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Medawar가 언급한 바와 같이, 만일 정치가 가능성의 예술이라면 과학은 해결의 예술이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그들이 접근하기 쉬워보이는 문제들 가운데 그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에 도전한다. 말하자면 옳든 그르든 그들이 문제 해결 능력이 있다고 느끼는 것에 도전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직무는 단지 문제로 둘러싸인 환경에 대항하는 것뿐만 아니라 해결책 또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많은 활동이나 일반적인 삶에서처럼, 과학자는 욕망과 가능성이라는 양극 사이를 항해한다. 가능성이 없는 욕망은 꿈에 지나지 않는다. 또 욕망이 없는 가능성은 지루할 뿐이다. 몽상과 유토피아적 이상에 대해 저항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실험에서는 상상력이 허용된다. 그러나 실험의 매단계마다 과학자는 자신이 만들어낼 세계에서 몽상적인 요소를 줄이기 위해 기꺼이 비판과 실험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과학적인 사고 방식은 존재할 수 있는 것과 존재하는 것을 끊임없이 대조해 봄으로써 이루어진다. <파리 생쥐 그리고 인간 서론 p18>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