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빨 과학 블로거가 추천하는 세 권의 책

수령님 눈엔 내가 좌빨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전원책이 이겼다는 이야기나 끄적대고 있는 내가 좌빨로 보이는 것도 우스운 일일 것이지만, 우리 수령님도 진중권이 뻘짓으로 변증법을 연주했다는 언명을 내비치지 않았던가. 그래 스스로 좌빨스러움이 내재되어 있으리라 생각하며 몇 권의 책을 추천해보기로 한다.[footnote]참고로 필자 엄청 잘 삐진다. 릴레이를 이어주신 저련님께 무궁한 영광을, 본인의 좌빨스러움을 개무시한 이승환 수령에게 야근의 고통을![/footnote]

급진스러운 과학자가 추천하는 세 권의 책

최근에야 안 사실이지만 내가 위키라는 시스템에서 놀던 시절 게시판으로 도배되었던 대한민국의 인터넷은 논객으로 넘쳐났었던 것 같다. 일일이 이름을 모두 거명할 수는 없지만, 진중권을 비롯하여 대자보와 서프라이즈에서 활동하던 변희재, 공희준, 장신기, 서영석 등과 김규항등을 비롯하여 이름도 셀 수 없는 논객들로 인터넷은 한바탕 춤판을 벌렸던 듯 하다. 최근에서야 그 흔적들을 살펴볼 기회를 가졌는데 노빠로 통하던 이들은 산산조각 분열되었거나 정신을 잃은 듯 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이들을 찾기 힘들다. 이런 주제에 관해 글을 좀 써보려 했는데 이상한 부류에 휩싸이게 될까봐 관두었다.[footnote]양신규라는 학자의 죽음도 최근에야 알았다. 유일하게 내가 추적하고 싶은 학자는 양신규가 유일하다.[/footnote]

과학자로 이러한 논쟁에 참여했던 인물들을 많이 알지는 못하는데, 그 중 양신규는 독보적이다. 물리학과 출신으로 경영학 경제학을 공부했던 그는 ‘홍성욱-양신규 논쟁’을 통해 과학사회학의 Strong Program과 전쟁을 벌였고, 그의 정치적 성향을 ‘월간 말’이나 여러 게시판을 통해 표출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학자가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조만간 양신규에 관한 글을 한편 쓸 작정이다. 나는 너무 그를 늦게 알았다.

나는 좌우로 이념을 나누어 세상을 구분하는 잣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좌파라 규정짓던 이들의 배신을 수도 없이 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념은 그 이념을 제한할 마땅한 상식이 존재하지 않을 때 결국 무서운 종교로 기능함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나도 좌빨스럽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지만 나는 스스로를 좌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과학자라는 직업 속에서 사는 나에게 좌파가 된다는 것은 수 없이 많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과학이 좌파들에게 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대한민국에선 더욱 그렇다.[footnote]이에 관해선 <좌파의 유전자 결정론>과 <좌파의 유전자 조작 실험>을 참고할 것.[/footnote]

좌파 과학자로 살기: <인간에 대한 오해> 스티븐 제이 굴드

이런 고민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학자는 단연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다. 실상 좌파스러움을 유지하면서 과학자로서도 뛰어난 학자라면 리쳐드 르원틴을 꼽아야겠지만, 굴드를 꼽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굴드의 저서들만이 고생물학자인 굴드와 사회과학자인 굴드 모두를 보여줄 수 있는 정도로 번역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번역되어 있는 <삼중나선>, <DNA 독트린> 및 스티븐 로즈와 공저한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는 르원틴의 한쪽 면만을 보여주는 저서들일 뿐이다. 르원틴의 주저 <The genetic basis of evolutionary change>가 번역될리 만무한 대한민국에서 르원틴의 책을 추천하는 것이 주저스러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어쩌면 과학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것 뿐인 그의 저서가 과학사회학자들에 의해 오독되는 현실은 정말 슬픈 일이다. 이러한 고민은 최근 사이언스타임즈에 연재 중인 <스티븐 제이 굴드와 RNA> 시리즈를 참고하시기 바란다.[footnote]사이언스타임즈에 글을 쓰느라 두뇌가 소진될 지경인데 좀 제발 읽고 품평 좀 해달라.[/footnote]

그래도 조금은 좌빨스러워야겠기에 굴드의 책 한권을 골라야만 한다면 단연 <인간에 대한 오해>여야 할 것이다. 사회진화론과 우생학에 대한 증오만이 난무하는 국내의 현실 속에서 그나마 상식적인 좌파의 시선이 녹아 있는 유일한 책은 이것 뿐이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오해>는 우생학의 비극스러운 역사를 살피는 역사학자로서의 굴드와 혈액형으로 성격을 분류하고 IQ에 모든 것을 거는 국내의 현실에서 과학자가 좌파로 산다는 것, 그리고 좌파스러운 과학자가 어떻게 역사를 이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유일한 책이다. 누누히 말하지만 국내에 수입된 굴드는 과학사회학자들에 의해 오용되고 있다. 김동광의 오역은 물론이거니와 과학자로서 중심을 잃지 않았던 굴드가 이념에 놀아나는 꼴을 더이상 보는 것은 참담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이민법과 독일의 민족주의에 놀아난 우생학을 다룰 때 증오를 표출하던 굴드가 초기의 우생학자들에게 보여주는 미소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자들은 좌파 과학자로서의 굴드를 논할 자격이 없다.

인간에 대한 오해10점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사회평론


좌파의 과학철학: <방법에의 도전> 폴 파이어아벤트

과학자들이 쏙 빠진 채 국내로 수입된 ‘과학전쟁’의 기록들로부터 오염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토마스 쿤 타령을 하고 있을 참인지는 모르지만 과학철학이라는 낯선 분야를 처음 접하고 내가 느꼈던 당혹감과 과학자로서의 고민을 국내의 인문사회과학자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다. 그나마 국내에 줄기차게 번역된 과학철학 서적들 중 가장 급진적이지만 고전역학적 세계관을 쫓아가던 우스꽝스러운 과학철학을 비판했던 파이어아벤트의 <방법에의 도전>은 좌빨들이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이 책을 읽고 과학도 결국은 상대주의적이며 과학적 지식이라는 것도 인문사회과학과 다를 바 없다고 결론 지을 이들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러한 결론은 독서의 기본인 해당 저술의 시대적 문맥에 대한 고려도 없는 무지에 불과한 것이고, 과학에 대한 질투와 증오 그리고 무분별한 비판과 다를 바 없다. 과학을 하나의 잣대로 규정짓는 당시 과학철학의 움직임에 대한 파이어아벤트의 급진적이고 성실한 답변은 과학을 둘러싼 메타과학 혹은 과학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관문일 것이다.

방법에의 도전
카테고리 유아
지은이 똘페이어아벤트 (한겨레,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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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의 역사경제인류학: <리오리엔트> 안드레 군터 프랑크

과학자가 좌빨스러운 책을 추천한다고 해서 반드시 모든 책이 과학과 관련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차피 대부분의 좌빨 블로거들이 좌파경제학자들, 즉 사회과학 저술들을 소개할 것이 틀림 없으므로 균형을 맞추어 보기 위해, 또 과학자로서 좌파스럽게 산다는 것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위의 두 권을 추천했을 뿐이다. 우석훈이라는 인물이 경제인류학을 대안으로 삼는 마당에 종속이론을 주장했던 군터 프랑크의 책 한권을 소개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하다. <리오리엔트>는 식민지 이후 100여년간 계속된 남미의 경제적 저발전에 대한 비마르크스적 이론가들의 대안이 실패하던 와중에 이를 비판하며 전명에 부상한 학자, 안드레 군터 프랑크의 저작이다. 그와 더불어 도스 산토스(Dos Santos) 등은 비마르크스주의자들의 대안은 실패했으며, 중심부와 주변부로 나뉜 세계에서 중심부에 속하는 근대국가들과 제3세계의 잘못된 경제적, 정치적 통합으로 인해 저발전이 나타난다고 주장했었다. 그들의 실험이 실패로 끝났던 아니던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가 필독서로 읽히고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불온도서가 되는 지금 거시적인 관점에서 세계의 역사를 읽는 것은 좌빨들에게 필수불가결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 책을 읽고 아시아 우월주의에 빠지는 이들도 한심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선 프랑크의 한국어판 서문이 이미 경고하고 있다.


이 책이 한국 독자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서양의 선천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다분히 인종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단정의 허구성을 역사적으로 까발린다는 데 있을 것이다. 아울러 과거 세계경제에서 아시아가 서양보다 우위에 있었으므로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나의 전망에도 공감하는 한국 독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일부 서양 학자들은 내가 유럽중심주의를 아시아중심주의 내지는 중국중심주의로 바꿔치기 했을 뿐이라고 비판하지만, 이것은 온당한 비판이 아니다. 만일 아시아 독자들이 그런 이유에서 이 책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다. 이 책의 핵심이 되는 ‘과학적’ 테제는 글로벌 경제는 과거에도 존재했으며, 적어도 이 책에서 분석한 시기에는 진정한 의미의 중심은 없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런 중심이 존재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증거로 미루어볼 때 1800년까지는 또는 그 이후까지도, 유럽과 서양은 세계경제의 중심이 결코 아니었다. 중심이라는 표현을 굳이 쓰고 싶다면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런 용어로 지칭될 자격이 있는 지역은 주변에 불과했던 유럽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하지만 그런 중심성은 하나의 전체로서의 글로벌 경제를 파악하지 않는 한 전혀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이 책에서 부르짖는 으뜸가는 ‘이데올로기적’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인류중심주의 내지는 생태중심주의라면 또 모를까 특정 지역이나 인종을 주인공으로 설정하는 중심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리오리엔트> 안드레 군터 프랑크, 이희재 역, 26-27

리오리엔트10점
안드레 군더 프랑크 지음, 이희재 옮김/이산


좌파의 상식: 다양성 속의 통일성 (Unity in Diversity)



나의 테제는 ‘다양성 속에 통일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일성이 어떻게 다양성을 낳고 또 끊임없이 변화시키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세계의 다양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고 그 가치를 인식할 수도 없다.

<리오리엔트> 안드레 군터 프랑크, 이희재 역, 55

이 세 권의 책을 관통하는 화두는 프랑크의 말 속에 잘 녹아 있듯이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다. 아마도 뚜웨이밍의 저술들을 통해 이 화두를 전해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생명의 다양성 속에서 진화의 역사를 바라보는 굴드와 관점은 진화학 자체에 대한 비판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과학철학의 획일성을 부정하고 과학 방법론의 다양성을 주장했던 파이어아벤트는 과학의 분과다양성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제공하며, 장대한 역사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프랑크의 경제인류학적 관점은 언제나 좌파에게 다양성이라는 화두가 일종의 상식으로, 또는 이념에 종속되는 것을 막는 제한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다시 한번 수령 동지에게 야근의 저주를 날리며 좌빨 과학 블로거의 세 권의 책을 블로거 스피어에 날려 본다. 릴레이가 계속되어야 한다면 나는 바하문트 님과 포카라님, 그리고 파르시잔 님을 추천하련다. 그들이 책 세권을 추천할 수 있다면 나 같은 조무래기도 한 줄 획을 그은 것은 아닐까 한다.


22 thoughts on “좌빨 과학 블로거가 추천하는 세 권의 책

  1. 모두 좋은 책을 추천해 주신 것 같은데.. 제가 미국에 있는 관계로.. 혹시 영어 원제목을 알 수 있을까요?

  2. 인간에 대한 오해=Mismeasure of Men
    방법에의 도전=Against Methods
    리오리엔트-Reorient

    알라딘 US 에 가시면 그닥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한국 책을 사실 수 있던데요. ^^

  3. 보고 바로 위시리스트에 담아 둡니다.
    기대 되네요.
    // 덧. 방법에의 도전은 절판된듯 하네요.
    // 학교 도서관에는 있군요..

  4. 제가 원래 읽은 책이 몇 권 안됩니다. 동참은 하고 싶은데 마땅히 추천할 만한 게 없네요. 바통은 나머지 두 분께 패스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

  5. 감사합니다. 일단 영어책으로 읽어 볼 수 있으면 읽어 보려고요. 아무래도 값이 더 싸지 않을까요…-.-;;

  6. 세권 모두 번역이 훌륭한 책들입니다. 번역이 양질인 한 저는 원서를 안 보는 편입니다. 원래 영어를 실용적으로 사용하는 버릇이…컥!! 원체 매일 읽는게 영어들 뿐이니 책읽을 때만이라도 좀 한글을…

    여튼 재미있게 읽으시고 독후감도 트랙백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7. 핑백: parxisan
  8. 핑백: Curious Minds
  9. 사이언스 타임스 연재 잘 읽고 있습니다.
    품평할 만한 수준이 안되기에 그냥 읽고만 있습니다.

  10. 핑백: OnEither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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