 곤충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실제 과학의 현장에서 그런 행동들이 어떻게 연구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척박한 환경에서 과학자를 꿈꾸는 아이들에게도 책임 있고 현실적인 조언이 아닐까? 두 개의 생물학을 만나게 한다는 측면에서도 외국의 다큐를 뛰어넘는 기획이 아니었을까?

많은 아쉬움이 남는 다큐였다. 이승기의 목소리도 많이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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