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의 하루

신체에서 소모되는 포도당의 대부분이 두뇌활동에 의해 소진된다는 보고가 있다. 그만큼 정신 노동이 심한 스트레스이자 하나의 일감이라는 말이다. 글을 쓰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 아무 생각 없이 지금처럼 이렇게 쓰는 글을 제외하고, 뭔가 정리해서 쓰는 글들은 엄청난 두뇌에너지를 소비한다. 사람이 미친듯이 글을 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이유다.

두뇌에서 사용되는 포도당이 신체에서 소진되고 난 후에 글을 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내가 요즘 사는 게 그렇다.

실험실이 사는 집 바로 옆에 있다는 장점때문에 10시쯤 일어나도 넉넉히 출근이 가능하다. 대충 씻고 실험실에 나가면 우선 처녀들을 골라야 한다. 이걸 morning collection이라고 한다. 요즘엔 점점 다루는 라인들이 늘어나서 한번 콜렉팅을 시작하면 보통 두어시간이다. 그리고 나면 대충 점심을 때우고 오후엔 갖가지 실험들을 진행한다. 요즘엔 receptivity assay라는 걸 하는데 쉬운 말로 하면 초파리들이 얼마나 sex를 잘 하는지 테스트 하는 거다. 초파리의 성생활은 놀랍기 그지없다. 그리고 나서 논문도 읽고 잡일을 하다보면 저녁시간이고 저녁을 대충 먹고 다시 랩에 나온다. 밀린 일들을 하다보면 다시 처녀들을 골라줄 시간이 된다. 실온에서 12시간 단위로 골라주는 게 사람 참으로 피말리는 일인데 여하튼 그렇게 한다. 이렇게 하면 5시에 퇴근하는 여기애들보다 두배는 많은 virgin을 두배 빠른 시간에 보유하게 되는 장점은 있다.

여하튼 그러다보면 새벽2~3시가 되고 대충 일 마무리 짓고 자는 시간이 4~5시다. 그리고 또 10시에 일어나는데 세상에 시간이 모자라다는 걸 이제야 몸으로 깨닫고 있는 중이다.

이러다 죽지 싶은데 초파리는 참으로 많은 할거리들을 제공하기 때문에 멈출수가 없다. 유전자를 넣었다 뺐다가 내 맘이고 어디서 발현시키고 어디서 끌건지도 내맘이다. 아이디어는 무한대요 시간은 제한되어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이 랩은 돈이 많다. 뭘하든지 논문만 내면 그걸로 장땡이다. 여하튼 그렇다.

결론은 내가 블로그에 정제된 글을 쓰게 되는 그 날은 뭔가 되게 심심하거나 일이 잘 안되는 날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말이다. 나도 글 쓰고 싶다. 명박이도 씹고 싶고. 그런데 초파리와 함께하면 그게 잘 안된다. 뭐 그렇다.

2 thoughts on “실험실의 하루

  1. 하하하하!!! 전에 초파리는 왜 이렇게 알을 크게 낳아서 똥침놓느라 고생시키냐고 불평하면서 초파리의 섹스 라이프를 위해서 자기 섹스 라이프를 희생하고 있다고 울부짖던 모씨가 생각나는군요…저는 죽이기만 하면 되니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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