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화된 독일의 미국대사관과 나

1,200억원이면 대한민국에서 기초과학을 하는 실험실 300개가 1년동안 랩을 운영할 수 있는 돈이다. 2008년 특정기초연구사업의 예산이 1,162억이었으니 대한민국 과학자들에게 이정도 돈은 꽤나 큰 돈임엔 틀림이 없다. 미국이 이번에 완공한 독일 내 미국대사관의 건립비용이 1,200억원이었단다. 뭐 한 해 국방비로 무려 560조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1,200억원은 애들 껍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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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돈이 아니다. 건물의 품새가 거의 요새 수준이다. 폭탄 대책용의 특수 유리가 사용되었고, 벽에도 강도가 높은 재료가 이용되는 건 그렇다 치고, 지붕에도 폭탄테러 방지를 위해 특수한 장치를 했다고 하고, 2층과 3층은 도무지 뭐하는 곳인지 알 수도 없는 구조라고 한다. 독일 현지 언론들은 이 웅장한 건물을 ‘미군 요새'(쥐트도이체 자이퉁), ‘철통 보안의 감옥'(베를리너 자이퉁), ‘이라크 내 미군 안전지대 그린 존 같은 느낌'(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자이퉁), 건물이거만하게 팔짱 낀 형상'(한 건축 평론가) 등 으로 부르며 비아냥거리고 있다.

이해는 간다. 1998년의 케냐,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의 폭탄 사건으로 약 260명이 사망했던 아픈 기억과, 나토 군의 아프가니스탄 파견으로 인해 독일에 대한 테러 위협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테러의 가련한 피해자인 미국이 얼마나 겂이 났는지 이해할 만 하다.

게다가 미국대사관의 위치가 브란덴부르크 개선문(Brandenburger Tor)의 바로 옆이라고 한다. 미국 대사관은 1941년 나치 독일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단절된 국교로 인해 지금 완공된 자리로부터 철수했던 기억이 있다. 정확히 67년여만에 복귀한 셈이다.

독일의 개선문으로도 불리는 브란덴부르크 문은 1788년부터 1791년까지 건설되었고 19세기 이후 전쟁에 승리한 프로이센군 및 독일군이 개선할때 반드시 통과하는 장소였다고 한다. 분단 당시 베를린 장벽의 바로 뒤에 보였었기 때문에 분단의 상징이었다가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통일의 상징이 된 곳이다.

그러니까 우리로 치자면 남북통일 후 판문점에 요새화된 미대사관이 들어선 셈이라고 하겠다. 독일 사람들 참 기분 더럽겠다.

얼마전 오바마가 독일을 방문해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연설을 하겠다고 제안했다가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아마도 1963년에 케네디가 동독과 소련에 샌드위치로 고립된 서독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케네디 최고의 연설이라고도 일컫어지는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의 의미는 연설의 마지막 구절 즉, “모든 자유민은, 그 사람이 어디에 살건 간에 그 사람은 베를린의 시민입니다. 고로, 자유민으로서, 전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Ich bin ein Berliner)’란 이 말을 자랑스레 여길겁니다!”에서 찾을 수 있다. “2000년전 가장 자랑스러웠던 말이 ‘나는 로마인이다'”라는-나로서는 이런 제국주의적 발언을 참기 어렵지만- 말로 시작했다는 점도 기억하자. 그리고 1987년 레이건도 이곳에서 연설을 했다. 고르바쵸프에게 던지는 메시지였고 2년 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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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덴부르크 문에서의 연설은 일종의 역사적 의미를 오바마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이 분 무려 물리학과 석사 출신이고 전남편이 물리학자, 현남편이 화학자다. 부럽다. 독일)는 역사적으로 이 곳은 미국 현대통령들만이 연설했던 곳이라며 반대했지만, 결정권을 지닌 라우스 보베라이트

시장이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는 것으로 보아 잘하면 연설이 이루어질 수도 있을 듯하다. 우리는 잃어버린 10년을 지나 다시 잃어버릴 10년으로 가고 있는데, 미국은 잃어버린 10년을 지나 흑인대통령의 시대로 간다. 오바마의 시대는 참으로 세계사적으로도 그렇고 흥미진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맷 데이먼이 주연한 굿 셰퍼드라는 영화에서 CIA와 KGB가 주도한 과학자 교환 협상이 등장한다. 실제로 나치 독일 하에서 당시 엄청난 진보를 이루고 있던 독일의 물리학자들 즉, 아인슈타인, 페르미 등을 비롯해 천재적인 수학자 폰 노이만, 그리고 수많은 생물학자들과 화학자들이 모조리 독일을 빠져나가 미국으로 영국으로 프랑스로 망명의 길을 떠났다. 유명한 인물 중에 망명을 택하지 않고 나치에 동조한 인물은 하이젠베르크 뿐이다.

여하튼 1,2차 세계대전이 아니었으면 미국은 과학에서 지금처럼 비약적인 발전을 거둘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지금처럼 빠르게 발전하지는 못했으리라. 게다가 당시 일어난 엄청난 ‘두뇌이민’은 독일의 과학이 얼마나 융성했었고 강력했었는지를 반증해 주는 사건이다. 두뇌이민으로 전세계 과학의 판도가 뒤바뀌어 버렸으니까. 독일의 과학이 다시 현재처럼 떠오르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전통이 존재했던 곳이니 망정이지.

여하튼 미대산과이 지어진 이 거리가 밤에는 조금 위험한 거리라는데, 그래서 무려 1200억원을 들여 요새를 지어놨을리는 만무하고, 분명 독일과 같이 선진국에서도 안심을 못하겠다라는 말이겠지. 아니 오히려 선진국이니까 안심을 못하는 것이리라. 독일이라는 나라도 테러리스트들에게는 주요표적이 되어버린 나라고,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이 어차피 자원확보를 위해 세계를 어떤 식으로든 점유하려고 하는 건 사실 아닌가.

그러니까 결국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반증은 주한 미국대사관이 요새화되는 상징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베이징의 미국대사관도 최근 삐까번쩍하게 완공이 되었다는데, 주한 미국대사관은 여전히 전경들의 호위로 지켜지고 있으니까. 중국은 아마도 미국이 선진국으로 인정했나보다.

박노자의 말에 따르면 400여년이나 이 땅에 들어 앉아 있었던 낙랑국은 침략자로만 볼 수는 없다는데, 100년이 흐른 후에 도대체 역사가들은 전시작전권도 가지지 못한 채 50여년을 나름 주권국가랍시고 지낸 대한민국을 뭐라 평가할 것인지,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미국대사관과 용산미군기지를 뭐라고 평가할지 기대된다.

여하튼 미국은 스스로 깡패임을 여기저기 잘도 자랑하고 다닌다. 때린 놈은 발 못펴고 잔다더니 미국이 딱 그 꼴이다. 에그 잘났다. 이 와중에 독일 미국대사관을 재미교포가 설계했다는 뉴스가 회자된다. 그게 뭐 어쨌다고.

여하튼 이런 역사적 와중에 한달후면 미국으로 걸어들어가야 되는 나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역사는 나를 매국노라고 부르지는 않을까? 에라. 일단 살아 볼 일이다. 이거저거 따지면 유학을 갈만한 곳은 아무데도 없는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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