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정치에 중립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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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으로부터 야기된 작금의 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이 놈 저 놈, 이 집단 저 집단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 하나씩 짚어 보자. 동의 따위는 구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정치판에 진실 따윈 없으니까.

하나만 솔직히 하고 넘어가자. 광우병이 조류독감이나 에이즈 따위의 병이었던가? 아니다. 광우병은 인류를 멸망시킬 정도의 위력을 가진 병이 아니다. 누군가는 전염병이 아닌 전달병이라는 표현도 쓰던데 뭐 대충 그렇다고 치자. 시사인에서 이미 내 입장을 밝혔지만 난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어도 소곱창을 맛있게 먹을 것이다. 그거 먹고 광우병 걸려 죽을 확률은 비행기 타고 가다 죽을 확률보다 낮다. 물론 걸리면 확실하게 죽는다. 그게 문제인거다.

그럼 국민들이 우매하여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는가? 아니다. 브릭의 몇몇 똘마니들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을 운운하면서 무지몽매한 국민을 계몽하시겠다는데 내가 보기엔 걔네들이 계몽 대상이다. 황교주를 구타하면서 유명세 좀 탔다고 얘네들이 요즘 눈에 뵈는게 없다. 실험실에서 파이펫 좀 잡아봤다고 과학이 어쩌느네 논문조작이 어쩌느네 호들갑 떠는 모습이 내 눈엔 그리 달갑지 않다. 한마디로 말해서 얘네들은 황우석 사태 이후 지네가 과학으로 국민을 선도하는 선도부 쯤으로 착각하고 있다. 건방진 놈들이 아닐 수 없다. 유전자 클로닝 좀 해봤다고 과학과 세상의 경계선을 그리 막 넘어다녀도 되는 줄 아나? 세상이 얘네 생각처럼 과학으로 간단히 선도될 대상이었으면 세계 대전이나 이라크 전쟁 같은 건 일어나지도 않았다. 세포레벨의 복잡성 쯤은 이미 인간 사회와 인터넷이라는 창조된 유기체가 거뜬히 넘어간 지 오래다. 지네들이 다루는 복잡성을 넘어서는 조직을 만났으면 응당 겸손부터 떨어야 되는 것이다. 과학자는 자존심도 세야 하지만 감히 반박할 수 없거나 모르는 사실에 직면했을 때 겸손한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진짜 과학자가 어떤줄 아나?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다. 그래야 공동연구도 하고 더 배우고 튼튼하게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얘네들은 과학이 가치중립적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리 믿으라 하자. 그러면 내가 아주 가치중립적인 사실을 몇 가지 알려주어야 겠다. 쇠고기 협상에서 광우병의 위험이 과장되었다며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자고 지랄을 하는 얘네들에게 몇 가지 비극적인 사실을 좀 알려주어야 겠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지능이 높은 인종은 백인종이다. 과학의 가치중립성을 침범하지 말고 한번 반박해 봐라. 만약 확실한 데이터만을 기반으로 지능을 논하고자 한다면 IQ를 찾게 될 것이고, IQ 테스트만으로 따지면 백인종이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인종이 맞다. 또 있다. 남자가 여자보다 우수하다. 이것도 과학의 가치중립성을 침범하지 말고 반박해 봐라. 못한다. 이 두가지 이슈는 과학적 가치중립성을 침범하지 않고는 아직 깰 수 없는 장벽이다. 왜냐하면 과학이 서양에서 탄생했고 주로 남자들에 의해 연구되어 왔기 때문이다. 편향확증이라는 게 있다. 인간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본다. 데이터를 보고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어떤 때는 결론을 이미 마음 속에 그려 놓고 데이터를 보는 것이다. 이런 데이터를 깰 때는 과학적 가치중립성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정황 속에서 합당함을 찾아야 한다. 과학이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내가 시사인에서 논했듯이 광우병이던 인종간 지능 차이건 남녀의 생물학적 불평등이건 모조리 과학적 해석의 문제와 결부되는 것이다. 과학적 해석의 문제는 열려 있고, 그것이 과학과 비과학의 뚜렷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 않다면 모조리 토론의 대상인 것이다.

과학이 가치중립적이라고? 광우병이 걸린 소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리는지 아닌지를 현재 나와 있는 데이터로 확정지을 수 있다고? 천만에. 사전예방의 원칙이라는 고상한 나부랭이를 들이 밀 필요도 없다. 이건 처음부터 과학에 의해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이 우리보다 과학을 못해서 20개월 미만의 소를 수입하는 게 아니다. 유럽이 우리보다 못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국가간의 통상이란 힘의 전쟁이다. 힘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국의 이익이다. 자국의 이익이라 함은 주권을 가진 자국민의 이익을 말한다. 그런데 이명박은 국민을 개무시하고 협상을 진행했다. 지금 국민들이 광우병에 걸릴까봐 거리로 나섰다고 보나? 아니다. 정부가 국민을 개무시하는 꼴을 못보겠다는 것이다. 이미 알 건 다 알 정도로 산전수전 다 겪은 국민들에게 정부가 선도부처럼 훈계하는 꼬락서니가 못마땅한 것이다. 그리고 이 따위 선도에 짜증난 국민들을 브릭의 똘마니들은 또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선도하려 하고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계몽주의는 실패했다. 과학은 계몽이라는 이름으로 전도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반인의 상식을 무시하는 과학자 집단은 반드시 타도해야 한다. 상식이 과학보다 항상 우선한다.

나도 예전엔 과학이 가치중립적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유전자는 이기적이며 우리는 그걸 인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뭔가 허전했다. 그래서 그 다음엔 무어의 자연주의적 오류를 믿었고, 사실로부터 가치를 도출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다가 웃기는 걸 발견했다. 혁신을 이룬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사실로부터 가치를 도출해내거나 미리 결론을 내어 놓고 실험을 진행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뭐냐 이건. 나는 과학은 굳게 가치중립적이므로 과학자는 절대로 정치 따위에 휘둘리거나 함이 없이 과학적 사실만을 객관적으로 서술할 줄 알아야 한다고 믿었는데, 왜 내가 아는 유명한 과학자들은 죄다 그걸 비껴가는 거냐. 그제서야 알았다. 과학이란 애초에 가치중립적인 학문이 아니라는 걸. 과학이란 지식 습득 활동의 아름다움은 현상에 정량적 신뢰를 부여하는 작업에 있을 뿐이다. 그로부터 얻은 모든 이론들은 항상 잠정적이고 해석에 열려 있다. 그것이 과학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물론 이러한 열려 있음이 과학자 사회 내부에서 논의 될 때에 건강하다. 안 그러면 창조론자들이나 초능력자들에게 과학이 악용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가 창조론과의 논쟁에서 이미 배웟듯이 과학은 가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창조론을 과학계로부터 몰아내려고 할 때 우리는 딜레마에 빠진다. 논쟁을 한다는 것은 이미 그것을 하나의 과학적 이론으로 인정하는 것이며 논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그 미친 광신자들의 이론을 반박하지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침묵이 합리적일 때도 있지만 과학계에서 침묵은 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 신념을 바꿨다. 어차피 과학이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면 시대를 잘 살펴 그 옭고 그름을 가리고 그 시대정신에 과학적 가치를 실어주겠다고. 그리고 시대정신이라는 상식을 알려줄 수 있는 유일한 교과서는 과학도 정치도 아닌 역사뿐인 것이다. 인간은 미래를 예측 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인류사라는 거대한 실험을, 진화의 산물로 우리에게 주어진 두뇌를 이용해 판단하는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정량적인 작업은 아니며 따라서 과학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고 그것이 내가 아는 가장 큰 겸손이다. 자연보다 역사에 겸손한 인간만이 과학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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