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의 재현성 문제: 재현성과 반복성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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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재현가능성 혹은 재현성 (reproducibility) 문제는 과학철학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주제 중 하나다. 칼 포퍼는 그의 책 <과학적 발견의 논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Non-reproducible single occurrences are of no significance to science 단 한번 발생한 재현불가능한 결과는 과학에 전혀 중요하지 않다” 포퍼의 책에는 재현성 문제가 몇번 거론되긴 하지만, 과학철학의 주제로 이론의 반증가능성에 집중했던 포퍼에게 이론의 밑바닥에서 벌어지는, 손에 물을 묻히고 철학적으로 명료하게 표현하기엔 너무나 추잡하고 엉켜있는, 과학현장의 경험 없이는 이해조차 불가능한, 실험 현장에선 과학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재현성 문제는 별도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는 과학자들이 재현성 문제를 알아서 잘 푸는 것으로 여겼고, 그것이 심각하게 과학의 성격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여기지도 않은 듯 싶다.

문제는 심리학으로 과학자 훈련을 받은 포퍼가 재현성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화된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는 데 있다. 우선 가장 널리 인용되는 그의 위 언명은 틀렸다. 이는 포퍼도, 또 쿤도 과학을 하나의 이론틀로 설명하고자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예를 들어 어떤 천문학적 발견은 단 한번의 사건이 해당 분야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닐 수 있다. 또한 재현이 아예 불가능한 과학분과도 있다. 진화생물학이 그렇다. 그래서 저런 말을 해놓고 포퍼도 말년에 진화생물학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한다. 즉, 재현성이 심각하게 과학의 진보와 연결되는 분야는 천문학이나 진화생물학과 같은 관찰/이론 위주의 학문이 아니라 실험과학분야이라는 뜻이다. 재현성은 실험과학에서 가장중요한 과학철학적 주제다.

재현성은 반복성(replicability)과 혼동된다. 둘은 다르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재현성은 변화를 요구하지만, 반복성은 변화를 피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쉽게 풀자면 재현성은 실험조건의 정확성에서 어느 정도의 변이를 인정하지만, 반복성은 그런걸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과학자가 A라는 항체를 어떤 조건으로 처리했을 때 유방암이 치료된다는 연구결과를 네이쳐지에 실었다. 반복성은 A라는 항체가, 위암도 간암도 아닌 유방암을 정확히 논문의 조건으로 처리했을 때 유방암이 논문이 제시하는 수준으로 치료될 것을 기대한다. 반면 재현성은 A라는 항체가 유방암만이 아니라 비슷한 수준으로 다른 암도, 게다가 조금 다른 조건에서도 치료한다는 것을 기대하고 예측한다. 심지어 재현성의 시각에서 이 발견은 A라는 항체의 유방암에 대한 작용이 단순히 특정 조건에서의 작용을 넘어 암치료 전반에 응용될 여지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음을 기대한다. 더 쉽게 설명해보자. 한마디로 말해서, 과학자들은 네이쳐에 실린 논문의 실험결과를 단순히 반복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그 결과를 통해 새로운 결과를 얻고, 과학의 토대를 굳히고 과학을 전진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한 결과의 반복은 과학의 진보에 별다른 도움이 안된다. 그 반복이 재현으로 이어질 때에만 해당 연구결과는 과학에 토대를 쌓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Chris Drummond 은 “재현성과 반복성은 다르며, 반복성은 과학에 좋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제 논란이 되고 있는 오보카타의 STAP 줄기세포 논란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현재 브릭에선 자기 실험실에서 해봤더니 안되더라는 소문이 파다하고, 이건 외국 실험실들도 마찬가지다. 된다 안된다 말들이 많은 와중에 오보카타는 STAP 세포를 만드는 상세한 프로토콜을 공개했다. 자, 이제 재현이 안된다고 생난리를 치던 연구자들은 오보카타가 제시한 프로토콜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 그대로 따랐는데도 안된다면 그 때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문제는 이게 재현이 아니라 반복의 문제로 바뀌어 버렸다는 것이다. 내가 이해하는 바, 지금까지 다른 연구자들이 오보카타의 결과가 재현이 안된다고 말한 이유는 위에서 기술한 재현성의 문제의 관점에서였다. 하지만 오보카타는 프로토콜을 제시함으로써 이 문제를 반복성의 문제로 환원시켜버렸다. 이렇게 치환된 문제가 줄기세포 연구에 건강하게 작용할 것인지 아닌지는 두고봐야 할 문제다. 즉, 생후 1주일된 새끼쥐에서 채취한 세포를 아주 까다로운 조건의 약산성 용액에 담궈서 아주 어렵게 얻어낼 수 있는 역분화줄기세포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쥐가 아니라 다른 생물, 혹은 1주일이 아니라 생후 한달, 이런 조건에서는 STAP 세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 연구를 반복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짧게는 오보카타 논문의 신빙성을 확증하는 정도의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길게 봤을 때 만약 STAP 세포가 정말 아주 까다로운 조건에서나 가능한 제한된 적용성을 지닌 기술이라면, 이 연구는 곧 과학자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게 된다. 즉, 과학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학자들이 이 연구에 열광했던 이유는 반복성이 아니라, 재현성을 통한 좀 더 광범위한 응용에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철학은 이런 까다로운 하지만 과학자들에게는 현실인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이런 문제들을 토론하면서도 좀 더 넓고 명료하게 문제를 일별하지 못한다. 최근 과학의 재현성 문제가 네이쳐지에서 폭넓게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재현성 문제를 반복성의 문제로 왜곡하고 있다. 물론 raw 데이터를 공개하고, 더 많은 샘플을 사용하고, 제대로된 통계를 사용하는 것은 과학의 기본적인 절차다. 이걸 지키지 않는다면 과학은 아예 작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험과학이 다루는 대상을 단순히 반복성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좀 더 큰 그림을 잃게 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반복되지 않는 논문들이 생물학 논문의 대부분을 이룬다. 그런 논문들이 아예 출판되지 않아야 할까? 어려운 문제다. 과학은 재현성을 통해 전진한다. 그 재현성을 위해서 데이터의 신뢰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재현성의 본질이 무엇인지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런 고민이 이 논문에 실려 있다. 과학의 재현성 문제를 고민하는 과학자, 그리고 혹시 과학철학자가 있다면 이 논문을 그 시작점으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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