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것이 과학이어야 하는가?

http://heterosis.egloos.com/773020 원글


2004년 9월 14일, 관련 논의는 이곳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신비주의가 만연하게 된다는 아이러니는 최한기가 살았던 15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듯 하다. 자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자연에 대한 신비감이 사라질수록 신비주의자들은 또다른 신비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얼마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의 소광섭 교수가 경락의 실체를 해부학적으로 규명했다는 기사가 신문지면을 떠들썩하게 달군 적이 있었다. 연세대학교 의대의 김현원 교수도 경락의 실체가 물질적으로 규명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말 경락이 발견되었다는 말인가?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이 둘의 발견을 거칠게 논박한 글은 이 게시판의 11번과 12번 글을 참고해주기 바란다) 

좋다. 경락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던 아니던 그건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나는 과학만능주의자가 아니다. 생각해보자. 경락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어야만 한다고 믿는 당신들이 오히려 과학만능주의자가 아닐까? 과학이 아니면 자신들의 이론과 활동이 모조리 그 입지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여긴 일종의 피해의식이 아닐까? 이미 당신들은 지난날 현대과학이 달성해온 그 발견법에 모종의 경의를 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도 현대과학이 발견하지 못한 것이 있고 우리가 모르는 것도 있으니 우리의 작업에 대해 입을 닫으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이 “자기모순”이라는 것이다. 당신들의 작업을 과학으로 포장하면 할수록 스스로를 죄는 바보같은 짓을 당신들은 벌이고 있는 것이다. 

소광섭 교수는 “미내사클럽 http://www.herenow.co.kr/ “이라는 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미내사클럽이라는 곳이 어떤 주제들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을까? 간단하게 몇가지를 열거해 보자.이들의 강좌는 

ㆍ의식개발/명상 
ㆍ정신과학 
ㆍ심신수련 
ㆍ건강/치유 
ㆍ미래예측/직관력 
ㆍ첨단프로그램 
ㆍ학습 
ㆍ기타 

등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각각을 다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고 대표적인 것으로 이들이 “유체이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만을 언급하도록 하겠다. 내가 더 황당한 것은 미내사가 좋아하는 (약간의 동정심이 들기도 하지만 너무 가버린) 루퍼트 쉘드레이크라는 과학자가 현재 과학사회학으로 과학의 민주화 시대를 열겠다는 우리나라의 한 사회학자의 글에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사회학자는 쉘드레이크가 너무 맘에 든다고 떠벌리고 다니고 있다. 그는 자신이 사회학자인지 과학자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면서 과학자사회에서 신비주의자로 매도당하는 과학자를 자신의 이론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가장 합리적이어야 할 과학사회학자, 그것도 우리나라 과학사회학의 태두라는 이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올 정도라면 심각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위험하다고 여기는 이유에 관해서는 뒤에 다루도록 하겠다. 

연대 의대의 김현원 교수는 어떤가. 그는 물에 대한 연구로 유명하다. 얼마전 과학분야 베스트셀러로 올라 장안에 화재가 되었던 책 “물은 답을 알고 있다”를 기억하는가? 물에 “감사하다” 라던가 “사랑해”라는 말을 들려주면 물결정이 아름다워진다는 황당무개한 소리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은 차제하고, 경락을 발견했다는 김현원 교수가 마사루와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는 것은 알고 있는가. 그런 그가 경락이 물리적 실체란다. 도대체 왜 경락이 물리적 실체여야 하는가. 그렇게 정신과학을 주장하는 그가 왜 경락을 물리적 실체에서 찾아야만 하는 것일까. 여기에 우리나라 신비주의집단의 딜레마가 있으며 그것이 위에서 언급한 “자기모순”이다. 

발견의 진위성 문제를 떠나 현재 우리 사회가 정치적 사회적 이슈로 인해 뜨거워 지면서 고개를 서서히 들기 시작한 이 신비주의자들의 위세에 대해 강조하고자 한다. 무서운 것은 이들의 연구가 거의 과학적인 어떤 합의점을 가지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소광섭 교수의 연구는 “국가지정연구실 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신비주의자들이 사라지길 바란다는 것은 범죄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것이다. 그들이 사라질 수 없는한 우리는 합리적인 대안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 기존의 윤리학이 이런 문제에 어떤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지 모르지만 내 기본적인 입장은 이렇다. 

“신비주의자들이여 개인적인 영역을 떠나 사회적인 영역으로 침투하지 말지어다” 

위대한 영화 “공공의 적”에는 설경구가 가게에서 난장판을 피우던 깍두기들을 무릎꿀려 놓고 하는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깍두기는 깍두기 세계에만 산다. 깍두기는 시민의 세계로 넘어오지 않는다” 

신비주의자들은 제발 신비한 세계에서만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당신들이 원하는 신비한 세계가 초자연적인 어떤 실체의 개입도 없이 개판으로 돌아가는 정치와, 수없이 많은 이들이 정치적인 탄압속에서 죽어가는 이런 현실적인 세계는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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